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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5.15 왕궁 터 구들장을 찾아가면서 잠시 느끼는 여담


왕암 마을!

가야곡에서 운주로 넘어가는 국도 길옆에 있었으니, 여기를 찾아가기 전에 들러보아야 할 곳이 많으니 하루 일정을 잡고 좋은 여행코스를 소개하니 참고를 하시라.

계룡시에서 출발하여 유동리를 지나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화악리 이래진 오골계 마을’이라는 신호간판이 나오면 철길을 건너 여기를 둘러보자.

 
 
 
  ▲ 화악리 오골계.  
 
연산 오골계 마을은 태조의 아들인 익안대군 14대손인 이형흠이 처음으로 오골계를 사육하다가 거의 멸종되다시피 한 것을 그 후손인 이래진이 계승 사육하였다고 한다.

화산 전주이씨 지천석비가 마을입구에 씨족마을 이라는 느낌과 전설을 간직함을 보여 주는 것 같은데 몇 그루의 느티나무고목과 돌무덤이 있어 오래된 마을임을 알 수 있다.

여기 느티나무 고목은 천호리 고목과 아울러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온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후 개태사를 창건하고 국찰로 명하였다.
왕건은 개태사를 짓는데 공이 큰 두 사람을 불러 느티나무 한그루씩을 상으로 내렸다.
두 사람은 각각 자기 집 근처에 심고 정성을 다하여 가꾸면서 서로 의형제를 맺고 도우며 살아갔다.
그 후 형은 옥동자를 낳아 훌륭하게 키웠다. 동생 역시 왕이 내려준 나무를 정성껏 가꾸어 무성하게 자랐다.

어느 날 왜적들이 마을에 침입하여 느티나무 그늘 밑에서 고기를 굽고 술상을 차려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그때 그 나무를 심은 동생은 참다못해, ‘ 악한 자들에게 벌을 내려 주소서’하고 빌었다.
그때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와 한바탕 폭풍우가 휩쓸더니 하늘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나면서 그 나무를 향해 벼락이 내려쳤다. 왜적들은 벼락에 맞아 죽고, 그 이후 이 마을에는 더 이상의 화는 면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나무는 벼락을 맞아 화상을 입어 속 부분이 불에 탄 채 텅 비어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오석으로 커다란 오골계조각돌을 세워놓았는데 재미있는 발상인 것 같다.
이곳의 오골계는 천연기념물 265호로 지정되었고 당나라를 통해 들여온 것으로 다른 지역에서는 잘 자라지 않고 이곳에서만 사육되었다고 한다. 다른 지역은 전부 여기서 분양된 것이라 한다.

최근에 익산부근에 닭 캐슬 병이 유행했을 때 이곳의 오골계를 다른 지역으로 공수 받는 귀한 대접을 받을 정도였으니 부럽다.

조선연산군 때에는 일반 백성은 말할 것도 없고 정승까지도 오골계를 먹지 못하도록 하고 이를 어기면 벼슬을 빼앗기고 심지어는 귀향까지 보냈다고 할 정도로 귀하게 보호되었다고 하니 예나 저나 귀한 대접을 받는 꼬끼오(高貴吾)오골계였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가전비방(家傳秘方) 책에는 이 오골계가 중풍, 고혈압에 너무나 신기하게 잘 듣는다고 적혀 있다.  그 방법을 소개하면, 탕을 끓일 때는 털과 내장을 버리고 해바라기 꽃 둥근  것 전체를 두세 개를 따서 오골계와 같이 푹 고아 국물과 살코기를 먹는데 사람이 따라 다르겠지만 다섯 마리 정도면 90퍼센트 완치를 볼 수 있다고 하니 권하고 싶다.

또 다른 방법은 오골계 한 마리에 검은콩 한홉을 넣어 달여서 마시되 세 번만 먹으면 효력을 본다고 한다.

그렇지만 여기 화악리 이래진 오골계 집은 정성을 다해주는데 양과 주머니 사정을 비교하면  가격이 좀 비싼 것이 흠이다.

여기를 보고 다시 돌아 나오면 철길 건너 쪽 앞 언덕위에 모 방송국의 ‘칭찬   합시다’에 나오시기도 했다는 신복균 씨가 운영하는 허름한 묵밥집이 있다. 시각장애인으로 장애인을 돕는 일에 앞장서는 분인데 많은 분들이 찾는 곳이다.

 
 
 
  ▲ 고려의 개국사찰인 개태사 대웅전의 모습.  
 
다시 하행 길로 가면 개태사역에 이르게 되는데 역 옆에 주유소 가기 전 버스주차장 옆으로 개태사로 진입하는 좁은 통로 길이 나있으니 조심해서 통과하면 종교박물관, 왕건의 고려왕조 개태사가 나타난다.
무조건 둘러보아야 할 곳이다.

