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臨床秘話 1966년 8월호

韓東錫

  人間의 生理現象이 病理的 變化를 일으킬 때처럼 그것을 측량하기 어려운 때는 없다. 가령 患者가 어떠한 身上의 呼訴를 할 때 醫師는 당연히 그 속에 秘藏되어 있는 病魔의 秘密을 探索하고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이것은 事實上 難中之難事다. 왜냐하면 患者의 陳述하는 바가 患者 自身이 느끼고 있는 感覺的 現象인 것 뿐이기 때문이다. 人間의 感覺은 언제나 그 뒤에 伏魔殿과도 같은 幽玄世界를 背景으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人間의 感覺 즉 感性的 作用은 一種의 幻像에 不過한 것이다.

  이와 같이 생각해 볼 때 感性的인 人間인 患者의 陳述이나 呼訴한 것을 따지고 보면 一種의 幻像이 自己를 演出하고 있는데 不過한 것이다.

  그러므로 醫師가 患者의 病理的 秘密과 問答한다는 것은 결코 容易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人間의 病理的 變化는 이러한 程度인 것뿐만 아니라 때로는 突然的인 異變을 나타내는 때가 있다. 좀더 仔細히 말하면 갑자기 子宮에서 물(水)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든지 或은 밤(夜)사이에 눈(眼)이 튀어나와서 마치 개구리(蛙)의 눈처럼 되었다든지 하는 것과 같은 것은 變化 中에서도 特殊한 變化이며 또한 突然的인 異變인 것이다.

  그런즉 醫師가 萬一 이러한 境遇를 當하게 되면 당황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醫師는 이러한 경우일수록 그 態度는 沈着하여야 하며 그 머리는 慧智的이어야 하며 그 思索은 哲學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醫師가 그러한 姿勢와 準備를 갖춤으로써 만일 위와 같은 秘密을 探索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런즉 이것이 바로 「臨床秘話」다.

  筆者는 이러한 境地에 臨하고 있는 學界에나 自身이 經驗한 바와 硏究한 바에 對하여 理論的 根據를 紹介함으로써 學術的 批判을 받으려고 하는 바이다. 그런데 이 글은 當分間 連載할 計劃인 즉 그 批判은 끝맺은 後에 있기를 부탁한다.

(一) 子宮出水

  1966年 6月 13日 31歲 가량의 靑年이 來院하였다. 그는 自己 婦人이 産後 2週日인데 子宮에서 물(水)이 터져 나와서 只今 ×××病院에 入院하고 있는 中이니 往診하여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唐惶하였다. 大抵 子宮에서 물이 나온다는 말을 듣고 그 물 나오는 까닭을 都是 알 수 없기 때문이다. 或是 解産할 때에 醫師의 不注意로 因하여 膀胱을 破裂시킨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症狀을 물어보았으나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러므로 可能하면 그 往診을 避하려고 하였지만 그것도 不可能하다. 왜냐하면 그와 이야기하고 있던 바로 그때에 筆者의 親友 R氏로부터 그 患者를 잘 보아달라는 부탁의 電話가 걸려 왔기 때문이다.

  나는 할 수 없이 그와 같이 ×××病院으로 떠났다. 나의 머리는 車 中에서도 그 生覺으로 가득했다.

  病院에 들어서서 患者를 診察하여 본즉 産後 2週日의 産母로서는 至極히 건강하다. 食事도 잘하고 大小便에도 異常이 없고 「컨디션」도 좋다. 다만 脈이 다소간 浮大하고 있을 뿐이다. 姓名은 禹希貞 年歲는 29歲 四象은 太陰人이다.

  그런데 子宮에서 물이 나오는 量을 물은즉 婦人들이 月經帶로 쓰는 綿布를 2枚씩 겹으로 깔고 있는데 30分間이면 물이 흐를 程度로 젖는다는 것이다. 나는 아무런 言質도 주지 못한 채 默默히 病院門을 나왔다. 患者의 男便되는 靑年도 따라 나섰다.

  집에 돌아온 나는 沈默에 사로잡혔다. 얼마동안 時間이 흐른 다음 나는 나의 머릿속에서 어떠한 閃光이 번쩍하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때에 바로 婦人들의 月經血에 물(水)이 섞여서 血色에 淡色을 띠는 境遇를 聯想하기 始作하였던 것이다. 醫書는 이것을 「經色淡者 痰也」. 「經色帶淡者 有水混之也」. 「經色 淡白氣血俱虛也」라 하였은즉 只今 이 경우가 바로 이것이로구나 하고 生覺하였던 것이다.

  좀더 仔細히 말하면 이 患者의 境遇는 産後 2週日인즉 孕胎 中에 消耗했던 衝任脈의 피(血)를 다시 再生産하여야만 할 重大한 契機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不拘하고 造血作用에 沒頭하여야 할 衝任이 그 機能에 故障이 생겨서 피를 생산하지 못하고 反對로 이것이 물(水)이 되어서 나오는 것이라고 判斷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判斷 뒤에는 반드시 推理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다시 말하면 이것이 醫學所謂 「血化爲水」라는 것인데 要는 人體는 어떻게 하여서 피(血)가 될 것이 물(水)로 變化할까? 하는 것을 解決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거기에는 두 가지 境遇가 있을 것이다. "첫째"로 體內에 濕氣가 鬱結됨으로써 熱을 蘊釀하게 되고 이와 같은 邪熱 즉 濕熱이 蓄積하게 되는 경우에 이것이 衝任의 造血機能을 痲痺시킬 때 子宮에는 물(水)이 고이게 될 것이다. 그런데 子宮에는 攝血機能은 있지만 攝水機能은 없다. 그러므로 물(水)이 不斷히 排泄하게 마련인 것이다.

  "둘째"로는 衝任經에 寒氣가 鬱結하여서 그것이 오랫동안 係留하게 됨으로써 寒生熱하여서 子宮의 造血機能을 압박하는 경우가 있으니 이 때에 또한 子宮의 造血作用은 血化爲水하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면 위에서 말한바 邪熱이 造血作用을 妨害할 때에 그것이 어떻게 하여서 피(血)가 물(水)로 변하는가? 하는 問題를 解決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이것을 醫哲學의 原理로서 말한다면 至極히 簡單하게 解決된다.

  즉 「寅申相火의 造血作用이 辰戌水나 丑未土의 非正常的인 沈滯象態와 結付될 때에 人體의 피(血)는 반드시 물로 變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물론 讀者 諸賢 中에는 이 文句에 對해서 「어리둥절」해질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나라에는 이와 같은 醫哲學의 原理인 陰陽五行의 原理를 硏磨하고 있는 數名의 同好者가 있다. 이분들은 이 文句를 보고 暫間 동안만 生覺하면 「그렇지」하고 快哉를 부를 것이다.

  勿論 筆者의 心境도 여기에서 이 原理를 解明하여놓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그러나 이것은 簡單한 時間이나 紙面으로써 解決될 問題가 아니므로 不得已 略하거니와 要는 不斷히 變化하는 人體는 恒常 이 原理 그대로 運動하고 있다는 事實에는 어김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人體에서 일어나는 몇 가지 病變作用에서 實例를 들어서 硏究해보면 一目瞭然하게 理解될 수 있기 때문에 다음은 그러한 實例를 한두 개 들어서 硏究해보기로 하겠다.

  가령 우리가 항상 경험하고 있는 腫瘡에서 이것을 살펴보면 瘡이 發할 때에 그것을 詳察하여 보면 첫번에는 그 部位에 加熱되어서 炎證이 생기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런즉 이것이 바로 前記한 바의 邪熱이 凝結하고 있는 狀態인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이 凝結한 炎證은 그 狀態를 永遠히 계속해 내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結局은 이것이 潰決하게 되는 것이니 그것이 바로 腫瘡의 終結點인데 그 때에 터지게 되는 膿化作用이 바로 或은 濕化爲水요 或은 寒化爲水하는 狀態인 것이다.

  그런즉 우리는 여기에서 이른바 子宮水畜作用도 또한 이와 같은 腫瘡의 生成原理에서 엿볼 수가 넉넉히 있는 것이다.

  그런데 좀더 가까운 데서 찾아보면 우리는 浮腫에서 이것을 엿볼 수가 있다.

  가령 극도로 수척했던 患者가 久病으로 因하여 水穀을 全혀 攝取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밤사이에 全身이 浮腫으로 變하는 경우를 우리는 얼마든지 보는 수가 있다. 그렇다면 이 물(水)이 大抵 어디에서 왔는가 하는 것이 問題點이다. 萬一 患者가 水分을 많이 攝取하였다면 그것으로써 浮腫의 原因을 斷定할 수 있을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患者는 水穀을 全혀 攝取하지 못하였은즉 이것이 바로 血化爲水한 것이다.

  그런즉 이러한 部類의 病原因은 或은 痰(濕生熱 熱生痰) 때문에 惑은 寒(寒凝爲熱) 때문에 或은 氣血이 俱虛(氣血이 運行能力을 喪失하면 留而爲熱)하기 때문에 血化爲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즉 이것이 바로 위에서 말한 바의 醫書의 「經色淡者 痰也」. 「經色이 帶淡者 有水混之也」. 「經色이 淡白者는 氣血이 俱虛也」라고 한 것은 上記한 바와 같은 原理에서 推愆한 것이 分明한 것이다.

  나는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에 近來에 많이 發病하는 「子宮물혹」이나 水疝등도 이렇게 하여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아울러 느끼게 되었다.

  고요히 눈을 뜨고 窓밖을 바라보니 窓문에 쏴부치는 夕陽의 光線은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다. 患者의 男便되는 靑年은 아직까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내가 「當身 婦人의 病은 治療할 수가 있습니다.」하는 말 한마디를 던졌던 바 靑年의 얼굴에서 歡喜의 紅潮가 흘러내렸다.

  그러나 나의 머리 속에는 아직도 검은 구름이 자욱하다. 왜냐하면 내가 構想한 處方이 아직까지 患者 禹孃의 體質的인 特徵과 잘 符合하지 않기 때문이다. 좀더 仔細히 말하면 禹孃의 體質은 肝熱이 動하기 쉽기 때문에 肺가 影響을 받아서 高原水道之源이 枯渴하기 쉬운 體質인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그의 病現象이 子宮水畜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一般的인 患者의 경우와 同一하다고 할지라도 治療技術을 實際로 施行함에 있어서는 이것이 重大問題로 擡頭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머리에서는 完全無缺한 方法이 떠오르지 않는다. 할 수 없이 窮餘之一策으로 다음과 같은 處方을 그려놓았다.

  그렇다면 이 病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濕이 子宮에 鬱熱을 造成하거나 或은 寒이 鬱하여서 子宮에 鬱熱을 造成하던가 或은 氣血이 本虛하여서 그 循環作用이 活潑하지 못하기 때문에 드디어 鬱熱을 釀成하기에 이른다던가 하는 等等으로써 그 原因을 이룩하는 것이다.

  그런즉 이 病을 除去하기 爲하여서는 于先 二陳의 힘을 빌어서 健脾燥濕하는 한편 氣血의 運行을 順調롭게 함으로써 正邪의 勝負之氣를 調和시키는 것을 急先務로 하지 않을 수 없다. 왜 그런가 하면 먼저 이러한 措處를 해놓아야만 子宮鬱熱의 基盤을 除去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더욱 重要한 것은 人蔘과 白朮의 功이다. 왜 그런가 하면 二陳湯의 君藥인 半夏가 人蔘 白朮을 얻으면 上焦에서 浮散하려고 하는 元氣를 下焦로 下降시켜서 마치 사라지려는 불을 모아놓는 것과 같은 役割을 하기 때문이다.

