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태사에는 '대충의전(大忠義殿)'이라 해서 관운장을 모시고 있다. 왜 관운장이 이곳에 모셔져 있을까?  
 
이 절에서 가장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자, 재미있는 것이 있으니 대충의전(大忠義殿)이라 하여 관운장을 모시다는 점이다.

이쯤 되면 절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닌 것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참 황당해 진다.
관운장이 청룡언월도를 들고 긴 수염을 쓸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처음에 이 영정을 보았을 때는 태조왕건의 영정인지 알았는데 나중에 관운장의 영정으로 알게 되었다.
무인으로서 태조왕건의 영정이 없어 대신 모시는 것인지, 아니면 6.25전쟁 등을 막기 위한 주술이었는지.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는 누구도 잘 아는 분 아닌가? 이분이 어떤 분이기에 여기에 모셔져 있을까?

관운장이 죽어서는 엄청난 신적인 위험을 떨쳤는데, 중국과 한국에서는 관운장 신명께 빌면 어떠한 원한신과 척신 등 삿된 귀신도 물러갔다 한다. 그의 대인대의를 기려 역대 왕조에서 관왕묘를 세워 관성제군(關聖帝君)으로 추앙해 왔다고 하는데, 우리 민족이 관운장을 경애하여 잘 받들어 주어 관운장이 삼보조선(三保朝鮮)한다는 말이 전해 온다.

<선조대왕 25년 어는 봄날이다. 선조대왕께서는 춘곤을 못 이겨 깊은 잠이 들었는데 비몽사몽간에 위풍이 당당한 한 장군이 적토마를 타고 청룡도를 들고 삼각수를 날리며 늠름하게 대궐 안으로 들어와서 선조대왕의 손을 잡고 말하기를, “아우님 그간 별고 없으신지? 나는 삼국시대 관우인데 우리들의 의리와 인정을 잊지는 않았겠지?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 말일세. 우리 3형제는 살아서는 합심협력하고 서로를 도왔고 특히 형님(유비)이 촉한의 왕이 되자 나(관우) 와 동생(장비)은 촉한에 충성을 바치고 마침내 순국하지 않았는가?

우리 삼형제는 한 세대가 끝나고 영혼의 세계에서도 그 의를 지켜왔는데 오랜 세월이 지난 후 형님은 명나라의 신종황제가 되고 나는 전쟁에서 인명을 너무 많이 해쳐서 인간 환생이 안 되었고 아우는 현재 조선왕이 되었지. 머지않아 동생의 나라에는 큰 병란이 일어날 텐데 아무 방비도 없이 나날이 보내는 동생이 딱해서 지금 내가 일깨워 주러 왔네. 이 난리는 표독한 왜적이 쳐들어오는 난리인데, 7~8년이나 걸릴 테니 명나라 신종황제(유비)에게 구원을 청해서 수습하도록 하게. 내가 신종황제에게 도원의 고사를 들어 간곡히 부탁할 테니 주저 말고 시행하게.”하고 선연히 사라졌다. 깨고 보니 이상한 꿈이었다.

그러나 꿈대로 임진왜란은 이어났고 선조는 명나라 신종에게 원병을 청하였다. 그 요청이 간곡해서인지 관우의 신종황제에 대한 현몽에 감동해서인지 신종황제는 이여송을 총수로 하여 5만의 군사를 파병하여 돕게 된다. 그래서 임진왜란이후에 관우의 의리를 기린다는 뜻으로 수많은 관왕묘가 이 땅에 세워지게 되었다 한다.>

관우를 기리는 사당으로 유명한 곳이 서울 종로구 숭인동에 있는 보물 142호인 ‘동묘(東廟)’가 그것이다.
관우현령의 도움으로 임란을 승리로 이끌었다 하여 명나라 신종이 현액과 비용을 보내와 우리 조정에서 두 해 만인 선조 때 완성한 것으로 왕도 참배를 했다고 한다.

