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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6.09 黃帝內經講義 (1) 1964년 10월호


출처: http://www.handongseok.org/lecture1.htm
黃帝內經講義 (1) 1964년 10월호

韓東錫

第一編 變化原理

第一章 總論

第一節 緖論

  內經이라는 말은 黃帝時代에 그의 臣인 岐伯天師等 六臣과의 問答에 의해서 論述된 것을 蒐集記錄한 것이다. 이것을 黃帝內經이라고 하는 바 그 內容을 다시 區分하여보면 靈樞와 素問으로 區別된다.

  이제 여기에서 그 內容을 살펴보면 病理 生理 診斷 針灸 등 直接으로 人體와 關係되는 部分과 間接으로 宇宙와 關係되는 自然哲學的인 部分으로 區別된다.

  다시 말하면 宇宙의 自然現象은 그것이 비록 千態萬象이라고는 하지만 萬一 어떠한 法則으로서 이것을 測定한다고하면 그것은 바로 陰陽의 分合過程에서 생기는 五行運動에 不過한 것이라고 規定할 것이다. 이것이 所謂 自然哲學의 一分類인 象數學(五行學 或은 變化原理)과 醫學과의 區分이 되는 것이나 그러나 좀더 嚴密히 考察하여보면 醫學理論이 바로 宇宙原理를 基礎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內經이란 것은 如何한 學問인가? 하는 質問에 對하여 단 한마디로 對答한다면 그것은 '自然哲學原理'인 五行學에 依해서 人體의 生理變化를 알아내고 또 이것을 治療하는 醫學自體의 '基礎原理'라고 對答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問題되는 것은

  첫째로 宇宙運行의 自然哲學的 原理를 單純히 陰陽과 五行이라는 規範으로써 完全無缺하게 說明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問題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所謂 陰陽五行說이 지닌바 眞理性이 果然 躍如한가? 어떤가? 하는 것을 硏究하는 것이다.

  둘째 人體의 모든 組織과 그의 運動原理가 自然哲學的 宇宙原理와 同一한가? 어떤가? 하는 問題를 硏究하지 않으면 안된다. 萬一에 自然界를 說明하려는 이 陰陽五行原理에 어떠한 矛盾이 있다든가 或은 人體가 宇宙의 運動原理와는 相反되는 運動原理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면 內經은 醫學의 經典이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同時에 吾人의 硏究對象으로서도 何等의 價値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內經은 그 自體가 지닌 바 經典的인 價値와 또 哲學的인 絶對眞理가 있다고 하면 다시 말해서 人體의 病變現像을 探索하고 治療하는데 있어서 確固不動한 最高哲學으로서의 原理가 있다는 것을 認識할 수 있게 되고 또 探索에 沒頭하게 되면 醫道施術의 神化 즉 如何한 病이라도 自由로이 處理할 수 있는 實力이 생긴다고 하는 結論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目的을 實現하기 위하여서는 爲先 위에서 말한바 宇宙의 自然原理 陰陽과 五行의 運動原理부터 먼저 硏究하지 않고서는 人體의 모든 現象을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內經一書는 비록 數萬字에 達하는 尨大한 內容을 지니고 있지만 宇宙의 自然原理(즉 五行)만을 完全히 把握한다고 하면 其他의 모든 部分 즉 生理 病理 脈色 針灸 等은 講義를 들을 必要도 없이 自解自得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本講은

第一編 變化原理

  이것을 先講하여 自然哲學的 規範인 五行原理(象數學)을 納得시키는 것을 爲先으로 하고

第二編 運氣編

  을 內經本文대로 紹介함으로써 天道原理硏究의 解別明彰을 돕게 하고

第三編 疾病編

  을 넣어서 天人合一의 大本을 說明하기로 하고

第四編 針灸와 診療編

  을 넣어서 本講을 終了하도록 하는 것이 內經學의 體系上 옳지 않을까 生覺하는 바이다.