  좀더 仔細히 말하면 半夏는 補脾燥濕할 뿐만 아니라 「下逆氣而 行腎水」하는 特性을 가지고 있다. 그 말이 무슨 말인고 하면 一切 上逆之氣를 모아서 腎인 生命의 本源點에 歸宿하게 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本草에 半夏의 特性을 가르쳐서 「宣通陰陽而能眠」이라고 하였으니 그것은 바로 這間의 消息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性能을 가진 半夏가 人蔘을 얻으면 人蔘의 肺中元氣(肺金속에 陽氣를 包藏함으로써 活力素를 만드는 것을 補肺作用이라고 한다)를 補하는 作用과 合勢하여서 耗散하려는 陽氣를 保護하면서 體內에 흩어져 있는 老廢物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런데 白朮은 「利腰臍間血」하는 藥이다. 腰臍間에 있는 血을 利한다는 말은 腰臍間에 모이지 못하고 흩어지려는 血을 흩어지지 못하도록 묶어(束) 놓는다는 말이다. 이와 같이 考察해보면 二陳湯에 人蔘 白朮을 加함으로써 이루어진 六君子湯은 다만 補氣去痰하는 藥이라고 漠然하게 생각하던 思考方式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一身의 元氣를 그 元氣의 出發點인 丹田(坎位)에 모아놓음으로써 保護의 實을 거두는 것과 함께 耗散하려는 피(血)까지도 元氣와 같이 血海에 歸宿시키는 處方이라는 具體的인 事實까지도 아울러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즉 子宮水畜之證을 治療함에 있어서 또한 解決하여야 할 일은 水邪 때문에 耗散되어버린 氣血을 本院點에 모아놓고 保護하는 일부터 먼저 할 수밖에 道理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患者의 境遇는 피가 다 물로 化하여 버렸기 때문에 極度의 子宮貧血症을 나타내고 있은즉 當歸 川芎 등의 調血劑를 써서 血의 生成作用을 도와주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吾人은 여기에서 當歸 川芎이 어떻게 調血하는가 하는 것을 于先 살펴보아야 하겠다.

  當歸는 心肝脾의 統血藥이다. 統血이란 말은 피를 丹田에 歸宿시킨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藥名을 當歸라고 하였으니 피를 마땅히 돌아가야 할 곳인 丹田에 돌려보낸다는 말이다.

  그 다음 川芎은 潤肝補肝하면서 升陽開鬱하는 血中氣藥이다. 그런즉 川芎이 血中氣藥이란 말은 피의 動力藥이란 뜻이요 當歸를 統血藥이라고 하는 것은 피를 動에서 靜으로 誘導하는 藥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六君子가 氣血創造의 契機와 排水 做元의 要因을 만들어 놓은 뒤에는 반드시 當歸 川芎의 調血 養血하는 힘과 함께 함으로써만이 解産 後에 缺乏狀態에 빠졌던 造血之元이 復活하게 되어서 子宮은 自己 機能인 바의 攝血作用을 完遂하게 되는 것이다.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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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handongseok.org/lecture5.htm

黃帝內經講義 (5) 1965년 8월호

第一編 變化原理

第三節 五行의 相生과 相克

    가. 相生

  五行이라는 槪念과 五運이라는 槪念은 서로 다르다. 五行이라고 하면 木火土金水 다섯 種類의 氣가 아무런 變化없이 循環하는 自然的인 狀態를 말하는 것이요 五運이라고 하면 이미 그 純粹性을 잃고 變化하는 狀態를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五行이라고 할 때에는 東方에서는 木을 生하고 南方에서는 火를 生하고 中央에서는 土를 生하고 西方에서는 金을 生하고 北方에서는 水를 生한다고 하는 基本的인 法則을 말하는 것이므로 여기서 말하는 木火土金水란 五行法則은 그 性質이 純粹하여 아무런 變化나 鬪爭도 없는 基本的 槪念을 말하는 것이다.

  다만 이와 같은 基本的 槪念은 五行은 原則的으로 相生하거나 或은 相克하는 作用을 하는 五原質 自體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五原質이 相生과 相克作用 즉 相扶相助와 豫備對立을 일으키고 있거나 或은 일으킨 다음의 狀態를 五運이라고 하는 것이니 그렇게 되면 五行은 여기서 이미 純粹性을 잃은 混濁之象이 된다.

  이와 같은 五行이 純粹性을 잃으면 그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五行이 곧 變化하는 狀態의 五行이니 이것을 五運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五行이란 槪念과 五運이란 槪念은 區別하여야 하는 것이거니와 五運에 대한 說明을 後로 미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五行만을 說明하기로 하겠다.

  그러면 五行 즉 純粹 五原質의 相生原理부터 說明하기로 하겠다. 이 原理는 河圖에 나타난 것이므로 河圖의 象을 그대로 表示하고 五行相生圖와 對照하여 보기로 하겠다.

  河圖


  五行相生圖


  河圖의 象을 보면 東쪽에 있는 三과 八은 五行相生圖의 東方에 있는 甲乙木이니 甲은 三이고 乙은 八이다. 河圖의 南쪽에 二와 七은 相生圖의 丙丁火이니 丙은 七이요 丁은 二다. 河圖中央의 上下便에 各各 五가 있고 正中央에도 五가 있으니 이것은 相生圖의 戊己五十土이다. 河圖의 西方에 四와 九가 있으니 이것은 相生圖의 西方에 있는 庚辛金이다. 庚은 九요 辛은 四다. 河圖의 北方에 一과 六이 있으니, 이것은 相生圖의 北方에 있는 壬癸水다. 壬은 一이요, 癸는 六이다.

  이와 같이 본즉 五行相生도는 河圖를 그냥 옮겨놓은 것에 不過하다(다만 東西南北의 間方에 辰戌丑未를 表示한 것은 이 四個의 土가 五行과 合하여 作用할 때에 變化가 생기므로 記載하여 둔 것이고 여기서 論할 것은 아니다).

  그런데 爲先 相生圖와 河圖를 對照한 結果 한 개의 疑問이 나타난다. 즉 相生圖를 順序로 볼 때에 壬癸와 甲乙은 一六과 三八의 順序로 되어있는데 왜 丙丁과 庚辛은 七二과 九四의 順序로 되는가? 하는 問題다. 이것은 다만 表面에 나타나 있어서 누구나 알 수 있는 問題點이거니와 좀더 깊이 살펴보면 그밖에도 많은 問題點이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河洛의 變化를 說明할 때에 說明할 問題들이다.

  却說 相生이란 것은 河圖 그대로의 表示라는 것을 말하였다. 그러나 그것들이 어떻게 相生하는가? 하는 問題를 硏究하여야 한다. 즉 甲乙三八木은 丙丁二七火를 生하는데 이것은 五行의 一般的 槪念에서 說明한 바와 갈이 가장 힘이 있고 또 통가다리인 木氣가 다시 再分裂하는 過程이니 즉 통가다리인 木이 그것을 基礎로 無數한 再分裂을 함으로써 內容은 衰弱하여지면서 外形은 가장 旺盛하는 過程이 바로 木生火의 過程이니 이것이 解放의 第二契機 인 것이다.

  그 다음 丙丁二七火가 戊己五十土를 어떻게 生하는가? 火란 것은 木이 再分裂 한 것이라는 것은 이미 말하였다. 그런데 火는 또다시 分裂하여서 分裂의 極端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分裂을 爲한 分裂이 아니고 分裂에 終止符를 찍기 위한 分裂이다. 이것이 解放의 第三契機가 되는 火의 分裂인즉 그것이 바로 火가 土를 生하는 過程인 것이다. 이와 같은 火의 分裂은 解放의 終點인 同時에 統一의 始點인 土를 現象化하는 中繼點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時點이 바로 無極을 生하여서 矛盾對立을 止揚하고 萬物을 成熟하게 하며 人間은 統覺(神明)이 생기며 靑年은 圓熟해지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칸트가 말한바 感性과 理性의 二 契機가 融合하는 곳이다. 즉 統一의 第一 契機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戊己土는 庚辛金을 生하나니 金이란 表面을 굳게 하는 性質이다. 다시 말하면 第三分裂인 火의 分裂은 純粹中立인 無極(土)으로 化한즉 그 土(無極)는 中立의 性質로서 外炎灼熱한 바의 第三分裂을 柔懷抱捉하여 놓게되면 그것은 바로 火인지 土인지 혹은 水인지를 분별할 수조차 없는 象을 만들어 놓는 것이다. 그런즉 이러한 象은 火土水의 和合한 象이므로 外堅性을 가진 金으로서는 捕捉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分裂을 捕捉(綜合)하는 第二의 契機를 生하는 것을 土生金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여 成立된 金은 水를 生하게 마련이니 즉 金이 水를 生한다는 말은 金氣의 外表堅斂作用이 한걸음 더 나가서 그 內面까지 貞固하게 하는 作用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統一의 第三契機가 形成되는 것이니 이것이 易에서 말하는 坎爲水오 탈레스가 말한 물이다. 뿐만 아니라 孔子가 易繫辭에 太極生兩儀라고 한 太極의 母體인 것이다.

  이와 같이 太極이 成立되면 水는 다시 木을 生하게 되는 것이니 즉 貞固한 속에 囚閉되었던 氣는 다시 活動하여 木을 生하게 되나니 이것이 解放의 第一契機가 되는 것이다. 宇宙의 構成要素인 土元質은 이와 같이 統一과 解放作用을 쉴 사이 없이 反復하는 것이니 이 運動을 陰陽運動이라고 하며 또 그 陰陽運動이 다시 五元質인 五行의 承繼作用에 의하여 解放과 統一의 作用인 陰陽作用을 周流不編하는 法則을 五行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法則인 五行各個의 槪念을 定함에 있어서 甲乙木 丙丁火 戊己土 庚辛金 壬癸水라는 槪念을 附與하는 것이니 이 槪念은 곧 五氣五行運動의 基本的 原則인 五行의 槪念인 것이오 三八, 二七, 五十, 四九, 一六 등은 다시 木火土金水의 生成原理를 確認하는 數自體의 自然法則인 것이다.

  위에서 五行의 相生을 말했다. 그것을 여기서 要約해보면 水生木 木生火 火生土의 發展까지는 解放過程의 三契機요 火生土 土生金 金生水는 統一의 三契機였다. 이와 같이 보면 發展의 過程은 土에서 끝나는데 또한 統一의 過程도 그 土에서 始作하였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土는 二重性格을 띈 것이 分明하다. 왜 그런가? 하는 疑問은 다음에 六氣를 說明함으로써 分明해진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基礎的으로 그렇게 記憶만 남겨두기를 바란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가 兼하여 또 記憶해야 할 것은 언제 어떠한 場所에서든지 五行의 槪念이 木火土金水의 順序로 配列되면 여기는 相生原理를 內包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또 한가지 注意할 것은 甲乙木 丙丁火 戊己土 庚辛金 壬癸水라는 槪念이 木火土金水에 붙으면 이것은 五行의 基本原理이고 또한 變化하는 五運의 原理가 아니라는 것을 銘心해야하는 것이다.

    나. 五行의 相克

  五行이 지닌바 基本原理의 또 한개의 側面으로서 相克原理가 있다. 相克作用은 相生作用의 反對作用이므로 相生은 木火土金水의 順行法則이었던 것과는 反對로 이것은 金木水火土의 逆行作用을 하는 法則인 것이다. 相生作用이 相扶相助의 基本的 本質이었다면 相克作用은 矛盾對立의 基本的 要素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相生作用은 陽의 作用이요 相克作用은 陰의 作用이다.

  여기서 陰陽二契機의 矛盾과 對立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對立을 위한 矛盾이 아니고 發展과 統一을 위한 矛盾이다. 그러므로 相克의 必要性이 認定되는 것이니 그것을 人道的 立場에서 보면 善을 保護하기 위한 必要惡이기 때문이다.

  却說 이 相克原理는 洛書에서 啓示되는 原理이다. 그러므로 다음에 五行相克圖와 洛書를 그려놓고서 서로 對照하면서 硏究하기로 하겠다.

  洛書


  五行相克圖

  註 ()內의 金火와 四九.二七은 바꿔진 것을 表示한 것

  원에 두개의 그림을 對照하여 보면 爲先 洛書는 河圖와 다른 점으로 河圖의 四九와 二七이 易位된 點이다. 다시 말하면 河圖는 四九가 西에, 二七이 南에 있었는데 洛書는 四九가 南에, 二七이 西에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이 數가 易位되었다는 말은 數의 本體인 金火가 易位되었다는 말이다.

