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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5.17 칠성신-우리민족은 북두칠성에서 온 외계인


칠성신

옆으로 눈길을 돌려 이제 칠성님을 쳐다보자.
이분은 칠성여래라고 불리어지는 분이다. 전형적인 탱화라 별 재미가 없다.
그렇지만 이분도 ‘짬밥’으로 따지면 산신 못지않은 분이다.

 
 
 
  ▲ 개태사 칠성탱화  
 
우리의 민족이 북두칠성별의 기운으로 이 땅에 태어났으니 우리가 외계인이라면 이별이 우리의 고향인 것이다. 이 별의 기운에 감응해서 우리민족이 태어나고 대를 이어 오고 있는 것이다.

나는 삼신당의 칠성탱화를 보고 환상적인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아무 그림도 없이 벽에 별모양으로 북극성과 북두칠성 및 주변의 별들을 배열해 놓았는데, 정말 ‘칠성신앙’이 무엇인지를 확연히 보여주는 조각인지라 이것이 진정으로 칠성각이었다는 생각에 절에 가면 부처의 모습을 한 칠성여래에 익숙해진 나로서는 정말 기분이 좋았다.

부처모습을 한 칠성신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별자리를 배열해 놓았으니 두말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이러한 칠성벽화는 장식품으로 사용해도 절묘한 느낌을 줄 것 같다.

칠성신앙이 어떠한 것이기에 절집 안에 꿋꿋이 그 모습을 이어 오고 있을까?

”우리나라 사람만큼 북두칠성에 목을 매다시피 하는 민족은 아마 없을 겁니다. 북두칠성에 대한 선조들의 관심은 말과 행동에 고스란히 드러나지요. ‘북두칠성이 앵돌아 졌네.’ ‘마음 한번 잘 먹으면 북두칠성이 굽어본다.’ 하는 옛말을 보면 북두칠성이 인간의 길흉화복을 관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러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조상들은 정화수를 떠놓고는 칠성별에 소원을 빌었고 죽어서는 칠성판에 누워야 하늘 문을 통과한다고 믿었어요. 그리고 상여가 나갈 때도 좌우로 7명씩 양두칠성과 음두칠성이 배치되었구요. 왜 우리 민족이 북두칠성에 그렇게 집착했을까요?”

유적에 나타난 북두칠성의 저자이자 한배달 역사천문학회 부회장 ‘노중평’씨의 말이다.

우리가 일제 36년의 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잃어버린 칠성 신앙을 오히려 일본이 계승해 최근 해외로 문화수출까지 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정도이니 여기서도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음력 7월7일 행하는 칠석제는 은하수 때문에 만나지 못하던 견우성과 직녀성이 까치와 까마귀가 놓아주는 오작교를 건너 1년에 딱 한 번 만나는 날로 운우의 정을 나누는 것을 축복해준다는 이러한 의미는 북두칠성과 주변의 별들과의 운행을 뜻 하는 것으로 그 만큼 칠성을 중요시 했던 것이다.

우리의 옛 할머니나 어머니들은 장독대 위에 정안수를 떠 놓고 “비나이다. 비나이다. 칠성님께 비나오니 부디 금 두꺼비 같은 아들하나 점지해 주옵소서.”라고 소원을 빌어 온 분이 북두칠성이다. 밤하늘의 북두칠성을 바라보며 출생을 기원하는 흰옷 입은 여인의 치성(致誠)은 인간의 지속을 염원하는 원초성이 담긴 것이다.

치성광여래는 북두칠성의 가장 중요한 북극성이고 큰곰자리에 있다. 큰곰은 곧 환웅이고 태양과 달의 맏아들이었다. 환웅은 삼천의 천신을 거느리고 단수가 우거진 신단에 이르렀고 신시를 열었다고 한다.

환웅은 지모신인 백호와 결혼하여 단군을 낳음으로써 개천의 시조를 탄생하였다.
북두칠성에 기원하는 것은 환웅의 강림으로 잉태를 기원하는 백호의 재현인 것이다.
우리의 칠성신앙은 그렇게 커다란 의식 없이 순수하게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칠성신앙은 고대 이래로 우리 민족만의 독특한 고유 신앙이다.
우리가 사람으로 태어나려면 이 우주에서 북두칠성의 기운을 받아서 태어나야 하고, 길흉화복은 물론 수명까지 북두칠성(北斗七星)의 칠성님이 주관하고 있다고 믿었다.