동묘에 모신 관우에게 치성을 하면 효험을 본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것 같은데 예나 저나 한국인의 복달라고 비는 기복신앙은 변할 수 없는 것이다.

관운장은 키가 구척장신에 수염의 길이가 두 자로서 삼각수(三角鬚)이며, 또한 수염이 길고 아름다워 미염공(美髥公)이라는 칭호를 받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관운장은 적면(赤面)이라고 얼굴빛이 잘 익은 대추 같이 빨갛다고 해서 중조(重棗)라고 했다고 한다.

 
 
 
  ▲ 개태사에서는 관운장의 영정도 모시고 있다. 이 영정은 관운장이 청룡언월도를 들고 긴 수염을 쓸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개태사에 모셔지고 있는 관운장의 영정은 좀 바래서 인지 잘 안 보인다.
주의 깊게 살펴보면 위와 비슷한 것도 같은데 전체가 빨간색으로 그려져 있다.

관운장 영정 옆에는 갈퀴와 큰칼, 그리고 작은 칼까지 준비되어있다.

이것은 무엇 하는 도구일까?

<옛날 천하세계 임정국 대감과 지하세계 김진국 부인이 아기가 없다가 공을 들여 미모의 아기씨를 얻으니 자지맹왕 아기씨라 이름 지었다. 아기씨의 나이 15세에 이르매, 부모가 벼슬살이를 떠나게 되었다. 하늘 공사를 올라간 동안에 시주 나온 도승이 딸아이의 머리를 세 번 쓸어 임신시켰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부모가 펄펄 뛰면서 아기씨를 쫓아냈다. 아기씨는 황금 산으로 남편을 찾아갔으나 “중이 부부 살림하는 법이 없으니 불도 땅에 가 살아라.”하면서 외면한다.

할 수없이 아기씨 혼자서 불도 땅에 가서 아들 세쌍둥이를 낳게 되었으니, 9월 초여드레인 본명두, 열여드레엔 신명두, 스무여드레엔 삼명두가 각 탄생하였다.

삼명두는 ‘애비 없는 후레자식’이란 구박 속에 갖은 고생을 다한다. 그러나 워낙 총기가 있어 서당의 삼천선비들이 늘 시기하였다. 삼형제는 과거를 보아 모두 장원급제 하였으나 중의 자식인 탓으로 과거에서 낙방시키려 한다. 그러나 활쏘기에서도 삼형제가 이기자 결국 모두 장원급제를 시키고 만다. 그러나 삼천선비들이 흉계를 꾸며 모친을 삼천제석궁 깊은 곳에 가두어버린다. 집에 돌아온 삼형제는 삼천선비들의 흉계를 알고, 어머니를 찾기 위해 황금  산 도당 땅으로 아버지를 찾아 나선다.>

제주도 무당의 조상(巫祖)이 탄생하는 내력을 담은 ‘초공본풀이’는 삼명두가 삼천선비의 목을 처 버리는 데서 이야기의 끝을 맺는다.

그리하여 삼명두는 제주도 무당의 조상신격이자 3대 무구(巫具)인 ‘천문’, ‘신칼’, ‘산판’을 일컫게 된다.

여기에 '신칼'이 나온다. 관운장 옆에 있는 이것을 일부에서는 무구에 쓰이는 도구라 보기도 하지만 무속용 도구는 아니라고 본다.

우리는 왜 무속이라면 그렇게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까?

뒤로 무속인을 찾아가서는 “우리아이 대학 붙겠어요, 이번에 승진이 될까요, 차기대통령은 누가 될까요” 하면서 ‘미주알고주알’ 물어보고는 앞으로는 내가 언제 그런데 다녔냐는 듯이 안면을 바꾸는 일이 허다하지 않은가.

어차피 평범한 인간은 먼 앞날을 예견할 수는 없는 것이므로 그렇게 숨어서 호박씨 까듯이 하지 말고 정당하게 드러내놓고 그들에게 의견을 구하는 것이 떳떳하지 않은가?