  이밖에도 洛書와 河圖는 그 象이 다른 점이 많지만 여기서는 다만 金火가 四九 二七이 交易된 點만을 말하겠다. 이와 같이 交易되었다고 말을 하거나 또한 象을 表示하는 것은 勿論 사람이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自然의 運行法則이 .그렇게 垂象했기 때문에 人間은 그것은 그냥 文字로서 옮겨 놓은 것 뿐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圖表는 어떠한 根據에 依하여 成立되었는가?

  五行이 相生할 때는 木生火 火生土 土生金 金生水 水生木의 順序로 그 生하는 바의 基本的인 原則만을 說明한 것이었다. 그러나 相克法則은 그 生하는 側面, 즉 生하기 위한 必要惡을 說明하는 것이다. 宇宙의 運行하는 象을 詳察하면 火가 南에서 旺盛하기 바로 前인 巳(이것은 六氣說明에서 詳論)에서 이미 金의 收斂運動이 싹트게 된다. 그리하여 그것이 차츰 勢力을 얻어서 西에 이르게 되면 南에서 旺盛하던 火는 金氣에 依하여 完全包圍를 當하게 된다. 그러므로 宇宙의 運行을 다만 相生하는 面에서만 보면 五行은 生成作用의 基本的인 法則에 不過하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서 變化하는 面에서 보면 다시 말하여서 어떻게 生成하느냐? 하는 面에서 보면 이와 같은 金火交易의 必要克에 依하여 生成作用은 實現되는 것이다.

  그런즉 相克原理란 生成作用의 裏面 즉 成하는 바의 本質的 內容을 표시한 것이 바로 相克法則인 것이다.

  그런데 相生作用은 北方水位에서부터 始作하여 左旋運動을 하였는데 相克運動은 相克圖에서 表示한 바와 같이 南方火位(卽 四九金位)에서 始作하여서 오히려 生의 作用을 側面에서 돕고 있는 克인 것이다. 그러므로 相克作用은 金에서 始作하여 右旋運動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金木水火土의 順으로서 五行相克 序列을 定하는 것이다.

  天地運行에 있어서 이와 같은 生成作用은 恒常 必要惡인 相克作用을 絶對로 要求하기 때문에 北方水가 水生木을 하려고 하면 南方火는 벌써 金을 克하여서 金克木의 準備態勢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相生作用 즉 水生木 木生火 火生土 土生金 金生水를 始作하면 相克作用은 同時에 金克木 木剋土 土克水 水克火 火克金의 反對作用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것을 相克이라고 하거니와 이와 같은 相克은 宇宙의 變化와 人間의 生成에 있어서 不可無의 必要克이며 必要惡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헤에겔이 말한 辨證的 發展過程이기도 한 것이다.

  註 헤에겔은 이와 같은 過程의 飛躍까지만을 보고 그의 統一法則을 發見하지 못하였다.

  世界가 實現하는 矛盾과 對立은 이와 같은 五行運動의 生克過程에서 일어나는 必要惡이므로 이와 같은 矛盾과 對立이 바로 世界이며 그것이 또한 世界의 生命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矛盾과 對立이 없는 世界란 形成될 수도 없고 또한 形成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變化도 찾아볼 수 없는 無意味한 暗黑界일 것이다.

  註 以上 論한 바를 初步者로서는 完全히 理解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다만 宇宙發展에 있어서 相生과 相克의 絶對 必要性을 記憶함과 아울러 金火交易이 萬物生成의 裏面的 內容이 된다는 것을 銘心하기만 하면 된다. 다만 아직 이 程度의 進度에서 좀 지나치게 깊은 곳을 말한 감도 不無하다. 그러나 한번 이 程度의 아웃트라인 이라도 스쳐 지나가는 것이 金火交易 土化作用 寅申相火 等의 깊은 곳을 硏究할 때에 理解를 促進시킬 수 있으리라고 生覺되기 때문에 蛇足을 添加한 것이다.

 

 

  그렇다면 五行의 變化인 五運에 대해서 硏究하기로 하겠다.

第四節 五運과 變化

  運이란 槪念이 運動 運行 等에 對한 基本槪念이다. 運字를 만들 때에 軍字와  字를 合하여 만든 것은 軍이 가는 것(走)을 象徵한 것이다. 軍隊란 盲進만을 目的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前進할 때는 前進하고 後退할 때는 後退하는 것을 軍이라고 하는 것이다. 軍隊에서는 이것을 作戰이라고 한다. 軍이란 것은 이와 같은 作戰에 依하여 戰勢에 變化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한 意味에서 運字가 軍字와  字를 合하여 取象한 것은 運이란 것은 軍의 行進이 戰鬪에 變化를 나타내는 것처럼 運의 律動도 또한 一種의 戰鬪的 變化를 나타내면서 나가는 것이며 同時에 軍隊의 行進처럼 一進一退하면서 前進하는 宇宙變化의 律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運이라고 하거니와 여기에다가 五字를 合하여 五運이라고 하는 것은 宇宙運行의 基本法則인 五行이 變化하는 象을 五運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五行이라고 하면 五行 自體의 基本的인 法則을 意味하는 것이오 五運이라고 하면 五行이 變化를 實現하는 宇宙現象의 象을 意味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吾人이 五運을 硏究하려면 그의 名稱과 槪念부터 硏究하여야 하고 또한 宇宙는 運行하는 象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數를 나타내는 것이므로 自然數의 生成關係를 硏究하여야 한다. 그런 다음에라야 五運이 變化現象과 물의 生化成形하는 것을 硏究할 수 있는 것이다.

    가 五運의 名稱과 方位의 否定

    A. 名稱

  五行이라는 五氣의 基本法則과 五運이라는 그가 運行하는 象인 律動이 서로 다른 한 그 의 名稱이 다른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러므로 甲己를 土運이라고 하고 乙庚을 金運이라고 하고 丙辛을 水運이라고 하고 丁壬을 木運이라고 하고 戊癸를 火運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을 圖表에 依하여 說明하면 다음과 같다.

  五運圖









  위의 그림에서 보면 運은 土運에서부터 運行하기 始作하는 것이니 왜 이것이 土運에서부터 始作하는가? 하는 것부터 硏究하여야 한다. 다시 말하면 五行의 相生作用은 木(木火土金水)에서부터 始作하였고 相克作用은 金(金木水火土)에서부터 始作하였는데 五運은 왜 土에서부터 始作하였느냐? 하는 것부터 硏究하여야 한다.

  위에서 말한바와 같이 五運이란 것은 變化現象의 象이다. 그런데 五行가운데서 오직 中立不偏하는 象을 나타내는 곳은 土位인 것이다. 水火金木은 各各 偏僻된 性質을 가지고 있지만 土만은 無이며 中이며 空인바의 象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象을 나타내는 五運이 土에서 出發하여야 할 것은 明若觀火한 것이다.

  그러므로 土는 甲에서 己에 이르는 變化過程에서 생겨나므로 甲己化土라고 하면 그 다음으로 乙에서 庚에 이르는 사이에서 金이 생겨나므로 乙庚化金이라고 하며 그 다음은 丙에서辛에 이르는 사이에서 水가 생겨나므로 丙辛化水라고 하며 그 다음은 丁에서 壬에 이르는 사이에서 木이 생겨나므로 丁壬化木이라고 하며 그 다음은 戊에서 癸에 이르는 사이에서 火가 생겨나므로 戊癸化火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五運의 名稱(槪念)을 甲己土 乙庚金 丙辛水 丁壬木 戊癸火로 規定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五運이 化하는 面에서 본 名稱인 것이다. 그러므로 各人이 萬一 五運이 變化하는 面을 規定한다고 하면 應當 己甲土 庚乙金 辛丙水 壬丁木 癸戊火가 成立될 수 있다는 것도 머리에 넣고 生覺하여야 한다. 뿐만 아니라 五行에서 變化하여서 五運이되는 根據를 論據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五運의 變化에서 說明하겠다.

  다만 여기에서 記憶하여야 할 것은 五行과 五運은 本質的으로는 그 槪念이 同一하다. 그러나 五行은 基本적인 法則이고 五運은 變化하는 現象이므로 本體와 作用의 面에서 名稱을 分離한 것이다.

    B. 方位의 否定

  五行에 있어서는 甲乙木 丙丁火와 같은 方位의 規定이 嚴格하였다. 그러나 五運에서는 方位를 定할 必要도 없고 또한 定하여 낼 수도 없다. 왜 그러냐 하면 五行은 五原質의 基本法則이었지만 五運은 運動하는 變化의 現象이므로 方位를 定할 수 없는 것이다. 現象은 언제나 流動的이므로 方位와 같은 固定性이 介在될 수 없다. 同一한 原質의 五行의 個性이 옮겨지는 空間과 時間에 依하여 各其相殊한 變化를 造成하는 것뿐이므로 運에서는 時空間的인 象을 다루는 데만 目的이 있는 것이고 方位나 場所와 같은 固定的인 面 - 다시 말해서 方位의 固定性은 變化를 拒否하는 것이므로 - 은 벌써 五運의 對象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五行의 基本인 方位가 없이는 五運의 流動인 象이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나.數

  數를 硏究하려면 먼저 數의 槪念과 成立을 生覺하여야 하고 그 다음에 數의 變化를 硏究해야 한다.

    A. 數의 槪念

  數에도 亦是 哲學的 哲念과 言語學的 槪念의 두 가지가 있다. 言語學的인 面에서 考察하여 보면 數라는 것은 事物의 質量을 計算하는 手段에 不過할 것이다. 그러나 哲學的인 面에서 살펴보면 數는 事物의 幾微이며 有가 無에 이르는 過程이며 單이 多로 化하는 象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宇宙間에 存在하는 事物의 變化하는 象을 詳察하여보면 形(物質)이 分化하고 象(無)이 綜合하는 有無分合의 法則的 循環이 繼繼承承하는 물(水)의 波濤와 泡沫인 것이다. 그러므로 列子는 人物의 律動하는 變化를 물 속에서 出沒하는 潛水夫의 妙技로 보았고 伏羲는 그 물을 一(全體)이 六으로 分化하고 六이 一로 綜合하는 象을 河圖에서 發見하였고 文王은 그 물이 다시 分裂되어서 泡沫이 되고 그 泡沫(無)이 綜合의 契機로 飛躍하는 金火交易의 幾微를 洛書에서보았고 一夫는 이와 같은 先聖의 達觀에 依하여 正易을 著述하였고 또한 그것이 이루어지는 中心點(無極)을 指稱하여 十十一一之空이라고 함으로써 비로소 律動하는 물의 神秘는 開發되고야 말았다.

  却說 數라는 것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은 물(水)의 分化하는 形象을 象徵하는 물 自體의 表現인 것이니 그것이 바로 變化의 烙印이며 妙萬物의 母體인 것이다. 字典을 稽考하여보면 數字의 意味를 幾, 計, 細密 等으로 表示하였으니 幾라는 것은 幾微만 있어서 實在를 把握할 수 없는 것이다. 計라는 것은 一이 十으로 分裂되는 過程에서 생기는 事物의 發展과 그 綜合을 말하는 것이고 細密이란 것은 물이 泡沫이 되어서 물로서의 形을 喪失하고 다시 化合하기 始作하는 飛躍의 象을 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字典의 內容을 稽考하여 보면 數라는것은 上記한 바와 같이 古代의 先聖들이 立法한 河洛의 變化인 分化하는 물 自體의 表現 方式인 것이 分明한 것이다.