북두칠성은 우리 조상들이 믿던 삼신 상제님을 별로 나타낼 때 붙여지는 이름이었던 것이다.
칠성신앙은 신교신앙의 하나였던 것이고 아직도 건재하고 있다.
우리는 북두칠성의 자손 즉 천손민족인 것이다.
 
그래서 신랑 신부가 결혼식을 올리면서 맨 먼저 지내던 초례(醮禮)는 칠성님께 드리는 인사였고 역대 임금들이 지내던 초재(醮齋)도 칠성님께 올리는 인사와 기원이었다고 한다.

북두칠성이 있는 자미원과 북두칠성을 호위하는 28수(宿) 별자리를 본 따 조경한 독창예술품인 동시에 북두칠성 신앙과 삼신상제 신앙의 대표작품이 경복궁과 창덕궁이다.

우선 광화문 앞과 경복궁 안에 있는 해치('해태'라고도 호칭)는 자미궁(자미원을 궁궐에 비유한 표현)의 남쪽 하늘을 지키는 상서로운 동물이다. 경복궁 근정전 실내는 자미궁의 형상을 하고 있다.
내전 안의 장식 색깔은 자미원을 상징하는 검붉은 자주색, 비취색이다.
임금의 용상 뒤에 있는 일월오악도(日月五岳圖)는 용상이 해와 달의 음양과 다섯 개 산의 목화토금수 오행(五行) 즉 하늘의 칠정(七政)의 호위를 받고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한편 천장에는 용 두 마리가 각 28개의 발가락(하늘의 28수를 상징)으로 여의주(임금)를 호위하고 있다.
이와 같이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등 조선시대의 고궁은 북두칠성이 있는 하늘의 궁궐, 자미궁을 본 따 지은 대궐이었다. 이 모든 것이 한민족 고유의 칠성신앙을 바탕으로 한다.

조선시대에 명나라의 통제로 하늘의 제사권을 철저히 잃어버리고, 민간신앙으로나마 존립해오다가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한 후 나라와 민족을 지탱하던 정신적 지주였던 칠성신앙을 몰아내기 위해 칠성신앙의 대표작인 경복궁을 허물고 그 자리에 총독부를 지으면서 미신을 타파한다는 명목을 내세워 칠성신앙을 포함한 온갖 전통신앙을 탄압하여 없애 버렸다.

다행히도 총독부는 95. 8. 15. 광복 50주년을 계기로 철거되어 지금은 옛 모습대로 복구되었다.

민족정신의 정기를 바로 세운 쾌거였으나, 궁궐만 복구하였을 뿐 아직도 우리는 경복궁 조성에 간직되어 있던 진짜 의미인 ‘칠성신앙’과 ‘삼신상제 신앙’은 복구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대다수 한국인은 경복궁에 그런 의미가 있었는지 조차 잘 모르고 있으니 또 한 번 가슴을 치고 통탄할 일이다.

자미성은 북두칠성 동북쪽에 위치한 가장 강력한 기운의 별로 백두민족인 우리가 모시는 별로 천자(天子) 자리를 움직이는 별이므로 자미성의 기운을 받은 국가는 아시아의 천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위기의 순간에서도 꿋꿋이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자미성은 우리나라 곳곳을 비추고 있지만 그 기운 자체는 남쪽이 강하다.
해가 뜨는 동쪽인 함경도와 경상도에서는 권력적인 사람이, 해가 지는 서쪽인 평양과 전라도에는 문화적인 사람이 나온다. 21세기 세계의 주인은 문화다. 자미성의 천자 자리도 권력에서 문화로 변하고 있다.

문화가 꽃피는 시대, 자미성의 기운으로 태어난 백두민족의 힘으로 문화의 중심에 우리나라의 위상을 드높일 때다. (노중평저 ‘유적에 나타난 북두칠성’중에서)

북두칠성의 깃발, 결국은 그 중심에 한류(韓流)가 더 높아 질 수 밖에 없다.
가수 ‘비’의 미국공연이 어렵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우리의 한류에 두려움을 느끼는 또 다른 세력이 있음을 감지해보지만 결국 이러한 문화적인 전도를 막을 수는 없다고 보여 진다.

이제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진 문화 사업이 그 모습을 점차 들어 낼 시대가 왔고 그 중심에 ‘간방(艮方)’의 한민족’이 있다.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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