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둔산'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8.05.19 부처-이름이야 어떻든 나는 남북통일이나 기원 할 란다
  2. 2008.03.28 대둔산, 계룡산


정법궁 부처

 




 
  ▲ [정법궁 부처] 이 부처상에는 '남북통일 세계평화'라고 쓰여져 있다.  
 
가운데 불단위에는 남북통일이라고 쓰여 있는 기단위에 부처상을 모셨다.
그런데 이분이  ‘미륵불’인지 ‘아미타불’인지 모르겠다.

걸려있는 등에는 '남무(南無)'라고 쓰여 있는데 이를 보아서는 아미타불이고 기둥에는 '용화(龍華)'라고 쓰인 것을 보면 미륵불 같기도 하다.

절에 가서 부처조각상을 감상하려면 최소한의 부처에 대하여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불타에는 석가여래, 아미타불, 약사불, 비로자나불, 미륵불이 있으며, 보살에는 미륵보살, 관음보살, 대세지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지장보살이 있다. 그리고 천은 범천, 제석천, 사천왕, 인왕(금강역사), 팔부중, 비천이 있으며, 나한은 부처님 십대제자와 유마거사 등 여러 나라에서 숭앙받았던 고승들이 해당된다.

‘석가여래(釋迦如來)’는 인도 북부에 왕자로 태어나 출가 후 보리수 아래에서 크게 깨달으신 분으로 석가모니라 하고 의역한다.

이분은 인간이기 때문에, 일반 인간이 본 여래모습은 이 분 밖에 안계시다.
그러므로 다른 부처상도 이분과 같은 모습으로 그려지되 손 모양만을 다르게 표현하여 구분하고 있다.
무릎 위에 올린 오른손의 손끝이 땅을 향하고 있는 (항마촉지인) 불상이면 보통 이 분이라고 보면 된다. 
이분을 모시는 전각을 대웅전(大雄殿).대웅보전(大雄寶殿)이라 한다.

상상의 모습을 형상화하여 만든 창작품이라니 인간의 상상의 나래는 어디까지 일까?

비로자나여래(毘盧遮那如來), 이분은 전 우주 어디에나 빛을 비치는 지혜의 광명이 큰 영원한 본체인 부처로 석가여래는 지구상에 생명을 받아 태어난 그분의 분신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부처는 왼손을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 손모양(智拳印)을 하고 있으며 보통 대적광전(大寂光殿).대광명전(大光明殿). 비로전(毘盧殿). 화엄전(華嚴殿)에 모셔져 있다.

마치 홍길동이 빗자루로 분신술을 쓸 때 홍길동 자신의 몸이 비로자나여래 인 것이다.
부처상 중에 한마디로 우두머리이다.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는 광명과 자비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무한한 세계에 까지 미치고 있으며 이 광명을 받은 자는 일체의 苦(고)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또 이 부처님은 지금도 서방극락세계에 계시면서 48가지의 큰 소원을 세워 중생을 대자비에 의하여 영원의 구원을 받게 한다고 한다.

신라의 원효스님이 외친 것이 이 “나무아미타불”이니 이것을 외면 그 광명을 받을 수 있다고 왼손은 가슴에 올리고 오른손은 배에 두었으며 엄지와 중지를 맞댄 손 모습을 취하고 있다. 이 분을 모시는 전각을 무량수전(無量壽殿). 극락전(極樂殿). 미타전(彌陀殿)이라 한다.

약사여래(藥師如來)는 중생의 병을 치료하고 수명을 연장하고 재화를 소멸하고 의복, 음식 등을 만족케 하는 등 12 큰 소원을 세워 중생의 질병이나 고난을 구제하려는 부처이다.

그래서 한 손에는 약 항아리를 들고 있는 상으로 표현하나 약 항아리를 가지지 않을 때에는 명문이 없으면 약사여래인지를 분명히 가리기가 어렵다. 이 분은 약사전(藥師殿). 약광전(藥光殿)에 모셔져 있다.  