  宇宙란 것은 變化하는 時空間이다. 時空間이란 것은 變化하는 幾微의 一點 卽 十字의 交叉點인 것이다. 時의 延長과 空의 收藏은 반드시 이 間(十字의 交叉點)을 얻음으로써 飛躍할 수 있는 것이며, 또한 變化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意味에서 筆者는 緖論에서 「피묻은 十字架」 라는 表現을 빌려 쓴 일이 있거니와 이러한 時空間的 變化인 形象의 發展을 그 自體의 모습대로 나타내는 것이 바로 數라고 生覺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數는 變化하는 現象을 記錄하는 表示일 뿐만 아니라 바로 그것이 變化自體의 모습인 것이다. 그런즉 우리는 여기서 宋學이 「有氣則 有度 有度則 有數」라고 한 深奧한 底意를 엿볼 수 있으니 이것을 좀더 풀어서 말하면 宇宙라는 變化하는 大氣圈은 언제나 五行氣로서 充滿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모든 것이 動靜하게 마련이다. 이와 같이 動靜하는 것은 氣가 있기 때문이요 氣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度가 있고 度가 있는 곳에 數가 따르는 法이다. 그것이 바로 推進力과 引退力인 陰陽의 運動力이다. 그러므로 地球와 日月의 秩序整然한 運行도 이와 같은 氣度數의 現象으로서 나타나는 것이오 曆命數와 物象數의 現象도 實로 여기 緣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數의 槪念을 一層 더 좁혀서 말한다면 數란 自然法則 自體의 運動現象의 表現인 것이다.

    B. 數의 成立

  自然數의 數列은 一, 二, 三, 四, 五, 六, 七, 八, 九, 十의 順序로 配列하여 成立되었다. 그런데 이 列을 자세히 살펴보면 奇數와 偶數가 서로 交代하면서 規則的으로 配列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奇數+偶數=數列」이라는 公式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問題되는 것은 이러한 數의 成立이 人爲的이냐? 或은 自然的이냐? 하는 것이 問題된다. 一般的으로 이 問題를 人爲的인 것으로 生覺하는 傾向이 많다. 그렇다면 自然數라는 槪念부터 먼저 따져 보아야 할 것이다. 萬一 數의 成立을 人爲的이라고 한다면 自然數란 槪念은 반드시 自然所産인 事物을 計量하는 것이 모든 自然數라고 한다고 하여야 옳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槪念學上으로 보아서 잘 首肯되지 않는다. 自然數란 말은 數 自體가 自然의 法則 그대로의 表象이기 때문에 自然數라고 한다고 하여야 槪念的으로 妥當하게 느껴진다. 萬一 數의 成立을 人爲的으로 된 것이라고 한다면 옛적에 數를 만들 때에 가령 數列을 一, 三, 四, 七, 九 等으로 粗雜하게 配定하였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오랜 동안의 歷史的 習慣에 依하여 事物을 그렇게 計量했을 것이다. 그것은 勿論 計數上으로는 無妨할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一 다음에 三이라고 計數하더라도 그것이 習慣化 되기만 하면 一 다음은 二라고 認識하는 것을 一 다음은 三이라고 習慣으로 認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人爲的인 數를 使用한다면 哲學의 發展은 있을 수 없다. 특히 東洋哲學은 基本을 數에다 두었다. 그것은 위에서 말한바와 같이 數라는 것은 動靜하는 事物의 現象 自體이기 때문이다. 勿論 西洋哲學에 있어서도 數를 대단히 重視한 피타고라스와 같은 學者가 있기는 하였다.

  그는 모든 것을 다 疑心하였지만 思惟하는 나 我와 數만은 疑心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만 보아도 그가 數를 얼마나 重視하였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서 數에 대한 思索과 硏磨의 자취는 찾을 수 있지만 反面 數的인 法則을 硏究하였다는 것을 엿볼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東洋哲學은 그 出發부터 數로서 始作하였다. 다음의 河圖에서 그것을 엿보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위의 그림의 一, 三, 五, 七, 九는 白色圓이다. 이것은 奇數니 陽을 象徵하는 것이오 二, 四, 六, 八, 十의 黑色圓은 偶數이니 偶數는 陰을 象徵하는 것이다. 또 一, 三, 五, 七, 九의 五位 中에서 一, 三, 五는 陽數로서의 生數요 七, 九는 陽數로서의 成數다. 二, 四, 六, 八, 十 中에서 二, 四는 陰數로서의 生數요, 六, 八, 十은 陰數로서의 成數다. 이것을 다시 추려보면 自然數의 數列은 一二三四五六七八九十인데 그 중에서 一二三四五는 生數라고 하고 六七八九十은 成數라고 한다. 그런데 生數인 五位 즉 一二三四五 中에서 奇數인 一三五는 陽의 生數요 二四는 陰의 生數다. 또 成數인 六七八九十 中에서 六八十은 成數 中의 陰數요 七九는 成數 中의 陽數이다. 이와 같이 生數와 成數가 各各 奇偶數를 가지고 있는데 生數는 萬物이 變化하는 基本原理이고 成數는 萬物이 變化하는 實現形態인 것이다. 그런데 自然數는 이와 같은 性質을 가진 奇偶가 互相交雜하여 一陰一陽하면서 數列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法則으로서 成立된 數列의 理論的 根據가 바로 河圖에서부터 나왔다. 그것이 바로 數의 化生이며 同時에 萬事萬物의 化生인 것이다.

  여기서 河圖에서 나타난 數理를 대략 說明하면 一과 二인 水火의 生數는 宇宙變化의 二大 基本原理이고 三과 四의 木金은 一二 즉 水火의 運動을 돕기 위한 幇助的인 原理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一이 二로 化하려면 三의 도움이 必要하고 二가 一로 變하려면 三의 도움이 必要하다. 그런즉 宇宙의 運動은 一과 二의 互惠運動이므로 自然數의 一은 그 基本要素인 一二가 차례로 配列되고 그 다음은 一이 二로 發展하는 것을 돕는 要素인 三이 配置되고 그 다음은 二가 一로 歸藏하는 것을 돕는 要素인 四가 配置됨으로서 變化와 生成의 序列이 決定된 것이다. 이것이 一二三四의 順位가 法則的으로 形成되지 않을 수 없는 河圖의 序列인 것이다. 이것을 變化의 法則인 五行運動에서 보면 水火는 宇宙變化의 基本要素이고 木金은 幇助的 要素이므로 水火를 一二順位로 하고 木金을 三四位로 하였다는 말과 相通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生數 중에서 아직 남아있는 것은 五이다. 五는 生數 中에서 中數다. 이것을 五行의 槪念으로 바꿔놓으면 土다. 土의 性格이 不偏不黨한 中이라면 五의 性格이 그러한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水火金木이 偏僻된 性格者라면 一二三四가 그러할 것도 當然한 것이다. 그러므로 一二三四의 다음에 五가 配置되어야 할 것은 水火金木의 中位에 土가 있어야 하는 것과 一般인 것이다. 그러므로 五는 數列의 中位인 五位에 配置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河圖를 살펴보면 中央의 五가 十에 依하여 包圍 當하고 있다. 五는 一二三四五의 生數의 끝이므로 十의 가운데 있으면서 生하려는 뜻을 內包하고 있는 것을 表象한 것이다. 위에서 變化의 化生數인 生數의 成立을 말했다. 그러면 다음은 變化形成數인 成數의 配置된 理由를 말하겠다.

  宇宙를 彌滿한 것은 萬物이다. 萬物은 大小와 粗密의 反復運動을 하면서 形上形下에 形象을 나타낸다. 그 運動의 過程에서 形而上的 表象이 바로 生數인 一二三四五의 化生이며 形而下的 表現이 成數인 六七八九十의 形成인 것이다.

  위에서 生數는 變化의 基本原理요 成數는 萬物이 變化하는 實現形態라고 한 것도 實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즉 成數는 生數의 基本原理를 얻음으로써 萬物의 實現形態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이고 生數는 成數의 實現形態를 얻음으로써 基本原理 즉 生命을 保存할 수 있는 것이니 이것이 陰陽의 互惠運動인 것이다. 그러므로 生數인 一二三四五는 成數인 六七八九十을 얻음으로써 萬物이 實現되는 것이다. 數가 自然自體인즉 數 自體의 發展도 自然自體의 發展과 同一할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것이 生數가 成數로 發展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즉 生數는 一二三四五의 五位이지만 五는 一二三四의 綜合者 土로서의 性格을 가졌으므로 五가 곧 一二三四의 代表이며 同時에 生成의 本質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一+五=六, 二+五=七, 三+五=八, 四+五=九, 五+五=十의 公式으로 成數가 形成된 것이다. 그런즉 六은 五라는 形成의 本質과 一이라는 生化의 基本原理가 서로 綜合됨으로써 물(水)의 形質을 갖추게 되었고 七은 五라는 形成의 本質과 二라는 生化의 基本原理가 서로 綜合되어 서로 불(火)의 形質을 갖춘 것이다.(以下略)

  이와 같이 하여 生數와 成數의 互惠生成하는 運動을 陰陽의 五元化運動인 五行法則으로 規定한 것이다.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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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handongseok.org/lecture2.htm
黃帝內經講義 (2) 1965년 1월호

韓東錫

第一編 變化原理

第一章 總論

第四節 天地日月의 運行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五行이란 것은 太極이 갈라져서 「陰陽→四象→五行」의 順序로 發展된 象을 말하는 것이거니와 果然 무엇이 그것을 그렇게 하였는가? 또는 그렇게 하는 힘 다시 말하면 그의 正體는 무엇인가? 하는 問題를 硏究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天道의 運行 즉 日月과 地球의 運行을 硏究하여야 할 必要性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天道의 運行하는 象을 把握하지 못하고서는 五行의 本質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음에 天地와 日月의 運行에 對한 分紀와 道理(道程)를 論함으로써 變化原理를 解得하는데 便宜를 提供함과 아울러 五行原理에 대한 所自出點을 明示하려 하는 바이다.

  天體에는 本來 南北極이 있으니 이것이 樞軸이 되어서 모든 運行의 基盤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唯一不動한 곳인 것이다. 그렇지만 그 不動하는 곳이 오히려 動할수 있는 기본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不動之處인 極이 있기 때문에 天地日月이 三百六十度의 循環運動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今日의 天文學的 知識으로는 地球와 日月은 동하지만 天體는 動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나 그러나 그러한 天體로 역시 動하는 것이라고 보는 東洋哲學의 觀點에 오히려 至大한 妙味와 關心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地球와 日月은 勿論 天體까지도 動하고 있다고 보는 것은 事實인 同時에 絶對的인 眞理인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이것들은 如何한 힘에 依하여 動하게 되는가? 하는 것이 問題點인 것이다.

  그러므로 東洋哲學的 變化原理로써 보면 宇宙間에 있는 모든 有形體 즉 地球日月로부터 禽獸草木에 이르기까지 모두 躍動하는 힘을 가지고 있으니 이것들의 動하는 힘은 모두 天體의 動하는 힘 때문이라고 規定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天動說의 起源인 것이니 이 天動說은 地靜說과 相配되고 또 天圓說과 地方說이 따라서 나오게 되는 바 이 說들은 今日 學界에 많은 誤解를 쌓게 되었던 것이다. 西洋의 地動說 以前의 天動說과 뇌화부동시켜가지고 所謂 未開時代의 邪說로써 烙印을 찍어버리려는 傾向이 甚히 濃厚하거니와 그렇다면 天動說이라는 것이 果然 그와 같이 無價値한 것인지 또는 今日의 學界가 果然 天動地靜說을 올바르게 把握하고 있는가? 어떠한가? 하는 等等 問題는 各論에서 다루기로 하겠거니와 다만 本論에서 말하려는 바는 天動說을 前提로 한다는 點이다. 却說 위에서 말한 바 運行하는 天體에 包括되어 있는 日月과 地球의 運行은 如何히 하는 것인가? 하는 問題를 論述하여야 하겠다.