조선말까지 만해도 무속이나 점치는 일은 기피대상이 되지 않았다. 선조들은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그들을 잘 활용해 온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정신적인 자산이다.

세계 어디에도 이렇게 신명이 발달된 민족이 있는가?

이제 무속을 기피하고 두려워하면서 신비화 할 필요가 없다. 그것을 밝은 양지로 끌어내어 인간생활의 고달 품을 달래주고 같이 놀아 줄 수 있는 사회의 활력소로 이용할 수는 없을까?

때로는 삶에 지친사람에게 따뜻한 대화를 하고 지친 영혼을 편안하게 해주면서 세상살이에서 부딪치는 어려움을 하나의 퍼포먼스로 들어내 줌으로서 서로간의 갈등을 해소 할 수 있는 완충제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이끌어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점에서 무속인 들이 본인의 의무가 무엇인지를 심각히 자각하는 정화운동을 펼쳐야 할 시대에 이르렀다고 보여 진다. 신의 능력을 받는 것은 갈등을 해소함으로서 해원상생의 시대를 준비하고 인간에게 희망의 새로운 메시지를 전하라고 부여된 의무를 가진 신의 대리인이 아닌가.

그런 점에서 일부에서 진행되는 '연극형태의 영가천도' 무대는 정말 신선하고 획기적인 사고의 발상이라고 보여 진다. 가슴에 억눌려온 모든 것을 풀어버리는 해원상생의 시대에 어울리는 절묘한 무대장치이다.

우리민족만이 독특하게 가지고 있는 영적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여 영성과 영혼의 진정한 진화를 이끌어주는 것이야 말로 이들이 해야 할 사명적인 의무가 아닌가. 새로운 문화의 전환기에서 이들로부터 새로운 싹이 나오기를  진심으로 기원해 본다.

금전과 인기에 야합하는 그런 자세가 아닌 새로운 시대를 미리 보고 이를 알려줌으로서, 이러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준비자로서 진정한 선도자로서의 역할을 우리는 기대해보고 그들에게 변화의 자세를 가질 수 있도록 폐쇄된 음지에서 이들을 끌어내야 하지 않을까?

그리하여 정화된 영성과 영혼을 가진 그들로 부터 새로운 시대의 문화적인 패러다임을 듣는다면 우리의 영혼과 영성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해 본다.

우리도 그들을 무시하면서 실은 그들의 능력을 이용하고 있는 파렴치한 자세에서 벗어나 단순한 '점을 치는 자'의 위치에서 아픈 삶을 어루만져주고 껴안아주면서 새로운 세계를 조언해주는 '사회병리치료사'의 위치까지  그들을 끌어 올려야 할 것이다. 

그 옆에는 이절을 중창한 김광영 보살의 사진이 안치되어 있다.

이 분에 대해서도 많은 일화가 전해오고 있는데, 1938년 조선독립을 기원하고 있다는 이유로 밀고 되어 왜경에 체포 되, 법정에서 “을유년 7월7일(1945년8월15일)왜왕이 항복하고 조국이 해방된다.” 선언하여 재판장으로부터 정신이상자로 몰려 석방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분은 윤보선대통령의 사촌 되는 ‘윤포산’을 사위로 삼아 정도령을 꿈꾸었다고도 하는데 어디까지가 진심인지 모르는 것이지만 폐허화 된 절을 이 정도까지 준비해 놓은 분이니 나름대로 상당히 훌륭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 곤 한다.

이분의 추모비가 절 입구 좌측에 있으니 한번 읽어 보기를 바란다.

http://www.gi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748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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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속의 감나무와 요사채

<전설 속의 감나무>

 
 
 
  ▲ 개태사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오른편에 나오는 전설속의 감나무. 1970년대에는 이 감나무 가지에서 엄나무가 자랐으나 지난 1995년경에 죽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최근에 다시 이름모를 넝쿨이 자라고 있다.(사진)  
 
오른쪽에 커다란 감나무가 한그루가 서있다.
그저 맹하니 서있다.

물론 가을되면 홍시도 주렁주렁 열린다.
그때는 정말 보기도 좋다.