  다음은 筆者가 硏究過程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고 또 現在에 있어서나 未來에 있어서도 亦然하리라고 生覺하는 바의 書籍을 紹介하려고 하는 바이다.

  그러나 그 內容이 너무 어려워서 이것들이 內經硏究의 參考書라기 보다는 오히려 內經이 그들의 參考書라고 할만한 것이기는 하나 互相參照하면서 硏究하면 不知不識間에 理解를 促進시켜서 奈終에는 그것들이 오히려 偉大한 師表가 된다는 것을 附言하는 바이다.

  ◇ 記 ◇

  一 周易과 正易

  二 墨子의 經上下, 經說上下, 大取, 小取

  三 老子

  四 列子의 天瑞篇, 黃帝篇, 仲尼篇

  五 莊子의 天下篇(全篇을 讀破하면 더욱 可함)

  六 公孫龍子(이것은 글도 많지 않으니 꼭 읽어둘 必要가 있다. 이것을 完全納得하면 墨經을 解得할 수 있는 實力이 생긴다.)

  七 荀子의 不苟篇 解蔽篇 正名篇

  八 近思錄의 道體篇

  九 皇極經世

 

 

第二節 內經의 由來

  中國의 哲學과 醫學思想은 本來 南北으로 갈라져서 各其 相異한 方向으로 발달하였던 것이다.

  黃老學派는 南方에서 自然哲學的으로 發達되었던 것이니 이것은 黃帝의 內經, 中經, 天符經을 祖宗으로 하였고(萬歲不易之典所載) 儒敎學派는 北方을 中心으로 發達하였던 것이니 이것은 人性主義立場에서 孔子를 中心으로 發達되었던 것이다.

  却說 黃老學派의 自然哲學이란 것이 이른바 陰陽五行說이니 이것이 오늘날 말하는 象數學이요 또 變化原理이기도 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古聖들이 宇宙自然의 運行法則을 把握하므로서 거기서 宇宙와 人事 其他 모든 原理를 發明하였던 것이니 이것이 五行學의 基礎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地球 위에서 생기는 모든 原理는 宇宙運行原理와 同一하다고 規定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黃老學派의 發達은 戰國末에 秦始皇이 焚書坑儒하기 以前까지는 非常한 發達을 하므로서 儒學은 無色할 程度로 劣勢에 놓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漢代 以後 儒敎가 國敎로서 登場하기 始作하면서부터 自然哲學思想은 漸漸 轉落하게 되었던 것이다.(여기에는 政治的 社會的으로 重大한 理由가 있으나 略함)

  그렇던 것이 近來에 와서는 그 眞價가 차츰 學界에 認識되어가게 되어서 西歐哲學에 있어서 마저 이에 關心을 기울이게 되고 있는 것은 實로 多幸한 일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本論의 目的하는 바는 南北學派의 優劣이나 長短을 誹辦하려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自家誹辦에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近來에 와서 內經 思想의 基本인 五行思想에 대해서 이것이 醫學發展의 途中에 導入된 것이고 內經 本來의 思想이 아니라고 生覺하는 見解가 바로 그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不得已 여기에서 一言하려는 바이다.

  첫째로 問題되는 것은 黃帝時代에 文字가 없었거늘 어찌 그 尨大한 內容을 갖춘 內經이 完成될 수 있었겠는가? 하는 點이다. 그렇게 考察하면 內經은 分明히 後人所作이라고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筆者도 이 點에 對하여서는 頑强히 反對할 意思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春秋時代의 文體만 參考하여보아도 그 時代의 筆致와 內經의 文體와의 사이에는 相異한 點이 있어야 하겠거늘 而況 黃帝時代와 比較한다고 하면 그 差異點은 뚜렷이 달라야할 것이다.

  그러함에도 不拘하고 現存한 內經의 文體를 살펴보건대 오히려 戰國時代 以後의 文體와 彷佛한즉 內經은 黃帝時代의 所作이 아니라는 理由가 成立되는 것이다.