  그러나 本論을 敍述함에 앞서 먼저 本論을 理解시키기 爲한 豫備知識이 必要하다. 그것은 本論에서 뿐만 아니라 象數에 관한 學問을 硏究함에 있어서는 如何한 分野의 學問을 勿論하고 第一 먼저 이 點부터 認識하여야 비로서 變化와 象數를 理解하게 될 것이다. 萬一 그렇지 못하면 五里霧中에 빠져서 都是 갈피를 잡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것을 具體的으로 말하면 東洋哲學의 硏究對象은 어떤 事物의 本體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 事物의 作用에 있다고 하는 事實이다. 다시 말하면 地球가 太陽의 周圍를 돌고 달(月)이 地球의 周圍를 돌고 있다는 等을 硏究하는데 그 目的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作用을 對象으로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日月이 地球에 비치는 結果로 如何한 現象이 일어나며 또 어떠한 變化가 생기며 또 그 變化하는 原理는 무엇인가? 하는 것 즉 그 本體가 아니고 다만 그 作用面을 硏究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醫學에 있어서도 五臟六腑의 本體나 그 位置를 밝히려는데 그의 對象이 있는 것이 아니고 다만 그들의 作用 즉 눈에 보이지 않는 活動과 거기서 일어나는 變化를 硏究하려는데 바로 目的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硏究의 對象을 本體的 分析에 두는 것이 아니라 作用의 綜合的 檢討에 두기 때문에 近日 科學敎育에 머리가 젖어있는 우리로서는 얼핏 生覺하기에는 東洋哲學이란 觀念的 抽象的인 一種의 迷信에 不過한 것같이 여기기도 하지만 其實 깊숙이 들어가서 생각해 보면 事物의 本體를 硏究하려는 科學的인 것이 아니고 적어도 눈으로 볼 수도 없고 귀로 들을 수도 없는 作用까지 合하여 硏究하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단순한 形而下가 아니고 形而上과 形而下를 綜合 硏究하려는 哲學이기 때문에 不得不 그 作用硏究에 置重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萬一 그 本體面에만 硏究의 對象을 둔다고 하면 그것은 科學이요 哲學은 될 수 없으며 또 그것은 洋醫學의 特徵일지언정 漢醫學의 特徵으로는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東洋哲學은 天地日月의 運行을 說明함에 있어서도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作用面 硏究에 더욱 置重하는 것이며 또 거기서 變化原理를 찾으려는 것임을 미리 理解하고 硏究하여야 한다는 것을 여기에 미리 밝혀두는 바이다.

  그러면 日月은 어떻게 運行하는 것인가? 하는 것부터 硏究해보기로 하겠다.

  天道에는 黃道와 赤道가 있다. 赤道라는 것은 天腰의 中半點이니 그 北쪽을 外廓이라 하고 그 南쪽을 內廓이라고 한다. 北極이란 것은 外廓의 極盡處인 것이요, 南極이란 것은 內廓의 極盡處인 것이다.

  그런데 黃道란 것은 地球가 太陽의 周圍를 도는 길(道)인데 이 黃道는 赤道의 北쪽으로 二十四度, 赤道의 南쪽으로 二十四度까지 나갈 수 있는 것이고 그 밖으로 더 나가기는 못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春分後에는 赤道의 北쪽을 向하여 二十四度까지 나갈 수 있고 秋分後에는 赤道의 南쪽으로 二十四度까지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地球의 軸이 二十四度 以上 傾斜지는 法이 없기 때문이다.(現在는 二十三度 七分 傾斜져 있음)

  단 여기에서 黃道에 對해서 한마디 附言하여 둘 것은 「視黃道說」이다. 우리가 實地로 볼 때 地球가 太陽의 周圍를 돌고 있는 것이 事實이다. 그러나 그것은 前에 말한 바와 같이 地球 運行의 本體面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作用面 즉 現象面에서 보면 恒常 太陽이 地球의 周圍를 돌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日月이 地球에 光線을 던져 줌으로써 일어나는 모든 現象에서 變化를 把握하는데 便利하게 하기 爲해서는 一旦 太陽이 地球의 周圍를 돌고 있는 것으로 假定해 놓는 것이다. 그러므로 今日의 曆象學은 이것을 太陽이 地球의 周圍를 도는 것처럼 假定하고 그것에 「視黃道」라는 槪念을 設定한 것이다. 그런즉 여기 結論에서 筆者가 地球의 運行하는 길이 黃道라고 썼지만 原典에는 日行(즉 太陽이 간다)이라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以下 모든 說明은 視黃道에 依하여 說明할 것인즉 미리 여기서 讀者 諸位의 諒解를 바라는 바이다.

  그러면 다음은 달(月)의 運行에 대해 말하기로 하겠다.

  달(月)이 運行하는 길은 九個가 있으니 黃道 黑道 赤道(太陽이 運行하는 경우에 말하는 赤道와는 다른 것이다) 白道 靑道로서 區分되는데 그 중 黃道만 一個이고 다른 四道는 各各 두 개씩 있으므로 合하여 九道가 되는 것이다.

  九道 가운데 오직 黃道만은 一道로서 中央에 位하고 其他 八道는 黃道를 中心으로한 東西南北에 그들이 運行하는 길(道)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黑道는 黃道의 北에 있고 赤道는 黃道의 南에 있고 白道는 黃道의 西에 있고 靑道는 黃道의 東에 位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宇宙間의 變化現象을 나타내는 九宮八風의 原理는 이와 같이 달이 運行하는 軌道에서 그 起原이 생겼던 것이다.(九宮八風原理는 各論에서 詳論할 것임)

  「殷」以後에 太陽曆制度를 採擇한 것도 實로 여기에 緣由한 것이다.(그 前에는 三六五日曆을 썼다) 뿐만 아니라 今日의 달(月)은 병든 달(月)이다. 그러나 병든 달(月)이 이 地球에 影響을 주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의 變化와 오늘날의 文物을 生産하기도 하는 것이다.

  (大體 달이 병들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하는 점 亦是 各論에 說明하겠다)

  다음은 地球에 對해서 말하기로 하겠다. 東西를 莫論하고 地球에 對해서는 많은 學者들 사이에 所謂 天圓地方說(天體는 둥글고 地球는 모나서 動하지 못한다고 하는 說)을 提唱하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不過 數世紀前에 提唱된 바 있는 「코페르닉쓰」의 地動說이 마치 地動原理로서 世界 最初의 것인 것처럼 誤解하고 있는 것이다. 이 問題가 오늘날 東洋사람들에 있어서까지 如此狂信하고 있는 것은 東洋사람 自身이 自己 文明을 探求하는데 너무나 疏忽히 하고 科學文明에만 無條件 陶醉하여 버리는 後進國的 文化硏究態勢의 結果이기는 하겠지만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重大한 問題일수록 精神을 가다듬어서 自己의 硏究態勢를 살펴 볼 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古代 東洋의 天文學은 地球의 運動을 如何히 보았던가? 하는 問題는 진실로 흥미있는 問題꺼리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內經의 素問에 記載된 바의 五運行大論의 本文 몇 節을 紹介하면서 地球의 모습과 運行에 對해서 稽考해 보기로 하겠다. (여기에 論하는 바는 總論임에도 不拘하고 如此 本文紹介에 까지 論及하려는 바는 現代人의 知識이 너무나 科學一邊倒로 偏在하여 있기 때문에 마치 筆者가 現代 天文學思想에 대한 知識을 빌어 가지고 東洋天文學思想이라고 牽强附會나 하는 것처럼 誤解하지 않을까? 하는 念慮가 있기 때문인 것이다)

  黃帝가 岐伯에게 묻기를 「모든 宇宙간에 있는 것들이 이 所謂 動하며 또 靜한다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여 주시오」하고 간청하였던 것이다.(「本文」帝曰 動靜如何)

  그때에 岐伯이 對答하기를 「宇宙間에 있는 모든 存在는 위에서 作用하는 것은 반드시 右行하는 法이오 아래에서 作用하는 모든 存在는 반드시 左行하는 法이므로 그들 存在는 恒常 一左一右하면서 天體가운데서 돌고 있다고 對答하였던 것이다. (岐伯曰 上者右行 下者左行 左右周天)

  다시 말하면 地球 위에 存在하는 모든 作用體는 永遠不變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단 上向作用을 하던 것은 반드시 右遷하게 마련이며 따라서 右遷作用이 끝나면 또다시 繼續하여 左遷하는 作用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作用을 繼續하는 狀態가 바로 左右周天하는 作用인 것이다. 그런즉 春夏와 秋冬이 바뀌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오 靑年이 老年으로 變하는 것도 바로 이 運動 때문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 左右周天 하는 것 때문에 地球上에 있는 모든 것들이 地球와 함께 左右周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黃帝가 只今까지 알기로는 地球는 方으로써 不動體인 것으로 알았던 것인데 이제 地球가 動한다고 認識하기는 벅찬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黃帝는 再問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黃帝가 묻기를 「내가 前에 鬼臾區(六臣 中의 한사람)에게 들은즉 모든 應地하는 것은 靜한다고 들었는데 지금 夫子(岐伯)가 하시는 말씀은 모든 아래로 作用하는 것(卽 地)은 左行한다고 하니 무슨 말씀인지 理解할 수 없습니다」하고 다시 물었던 것이다. (帝曰 余聞鬼臾區 應地者靜 今夫子言 下者左行 不知其所謂也) 다시 말하면 前에 鬼臾區는 地에 應하는 것은 靜而不動한다고 하였는데 ...... 즉 地球가 萬一 動한다면 그위에 있는 모든 存在物은 반드시 흔들릴 것으로 生覺하는 것이 常識이므로 地球는 靜而不動하는 것으로 黃帝도 生覺하였던 모양이나 이것은 物의 大小와 空間의 廣狹이 陰極似陽 陽極似陰의 象을 나타낸다는 原則을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只今 夫子께서 地球가 動하는 것으로서 左行한다고 하는 것은 疑惑이 아닐 수가 없는 것이다.(中略)

  그러므로 黃帝는 岐伯에게 「地球는 아래에 가만히 놓여 있는 것이 아닙니까?」하고 다시 물었던 것이다. (帝曰 地之爲下否)

  그 때 岐伯이 對答하기를 地球란 것은 우리 人間 中心으로 볼 때는 아래 있는 것이지만 天體로서 볼 때는 다만 虛空에 있는 것으로서 꼭 아래 있다 혹은 위에 있다 할 수 없는 것이다. (岐伯曰 地爲人之下 太虛之中者也)

  다시 말하면 사람은 恒常 自己의 발이 놓여 있는 곳을 가리켜서 이것을 아래(下)라고 生覺하는 習性 때문에 그렇게 生覺하는 것 뿐이다. 그러나 冷靜하게 따져보면 地球는 大氣의 中間에 떠 있는 것인데 人間이 自己가 지닌 바의 尺覺(近視眼的 感覺) 때문에 그와 같이 誤解하는 것이라고 對答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黃帝는 아직도 疑心이 풀리지 않아서 다시 물었던 것이다.

  즉 「地球는 어떠한 곳에 依支하고 있는가? (帝曰 憑乎)

  다시 말하면 地球가 萬一 虛空에 떠 있다면 어떤 곳에 依支하지 않고서는 반드시 떨어질 것으로 生覺하였기 때문에 이와 같이 反問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岐伯은 對答하기를 그런 것이 아니고 다만 「大氣가 들고 있는 것이다」라고 對答하였던 것이다. (岐伯曰 大氣擧之也)

  그리고 그는 또 繼續하여 「燥以乾之」하고 「暑以蒸之」하고 「風以動之」하고 「濕以潤之」하고 「寒以堅之」하고 「火以溫之」라고 말하였으니 이것은 바로 地球가 虛空에 떠서 動하기 때문에 이것이 日月의 光을 받으면서 左右周天하므로써 五行이 생겨나고 다시 그것이 六氣의 變化所致로 上記한 바의 「燥暑風濕寒火」의 六氣運動을 하는 大本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즉 所謂 世俗的인 「天動地靜」說은 여기에서 崩壞되고 마는 것이니 老, 墨, 列. 莊의 思想은 이것을 받침하고 있다. 이것이 東洋의 古代天文思想의 境地(다시 말하면 地球와 日月이 動하는 것은 天體의 動하는 힘(力) 때문이라고 하는 것임을 生覺할 때 刮目한 만한 충분한 價値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地球와 日月은 그들의 運行에 있어서 반드시 規則的인 軌道의 運行을 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으니 이것을 가리켜서 六節藏象論(素問)에는 「行有分紀 周有道理」라고 明示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다만 本稿에서 말하려는 바는 「地球와 日月이 左右周天하는 그것 때문에 地球 위에서는 森羅萬象의 變化가 일어나게 되고 따라서 經度와 緯度의 차이 때문에 地方마다 各其 特殊한 物品을 生産하게 되는 것이니 이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는 問題가 생기게 된다는 것과, 또 地球의 軸이 二十三度 七分 傾斜져서 있는 까닭에 黃道가 (地球의 軸이 傾斜진 그만큼) 赤道의 內外廓으로 出入하므로써 春夏秋冬 四時의 現象이 나타나게 되고 이 現像이 反復往來하는 過程에서 「土」와 「相火」를 自生하여서 비로소 이 宇宙間의 모든 變化가 나타나게 된다는 것」뿐인 것이다. 물론 여기 附隨되는 問題로서 地球의 軸은 왜 傾斜졌는가? 따라서 地球와 日月을 運行시키는 原動力은 무엇인가? 하는 問題는 가장 重要한 問題인 것이다.