예전에 감나무의 갈라진 가지 사이로 엄나무가 뚫고 나와 자라고 있어 매우 희귀한 일로 커다란 화제가 되었는데 몇 년 전만해도 이 엄나무가 자라고 있었고 이를 보라고 사다리도 있었으나 지금은 아무 흔적도 없으니 도깨비에게 속은 것 같다.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으니, “일제하에서 독립될 당시 주지승의 어머니인 김광영 여사가 이 절에서 수도를 하면서 매일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던 중 계시를 받았는데, 그 계시에는 감나무에서 엄나무가 자라나기 시작하면 미륵불이 출현한 것을 알라고 했다는 것이다.
 

   
 
  ▲ 전설속의 감나무 가지 사이로 자라고 있는 이름모를 넝쿨의 모습  
 
수십 년이 넘은 감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1970년대에 그 감나무의 굵은 가지 사이에서 엄나무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예전에 그 감나무에 엄나무를 접목한 사실도 없고 또한 자라나는 그 부위에 흙이 있는 것도 아닌데, 종류가 다른 두 나무가 한 뿌리에서 동시에 자라고 있어 화제가 된 것이다. 

엄나무는 1995년경에 죽었고 이 감나무 단목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고 인구에 회자되기도 했으나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사실이 없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말라 죽은 엄나무 고목이 감나무가지 사이에 거시기 만하게 불쑥 솟아 있었는데 이것을 보라고 사다리까지 비치되어 있었다.

엄나무가 감나무를 아래서 몸을 파고 들어가 감나무 윗가지 사이로 자라고 있었으니, 이런 것은 자꾸 부연해보면 엄나무가 감나무를 뚫고 들어가는 뿌리의 모습이 남녀의 성행위와 흡사하여 보는 이가 민망스러웠는데, 지금은 아쉽지만 그런 것도 없다.

불교신도 분들은 종교성지에서 웬 음란한 생각을 하느냐고 힐난할지도 모르지만 얼마 전까지 이 뿌리에서 자라던 엄나무를 태워버린 흔적이 있었던 것을 보면 피장파장이다. ‘아쉬워 엄나무 방석’이라고 어쩔 수 없이 베임을 당한 것 같다.

그런데 최근에 여기에 웬 넝쿨이 자라고 있다.
많이도 자랐다.
이것은 무슨 징조인지 궁금하다.

‘TV는 신비 속으로’에 나가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면서 조용히 미소를 머금어 본다.

상상의 자유는 무한대이니까 즐거운 마음으로 활력소를 찾는 것이 여정의 기쁨이 아니겠는가?
 
원래 나무 두 가지가 서로 휘어 감고 자라는 것을 연리목(連理木)이라 하여 우리 조상들은 이것이 상서럽고 좋은 기운을 준다고 하여 인위적으로 만들곤 하였다. 한 몸이 된 이상 수분과 영양도 함께 나누면서 그렇게 한 나무인 양 살아간다. 마치 부부가 포옹한 모습으로 보인다고 하여 옛날부터 부부의 금실을 표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감나무는 원래 동티나는 나무인지라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 엄나무가 자랐으리라 생각되지만 가을에 와서 감 서리나 해야겠다.

<깊은 뜻이 담긴 요사채>

 
 
 
  ▲ 뫼산(山)자 형태를 하고 있는 우주당의 모습  
 
옆에 새로 지어진 건물이 있다. 3동으로 지어졌다. 여기도 '3'의 형상화가 나온다. 그런데 건물이 조금 이상하다. 3동으로 된 집이 약간 튀어 나와 보이는데 설계가 잘못된 것은 아닌 것 같다.

눈을 뜨고 잘 보면 이 건물이 바로 우주당이라고 하는 건물로 ‘뫼산(山)’자 형태를 하고 있다.
사찰 종무소와 다실, 요사채 등으로 쓰이고 있는데, 일설에는 석조삼존불의 세분부처가 뫼산(山)자 형태요.

