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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5.15 왕궁 터-남겨진 흔적들


신도내 주초석의 비밀

   
 
  ▲ 신털이봉의 예전모습  
 
여기를 벗어나면 또 보아야 할 장소가 있다.
공군기상대에 가기 전 우측 도로변에 잡목으로 덮인 야트막한 야산 이 작은 봉우리가 ‘신 털이 봉’이다.

왕궁작업을 하던 인부들이 짚신에 묻은 흙을 털고 쌓인 흙들이 작은 봉우리를 이루어 신 털이 봉이라고 불리었다고 하는데 많은 사람들의 한이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아내를 기다리다 죽은 편 씨의 맺힌 한이 깃들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 지명을 보면 부남(夫南)은 한자 그대로 풀면 사나이(夫)가 남행(南行)한다는 뜻이니 사나이는 다름 아닌 씩씩한 군인들을 가리키는 것이고, 서울 쪽에서 그들이 많이 남행하여 결국 이 곳에 머물 것이란 얘기요, 정장(丁壯) 이란 지명 은 장정(壯丁)이니, 그 장정(군인)들이 올 것을 땅이름이 잘 말해 주고 있는 셈이다,

일찍부터 도곡리의 장군봉(將軍峯), 칼바위[劒岩], 깃대봉[旗峯]이라든가 남산면 남서쪽의 천호산(天護山), 북동쪽의 위왕산(衛王山), 관암산(冠岩山) 등이 모두 군인들과 관련되는 이름이다.

그 위에 지어진 계룡대 !

‘군을 구성하는 제반요소들이 때로는 화합하고, 때로는 발전적 변이를 이루어 나감으로서 큰 힘을 발휘하여 국운 번영의 주역이 될 것을 다짐하는 의미’로 주역의 8괘 원리를 적용해서 지었다는 계룡대!

이 안에 경관을 보면 정말 멋있다.
계룡산을 배경으로 하여 정말 넓은 뜰에 한 폭의 시원한 수채화와 같은 느낌을 준다.
특히 가을에 피는 단풍나무는 그 빼어남에 미치도록 잡아 뜯고 싶은 생각이 절로 난다.
여기에 잡지 않고 방목되는 관계로 여기저기 사슴까지 뛰어노는 모습을 볼 수 있으니 여기가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의 세상이라 도화경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에 근무하는 군인들은 전생에 신선들 이었나 정말 부럽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전쟁 없는 평화로움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지상낙원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지만 해야 할 일을 잊지 않는 유비무환의 자세는 흐트러져서는 안 될  듯싶다. 

   
 
  ▲ 신도내 주초석 입간판  
 
그 옆에 바로 태조가 점을 쳐서 집터를 잡은 곳이라는 왕궁 터가 있다.
이 왕궁을 짓던 터에는 많은 주춧돌과 구들장들이 널려있는데 최근에 이곳을 잘 가꾸어 놓았다.

1793년 정조 때 권감(權堪)이라는 학자가 쓴 계룡산추기(鷄龍山追記)에 보면 ‘기조 석을 운반해 놓은 것과 구혁(溝洫: 경계를 갈라 정한 구역을 표시하려고 판 도랑)을 복축(卜築:살 만한 땅을 가려서 그곳에 집이나 기타 구조물을 지음)해 놓은 것이 예전에 힘써 일한 곳이 분명하니 대저 우리 태조 강헌대왕께서 최초 점을 쳐서 새 집터를 잡은 곳이다. 객사 터며 종각 터가 또한 지금까지 내려온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후부터는 많은 주초석이 분실되었다.
국방부가 6·20사업으로 신도 안 지역을 수용한 후 여기저기 흩어진 돌을 이곳에 보아 보관하고 충남도 유형문화재 제66호로 지정하고 있다.

 
 
 
  ▲ 신도내 주초석 전경  
 
주춧돌은 많이 없어 졌지만 그래도 이만하기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옛날에는 이곳의 주초 석에 기도를 드리면 좋은 복을 준다고 하여 많은 이들이 돌을 가져가기도 하고 이곳에 치성을 들였다 고 한다. 때로는 아이를 밴 여인이 이곳에 쇠붙이를 묻으면 아들을 낳는다고 하여 많은 여인들이 이곳에 쇠붙이를 묻었다고 하고 그 쇠붙이 중 일부는 신원사를 짓는데 보태졌다고도 한다.