  그러나 只今 여기서 論하려는 바는 다만 槪括的인 것으로 그치고 詳述하는 것은 各論에 미루기로 할 것이다.

  다만 여기서 말하려는 것은 宇宙의 變化는 上述한 바의 모든 條件들 때문에 생기는 것이며 또 吾人은 이들 條件에 의하여 그 原理를 算出할 수 있다는 것을 認識할 수 있으면 本論의 目的은 끝나는 것이다.

 

 

第五節 河圖洛書와 太極說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地球 위에서 發生하는 모든 變化는 오로지 地球와 日月이 左右周天하는 運動過程의 所産이었던 것이다. 비록 그러하나 宇宙間에 그러한 形과 象이 있다는 그 事實만으로서는 哲學은 成立될 수 없는 것이다. 오직 그 象과 形에 대한 原理를 捕捉하고 거기다가 論理的 妥當性을 賦與하여서 學問的 體系로 誘導함으로써 비로소 哲學이 成立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인들은 宇宙간에는 이러한 變化原理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發見하였으며 또 어떻게 哲學體系를 세웠던가? 하는 問題를 硏究하여야 할 것이다.

  古代에 伏羲氏가 바다에서 龍馬가 그의 등에 異常한 그림을 지고 陸地에 나온 것을 發見하고 그 그림을 深思熟考한 結果 그것이 바로 五行原圖라는 것을 알아내었다. 그러므로 이 그림을 河圖라고 呼稱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伏羲氏는 河圖에서 五行原理를 發見한 것뿐만 아니라 그 作用 다시 말하면 變化하는 象을 捕捉하여서 그림으로써 그 象을 表示하여 놓은 것이 周易의 八卦인 것이니 이것이 易學의 基本이며 또 五行原理의 變化作用을 象으로 表示한 淵源이며 또 自然數가 生成變化하는 大本인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비로소 東洋哲學, 즉 象數學은 哲學的 素地를 갖추게 되었고 同時에 人間은 變化하는 象을 알아낼 수 있게 되었으며 또 그 原理를 自然數로서 立證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즉 이것은 變化하는 過程에서 보면 變化原理인 것이요 變化本然의 立場에서 보면 象數學인 것이다. 筆者가 本稿의 第一編을 「變化原理」라고 命名한 것도 實로 여기 있는 것이다.

  그러나 上述한 바의 河圖는 다만 萬象의 基本이 되며 또 萬物의 生成原理와 그의 象數를 表現한 것뿐이고 그 大變化의 象, 다시 말하면 生成의 現象을 表現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가리켜서 先天卦圖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때(時)는 반드시 萬物이 生長에서 成遂를 完遂하는 象, 즉 大變化의 象, 다시 말하면 金火交易하는 象을 明示할 聖人을 내고야 말 것이다. 때(時)는 夏禹氏에 이르렀다. 이때에 洛水에서 거북이가 그의 등(背)에 글을 지고 나왔으니 이름을 洛書라고 하거니와 이 그림은 거의 河圖와 같으나 다만 河圖 때는 二七火가 南方에 있었고 四九金이 西方에 그려져 있던 것인데 洛書에서는 二七火가 西方에 와있고 四九金이 南方에 와 있으며 또 河圖에서는 中央에 五十土가 있던 것이 洛書에 와서는 中央에 五土만이 있다는 點이 다른 것이다. 다시 말하면 洛書는 河圖에 比하여 이와 같은 特徵을 띄고 있는 바 여기서 問題되는 것은 왜 때(時)는 夏禹氏 때에 洛書를 보내어서 우리 人類에게 이와 같은 徵候를 가르쳤던가? 하는 것이다.

  이 問題에 對해서 硏究를 完成한 분이 바로 周文王이시니 그는 方不過 七十里의 諸侯領의 公子로서 紂王의 暴政아래  里獄에 投獄되어서 所謂 文王卦圖를 硏究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河圖原理가 洛書原理로의 轉換이며 同時에 生長原理에서 成遂原理로 變化하는 所謂 「金火交易原理」가 出現하는 契機의 創作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後天卦圖라고 한다.

  이와 같은 象數學은 「河出圖 洛出書하여 聖人이 則之」(易繫辭)함으로써 發展한 것이지만 이것을 演繹硏究하여 보면 地球 日月이 運行하는 過程에서 人間이 알아낸 것이라고 하는 한마디로 歸納되는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바의 河圖와 洛書 또 伏羲圖와 文王圖가 發明됨으로써 哲學의 成立은 보았지만 決코 完成은 아니다. 이것이 戰國 때 鄒衍 等에 依하여 華麗한 發展을 하였지만 秦火以後 거의 자취가 사라지게 되었던 것인데 때마침 周廉溪가 太極圖說을 내놓음으로써 河圖와 洛書의 運行原理를 明示하였던 것이다. 그 圖와 設은 至極히 簡單하지마는 그의 眞理는 圖와 說 가운데 彌滿하여서 象과 數의 硏究에 대한 偉大한 公式을 남겨놓았던 것이다.

  그러면 太極圖說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여기에 說明해야 할 것이나 總論에서는 略하고 詳細는 各論으로 미루기로 하거니와 다만 本稿에서는 河圖와 洛書의 발전은 太極圖說의 發展으로 因하여 今日 東哲(즉 象數學)의 體系를 세워 놓았다는 것을 紹介하면 되는 것이다.

  以上에 紹介한 바는 甚히 難解한 部分이 많아서 理解하기 困難할 줄로 안다. 그러나 그것은 念慮할 것 없다. 以上에서 論述한 바는 다만 以下 各論에서 硏究할 것에 對해서 總括的으로 그 重要한 內容이 이러하다는 것을 紹介한 것이고 詳細한 것은 各論에서 逐條說明할 것인즉 이 점을 미리 理解만 하면 그만인 것이다.

第六節 正名學

  正名이라는 말은 오늘날의 流行語로써 바꿔 말하면 槪念이라는 말과 서로 相通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모든 事物은 이름(名)이 붙어진 後에 비로소 그것이 어떠한 것이라고 하는 것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즉 事物에 各其 이름을 붙이는 일은 本來 重要한 일이지만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人口의 增加와 함께 社會의 生活樣式과 文化의 發展形態가 漸漸 複雜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事物에 대한 名分關係는 絶對不可分의 關係로 登場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事物과 名稱關係는 마치 車의 兩輪이나 鳥의 兩翼關係와도 같아 서로 分離할 수 없으리만큼 必要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돌이켜 生覺하여보면 人類의 生活과 文化의 發展이 아직 草創하였던 때에 있어서는 名稱을 設定할 必要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漸漸 複雜化되어가는 今日에 있어서는 人類와 文化의 發展에 따라 事物에 名稱을 賦與함으로써 그의 複雜性을 整理하고 또 認識하는데 도움을 주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事物에 名稱을 賦與함으로써 哲學의 發展과 文化의 硏究에 對해서는 貢獻하는바 컸지만 反面 그 名稱은 도리어 自體矛盾을 誘發하기에 이르고 말았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名稱이란 것은 그의 槪念이 正確할 때에는 最上級의 功效가 있는 것이나 正名의 本質이 墮落될 때는 도리어 事物의 發展에 害毒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

  본래 東洋의 文字는 그 自體가 二面性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즉 一面으로는 言語學的인 面을 지니었고 다른 面으로는 哲學的인 面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天」字에서 이것을 稽考하여 보면 言語學的인 面에서 보면 「하늘」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哲學的 面에서 보면 「天」(하늘)이라는 것은 어떠한 것인가? 하는 意味가 그 글자의 象과 形 가운데 潛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萬一 正名精神이 墮落되면 글자의 意味는 言語學的인 面에서만 通用되고 哲學的인 面은 漸漸 退藏되어버리는 것이다.

  모든 事物은 名에 依해 代表되고 正名은 文字에 依해서 象徵되는 것이라는 것을 認定하는 한 正名의 墮落이 바로 哲學의 墮落이 된다는 것을 認定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오 따라서 人事에 있어서는 正名이 行해지지 못하면 腐敗와 墮落만이 助長되는 法이오 萬物에 있어서 正名이 行해지지 못하면 物質硏究는 發展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例는 史上 非一非再였거니와 特히 中國史에 있어서 春秋末과 戰國初期의 混亂相은 이것을 如實히 代表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孔子가 正名으로써만이 混亂한 社會를 矯正할 수 있다고 生覺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孔子가 人道에 있어서 名分을 바로잡음으로서 社會를 淨化하려고 한 까닭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人道哲學의 基盤을 後世에 남겨 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墨子도 亦是 人道主義를 排斥한 것은 아니다. 孔子의 形式主義的인 面을 否認하는 同時에 人道的인 正名만 가지고는 그 當時의 社會를 바로 잡을 수 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당시 墨子의 눈앞에 떠오른 것은 腐敗墮落하여 骨肉相殘으로 寧日이 없는 權力層들과 塗炭속에서 阿鼻叫喚하는 衆生들의 悲慘한 實相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첫째로 物質文明을 發展시켜서 民生의 富를 增殖시키고 둘째로 兼愛思想을 鼓吹하여 戰爭을 禁止토록 하고 셋째로 節約思想을 奬勵하여 財産을 蓄積하도록 하여야 道德도 그 속에서 自然히 蘇生된다고 力說하였던 것이다.

  墨子의 이와 같은 思想은 思想으로만 그친 것이 아니고 自己自身이 實踐하였으니 첫째로 事物의 正名을 철저히 함으로써 科學的 發達을 促進시켰으니 그의 科學的 所論은 오늘에 있어서는 믿지 못할 만한 卓越한 價値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註」光學, 力學 等을 參照) 그 다음 諸國을 歷訪하여 平和를 提唱하고 自己自身이 儉素한 生活을 하면서 勤儉을 奬勵한 것 등은 實로 본받을만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中에서도 吾人이 特히 본받을만한 것은 그가 物質文明을 發展시키기 위하여 모든 事物에 賦與되어 있는 名稱에 대해 正名(槪念決定)을 徹底히 하였고 또 그의 正名方法을 指示하였다는 점이다. 勿論 斯學의 發展은 秦火以後 비록 衰殘하여졌다고 할지라도 그의 著書가 今日까지 남아있기 때문에 오늘의 光明을 받게 되었거니와 따라서 正名思想과 天道法則 硏究는 漢醫學硏究에 있어서도 혹은 基本哲學으로 혹은 補助科學으로써 絶對的 經典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哲學이 正名段階를 거치고야 事物의 眞理를 探索할 수가 있고 醫學이 正名된 다음에야 人體의 秘密을 찾아내는데 吝嗇하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事物의 眞理를 探究하려면 正名이 必要하게 되고 따라서 正名하기 爲해서는 文字의 媒介를 기다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 글字 自體부터 바로잡지 못하면 事物의 名稱을 바로 잡을 수 없게 되고 그의 名稱이 바르지 못하면 事物의 標識이 不公正하여져서 眞理도 邪道에로 轉落하기 일수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哲學徒는 勿論 우리 漢醫學徒에 있어서도 正名할 줄을 알아야 할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아직 論議되어야 할 것은 正名方法인 것이다. 이 問題는 本稿에서 論할 性質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略하거니와 이제 여기에서 한마디로 말한다면 字典을 無限히 찾으면서 자기가 이미 알고 있다고 生覺되는 글자를 篆字나 古字까지 對照하면서 그의 象과 形을 檢討하는 일이오 다음은 正名에 關한 典籍을 잘 硏究할 것이오 세째로는 變化原理(五行思想)를 完全히 納得하게 되면 無難히 解決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本講에서 變化原理부터 先論하는 것도 實로 이와 같은 모든 難題解決의 基盤을 먼저 닦아놓으려는 것이다.(總論終)

<筆者=서울 鐘路區 韓東錫漢醫院長>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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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handongseok.org/lecture1.htm
黃帝內經講義 (1) 1964년 10월호

韓東錫

第一編 變化原理

第一章 總論

第一節 緖論

  內經이라는 말은 黃帝時代에 그의 臣인 岐伯天師等 六臣과의 問答에 의해서 論述된 것을 蒐集記錄한 것이다. 이것을 黃帝內經이라고 하는 바 그 內容을 다시 區分하여보면 靈樞와 素問으로 區別된다.