이곳의 우주당의 요사채의 3동건물이 뫼산(山)자인 바 서로 어우러져 뫼산(山)자 형태로 가람배치를 한 것이라고도 한다.

1950년 초에 뫼산(山)자 형의 우주당 건물을 음력 5월 5일까지 급히 짓게 하여 관운장을 봉안했다고 하는데, 이는 다가올 환란인 6·25전쟁을 물리치기 위해서였다고 하니 예지력이 있는 분들이 당시에는 많았던 것 같은데, 지금 건물은 그것을 다시 산뜻하게 복원해 놓았다.

요사채 한 채를 건축하는 데도 깊은 뜻이 있었으니, 역시 호국불교의 성지로서 의무를 다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나라 사랑하는 법도 항상 물질로만 하는 것임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 같다.

이것도 예지력 있는 분들의 뜻이 있어 지었을까 하는 생각이 앞서니 호국 사찰로서의 전통은 계속 되는 것 같다.

요즈음은 약간의 예지력만 생기면 전 국민을 상대로 국운이니 예언이니 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분들이 참 많다. 그렇지만 이러한 능력은 자신의 수행도구로서 삼아야 하는 것이 일차적이며, 진정으로 나라의 운명에 급격한 변화가 예지된다면 보이지 않는 처방을 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 아닐까?

세상 이치를 읽는 능력을 받은 것은 축복일수도 있지만 그만큼 커다란 의무가 부과 되는 법이 아닐는지, 국민들의 삶만 더욱 혼란스럽게 한다.

최근에 지어진 건물은 가운데 건물이 좀 더 튀어 나와야 뫼산 자 형태가 되는데 일자로 되어 있다.
바랜 옛 사진을 보면 일자 형태로 되어 있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뫼산 자 형태가 아니고 순수하게 ‘3’의 형상이 아니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면서 아무 생각 없이 지어진 건물이라고 지나치는 것들이 이렇게 커다란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일 줄을 누가 알겠는가?

‘천생팔자가 누릉밥이라’ 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은 대단케 여기지 않는 누릉밥 정도라도 여행이 무엇인가? 하찮은 것에도 의미를 달고 찾아보는 것 그것이 진정 기쁨을 누리는 여행의 백미인 것이다.

‘찰찰(察察)이 불찰(不察)이니’ 무엇에 한번 맛을 붙이면 끈덕지게 떨어지기 싫어함으로 알기에 노력하고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했지만 그 보는 재미란 것이 야릇한 춘화도를 살짝 보는 것만큼이나 짜릿한 것을 어찌하랴!

여기에 있는 그 유명한 미륵삼존불도 가운데 부처님이 키가 더 크다. 이 역시 뫼산(山)이 아닌가?
그리고 이 요사채 건물도 뫼산(山)이니, 그렇다면 쌍권총을 가진 것이 아닌가?
완전히 대칭되는 두 가지 산이 있으니 산산(山山)!

세 분이 한자리에 모셔지면 뫼산(山)자가 된다는 이치를 깨달으라는 의미이며 산(山)이 온전히 형성되어야 비로소 출(出)자가 형성되고, 출(出)자가 형성되어야 미륵삼존불이 세상에 출(出)할 수가 있다는 것인데.

뫼산(山)자로 서서 계신 미륵삼존불 중  한분은 구천상제이고 한분은 옥황상제라고 하기도 한다고 하는데 한분은 아직도 몰라 두 분만으로는 뫼산(山)자가 형성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두 분으로는 뫼산(山)자를 온전히 형성되지 못하여 출(出)자가 형성될 수가 없고, 때문에 미륵삼존불이 세상에 출(出)할 수도 없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미륵삼존불이 출(出)하기 위해서는 인세에 오신 마지막 한 분의 정체를 더 밝혀 모셔야만 된다는 이치가 개태사의 이 미륵삼존불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마지막 한 분은 누구냐’ 하는 것! 그것을 찾는 여행, 그것이 우리가 사는 인생길이 아닐까?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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