이곳이 정돈되기 전에 찾아갔을 때는 이곳에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구들장들이 널려있었다.
본인은 이 구들장에 주목을 하고 커다란 것 몇 점을 수집해왔다.
이것은 연구용이니 이해해주기 바라고 궁중식당사장이 알면 또 압수 당 할 테니까 잘 감추어두고 있다.

지금은 주춧돌 주변을 잘 정리해서 철책을 치고 잔디를 심어놔서 구들장은 땅 밑으로 무쳐서 볼 수 없고 깨어진 덩어리만 일부 흩어져 있다. 왜 왕궁 터에 이런 보잘 것 없다고 보여 지는 구들장들이 널려 있을까?

적어도 임금이 사실 터에 왕궁을 지을 정도면 조선에 최고급의 건축자재가 쓰이는 것이 당연한 것일 텐데..

필자는 가끔 이러한 엉뚱한 추측을 하면서 여행을 하는데, 이것도 재미를 배가시키고 여정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방법이니 이런 하찮은 것을 주시하다 보면 새로운 여행지가 만들어 지고 그래서 남이 가지 않는 여행지를 많이 찾아가고는 하는 편이다.

   
 
  ▲ 신도내 주초석  
 
이것이 무엇이기에 이곳에 널려 있었던 것일까?
이 구들장의 정체는 ‘흑운모’이다
좀 어렵지만 학문적으로 살펴보면 영어 명으로는 biotite라고 하는데, 쪼개진  면은 빛나는 광택을 가졌다.
흑운모 분포는 매우 넓고, 대표적인 계룡산일대, 금강산, 경주불국사 등이 이러한 흑운모 화강암지대 인 것이다

흑운모 석은 세종대왕 때 저술된 의학경전인 향약집성방에서는 만 가지 약재의 서열 중에 으뜸으로 쳐주었다고 한다.

운모돌비늘은 맛은 맵고 성질은 평하며 독이 없다. 몸의 피부에 군살이 생긴 것, 중풍, 추웠다 열이 났다 하는 것, 수레 나배 멀미 등을  치료로 하는데 쓴다. 또 사기를 없애고 5장을 편안하게 하며 정을 불려 주고 눈을 밝게 한다. 또한 기를 내리우고 살을 단단하게 하며 부러진 것을 이어주고 기운이 약한 것도 치료하며 이질을 멈추기도 한다. 오랫동안 먹으면 몸이 가벼워지고 몸에 윤기가 돌며 늙지 않고 오래 산다. 또 추위나 더위를 타지 않고 의지가 강해진다.

자! 이 쯤 되면 엄청난 신약이다.

예로부터 왕실이나 사대부에서만 알려진 신비의 광물로 인정되어 왔다.
인체의 실험결과 체내의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하여 혈액순환과 만성기관지염, 신경성 위염과 허리, 궤양성 대장염, 빈혈, 동맥 경화,당뇨병, 관절염, 요통 등 노인병은 물론 각종 현대병에 탁월한 효과가 있으며, 오장을 안정시키고 눈을 밝게 해주며 피부를 튼튼하게 해주는 신비의 돌로 각광받고 있으며 옛 부터 흑운모 석을 약돌 이라 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만병통치약이 아닌가?

   
 
  ▲ 신도내 주초석  
 
태조 이성계를 비롯하여 태종, 세종, 세조 같은 조선조 초기의 왕들은 온천요법에 지대한 관심을 보여 함경도 오지 길주에 있는 온천에 왕들이 온천욕을 하러 행궁(行宮) 순행한 기록이 있고, 그들 중 세종임금은 황토와 흑운모 편암(片岩)을 쌓아 만든 한증막에 각별한 관심이 있어 한증요법을 장려하였다고도 한다.

흑운모 성분이 많은 화강암의 넓은 바위돌이 한여름 작열하는 태양의 열을 받아 뜨거울 때 약간 젖은 넓은 수건을 깔고 그 위에 누워 있기만 하면 여러 가지 통증이 완화된다는 민간요법이 있는데 이것은 야외에서 하는 찜질이다.