  이제 여기에서 그 內容을 살펴보면 病理 生理 診斷 針灸 등 直接으로 人體와 關係되는 部分과 間接으로 宇宙와 關係되는 自然哲學的인 部分으로 區別된다.

  다시 말하면 宇宙의 自然現象은 그것이 비록 千態萬象이라고는 하지만 萬一 어떠한 法則으로서 이것을 測定한다고하면 그것은 바로 陰陽의 分合過程에서 생기는 五行運動에 不過한 것이라고 規定할 것이다. 이것이 所謂 自然哲學의 一分類인 象數學(五行學 或은 變化原理)과 醫學과의 區分이 되는 것이나 그러나 좀더 嚴密히 考察하여보면 醫學理論이 바로 宇宙原理를 基礎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內經이란 것은 如何한 學問인가? 하는 質問에 對하여 단 한마디로 對答한다면 그것은 '自然哲學原理'인 五行學에 依해서 人體의 生理變化를 알아내고 또 이것을 治療하는 醫學自體의 '基礎原理'라고 對答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問題되는 것은

  첫째로 宇宙運行의 自然哲學的 原理를 單純히 陰陽과 五行이라는 規範으로써 完全無缺하게 說明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問題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所謂 陰陽五行說이 지닌바 眞理性이 果然 躍如한가? 어떤가? 하는 것을 硏究하는 것이다.

  둘째 人體의 모든 組織과 그의 運動原理가 自然哲學的 宇宙原理와 同一한가? 어떤가? 하는 問題를 硏究하지 않으면 안된다. 萬一에 自然界를 說明하려는 이 陰陽五行原理에 어떠한 矛盾이 있다든가 或은 人體가 宇宙의 運動原理와는 相反되는 運動原理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면 內經은 醫學의 經典이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同時에 吾人의 硏究對象으로서도 何等의 價値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內經은 그 自體가 지닌 바 經典的인 價値와 또 哲學的인 絶對眞理가 있다고 하면 다시 말해서 人體의 病變現像을 探索하고 治療하는데 있어서 確固不動한 最高哲學으로서의 原理가 있다는 것을 認識할 수 있게 되고 또 探索에 沒頭하게 되면 醫道施術의 神化 즉 如何한 病이라도 自由로이 處理할 수 있는 實力이 생긴다고 하는 結論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目的을 實現하기 위하여서는 爲先 위에서 말한바 宇宙의 自然原理 陰陽과 五行의 運動原理부터 먼저 硏究하지 않고서는 人體의 모든 現象을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內經一書는 비록 數萬字에 達하는 尨大한 內容을 지니고 있지만 宇宙의 自然原理(즉 五行)만을 完全히 把握한다고 하면 其他의 모든 部分 즉 生理 病理 脈色 針灸 等은 講義를 들을 必要도 없이 自解自得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本講은

第一編 變化原理

  이것을 先講하여 自然哲學的 規範인 五行原理(象數學)을 納得시키는 것을 爲先으로 하고

第二編 運氣編

  을 內經本文대로 紹介함으로써 天道原理硏究의 解別明彰을 돕게 하고

第三編 疾病編

  을 넣어서 天人合一의 大本을 說明하기로 하고

第四編 針灸와 診療編

  을 넣어서 本講을 終了하도록 하는 것이 內經學의 體系上 옳지 않을까 生覺하는 바이다.

  다음은 筆者가 硏究過程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고 또 現在에 있어서나 未來에 있어서도 亦然하리라고 生覺하는 바의 書籍을 紹介하려고 하는 바이다.

  그러나 그 內容이 너무 어려워서 이것들이 內經硏究의 參考書라기 보다는 오히려 內經이 그들의 參考書라고 할만한 것이기는 하나 互相參照하면서 硏究하면 不知不識間에 理解를 促進시켜서 奈終에는 그것들이 오히려 偉大한 師表가 된다는 것을 附言하는 바이다.

  ◇ 記 ◇

  一 周易과 正易

  二 墨子의 經上下, 經說上下, 大取, 小取

  三 老子

  四 列子의 天瑞篇, 黃帝篇, 仲尼篇

  五 莊子의 天下篇(全篇을 讀破하면 더욱 可함)

  六 公孫龍子(이것은 글도 많지 않으니 꼭 읽어둘 必要가 있다. 이것을 完全納得하면 墨經을 解得할 수 있는 實力이 생긴다.)

  七 荀子의 不苟篇 解蔽篇 正名篇

  八 近思錄의 道體篇

  九 皇極經世

 

 

第二節 內經의 由來

  中國의 哲學과 醫學思想은 本來 南北으로 갈라져서 各其 相異한 方向으로 발달하였던 것이다.

  黃老學派는 南方에서 自然哲學的으로 發達되었던 것이니 이것은 黃帝의 內經, 中經, 天符經을 祖宗으로 하였고(萬歲不易之典所載) 儒敎學派는 北方을 中心으로 發達하였던 것이니 이것은 人性主義立場에서 孔子를 中心으로 發達되었던 것이다.

  却說 黃老學派의 自然哲學이란 것이 이른바 陰陽五行說이니 이것이 오늘날 말하는 象數學이요 또 變化原理이기도 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古聖들이 宇宙自然의 運行法則을 把握하므로서 거기서 宇宙와 人事 其他 모든 原理를 發明하였던 것이니 이것이 五行學의 基礎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地球 위에서 생기는 모든 原理는 宇宙運行原理와 同一하다고 規定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黃老學派의 發達은 戰國末에 秦始皇이 焚書坑儒하기 以前까지는 非常한 發達을 하므로서 儒學은 無色할 程度로 劣勢에 놓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漢代 以後 儒敎가 國敎로서 登場하기 始作하면서부터 自然哲學思想은 漸漸 轉落하게 되었던 것이다.(여기에는 政治的 社會的으로 重大한 理由가 있으나 略함)

  그렇던 것이 近來에 와서는 그 眞價가 차츰 學界에 認識되어가게 되어서 西歐哲學에 있어서 마저 이에 關心을 기울이게 되고 있는 것은 實로 多幸한 일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本論의 目的하는 바는 南北學派의 優劣이나 長短을 誹辦하려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自家誹辦에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近來에 와서 內經 思想의 基本인 五行思想에 대해서 이것이 醫學發展의 途中에 導入된 것이고 內經 本來의 思想이 아니라고 生覺하는 見解가 바로 그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不得已 여기에서 一言하려는 바이다.

  첫째로 問題되는 것은 黃帝時代에 文字가 없었거늘 어찌 그 尨大한 內容을 갖춘 內經이 完成될 수 있었겠는가? 하는 點이다. 그렇게 考察하면 內經은 分明히 後人所作이라고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筆者도 이 點에 對하여서는 頑强히 反對할 意思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春秋時代의 文體만 參考하여보아도 그 時代의 筆致와 內經의 文體와의 사이에는 相異한 點이 있어야 하겠거늘 而況 黃帝時代와 比較한다고 하면 그 差異點은 뚜렷이 달라야할 것이다.

  그러함에도 不拘하고 現存한 內經의 文體를 살펴보건대 오히려 戰國時代 以後의 文體와 彷佛한즉 內經은 黃帝時代의 所作이 아니라는 理由가 成立되는 것이다.

  생각컨대 戰國時代에 鄒衍이 五行說을 大發展시켰고 또 그 時代는 斯學의 全盛期였으니만큼 或是 鄒衍一派의 所作이 아니였든가? 生覺할 餘地는 充分히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서 醫學과 內經(즉 五行)은 別個였던 것이고 다만 五行說을 醫學의 發展途中에 導入한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妥當치 못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醫學과 五行은 同一人의 所作이 아니라는 말이 되는 것인즉 그것은 바로 內經이 同一人의 所作이 아니라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內經에서 五行精神을 除去한다고 하면 內經理論은 그의 基盤을 잃어버리게 되는 까닭이다.

  돌이켜 生覺컨대 周易의 河圖 洛書 自體가 바로 五行인데 孔子가 易에 十翼을 著述하여 周易을 完成시킬 때 河圖와 洛書를 卷頭에 싣는 것을 잊지 않았고 또 夫子가 詩書를 冊修할 때도 書傳에 洪範(箕子가 洪範에 五行說을 著述하였음)을 싣는 것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五行說은 周代 以前의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이며 또 孔子가 이것을 얼마나 重視하였던가? 하는 것도 알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墨子 老子 莊子 列子 公孫龍子 등의 自然哲學思想은 모두 五行說이 그들의 基幹을 이루고 있다는 것으로 미루어 보면 五行說은 다만 戰國時代에 와서 開花된 것뿐이고 그 源流는 멀리 黃帝時代에 있었다는 것을 넉넉히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筆者가 生覺하는 바로서는 內經을 黃帝時代의 所作이 틀림없고 다만 이것을 戰國時代에 와서 通俗化될 수 있는 程度로 發展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바이다. 뿐만 아니라 五行學은 漢醫學의 發展途中에 導入된 것이 아니고 漢醫學自體의 基本法則이라고 生覺하는 것이 妥當한 것이다.

  더욱이 이것을 가지고 曰可曰否할 生覺도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取할 態度는 다만 思惟하는 自我로서 眞理探究에 그 目的이 있기 때문에 誰何의 所作與否를 論할 것이 아니라 途中의 導入與否를 論할 것이 아니라 그가 果然 眞理이냐? 아니냐? 하는 것만 따지면 그만인 것이다.

第三節 五行의 發展

  위에서 五行이란 것은 宇宙의 造化이며 人體의 變化이며 同時에 모든 變化의 規範이라는 것을 말한 바 있다.

  萬一 그렇다면 그와 같이 重大한 五行現象은 果然 어떻게 生成하느냐? 하는 것을 硏究하여야 할 것이다.

  宇宙가 오늘날의 宇宙 다시 말하면 日月星辰과 地球가 形成되기 前에는 다만 寂寞無朕하여서 있는 듯도 하고 없는 듯도 한 形而上의 象만을 나타내고 있었던 때이므로 이것을 無極이라고 命名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無極이 漸次로 自己運動을 일으켜서 永遠한 運動을 계속하게 되니까 그 無極 가운데 混合內包되어 있던 바의 淸氣와 濁氣가 서로 갈라지기 始作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各其 同氣相求하는 性質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드디어 淸氣는 陽團을 이루고 濁氣는 陰團을 이루어서 서로 밀고 당기고 하는 運動을 始作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宇宙間에는 矛盾과 對立이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萬物이 發生하게 되었고 人間도 또한 生成하게 된 것이니 이 本源을 가리켜서 太極이라고 命名하였고 또한 太極의 運動狀態를 가리켜서 陰陽運動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宇宙의 變化는 이와 같은 引合運動만으로서는 決코 宇宙의 自然現象을 實現해낼 수는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大體로 볼 때는 陰陽運動에 不過하지만 細密히 살펴보면 陰陽運動은 다시 四介의 運動을 나타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바로 陰陽의 再分裂現象이니 즉 陰陽이 각각 自己運動과정에서 다시 陰陽으로 再分裂하여 四象이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陽中에서 갈라진 것을 陽中之陰陽이라고 하고 陰中에서 갈라진 것은 陰中之陰陽이라고 呼稱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宇宙의 陰陽運動은 本來는 陰陽 二本이던 것이 다시 分裂되어서 四象形態의 運動을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吾人의 感覺界에 나타나는 春夏秋冬 四時가 그의 代表的인 形象인 것이다. 그러므로 木은 陽中之陰, 火는 陽中之陽, 金은 陰中之陽, 水는 陰中之陰으로 區別되는 것이다.(下圖參照)

 




圖說

 (가) 右圖 左에서 右로 通한 線을 緯線이라하고 南北으로 通한 線을 經線이라고 함

 (나) 緯線以下는 用의 陰部라하고 緯線以上은 用의 陽部라고 함

 (다) 東哲은 (나)에서 말한 바 體와 用이란 述語를 重用하니 즉 本體와 作用이라는 말이다.