다시 오던 길로 내려오면서 좌측 산을 보면 이것이 천호산이고 용마루같이 늘어진 병풍처럼 주름이 겹겹이 생겼다. 36개의 봉우리가 정말 멋있다.
그래서 늘어진 산이라는 의미로  '늘이기재' 또는 '누르기재' 라고도 부른다.
한문으로는 연산(連山)이 우리말로 놀뫼가 한자로 음역되면서 논산이 되었다고 한다.

연산검문소를 지나면서 공단좌측으로 벌곡으로 가는 연산 구길 로 접어들어 내려가다 보면 송불암이 있는데 여기에 서 있는 부처님이 계신다. 옆에 소나무가 멋있다.

그 아래에는 예전에 금들농원이었는 데 지금은 ‘산애들애’라는 참나무 장작  바비큐 집이 있는데 정원을 잘 가꾸어 놓았다. 여기서 연산사거리 가지 전 앞에 있는 주유소 좌측으로 돌아서 산 쪽으로 한참을 가면 ‘콩콩이와 청청이’이라는 상호로 두부와 김치찌개를 하는데 맛이 끝내준다. 한번 가보기를 권한다.

여기는 유명한 ‘산꾸지뽕’물을 주는데 여성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물이니 후회는 없을 것이다.
먹는 이야기는 여기쯤하고 연산사거리에서 좌측으로 가면서 한민대학교를 지나가다 보면 여기도 맛있는 집이 있는데 송어무침집이 있다.

시간나면 들리고 아니면 그냥 직진하여 호남고속도로 위를 지나게 된다.

이 호남고속도로를 경계로 예전에 신라와 백제군이 대치를 했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보아온 곳이 황산일대로 황산벌전투가 있었던 장소임을 알고, 고속도로 경계를 지나 200m쯤 가면 당골 마을에 김일부 선생의 묘역이 있으니 한번 가서 참배하고 계속 달려가 보자.

양촌시내에서 직진하면 유명한 바랑산, 대둔산과 그 일당들이 기다리지만 다음 기회로 하고 가야곡 쪽으로 진입하여 (물어서 가야 할 것이다) 한참을 달리다 보면 좌측 산 옆에는 한국신약이 보이면서 ‘쌍계사’가 나온다. 여기는 가족들이 필히 도시락을 싸가지고 찾아보기를 권한다.

 
 
 
  ▲ 쌍계사 대웅전과 내부모습.  
 
쌍계사 뒷산이 불명산이고 이 주변은 아직도 옛날의 절이 많아 문화재가 많은데 대표적으로 불명산 뒤쪽 완주에 화암사가 있다. 화암사 극락전은 그 내부도 멋있지만 우리나라에 단 하나뿐인 하앙식(下昻式) 구조이다.

하앙식 구조란 바깥에서 처마 무게를 받치는 부재를 하나 더 설치하여 지렛대의 원리로 일반 구조보다 처마를 훨씬 길게 내밀 수 있게 한 구조이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근세까지도 많이 볼 수 있는 구조라고 하여 한국의 건축양식을 깔보던 일본이 이 하앙식 구조 건물이 발견되자 코가 석자나 빠졌다고 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한 것으로 목조건축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는 절이다.

자! 쌍계사 이절은 대웅전을 보는 것만으로도 하루 품삮을 지불할 가치가 있는 절이다.

본인이 작성하여 법원문집에 실린 글을 옮겨 보겠다.

“ 예전에 포장이 안 되어 다니기도 어려웠으나 지금은  포장이 잘되어 있다.
전란으로 인하여 많은 전각이 손실되어 약간 부족한 느낌이 들기는 하나 구례의 쌍계사에 견주어 절 자체로는 논산의 쌍계사가 더 멋있다. 특히 조각에 의한 장식 미는 그 극치를 이루고 있다.

그 중에 보물 제408호로 지정된 대웅전은 화려하면서도 장엄한 느낌이 법당  안을 감돌고 있다.

이제부터 대웅전 그 자체가 지니는 조각의 극치를 만나보기로 하고 마지막으로 도깨비를 찾아보자.

전면 5칸에 모두 열 짝이 달린 문에는 국화, 작약, 모란, 태극, 무궁화, 연꽃 등 6종의 꽃들이 섬세하게 조각되어 채색되어 있는데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예술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신기한 것은 법당 안에 들어가서 문을 보면 조각된 그림자가 하나도 보이지 않고 문살만 보인다.
그래서 일제강점기에는 경성박람회를 핑계로 문짝을 떼어서 서울에 가져가서 구경까지 시켰다고 한다.

