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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5.14 도깨비 터 - 종교 터를 세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야


   
 
  ▲ [천지대안도 중앙총본부] 천지대안도 중앙총본부 간판이 걸려 있는 모습. 지아이앤 뉴스 사옥과 인접해 있다.  
 
여기서(양정고개) 계룡굴다리 밑을 지나 10여 미터 쯤 가면 잠깐 살펴보고 가야 할 종교단체가 하나 있다. 
평범한 집이지만, 마침 이곳에 지아이앤 뉴스가 사옥으로 쓰고 있으니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 천지대안도 건물과 인접하여 위치하고 있는 지아이앤 뉴스 사옥. 왼쪽 옆으로 천지대안도 건물이 보인다.  
 
이곳이 바로 제주도와 관련이 많은 천지대안도(天地大安道)가 있는 곳이다.
일반인은 물론 종교에 관심 있는 사람들 조차 생소하리라 본다.

   
 
  ▲ 건물형태도 특이하지만 자세히 보면 천지대안도라는 글씨가 써 있고 외벽에는 알 수 없는 문향이 그려져 있다. 엄사우체국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다.  
 
나는 계룡시에 와서 엄사리 우체국 건너편에 있는 흰 색깔의 건물에 유난히 시선이 가곤했다.
건물형태도 특이하지만 자세히 보면 천지대안도라는 글씨가 써 있고 외벽에는 알 수 없는 문향이 그려져 있어 처음에는 유교재단에서 지은 건물로 알고 있었는데 금암동에 별도의 유교본부건물이 있어 궁금증이 더해 갔었다.

그런데 후에 알고 보니 천지대안도라는 종교단체였던 것이다.
내가 볼 때 수운의 후천세계와 일맥 통하는 것 같은데 제주도와 인연이 있는 종교라 제주도에 교인이 많으며, 가정의례는 지극히 간소하고 윤리도덕에 따라 행하고 있다.

이곳 분들은 생식을 즐겨하시는 고로 이곳의 종단을 실제 이끌고 계시는 ‘최재화’ 회장을 뵐 때마다 그 옹골 한 자세가 신선 같은 느낌이 들 곤 한다.
계룡대가 들어서기 전에는 숫용추 주변에 상당한 규모의 성전도 있었다고 한다.

이 곳 천지대안도 뒤의 정상 능선 바로 아래가 그 유명한 ‘도깨비 터’이다.

도깨비 터에 들어선 건물은 대부분 종교 관련 건물들이다.
두마면 엄사리 음절마을, 도깨비 터로 알려진 이곳에는 종교 관련 건물들이 유난히 많아 그러한 풍수의 기본개념에 충실한 땅이 아닐까 여기는 이들이 많다.
‘엄사(奄寺)’란 행정구역명 또한 바로 이 ‘음절’을 한자로 바꾼 것이다.

음절은 도대체 무슨 이유로 도깨비 터로 알려지게 됐을까?

이 마을에서 대대로 살아오면서 13년째 이장을 맡아온 이효택 씨에 따르면 원래 이곳은 130여 가구가 모여 사는 농촌마을이었다.
그 이전에는 이곳에 음절이란 큰 절이 있었다는데, 언제 생겨서 언제 망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인근에 계룡대(삼군본부)가 들어서면서 이곳 음절마을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언제부턴가 마을에 교회가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이씨는 “집 다섯 채 지으면 그 가운데 하나는 교회가 되더니 지금은 교회가 족히 100개는 된다 ”고 말했다.
교회뿐만 아니다.

마을에는 종단이 서로 다른 절들, 요가원, 점집,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신흥종교 건물들이 혼재하고 있다.
지금까지도 외지인들이 와서 주민들에게 집터를 팔라고 졸라대는데, 대개는 절이나 교회를 짓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들 건물의 유형도 다양하다.
우람한 고층건물을 자랑하는 교회, 시멘트로 지은 사찰, 슬레이트 지붕이 얹힌 건물이 이색적인 민족종교 사원, 일반 주택에 온갖 부적으로 도배해놓은 점집…. 일요일이면 더욱 볼 만하다.
찬송가, 목탁, 염불, 주문 소리들이 아우러져 그야말로 도깨비들 잔칫날 같다.