마지막으로 미륵보살이란 인도의 바라나시국의 바라문 집안에서 태어나 석가모니의 가르침으로 수도를 하고 미래에 성불하라는 전법을 받은 미래불이다. 이분은 용화전(龍華殿)에 모시고 있다.

그러니 삼불의 경우 가운데의 비로자나불상을 중심으로 왼쪽에 아미타불상, 오른쪽에 석가여래상을 배치하는 것이 기본이다. 부처상은 이정도 만 알면 감상하는데 어려움은 없다. 부처는 수만이니 이것을 이해하려면 불가에 정식 귀의하여야 할 것 같으니 이 정도로  하자.

   
 
  ▲ 기둥의 글씨중 맨 아래에 '해인조(海印造)'라고 쓰여있다.  
 
기둥에 흥미로운 글이 써 있으니, ‘...龍華(용화)... 海印造(해인조)...’라고 하여 ‘해인(海印)’을 만들었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것이 무슨 뜻일까?

해인(海印)! 무슨 말인지 그냥 지나치기에는 심심하지 않은가?

이러한 사소한 글에서 무한한 상상력을 찾고 새로이 들어나는 그 모습을 보기위해 나는 오늘도 끝없는 여정을 즐긴다.

이제 새로운 역사상 유명한 인물들을 만나보자.
역사학자 이이화씨의 부친으로도 유명하지만 그의 문하에서 대산(大産) 김석진 같은 주역의 대가가 나와 더 유명해진 사람이 있으니 그는 ‘야산(也山) 이달(李達)’이다.

모친이 문창성(文昌星)을 삼키는 꿈을 꾸고 잉태하여 열두 달 만에 탄생하니 머리꼭대기에 별모양의 점이 있었다고 한다.

경술년 한일합방 후에 통분하시어 반일독립투쟁에 몸 바치셨고 해방 후 계룡산이 앞으로 보이는 논산 수곡리 대둔산 석정암(石井菴)에 들어와 은거하며 천부경, 주역 등을 가르치며 108명의 역학자들을 길러낸 대학으로 주역의 세계에서는 전설이 된 분이다. 주역에 통달하여 일단의 제자들을 키워 학단을 이룬 사람으로 계룡산파라 불리는 비결파의 원조이다.

야산은 주역을 통해 미래에 일어날 일을 과학적으로 논리적으로 풀이한 분이며 유가정통의 의리역에 바탕을 둔 경학으로서 올바른 역 해석을 한 분으로 유명한 일화가 있다.

1948년 어느 날 하루는 노 여승이 석천암으로 와서 야산 선생님을 뵙고는 뽕나무 작대기를 드렸다.
이에 야산선생님이 그 연유를 물으니 노여승은 이렇게 대답했다.

부처님이 현몽하셔서 말씀하시기를 “뽕나무 작대기를 만들어 대둔산을 찾아가 주역을 가르치는 사람에게 갖다 주라. 하기에 이곳을 찾아왔습니다.” 하고는 떠나갔다. 그 말씀을 듣고 선생님은 우리를 불러 앉히고는, “이게 어디에 쓰이는 물건인가를 주역으로써 알겠는가.”하고 물으셨다.

전혀 무슨 뜻인지 짐작을 못하고 묵묵히 있으니까 선생님은 천지비괘(天地否卦 :하늘과 땅의 기운이 통하지 못하여 꽉 막힌 상태를 나타내는 괘)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은 망할 지경에 이른 것을 망하지 않게 미리 손을 쓰라는 것인데, 앞으로 난리가 나서 우리나라가 위태한 지경에 이르렀을 때, 나라를 우묵하고 단단한 뽕나무 밑 둥지에 붙들어 매라는 것이다. 따라서 지게가 쓰러지지 않도록 작대기로 받치듯이 우리나라가 쓰러지지 않도록 이 뽕나무 작대기로 받치라는 것이다.”

“왜 뽕나무 작대기 인가?하고 물으셨다.