법당을 들어서면 법당입구위에 ‘게’그림이 그려져 있다.
웬 절에 게 그림이 그려져 있을까 의아심이 들겠지만 이것이 남방에서 불교가 전래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해남의 미황사에는 법당의 기둥 주추 석에 이런 게 그림이 나오는데 이런 것이 모두 남방불교의 전래를 의미하는 것이다.

자! 이제 정면의 탱화를 보자. 웬 임금이 오만하게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있다.
이것은 조선시대에 유학 속에서 불교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인 것이다.
석가여래부처님을 모시고 좌측으로 아미타불과 오른쪽은 약사여래를 모셔두고 있는데, 고개를 들고 부처님 위를 쳐다보면 닫집이 있다. 이 닫집은 임금님의 자리나 부처님의 자리위에 장식으로 만들었다는 집의 모형이다. 이 닫집에는 아홉 마리의 용이 석가여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하여 물을 토하는 형상을 하고 있다.
멋진 조각솜씨이다. 여기서는 감탄사가 나와야 한다. 닫집 앞에는 새를 매달아 놓았다. 이것이 바로 용을 잡아먹는 전설속의 금시조라고 한다.

고개를 뒤로 젖혀서 천장을 보면 나무로 만든 학이 천장에 매달려 있다. 천상세계를 실감나게 해준다.
이쯤 되면 법당 안이 조각전시장과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뒤로 젖힌 고개를 바로하고 부처님 앞에 놓여 있는 긴 탁자를 보자.
이 탁자는 15미터의 길이에 나무를 잇거나 합하지 않은 한 나무판이다.

법당의 기둥 중에 하나는 칡뿌리 기둥이라는 전설이 있으니 좌측법당으로 들어가는 쪽 뒤에서 두 번째 기둥이라고 한다. 봉황루에 있는 법고는 통나무를 파서 만들었다는데 절의 역사만큼 천년을 넘겼을 것이라고 추정 되고 있는바 아직도 온전함에 감탄을 금할 길 없다.

이런 조각 작품으로 잘 지어 놓은 집에는 부처님 말고 그 무엇인가가 숨겨져 있지 않을까?

자 여기서부터 우리의 도깨비를 찾아 황당함의 극치를 맛보자.
우리의 도깨비는 본래 뿔이 없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뿔 달린 일본도깨비가 들어와 이것이 도깨비 모습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일본이 국가로 발전할 당시, 음양도(陰陽道)라는 유파가 있었는데 그 방면의 가르침을 전하는 사람을 음양사(陰陽師)라 불렀다. 그들은 영주나 귀족, 국가경영의 고문으로서 폭넓게 활약했었다.
지금도 이들의 활동이 일부 보이듯 하다. 도깨비는 바로 그 음양사들이 만들어낸 요괴(妖怪)인 것이다.

고구려 군인들은 뿔 달린 투구를 쓰고 나오는데 중국에서는 이를 무서워했고 이것에 영향을 받아 일본에서 뿔 달린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학자도 있다. 치우천황을 보면 그럴 법도 하다.

그렇지만  뿔 없는 도깨비가 우리의 도깨비 본래 모습이다.
보통 도깨비 문양은 지붕의 기와에 새겨놓은 것이 많은데 여기서는 당당히 불집을 차지하고 있다.
지금쯤이면 도깨비를 찾았을 것 같기도 한데, 도깨비 세 마리 중 한 마리는 봉황루 전면 창방부에, 나머지 두 마리는 대웅전 편액의 위쪽 좌우에 자리하고 있다.

참 순하디 순한 모습이다. 저 도깨비들이 장난을 하여 멋진 조각품을 해놓은 것이 아닐까 하여 미소를 머금어 본다. 토속종교가 절에 당당히 자리를 잡고 있는 모습이다.”

이제 쌍계사를 나와 시간이 난다면 바로 옆에 있는 감코리아를 둘러 곶감 말리는 작업도 구경하고 한방 곶감도 한번 시식해 보기를 권한다. 양촌일대가 곶감의 주산지라 유명한 곳인데 여기는 곶감을 특수 한방 처리하여 제조하고 있는데 맛이 참 좋다. 고집쟁이인 ‘이주용’사장이 만들어 낸 걸작품이다.

감을 냉장고에 얼려서 썰어 놓으면 시원하면서 아삭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양주안주로는 최고이다.
삼성그룹에서 이곳의 곶감을 구입하여 도자기 단지에 넣어서 선물하기도 한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서울의 일부 백화점에 까지 납품되고 있다고 한다. 머지않아 계룡시에 홈플러스가 들어서면 이곳에도 그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여기를 나와 다시 가야곡 쪽으로 가면 사육신의 한분인 ‘성삼문의 묘소’도 있으니 참배를 하기를 바란다.