조용하던 시골마을이 왜 이렇게 변해가는 것일까?
원래 도깨비 터였는데 이제야 그 땅이 제대로 쓰이는 것일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옛날에 이 마을에 있었다는 ‘음절’이란 큰 절이 망한 것만 보아도 이곳 터가 절터로서 적합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일반 주택에 차려진 점집. 그러나 까닭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계룡대가 들어서면서 그 인근에 있던 많은 종교 건물들이 밀려날 수밖에 없었고, 그들이 도깨비 터로 알려진 이곳에 대체지로 선택한 듯하다”                     
(김두규저 복을 부르는 풍수기행 중에서)

그런데 여기 도깨비 터에 한옥 집 한 채가 당당이 자리를 잡고 있다.

같이 간 한상교 선생은 이 일대에서 이 지점이 땅의 기운이 제일 강하게 느껴진다고 하는데 독특하게도 대문입구에는 윤리연구원(倫理硏究院)이라는 현판을 걸어 놓고 건물초입에는 계룡정사(鷄龍精舍)라고 쓰여 있다.
 
사라져가는 국혼과 민족 얼을 고취시키며 무너진 윤리관을 재조명하기 위하여 성재(誠齋) 봉기종(奉奇鍾)선생께서 1970년 윤리연구원을 창립하고, 한학과 윤리, 동양철학을 가르치고, 인재를 규합하여 인격도야와 덕성함양을 하고 계신다. 현재 삼백여 명의 한의사와 백여 명의 교수를 배출하여 각계에서 활동 중이다. 연구원 활동인원은 전국 약 1000명에 이른다고 한다. 15년 전부터는 현재의 계룡시 두마면 연구원에서 학생들과 함께 기거하며, 군 장교들과 한의사, 인근 대학의 교수 등을 상대로 한학과 윤리, 동양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만나 뵈오니 처음부터 무릎을 끊고 앉아 손님을 대하는 것이 꿋꿋한 선비의 자세가 보이신다.
봉기종 선생은 돌아가신 어머니께 3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저녁으로 상을 차려 올렸고 문안인사도 드린 분으로 고령에도 불구하고 요즘 보기 드문 시묘(侍墓·부모 거상 중 그 무덤 옆에서 막을 짓고 3년간 사는 일) 생활을 해온 분이다.

봉기종 선생은 “나 스스로는 결코 효자가 아니지만, ‘세상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본보기를 보여 달라’는 주변의 권고를 받아들여 시묘생활을 하게 됐다”며 “앞으로도 인의예지의 본성에 바탕을 둔 인본주의 사상을 제창하고 널리 펴는 데 남은 생을 바칠 생각”이라고 말했다.

여기를 지나 능선을 타고 가다보면 웰빙 열풍으로 계룡웰빙타운 찜질방이 나온다.
예전에는 여기에 약수암이 있었고 물이 참 좋아 많은 분들이 건강을 위해 마셨다고 한다.

   
 
  ▲ [약수암] 국사봉 맨재골 최상단에 있으며, 약수암의 샘은 연산ㆍ논산천의 발원지이다.  
 
여기서 능선을 타고 국사봉에 오르게 되는데 국사봉 등산로는 이쪽 방향이 오르기가 편하지만 우리가 찾아가는 향적산방은 우회해야 하는 관계로 지금은 엄사중학교 옆으로 큰 길이 시원하게 뚫려있으니 이 길을 통하여 가면 다소 편하다.

신도 안 일대에는 아직도 이러한 다양한 종교단체와 학문들을 연구하는 기관들이 아직도 건재하고 있다.