 (라) 東哲은 東西南北 즉 八方의 表示를 右圖와 같이함(그 理由는 講義가 前進됨에 따라서 自然히 알게 된다.

 (마) 東哲은 어떤 問題를 說明함에 있어서 大部分, 用 中心으로 說明하게 된다. 故로 여기서도 用을 主軸으로 하기 때문에 左下를 陽中之陰 左上을 陽中之陽 右上을 陰中之陽 右下를 陰中之陰이라함.

  圖에서 본 바와 같이 本來는 陰陽運動이던 것이 陽(左便用의 陽位)이 갈라져서 陽中之陽과 陽中之陰으로 갈라졌고 陰(右便用의 陰位)이 또 둘로 갈라져서 陰中之陽과 陰中之陰으로 되는 것이다. 그런즉 이와 같이 갈라져서 四介로 分割된 것을 四象 즉 木火金水라고 하는 것이다.

  위와 같이 되게 된 內容을 다시 생각하여 보면 本無極이었던 肇基가 太極으로 變함으로써 그 太極이 陰陽運動의 肇基가 되었고 陰陽運動이 다시 갈라져서 四象 즉 木火金水의 肇基가 되었다는 것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問題되는 것은 또 하나 있다. 위에서 말한 바의 四象이 그 自體만으로서는 아무런 變化도 이루어내지 못한다는 事實이다. 다시 말하면 四象의 本性은 異質的인 것들이다. 그러나 異質的인 것들은 항상 矛盾과 對立을 나타내면서 鬪爭함으로써 宇宙와 萬物의 變化를 實現하는 것이다.

  그런즉 鬪爭과 對立은 宇宙發展의 重要한 要因이다. 그렇지만 여기에 萬一 이것을 調節할 수 있는 어떠한 調和作用의 主體가 없다고 하면 宇宙와 萬物은 勿論 人體에 있어서도 이와 같은 矛盾對立의 鬪爭 때문에 모든 機能은 破滅되고 말 것이다. 그런 故로 四象의 運動이 自己運動過程에서 생기는 矛盾을 解決하기 爲해서 四象 自身이 「土」를 生하게 되는 것이다. 이 「土」야말로 矛盾을 調和시켜서 陰陽運動의 對立을 緩和시키며 따라서 五行各個의 過不足運動을 補短抑過하는 가장 重要한 것이다. 그러므로 『土+四象=五行』이란 結論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면 그 土라는 것은 무엇이며 또 五行이란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밝혀야 한다. 五行學의 硏究라는 것은 實로 여기에 있는 것이니 그것은 各論에서 이야기할 性質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論하지 않겠다. 그러나 總論에서 默過할수 없는 것은 所論한 바 五行을 生成하게 하는 것은 果然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故로 이것을 次節에 論하겠다. (次號 繼續)

 <筆者=서울 鐘路區 韓東錫漢醫院長>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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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 년 함경남도 함주군에서 출생한 한동석 선생은 한국 사상사에 있어서 신화적인 존재다.

1. 우주변화의 원리 저자 한동석에 대하여
명리학과 한의학의 연결고리는 오행사상에 있고, 이 오행에 대한 이해를 확실히 한 인물이 한동석(韓東錫, 1911-68) 선생이다. 1911년 함경남도 함주군에서 출생한 한동석은 '우주변화의 원리'라고 하는 문제의 저서를 남겼는데, 66년에 초판이 발행된 이 책은 40년 가까이 스테디셀러로 내려오고 있다. 한의학도들의 필독서로 꼽힌다. 한의과대학 학생치고 이 책 안 본 사람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평판이 자자한 책이다. 그런가 하면 동양사상이나 명리학을 심도 있게 공부하려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 책은 반드시 읽어봐야만 하는 책으로 회자되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한동석 선생은 오행사상에 대한 창신創新을 해낸 인물이다. '우주변화의 원리'는 오행의 원리를 스스로 입에 넣고 하나씩 씹어 철저하게 맛 본 다음 쓴 책이다.

 근래에 한.중.일 3국 중 오행에 대한 이해를 오늘의 맥락에서 이처럼 확실하게 해낸 인물은 없는 것 같다. 한국에서 인물이 나왔다. 오행에 대한 역작이 바로 한국의 한동석 선생이 저술한 '우주변화의 원리'이다. 이 책은 중국이나 일본의 연구자들도 공부해야 할 명저다.

 한동석 선생이 전념한 수도修道 방법은 무엇이었는가. 방법은 독경讀經이었다. 그는 황제내경 운기편을 일만 번 가까이 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에는 3,000독을 목표로 하였으나, 3,000독을 해도 신통찮다고 여기고 다시 6,000독 9,000독에 이르렀다고 한다. 9,000독에 가니 약간 보이더라고 술회하였다. 마지막 1만 독을 채우면서 활연 관통했던 것 같다.

 선생은 이 책의 의미에 대해 대한한의학회지 광고문 중 저자의 말 중에서 "우주도 변화하고 인간도 변화한다. 그러나 인간은 이것을 살필 줄 모른다. 이 원리를 계발하여 놓았지만 인간이 그 근주根株를 파헤치기는 진실로 어렵다. 필자는 내경을 연구하는 학도와 우주의 신비를 개발하려는 후학들에게 그 안내의 역을 다하려는 심정으로 이 글을 세상에 내보려는 바이다"  라고 운을 떼고 "평이한 말과 쉬운 문장으로 엮음으로써 누구나 알 수 있게 하는 데 노력하였다"고 밝혔다.

한동석 선생은..
 선생의 본관은 청주이며 본명은 국흠國欽으로 월남 후에 동석東錫으로 개명했다. 호는 두암斗庵 혹은 동암東庵이다. 1911년 신해년辛亥年 음력 6월 5일(양력 6월 30일) 인시寅時 함경남도 함주군 하조양면(오늘날 함남 영광군 용동리 근방)에서 청주한씨 예빈윤공파 22세손으로 부친 希春과 모친 李氏 사이에서 3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20대 후반까지는 장사를 하였다. 32세 되던 1942년에 부인이 폐병으로 죽고 난 뒤에 본격적으로 한의학 공부를 시작하였다. 부인이 죽기 전에 동무 이제마 선생(사상의학의 창시자)의 이전제자二傳弟子인 김흥제 선생에게 치료를 받았는데 이것이 인연이 되어 김흥제 선생 밑에서 한의학을 배웠다고 한다. 6.25 전쟁시 1952년 부산 영도에서 진료하는 틈을 내서 동양의학 전문학원에 강사로 출강을 하였고, 1953년에는 부산 영도에서 제2회 한의사 국가고시에 응시하여 면허를 취득한 후 정식으로 개원하여 인계한의원을 운영하였다.

1956 년 서울로 올라와서 인사동 사거리에 한동석한의원을 개원하였으며, 이후 <역학원론>의 저자이며 주역에 대해서 깊이 연구한 한장경선생으로부터 주역을 배웠다. 선생은 계룡산 국사봉(정역을 찬술하신 김일부대성사께서 도통하신 곳)을 출입하면서 주역과 정역 등을 심도 있게 공부하였다.

1960 년을 전후하여 선생은 <내경> '운기편', <주역>, <본초>등에 관한 내용을 한의사, 한의과 대학생 등에게 한의원 2층에서 강의를 시작하여 몇 년간 지속하였으며, 경희대학교 한의과 대학의 전신인 동양의약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이후 전임강사로 출강하였다. 1960년대 전반기부터 <우주변화의 원리>를 집필하기 시작하여 여름만 되면 계룡산에 내려와 목욕재계를 하며 원고를 수정하여 정리하였다고 한다.

선생은 58세가 되던 1968년 자신의 태어난 날인 음력 6월 5일에 세상을 떠났는데, 병상에서 자신의 생일날 生時인 寅時를 넘기면 살 수 있다고 하였으나 이를 넘기지 못하고 서세逝世하였다.

63 년에 이미 당신 스스로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하였고 돌아기시기 한 해 전인 67년 12월 정도부터는 주위사람들에게 "내가 왜 이러지?" 하며 자신의 건강상태가 좋지 못함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자꾸만 머리가 커지는 것 같다는 말을 하고 이후에 "환한 봄날인데, 볕 좋은 봄날인데 환한 세상이 왜 이렇게 어둡냐."고 하는 등 서서히 죽음을 예감하였다.

돌아가시던 68년에는 산책을 나가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였다. 당신이 죽고 난 뒤에 가족들의 생계가 매우 어려워질 것이라 예견하였으며(선생이 죽고 난 뒤에 온 식구가 거지가 되어 거리에 나 앉을 것이라며 대성통곡을 한 적이 있었다고 하는데, 과연 선생의 임종 후 가세가 기울고 가족이 흩어지는 시련을 겪었다) 혹시라도 당신의 生日과 生時만 넘기도록 살 수 있다면 회생할 것이나 완전한 건강을 되찾으려면 2,3년이 걸릴 것이라 하였는데, 아무래도 그날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하는 등, 자신의 죽음과 관련된 여러 일들을 미리 내다보았다.

 그래서 자구책으로 자신의 생일을 넘기고 오겠노라고 계룡산으로 내려갔었으나, 꿈에 선생의 조모가 나타나 "여기가 어디라고 왔느냐, 빨리 너의 집으로 가거라!"고 소리치는 것을 보고서 그 곳이 머물러 있을 곳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황급히 서울로 돌아왔다. 돌아와서 제자들에게도 역시 갈 곳이 아니었기에 그랬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한다. 여느 때처럼 계룡산으로 갔다 하면 한달 씩 걸려야 올라오던 선생이 며칠 만에 다시 서울로 돌아와서 주위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겼는데 이때부터 건강히 급격히 악화되었다.

 자신의 生時만 넘기면 된다는 선생의 말에 한봉흠 교수(한동석 선생의 사촌동생; 전 고려대교수)가 그렇다면 양방 치료를 시도해도 되겠느냐는 질문을 했는데 선생은 그것은 결코 안 된다 하였다. 결국 고혈압, 비증, 후두암 등으로 투병을 하다가 뇌혈관발작(뇌졸중)으로 혼수상태에 빠진지 열흘도 채 안되어 자신이 태어난 날에 태어난 時를 넘기지 못하고 1968년 무신년戊申年 음력 6월 5일(양력 6월 30일) 새벽 축시丑時, 가족과 제자들의 곁에서 별세하였으니, 이 때 선생의 나이 향년 58세 였다

여기에서 주목을 끄는 부분이 있다. 한동석 선생이 이승만 대통령 이후 한국의 정권교체에 대하여 밝혀놓은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 항간에 떠도는 말에 의하면 한동석 선생은 앞일을 미리 내다보는 예언 능력이 있었다고 전한다. 한의사이면서도 앞일을 귀신 같이 아는 도인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 대표적인 예언이 한국의 정권교체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었다. 이 예언을 좀더 구체적으로 알기 위하여 한동석 선생의 사촌동생인 한봉흠(76) 박사를 서울정릉의 자택에서 만났다.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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