우리가 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하자 말씀하시기를 “뽕나무 밑 둥지는 질기고 단단할 뿐 아니라 해가 뜨는 동쪽을 ‘부상(扶桑)’이라 하지 않느냐?

그리고 ‘또우(又)’자 셋에 ‘나무목(木)’자가 있으니 삼팔목(三八木)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하셨다.
(김석진저 스승의길 주역의 길 중에서)

야산은 땅에 놓여 진 뽕나무 지팡이를 보고 산대를 뽑아 보고 제자들을 불러 미구에 닥칠 6.25전쟁을 2년 전에 예견하고 제자와 가족들 300명을 이끌고 서해안 안면도로 이주를 하여 주역에 매진하는 동안 전쟁이나 대둔산 일대가 충남 빨치산의 본거지가 되어 환란을 치룬 것은 유명한 실화이다.

야산 이달! 정역의 김일부와 계룡산아래에서 동시대를 살면서 더불어 당대의 도인으로 알려진 인물로 후천개벽을 말하고 주역과 천부경의 해독으로 일가를 이룬 사람이다.

이때 사람들은 주역의 3대 고수를 꼽기를 이달, 김일부, 그리고 월정사의 선승 탄허였다.

고전학문을 탐구하는 학인이라면 대개 유불선 삼도(三道) 동원론(同源論)문제에 부딪치는데 유교와 도교와 불교의 3대 문(門)에서 주역에 통달한 이 세 사람의 영향으로 왜정시대를 거치면서 천박 그 자체로 곤두박질쳤던 사서육경의 한 분야인 주역이 학문과 종교와 민속학으로 편입되는 동기가 된다.

그러면 해인은 무엇이고 그것이 왜 개태사에 있게 되었는가?

해인의 인(印)은 도장으로서 전체적인 의미를 대표하는 표시이며 해인이란, 우주 간의 모든 일체법의 근원이 밝혀져 나오는 곳을 말한다. 석가모니의 팔만가지 설법은 다름 아닌 우주간의 일체제법을 여러 비유로써 설명해놓은 것이며 이 일체제법은 해인으로 다 흘러들어간다고 했다.

석가여래가 49년 동안 설법한 팔만대장경에 감추어진 가장 큰 비밀은 다름 아닌 미륵을 찾는 것이다. 이 미륵불은 인류 궁극의 목적지인 극락을 열어줄 부처이므로, 미륵이 세상에 출(出)하시는 것이야말로 불교의 가장 큰 비밀인 것이다. 미륵은 해인에서 출(出)한다는 의미이므로, 해인을 찾아야 미륵의 출세(出世)를 맞이할 수 있고, 극락세상으로 인도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팔만가지 설법 속의 큰 비밀을 간직한 팔만대장경을 소장한 사찰을 해인사(海印寺)라 하는 것이며, 바로 이 해인을 찾아야만 그 모든 비밀을 알 수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내용은 어렵지만 해인(海印)은 결국은 벼락 맞은 대추나무나 옥돌 등 기운이 좋은 물체로 만들어 글자와 도면이 새겨진 도장인 것이다.

이야기는 다시 흥선대원군으로 돌아간다.
흥선대원군 그는 자신이 정권을 잡아 왕권을 회복하겠다는 야심으로 명당자리를 구하기 위해 정만인(鄭萬人)이라는 유명한 술법사를 찾아갔다.

흥선군은 “부친의 묘를 이장하려고 하는데 좋은 곳이 없겠는가?” 하고 물었다.
정만인은 말하기를, “충청도 덕산 땅에 만대에 걸쳐 영화를 누리는 자리가 있고, 또 충청도 가야산 동쪽 덕산에 2대에 걸쳐 황제가 나올 자리가 있는데 둘 중 한 곳을 택하라”고 하였다.
 