  생각컨대 戰國時代에 鄒衍이 五行說을 大發展시켰고 또 그 時代는 斯學의 全盛期였으니만큼 或是 鄒衍一派의 所作이 아니였든가? 生覺할 餘地는 充分히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서 醫學과 內經(즉 五行)은 別個였던 것이고 다만 五行說을 醫學의 發展途中에 導入한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妥當치 못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醫學과 五行은 同一人의 所作이 아니라는 말이 되는 것인즉 그것은 바로 內經이 同一人의 所作이 아니라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內經에서 五行精神을 除去한다고 하면 內經理論은 그의 基盤을 잃어버리게 되는 까닭이다.

  돌이켜 生覺컨대 周易의 河圖 洛書 自體가 바로 五行인데 孔子가 易에 十翼을 著述하여 周易을 完成시킬 때 河圖와 洛書를 卷頭에 싣는 것을 잊지 않았고 또 夫子가 詩書를 冊修할 때도 書傳에 洪範(箕子가 洪範에 五行說을 著述하였음)을 싣는 것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五行說은 周代 以前의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이며 또 孔子가 이것을 얼마나 重視하였던가? 하는 것도 알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墨子 老子 莊子 列子 公孫龍子 등의 自然哲學思想은 모두 五行說이 그들의 基幹을 이루고 있다는 것으로 미루어 보면 五行說은 다만 戰國時代에 와서 開花된 것뿐이고 그 源流는 멀리 黃帝時代에 있었다는 것을 넉넉히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筆者가 生覺하는 바로서는 內經을 黃帝時代의 所作이 틀림없고 다만 이것을 戰國時代에 와서 通俗化될 수 있는 程度로 發展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바이다. 뿐만 아니라 五行學은 漢醫學의 發展途中에 導入된 것이 아니고 漢醫學自體의 基本法則이라고 生覺하는 것이 妥當한 것이다.

  더욱이 이것을 가지고 曰可曰否할 生覺도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取할 態度는 다만 思惟하는 自我로서 眞理探究에 그 目的이 있기 때문에 誰何의 所作與否를 論할 것이 아니라 途中의 導入與否를 論할 것이 아니라 그가 果然 眞理이냐? 아니냐? 하는 것만 따지면 그만인 것이다.

第三節 五行의 發展

  위에서 五行이란 것은 宇宙의 造化이며 人體의 變化이며 同時에 모든 變化의 規範이라는 것을 말한 바 있다.

  萬一 그렇다면 그와 같이 重大한 五行現象은 果然 어떻게 生成하느냐? 하는 것을 硏究하여야 할 것이다.

  宇宙가 오늘날의 宇宙 다시 말하면 日月星辰과 地球가 形成되기 前에는 다만 寂寞無朕하여서 있는 듯도 하고 없는 듯도 한 形而上의 象만을 나타내고 있었던 때이므로 이것을 無極이라고 命名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無極이 漸次로 自己運動을 일으켜서 永遠한 運動을 계속하게 되니까 그 無極 가운데 混合內包되어 있던 바의 淸氣와 濁氣가 서로 갈라지기 始作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各其 同氣相求하는 性質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드디어 淸氣는 陽團을 이루고 濁氣는 陰團을 이루어서 서로 밀고 당기고 하는 運動을 始作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宇宙間에는 矛盾과 對立이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萬物이 發生하게 되었고 人間도 또한 生成하게 된 것이니 이 本源을 가리켜서 太極이라고 命名하였고 또한 太極의 運動狀態를 가리켜서 陰陽運動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宇宙의 變化는 이와 같은 引合運動만으로서는 決코 宇宙의 自然現象을 實現해낼 수는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大體로 볼 때는 陰陽運動에 不過하지만 細密히 살펴보면 陰陽運動은 다시 四介의 運動을 나타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바로 陰陽의 再分裂現象이니 즉 陰陽이 각각 自己運動과정에서 다시 陰陽으로 再分裂하여 四象이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陽中에서 갈라진 것을 陽中之陰陽이라고 하고 陰中에서 갈라진 것은 陰中之陰陽이라고 呼稱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宇宙의 陰陽運動은 本來는 陰陽 二本이던 것이 다시 分裂되어서 四象形態의 運動을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吾人의 感覺界에 나타나는 春夏秋冬 四時가 그의 代表的인 形象인 것이다. 그러므로 木은 陽中之陰, 火는 陽中之陽, 金은 陰中之陽, 水는 陰中之陰으로 區別되는 것이다.(下圖參照)

