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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5.15 암용추와 숫용추-계룡산이 감추어 놓고 싶은 신비


암용추와 숫용추

계룡산에는 4곳에 계곡물이 모이는 커다란 웅덩이가 있어 서용추, 동용추, 남용추, 북용추로 불리었다고 한다. 서용추와 동용추는 현재의 숫용추와 암용추로 불리고, 남용추는 떨어져 나가 있고, 북용추는 갑사 쪽에 있다고 한다.

 

 
 
  ▲ [암용추] 직경 12m, 깊이 2.5m의 맑은 연못이다.  
 
   
 
  ▲ 최근의 암용추 모습  
 
삼신당을 보고 하산 중에  암용추를 지나면서 그냥 지나 갈 수가 없어 잠시 들러보기로 했다.
암용추는 여의주라 지금의 삼신당이 있는 성도봉이 황룡이고 제석사의 용구추가 청룡이라 암용추를 놓고서 쟁주(爭珠)를 벌이는 형태라고 한다.

이곳 웅덩이 석벽에는 경술국치 후 나라 잃은 망국의 한을 품은 12분들이 석벽위에 본인의 호와 이름을 새겨서 백절불굴하는 단결심을 표시하여두었다.
일러  ‘용산12일민회(龍山十二逸民會)’!
이분들은 의연금을 모으고 한국독립청원서를 작성하기도 하는 애국운동을 하여 국가로부터 독립운동의 포상을 받았다.

이런 것은 보면 이 일대가 평소에 민족정신을 고양하다 나라가 위난에 빠질  때는 뜻있는 독립운동의 중심지가 되곤 하니 살아 있는 계룡산의 정신세계에 거듭 감사할 뿐이다.

날씨가 덥고 웅덩이 위쪽 용산12일민회 석각을 찾아본다는 핑계로 잠시 옷을 ‘홀라당’ 벗고 암용추로 들어갔는데 시원하면서 짜릿한 물맛 때문인지 나오기가 싫어졌다.
계룡산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알면 난리 나고 경 칠일이지만, 온몸이 근질거려  이곳에서 잠시 육체와의 향연(?)이 있었으니 온몸을 세척하고 뿌듯한 기분이 되었다.
웅덩이 깊이가 한길반이 넘는데 같이 간 박희덕은 수영이 프로급인지라  암용추 속으로 연신 들어갔다 나왔다 한다.

물밑으로 들어갈 때 마다 한웅 큼의 돌을 집어가지고 나오는데, 먼 다른 생각이 있어 그러는지, 다시 한 번 찾아갔을 때는 이전에 저지른 업보를 받았는지 위험한 상황에 이르기까지 했었다.

이 계곡에는 기도하면 소원성취를 할 수 있다 하여 길지로 여겨져 오고 있다.
1920년경 3·4월이면 이곳에서 서식하는 올챙이를 복용하면 만병통치효과가 있다고 하여 올챙이를 잡으러 몰려드는 인파가 수천 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이곳 암용추는 건너편 산봉우리에서 쳐다보면 우리가 가끔 인터넷에서 보는  여성의 거시기와 거시기를 빼어 닮았다고 하는 곳이지만,  이곳은 굉장히 신성스러운 곳으로 여겨지는 곳인지라 이런 표현이 가당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지만 사실이다.

이 계곡은 군부대에 속해있고 계룡산 국립공원의 통제지역인지라 보전이 잘되고 있지만 정말 한번 가보면 하는 멋진 장소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절경이 있나 싶을 정도의 일품이다.
하기야 개방되면 그것으로 이 계곡은 ‘사망’이다. 

   
 

  ▲ [용란(龍卵)] 계룡건설 이인구회장이 암용추와 숫용추에서 꺼냈다는 용의 알. 왼쪽이 암용추 용란, 오른쪽이 숫용추 용란  
 
계룡건설의 이인구회장은 이곳 암용추와 숫용추에서 나온 공룡 알 같은 수석인 ‘용의 알’, 즉 용란(龍卵) 두 점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사진으로 보니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별걸 다 지니고 있는 이 수석이 복을 부르는 돌인 것 같다. 개태사에 있는 용란도 여기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싶다.

나도 이 암용추 밑바닥에서 나온 메추리알 크기의 돌멩이를 산신의 허락도 없이 슬쩍 해 왔는데 금암동에 있는 궁중갈비식당의 ‘이정호’ 사장에게 보여줬다가 압수당하고 돌려주지를 않고 있다.

