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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5.17 나반존자-내가 인간의 원조여!


개태사-팔각정에 앉아 계신 분 나반존자

팔각정 형태인데 ‘삼일지상정천궁(三一地上正天宮)’이라고 쓰여 있다.

여기 안을 보면 참 작은 키에 아기자기한 한분이 여러 개의 방석을 포개놓고 닫집 아래에 앉아 계신다.
앉은 모습이 매우 넉넉하여 절로 웃음 짓게 된다.

웬 조그만 팔각정에 닫집이 다 있다니, 닫집이 참 아담하다.
닫집이란 임금님의 자리나 부처님의 자리위에 장식으로 만들었다는 집의 모형인데 여기에 이분도 닫집에 있는 것을 보면 상당히 중요하신 분 같다.

닫집에 아담하게 앉아 계시는 분이 인상도 좋아 보이는데 옆에 기둥에 나반존자라고 씌어 있는 것을 보면 이분이 ‘나반존자(那般尊者)’인 것 같다.

나반존자는 일반적으로 삼성각(三聖閣)이나 독성각(獨聖閣)에 모시는데, 개태사에서는 삼일지상정천궁이라고 명명하여 다른 사찰과는 달리 팔각정에 모시고 있다. 또한 일반 사찰에서는 탱화를 모시는 데 반하여, 석조로 조각된 나반존자 상을 모시는 점이 특이하다. 계룡산에서 가져온 돌로 나반존자 상을 조성하여  모셨다고 한다.

뒤에는 산신탱화와 칠성탱화가 있는 것을 보면 여기가 삼성각이라 해야 할 것 같다.

나반존자 이분이 누구인가?
 

 
 
 
  ▲ [방석위 나반존자(那般尊者] 나반존자는 일반적으로 삼성각(三聖閣)이나 독성각(獨聖閣)에 모시는데, 개태사에서는 삼일지상정천궁(三一地上正天宮)이라고 명명하여 다른 사찰과는 달리 팔각정에 모시고 있다. 또한 일반 사찰에서는 탱화를 모시는 데 반하여, 석조로 조각된 나반존자 상을 모시는 점이 특이하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열반에 즈음하여 네 명의 큰 제자 마하가섭 존자, 군도발탄 존자, 빈두로 존자, 라후라 존자들에게 미륵불이 와서 세상을 구제 할 때 까지 열반에 들지 말고 지상에 남아서 자신의 신통력으로 중생을 제도하도록 당부하셨다.

이 가운데 빈두로 존자가 바로 나반존자로 18나한 중 한 분이라고 하고 있는 것 같고, 또 중국의 천태산에서 깨달음을 얻어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장수를 누리다 죽었다고 하는 고구려의 파약(破若)스님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렇지만 좀 이상하다.

적어도 나한이라면 여러 나한과 함께 나한전에 모셔지던지, 그리고 빈두로존자나 파약스님이라면 그분만 유독 우리나라에서 따로 모셔질 만큼 독특한 성인은 아니다.

그런데 각 절에는 독성각이나 삼성각이 있어 나반존자를 별도로 모신다.
그렇다면 이분은 불교의 빈두로존자가 아니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미친다.

이분의 정체는 무엇일까? 도대체 불교와는 어울리지 않게 산신과 칠성신과 함께 하는 이분은 누구일까?

환인이 인간을 창조하시니 남자이름은 나반이요, 여자이름은 아만이다. 나반은 다름 아닌 인류의 시조로서 아사달에서 아만과 만나 결혼하여 우리민족을 만든 분인 것이다. 서양에서 말하는 아담과 이브가 만들어 진 것과 같다.

이백의 태백일사(太白逸史)에 따르면 “이때 백호(白虎)가 산을 지키고 황웅(黃熊)이 산에 살았다”고 한다.
나반과 아만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지 오래나 아버지, 어머니라는 우리말로 기억되고 있다.

나반은 아바이, 즉 아버지라는 우리나라 함경도 사투리를 한자로 음역한 낱말이다.
아만 역시 함경도의 방언 오마니라는 소리를 한자로 바꾼 것이라고 한다.

결국 우리가 불교전래 이전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전통 신령이었던 것이다.
불교신앙과 융합되는 과정에서 그 본연의 모습을 잃고 불교 용어화 되지 않았나 싶다.

(박성수 저 단군문화기행 중에서)

결국 불교는 우리의 신교였던 전통신앙과 치열한 다툼 끝에 자리를 잡게 되었고 남아 있던 전통신앙마저도 불교화식으로 변형을 하여 포교를 넓히는 데 성공한 것 같다.