그러한 종교나 학문 연구하는 분들이 가지고 있는 좋은 정신을 밖으로 들어내도록 유도해주고 각 종교나 학문 연구하는 분들이 가지고 있는 좋은 가르침을 널리 알릴 수만 있다면 황폐화 되어 가는 우리 심성에 차분한 한줄기 영양제가 되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신도 안 땅은 특정의 종교인의 땅도 아니요 본래 다양한 종교와 학문이 잉태되어 태어나고 성장하며 그 중에는 커다랗게 성장하기도 하며 때로는 소멸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배양하는 지역이 아닌가?

더욱 이들을 양성화시켜 국민의 영성을 키우고 마음을 다스리는 수련장으로서, 때로는 민속과 종교 그리고 문화가 어울릴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배가 된다면 세계적인 ‘종교자생지’라는 문화콘텐츠로 좋은 호재를 가지고 있는 계룡시가 되지 않을 까 생각해본다.

부남리나 남선리 일대의 부지를 계룡시에서 매입해서, 물론 예산이 수반되는 거라 시일을 요하지만 계룡대 설치를 위한 6·20사업 이전에 이곳에 존재하다 철거된 각종 종교 단체들을 다시 모아 ‘종교촌’을 형성한다면 종교체험과 선인들의 종교생활의 경험과 지혜를 다시 볼 수 있는 멋진 장소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치단체들은 없는 축제도 만들어서 쓸데없는 예산낭비를 하고 있지만 그 중에는 성공하는 축제도 많이 있는 반면, 이러한 종교타운을 형성하고 종교페스티발을 해본다면 종교인의 화합의 장소이자 우리 모두가 마음을 여는 장소로 최선의 움막 터가 될 수도 있다고 보여 진다.

이러한 종교 센터가 논산시 상월에 건설된다면 계룡은 기회를 놓치고 또 하나의 영적 메커니즘을 잃어버리게 될까 안타깝다.
좋은 의료시설과 종교 촌이 형성된다면 그야말로 살기 좋은 이상향의 신도  안이 건설 될 수 있다고 보여 지는데 우리 모두가 분발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상록도시는 이러한 영성을 다스리고 좋은 의료시설을 갖춤으로써 더 빛나는 것이 아닐까?

자연을 보호하는 것도 우리가 해야 할 최선이지만 왠지 허공에 떠드는 메아리 같기만 하니, 하기야 대전시는 시를 상징하는 마크로 ‘It's Daejeon’이라고 알리는 것 같은데 뭔 소리인지, 상록도시는 그것보다는 뚜렷해 보이기는 하는데, 글쎄?
너무 공허한 트레이드마크들 같다.

신도 안에 사는 것만으로도 축복받은 인생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진실 된 의지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그런지 엄사리 도깨비 터에는 하루가 다르게 각종 종교단체들이 들어서는 모습을 볼 때마다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 [국사봉 안내도] 맨재골 소류지에 설치되어 있는 안내도  
 

   
 
  ▲ [향적산 등산안내도 간판] 최근의 간판모습이다.  
 

사람이 다니는 인도가 없기 때문에 조심해서 엄사중학교 옆길을 따라 철길  옆으로 계속 내려가면서 멀리 바라보면 향적봉이 보인다.

언젠가는 이곳 철길 건너 야산도 벌목되고 깎여서 커다란 아파트 숲으로 덮여 많은 사람들이 분주히 살아갈 것이지만 결국 옛날의 마음의 고향은 점차 잊혀 가지 않겠는가?

   
 
  ▲ 국사봉의 시발점이 되는 향적산묵집  
 
향적산방에 오르기 전 좌측 철길다리 아래로 동구나무가 푸르르 게 자라고 있는데 그 앞에 향적산 묵 집이 보인다. 이 집은 옻닭이 별미라 동동주 한잔을 걸치면 그 짜릿함에 온몸이 울부짖는다.
집터도 괜찮아 류보선 시의원도 나왔으니 터의 값은 했을 것 같다.

   
 
  ▲ [오행비와 천지창운비] 국사봉 정상에 세워져 있다. 한반도가 1천년 이상 동방예의지국으로 이루어지도록 하는 단군 성조의 뜻이 적혀 있어 무속인들의 기도하는 장소로 사용된다.

http://www.gi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470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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