 




圖說

 (가) 右圖 左에서 右로 通한 線을 緯線이라하고 南北으로 通한 線을 經線이라고 함

 (나) 緯線以下는 用의 陰部라하고 緯線以上은 用의 陽部라고 함

 (다) 東哲은 (나)에서 말한 바 體와 用이란 述語를 重用하니 즉 本體와 作用이라는 말이다.

 (라) 東哲은 東西南北 즉 八方의 表示를 右圖와 같이함(그 理由는 講義가 前進됨에 따라서 自然히 알게 된다.

 (마) 東哲은 어떤 問題를 說明함에 있어서 大部分, 用 中心으로 說明하게 된다. 故로 여기서도 用을 主軸으로 하기 때문에 左下를 陽中之陰 左上을 陽中之陽 右上을 陰中之陽 右下를 陰中之陰이라함.

  圖에서 본 바와 같이 本來는 陰陽運動이던 것이 陽(左便用의 陽位)이 갈라져서 陽中之陽과 陽中之陰으로 갈라졌고 陰(右便用의 陰位)이 또 둘로 갈라져서 陰中之陽과 陰中之陰으로 되는 것이다. 그런즉 이와 같이 갈라져서 四介로 分割된 것을 四象 즉 木火金水라고 하는 것이다.

  위와 같이 되게 된 內容을 다시 생각하여 보면 本無極이었던 肇基가 太極으로 變함으로써 그 太極이 陰陽運動의 肇基가 되었고 陰陽運動이 다시 갈라져서 四象 즉 木火金水의 肇基가 되었다는 것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問題되는 것은 또 하나 있다. 위에서 말한 바의 四象이 그 自體만으로서는 아무런 變化도 이루어내지 못한다는 事實이다. 다시 말하면 四象의 本性은 異質的인 것들이다. 그러나 異質的인 것들은 항상 矛盾과 對立을 나타내면서 鬪爭함으로써 宇宙와 萬物의 變化를 實現하는 것이다.

  그런즉 鬪爭과 對立은 宇宙發展의 重要한 要因이다. 그렇지만 여기에 萬一 이것을 調節할 수 있는 어떠한 調和作用의 主體가 없다고 하면 宇宙와 萬物은 勿論 人體에 있어서도 이와 같은 矛盾對立의 鬪爭 때문에 모든 機能은 破滅되고 말 것이다. 그런 故로 四象의 運動이 自己運動過程에서 생기는 矛盾을 解決하기 爲해서 四象 自身이 「土」를 生하게 되는 것이다. 이 「土」야말로 矛盾을 調和시켜서 陰陽運動의 對立을 緩和시키며 따라서 五行各個의 過不足運動을 補短抑過하는 가장 重要한 것이다. 그러므로 『土+四象=五行』이란 結論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면 그 土라는 것은 무엇이며 또 五行이란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밝혀야 한다. 五行學의 硏究라는 것은 實로 여기에 있는 것이니 그것은 各論에서 이야기할 性質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論하지 않겠다. 그러나 總論에서 默過할수 없는 것은 所論한 바 五行을 生成하게 하는 것은 果然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故로 이것을 次節에 論하겠다. (次號 繼續)

 <筆者=서울 鐘路區 韓東錫漢醫院長>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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