우리의 고유 신앙을 차용한 흔적은 4월 초8일은 해모수가 단군조선의 5가 원로들을 끊임없이 회유하고 설득하여 마침내 화백회의를 통해 단군으로 등극한 날로, 해모수 단군 등극 축제일을 고구려 소수림왕 때 불교가 이 땅에 들어오면서 석가탄신일로 변경된 것이다.

대웅전이란 배달국의 환웅을 모셨던 ‘환웅전’의 변형으로 전각의 이름만 남기고 석가세존이 대웅의 자리에 앉은 것으로 우리나라만 대웅전이라 불리 우고 있다.

삼성각 또는 삼신각도 역시 다른 나라 불교에서 없는 한국만의 전각이다.
한단고기의 기록대로 환인, 환웅, 환검(단군) 세 성인을 모셨던 단군조선의 전각이 불교와 타협하면서 절간 뒤로 밀려 보존된 것이다.

마치 기독교와 천주교에서 사용하는 하나님 또는 하느님 (물론 여기에도 하나님과 하느님으로 호칭하는 문제에 이견이 있는 것 같다.)이라고 표현하는 본래 단어의 기원은 하늘님(하늘天에 있는 님)이다.

당시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천손(天孫)의 자손으로서 하늘을 공경해오는 전통신앙 강했다는데 ‘명나라는 조선에 하늘신인 천신(天神)의 제사를 받들지 못하도록 원구단(圓丘壇)의 설치를 제한하였다.

제후는 산천에만 제사를 지내고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내는 천자의 위상을 가지지 못하도록 압박하였으나 원단(圓壇)또는 환단(圜壇)으로 세조 시까지 끈질기게 유지하였다.

하늘에 대한 제사권의 박탈은 자주권의 제한이었다.
하늘을 상실한 민족은 오늘날 제공권을 상실한 국방과 같이 한계가 있고 우주선이나 핵을 보유하지 못한 국가가 느끼는 국제사회의 초라한 위상과도 같다.’
(허흥식저 ‘한국신령의 고향을 찾아서’ )

천손민족으로 자부해오면 고조선 이래 고려시대까지도 중화에 대하여 우월적 지위를 누리던 우리 민족이 고작 조선시대에 들어서 명나라에 눌렸으니 명이 만주족인 청나라에게 망한 후 중국은 사라졌고 신해혁명으로 청나라로부터 독립을 해서야 다시 중국이 등장한 것이 아닌가.

그러함에도 기득권세력의 지나친 사대정신이 명이 망한 후에도 우리의 천신인 하늘에 대한 제사권을 찾지 못하고 소중화를 외치면서 망한 명나라만 쳐다보고 동경해 왔으니 결국 국민들의 하늘에 대한 강렬한 믿음은 조선말 새로운 종교인 천주교의 전래로 하늘사상을 다시 찾게 되었으니 숱한 순교자를 내면서까지 찾으려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유일신을 뜻하는 단어 천주(天主)를 당시의 한글 표현인 하ᄂᆞ(天)님(主)으로 번역하여 받아들인 것이니 당연히 그 종교적인 전파속도도 빠를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외래 종교였던 불교가 우리의 전통신앙인 환웅전, 칠성, 산신, 나반존자 등의 성지에 주인으로 집을 차지하고 이들을 버리지 않고 불교 화에 끌어넣어 성공한 반면, 천주교나 개신교는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잘 빌려서 성공한 경우라 볼 수 있다.   

나반존자는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일을 꿰뚫어 알고 있고, 자신과 남을 이롭게 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말법시대의 중생에게 복을 주고 소원을 성취시켜 준다고 한다.

독성각에는 나반존자 상을 봉안하기도 하지만 보통 독성탱화를 많이 봉안하는데 이 탱화는 천태산을 배경으로 하여 희고 긴 눈썹을 가진 늙은 비구가 오른손에는 지팡이를, 왼손에는 염주 또는 불로초를 들고 앉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일반 절에 갈 때 나반존자인 독성탱화와 산신을 산신탱화가 비슷하니 잘 살펴보아 차이나는 점을 찿아 보는 것도 재미있다.

나반존자에 관심이 있으신 분은 시간이 되면 경북 청도 호거산 운문사(雲門寺) 내에 있는 사리암을 찾아가 보기를 권한다.

올라가기도 힘든 산중턱에 있던데 왜 그리 사람들이 많은지 경상도 사람들의 강렬한 불교신앙은 어디 까지 일까?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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