그 뿐 아니라 이 분은 계룡대 안에 살고 있는 흰 사슴 두 마리를 찍은 사진을 남모과장님으로부터 본인이 선물 받아 보관하고 있는데 이것도 압수하려고 하는 분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곳 식당은 정말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으니 지금은 웃을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곤 하는데 정말 복이 들어오는 돌멩이 일까?
이정호사장의 음식조리는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솜씨이다.

   
 
  ▲ 10m 길이의 폭포가 일품인 숫용추. 위에서 본 모양은 남자의 생식기 모습을 하고 있다.  
 
 

 
 
  ▲ 최근의 숫용추 모습  
 
암용추와 숫용추는 이런 여유로 성숭배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었고 아들을 낳고 싶으면 숫용추에서 계룡 산신에게 기도를 드렸고 딸을 원하는 부부는 암용추에서 푸닥거리를 일삼았다.
자연히 암용추는 남자들이 들끓었고 여자들도 북새통을 이뤘다.
이곳에 멀지 않은 장소에 숫용추가 있는데 이곳이 암용추와 자웅을 이루고 있다.

여기에도 전설이 없을 리 없지 않은가?

   
 
  ▲ 암용추 숫용추의 전설  
 
‘옛날 계룡산 땅속에 암용과 숫용 두 마리가 사이좋게 살고 있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들은 때가 되면 하늘로 올라갈 것을 기대하면서 즐겁게 살아가고 있었다. 두 용은 계룡산 밑을 파서 산의 물을 금강으로 흐르게 하였고, 땅속으로는 신도 안에서 갑사·동학사·마곡사 쪽으로 어디든지 다니면서 행복하게 살았다.

명산의 정기를 받아서인지 참으로 깨끗한 용들이었고 항상 하늘에 올라갈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당시 땅위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이무기들은 추잡하게 살면서 그들도 하늘의 부름을 기다렸다.
용들은 그런 이무기들을 가소롭게 여겨 추잡한 행동을 보지 않으려고 몸을 땅위에 전혀 나타내지 않은 채 굴속과 물속에서만 지냈다.

용들은 몹시 비가 내릴 때나 천둥이 칠 때 혹시 하늘에서 자기들을 부르지나 않을까하고 굴속에서 눈을 내놓고 하늘을 바라봤다.
하루는 몹시 비가 내리는데 밖을 내다보는 것을 잊고 땅속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때 하늘에서 용들을 불렀지만 대답이 없어 더 큰 목소리로 부르자, 그때서야 알아듣고 굴속에서 밖을 내다보았다.

“대체 너희들은 하늘의 부름을 거역하려는 것이냐?”, “너희들은 항상 땅에서만 살려느냐? ”하고 하늘에서 추상같은 호령이 떨어졌다. 용들은“잘못했습니다. 한번만 용서해주십시오.”하고 빌면서 애원했다.

그러자 “땅의 껍질을 벗겨라. 그리고 언제든지 하늘에 올라올 수 있도록 준비를 해놓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너희들의 정(情)이 너무 지나치니 따로 따로 자리를 정해 다시는 만나지 마라.”하는 소리가 하늘에서 들려오더니 날씨가 잠잠해졌다.

그들은 헤어지기가 아쉬웠지만 하늘의 뜻을 거역할 수 없어 작별을 고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서로 하늘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제각기 장소를 정해 땅을 파기 시작했다.

암용은 물이 꼬불꼬불 흘러내리다가 맑은 소(沼)를 이루는 장소를 택해 땅을 파기 시작했다.
숫용은 계룡산의 정기가 흐르듯 맑은 물이 흐르다가 폭포를 이루는 아래쪽 계곡에 자리를 잡고 땅을 파들어 갔다. 이제는 하늘에 올라갈 준비가 거의 다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천둥 번개와 함께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용들은 이제는 하늘로 올라갈 수 있는가보다 생각하며 못에서 살그머니 머리를 내미니 하늘에서 “때가 되었으니 어서 올라오너라. ”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 후 두 마리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본 이곳 사람들은 암용이 하늘로 올라간 자리를 암용추, 숫용이 올라간 자리를 숫용추로 불렀다. 또한 암용추와 숫용추는 옛날에는 땅속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어 두용이 땅속을 통해 서로 만났다고도 전해진다.

실제로 암용추와 숫용추는 직선거리로 약 1km 정도 떨어져 있지만 계룡산 정상에서 보면 같은 능선 상에 있다. 또 두 용추는 수심이 4-5m정도 이며 이곳을 제외하고는 계룡산 어느 바위에도 이런 웅덩이가 없다.“
(계룡시청  민속문화·전설 중에서)
 
숫용추에는 청남대의 대통령별장이 없어지고 새로운 대통령별장이 이곳에 지어져 있으며 여름에는 군관계자의 휴식처로 개방되고 있다.