성삼문의 시신은 능지처참되어 사분오열되어 없어진 것을 뜻있는 분이 시신일부를 수습하여 여기에 모셨으니 참배하고 언덕을 내려가면 오른쪽으로 ‘육곡리유적지’가 있고 그 아래 ‘가야곡왕주’ 공장이 있다.

술맛이 좋기로 소문이 나있는데 여기 물맛이 예전부터 좋은 것 같다. 그래서 고대인들이 터를 잡고 살아온 것 같다. 그러나 사실은 이 일대가 양질의 흑운모 화강암임을 누가 알랴?

여기서 가야곡사거리에서 운주 쪽으로 방향을 틀어 재를 넘어가기 전에 왕암리가 나오는데 여기가 왕암구들장이 생산된 동네이다. 여기부터는 물어보아야 찾아 갈 수 있고 약간 비포장산길을 올라가야 하니, 가족들과 왔다면  힘들기 때문에 운주에 가서 저수지 구경도 하고 화산붕어찜도 먹으면 하루의 여정이 저물 것이다.

왕암리 산속을 올라가다 보니 여기저기 구들장으로 축대를 쌓아놓고 때로는 구들장으로 쓰려고 바위를 떼어 놓은 흔적이 보이는데 정상 거의 올라가니 광산입구가 파쇄석으로 폐쇄되어 있었다.

지금은 채광을 하지 않고 있는데 나랑 같이 간 나에게는 ‘풋고추에 절이 김치인’ 한상교 선생은 은은한 기운이 느껴진다고 한다. 운모가루 때문에 바위자체가 흰빛으로 아른거리는데 더 들어가 볼 수 없어 여기서 서성거리면서 좋은 기운을 받고 흑운모 몇 점을 수집해서 나왔다.
옛적에는 흑운모 구들장1장에 논1평과 거래가 될 정도였다니 어마어마한 가격이었던 같다.

처음에 여기를 찾아갈 때는 건너편에 있었던 석회광산을 착각했었다.
이 광산도 폐광되었는데 거기도 석회 뿐 아니라 흑운모돌이 많이 나오는데 이 채광동굴에서 나오는 시원한 바람에 온몸이 오싹해진다.

한선생은 이곳의 기운이 쭈삣쭈삣하여 강하게 느껴진다고 하는데 정말 작열하는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정말 괜찮은 장소인지라 본인도 어깨통증 때문에 몇 번 가봤는데 온몸이 시원해지면서 기분이 상큼해지는 것이 나만 가기는 아까운 생각이 거듭 드는 장소이다.
신경통 등 통증이 있으신 분들은 이곳의 기운을 쐬면 상당한 자연치료가 되리라는 생각도 해본다. 

이런 데에 진정한 목적의 요양시설이 들어서야하는 것 같은데 최근에 다시가보니 웬 암자를 건축하고 있어 야릇하기는 하지만 많은 사람이 이용할 수 만 있다면 어떠랴.

건강에도 좋은 석재이니 한번 찾아가서 온몸으로 기운을 받고 오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이런 곳에 요양원 시설이 들어선다면 참 좆으련만 당시 경성태창방직의 백낙원, 백낙중 사장을 비롯한  만 그놈에 경제성 때문에 문제이다.

건강! 건강! 웰빙! 웰빙! 하는 시절에 이런 곳이 얼마나 큰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우리는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 같다. 마치 ‘터진 꽈리 보듯 하니’ 물건이나 사람을 아주 쓸데없는 것으로 여기고 중히 여기지 않고 있는 것 같다.

그저 우리 쌀, 우리 농산물만 죽어라 찾으나 왜 이 땅에 나는 것이 좋은지 알지 못하면서 알려고도 하지 않고 남이 좋다고 하니 나도 한다는 안이한 생각들이 너무 퍼져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우리속담에 ‘참깨 들깨 노는데 아주까리 못 놀까’,  ‘참나무에 곁 낫걸이’라는 글이 있다.

별 어 중이 떠 중이들이 다 활동하거나 참여하는 일에 어엿한 내가 어찌 못 끼겠는가 하는 것으로 남이 하니까 나도 하고, 제 능력은 생각하지도 않고 엄청나게 큰 세력에 부질없이 덤비고 부화뇌동하고 있으니 이제 계룡산아래에서 만이 이라도 이런 분위기가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보통 흑운모가 섞인 화강암지대는 예로부터 인물이 많이 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만큼 돌의 좋은 기운이 많이 방사된다고 한다. 여행은 이만하고 무대를 다시 신도 안 왕궁 터로 옮겨보자.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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