방안에 흑운모구들장과 황토를 바르고 따뜻한 열을 가하면 구들장의 열로 방안에서  땀을 흘리면 각종 통증이 가라앉고 스트레스가 가라 는 상쾌함을 주어 그것이 인체의 본래의 자연 치유력인 면역의 힘을 기르는 원리였으니 얼마나 과학적이고 현명한 자연요법이 아니겠는가?

요즈음 유행하는  찜질방은 이러한 구들장 원리를 이용한 대표적인 온열요법이 아닌가?

그렇지만 요사이 찜질방은 겉은 시멘트로 뼈대를 잡고 중국산 천연 옥과 황토로 포장을 하고 있는 곳이 많은데 이런 것은 열을 받으면 황토와 중국산천연 옥, 시멘트로부터 해수병과 발암물질이 방사되기 때문에 건강에 오히려 위험하다. 그래서 신문지상에 찜질방에서 사망했다는 기사가 나오는데 이것과 연관이 있는 것인지...

찜질방을 지을 때는 이러한 흑운모화강암을 써서 해수병을 막고 발암물질을 제거하는 현명한 지혜가 아쉽다.
흑운모에 대한 사설이 길었지만 이것이 바로 멋진 자연요법의 건강을 유지하고 치료해주는 신비의 돌이었던 것이고 최고의 건축자재였던 것이다.

이렇게 계룡산을 선호했던 이유의 일부가 과학적으로 들어나고 있으니, 정도전은 “계룡산에 양질의 흑운모가 산출되니 그 곳을 왕도로 정하면 강군을 양병하고 백성이 건강할 수 있다”는 이유로 계룡산으로 서울을 정하자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렇다! 이 신비의 돌이 바로 계룡산천도를 하려던 보이지 않는 한 부분이었던 것이다.

양질의 흑운모화강암이 신도안의 심층을 형성하고 계룡산을 중심으로 많이 분포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신도 안이 무궁무진한 ‘흑운모화강암(黑雲母花崗岩)’ 터인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 사는 것만으로도 건강할 수밖에 없는 것은 자연의 이치 인 것이다.

사실 이곳 계룡시 신도 안은 고도가 150m에서 200m 이상이어서 탁한 공기가 모이지 않고, 신도 안 안쪽으로는 최신의 시설로 된 군 본부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청정도를 늘 유지하면서 탁한 물이 바로 하류인 대전과 논산지역으로 흘러가는 관계로 오염되지 않고, 오염될 여건이 없는 곳인지라 기침 등 잔병이 없으며, 흑운모화강암에서 나오는 강열한 기운으로 병의 회복력이 상당히 강한 지역이다.

교통도 사통팔달이고 군의 지휘본부가 있는 관계로 지역경제가 기복이 없이 늘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는 관계로 이곳에 근무하고나 살아 본 분들은 여기를 절대로 떠나지 않고 있으니 결코 서울이 부럽지 않은 도시이다. 여기서 살아보니 정감록에서 여기를 그렇게 중요시한 이유를 가슴 깊이 느끼곤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흑운모 중에서 최상의 것을 생산했던 곳은 어디일까?

찾아보니 인근의 논산시 가야곡면 왕암리에서 ‘왕암 구들장’으로 유명한 곳이 있는 것이 아닌가!

‘찬밥 두고 잠 아니 온다’고 멀지 않다면 냅다 달려가야 한다.
지나치게 계획을 세우면 계속되는 기분을 일순 깨버리기 때문에 알았으면  모조건 가는 것이 상책이다.
‘팔도를 메주 밟듯 하고 다녀야 한다.’

여정의 시작은 목적지에 찾아가는 것이 아니고 목적지에 도착해서 느긋한 마음으로 시간을 가지고 꼼 씹어 보는 그 순간, 진정한 여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는 여행을 가면 가는 시간이 늘어지고 여정의 목적지는 ‘소경 단청 보듯’ 순간 돌아보고 나오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있다.

여행계획은 여정지의 자료를 미리 준비해서 알아보고 그것과 대조해서 한 가지씩 살펴본다면 그 재미가 배가되는 여정이 될 것이다. 알고 보는 재미는 정말 삶을 풍요롭게 한다.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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