흥선군이 “2대 황제지지를 달라”고 하자, 정만인은 요구조건이 있다고 하였다.
그것은 흥선대원군이 훗날 정권을 잡으면 자신에게 “합천 해인사(海印寺)의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에 대한 인출(引出)감독권을 달라”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정만인과 흥선대원군 사이에 밀약으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 인출  권한을 가지게 되는 정만인은 해인사에서 경판일부와 해인을 가지고 나오게 된다.

이렇게 훔쳐 나온 해인을 흥선대원군이 다시 돌려받아 능참봉으로 있는 간원(艮元) 김병소(金炳韶)선생에게 잘 보존하라 하였다고 한다.

한일합방 후 일본이 이를 알고 해인을 빼앗으려 하자 김병소는 그것을 가지고 도망을 쳐서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라는 산골짝에 숨었다.

그 후 김병소 선생은 개태사의 내력을 잘 알고 있었고 개태사에서 얼마 되지 않은 벌곡에 사신관계로 그 물건이 불가에서 나온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다시 돌려준다는 뜻에서 후천이 열린다는 개태사에 맡기게 된다. 실제로 개태사에는 해인이 존재했다고 한다.

개태사에는 김광영 보살이 있었다.

이분이 당시에 ‘화주부인’으로 불리고 있는데, 화주부인이 어느 날 야산 이달을 찾아와 “저희 절에 해인이라는 도장이 있는데, 거기에 새겨진 글을 해득하는 이가 없으니 선생님이 좀 보시고 풀이해 주십시오. 그러나 가지고 나올 수는 없는 것이니, 선생님이 직접 우리 절에 가셔서 보셔야 합니다.”라고 청하므로 이달선생이 개태사에 가서 해인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개태사를 방문한 후 야산은 제자들에게 “해인은 금도 아니고 옥도 아니며 유불선 삼도를 합한 하늘의 바른 도법이, 그 동안 인욕에 가려 감추어져 있다가 후천이 옴에 그 빛을 발한다는 뜻으로 선후천이 바뀔 때의 위태로움에서 창생을 구제하기 위한 호신부(護身符)가 바로 해인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해인에 새겨진 16자는 다음과 같다.
“성몽화령(聖夢化領) 현기범광(賢氤梵光) 교도천사(敎道天師) 구묘혁영(玖妙亦暎)”.
그 뜻은 “성인의 꿈에 화령한 현인과 범광이 하늘의 도를 가르치는 스승을 만나 옥돌의 신묘함 다시 빛나도다.”

그리고 야산은 이 해인에 쓰여 진 16글자와 예불할 때 쓰는 경문 일부를 수정 보완하여 64자의 해인경을 짓게 된다. 그리고 또 다른 해인을 제작하여 사용하다 부여 은산에 이것을 묻었다고 한다. 해인은 장차 세상이 환란에 빠질 적에 구제창생을 위한 호신부 로 쓰고자하는 도장인 것이다.

창운각 기둥에 쓰여 있는 해인은 이러한 뜻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절에 소장되어 있던 해인은 어디로 갔을까?

‘개태사(開泰寺)’

천지가 사귀어 만물이 통하는 지천태(地天泰)괘이니 개태(開泰)는 후천세계의 태를 여는 뜻이다. 그래서 일제도 조선의 기운을 일본으로 가져가기 위하여 개태사에 그들의 신궁(神宮)을 지으려 했던 것이다.

조선조 임금의 옥새도 이런 맥락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많은 옥새를 다 잃어버리고 몇 점 남지 않았다니, 문화재청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텐데.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사소하게 여기는 이러한 것이 국가의 운을 걸고 벌어지는 이면의 세계인 것이다.
우리가 소홀히 하는 우리의 중요한 정신세계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도난당하고 있지나 않는지 최소한의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내 칼도 남의 칼집에 들어가면 찾기 힘들다’고 했지 않는가?

‘사향노루배꼽 때문에 죽는다.’고 기회를 잃고 늦게 일을 하지 말고 우리 것을 찾는 데 더 늦기 전에 발 벗고 나서야 할 것이다.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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