노무현대통령께서도 여기에 자주 오시는 것 같다.

한번은 계룡역 앞에 라이온스 ‘한태철’회장이 운영하는 풍년식당에서 맛있는 순대국 식사를 하고 있는데 대통령이 오신다고해서 보니 KTX열차가 역에 들어서고 멈추는데 노무현대통령께서 내리시는 게 아닌가?

이곳에서 대통령을 보니 좀 당황스러웠는데 주위사람들은 “뭐 평소에도 자주 보는데요. 뭘”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한다. 주위를 보니 경비도 별로 없고 참 세상이 많이 변하기는 했구나 하면서 나도 호들갑을 떨었다가는 괜히 이상하게 보일까봐 조용히 식사를 마친 적이 있었다.

결국 시대가 바뀌어도 이곳은 왕이 자주 찾는 터임을 새삼스럽게 느끼면서 이러한 터에서 마음껏 활보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뿌듯해졌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명산은 계룡(鷄龍)이요, 주(州) 동쪽에 있다. 삼국사(三國史)에 이르기를, 신라가 5악(岳)을 만드는데, 계룡을 서악(西岳)으로 삼아서 중사(中祀)에 실었다고 하였다. 본조에서는 소사(小祀)로 하고, 봄·가을마다 향·축(香祝)을 내리어 제사를 지낸다. 아래 산허리에 작은 못이 있는데, 잠연(潛淵)이라 한다.
아가리는 작고 안은 넓어서, 그 깊이를 알 수 없으며, 사람이 나무나 돌로 메우면, 그 이튿날 나무와 돌이 모두 밖으로 나온다. 땅속에 용신(龍神)이 있어서 구름 기운을 타고 드나든다 하여 가뭄을 만나 비를 빌면 반드시 영험이 있다”

   
 
  ▲ 숫용추 계곡 인근에서 공사를 하면서 숫용추를 비롯한 계곡이 바위 등으로 인해 훼손되자 주민들이 원상회복을 기원하는 기도를 하고 있다.  
 
이 기록과 같이 이곳에 도로를 내면서 숫용추가 깨어진 돌로 덮였는데 어느  날 비가 내리더니 수북이 쌓여있던 돌들이 다 쓸려내려 가고 없었다고 하는데 여러 사람이 목격했던 진술기록이 지금도 남아있다.

숫용추는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과 웅덩이가 남자의 거시기를 꼭 닮았다.
카메라 감상방법은 암용추는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봐야 하고, 숫용추는 폭포위로 올라가서 내려다보면 거시기가 분명하게 드러나니 좀 우습지만 사실인 것을 어찌하랴.

삼신당 바로 앞에는 제석사(帝釋寺)라는 절이 있는데 이곳에도 무학 대사가 기도를 드렸다는 동굴이 있다.
이 동굴 이름은 ‘용구추(龍口湫)’라고 한다. 혼자 보기는 아까운 장소이다.
이절은 6·20사업에도 철거되지 않은 유일한 사찰이다. 

이곳 절에는 계룡산에 온 후 한 번도 이산을 떠난 적이 없다는 스님이 계신다는데 어려운 때 밥을 해먹다보면 공부할 시간이 없어서 삼시 세 때를 국수만 드셨다고 하는, 지금도 국수만 드신다는 ‘서용준’스님이 계신다는 데 인연이 안 되는지 뵙지는 못했다.
언젠가 이절은 철거되어야한다고 하는데 어찌될는지?

이 일대에 유명한 떡 보살이 있었다고 하는데 제물로 떡시루 99 개, 돼지 99마리를 바친 후 초 9,999자루를 켜놓고 제사의식을 했다고 하니 얼마나 성대했는지!
조그만 암자에 살던 떡 보살이 엄청난 제물로 의식한 것에 대해 박정희 대통령의 영부인인 육영수여사가 지원했다는 말이 나돌기도 했으니 정말 대단했다고 한다.

박정희대통령 시해 전에 육영수여사가 이곳 계룡산에서 수많은 기도를 드렸다고 하는데 최근에는 정주영씨가 대통령에 출마한다고 해서 정도령의 시대라고 들썩거렸던 적이 있고, 행정수도 천도지라고해서 난리법석을 떨던 장소여서 그런지 계룡산은 시대의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내려오는 길에 무학 대사가 창건했다는 고찰인 용화사가 있다고 하여 보았으나 지금은 흔적도 없다.
용화사는 신흥종교가 아닌 유일한 조계종 전통사찰이었다고 하는데 6·20사업  때 함께 없어지는 피해를 보았다.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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