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운각 속에 모셔진 단군

팔각정을 나서 옆 건물로 가보자.
나는 여기를 ‘팥죽단지에 생쥐 달랑거리듯’ 끊임없이 드나들었다.

들어가는 입구에 정법궁(正法宮)이라 쓰인 푸른색기와의 앞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창운각(創運閣)이라고도 부른다.

위에 쓰인 이름은 어느 절에서도  들어 보지 못한 것일 뿐 아니라, 안을 힐끗 보면 야릇한 느낌까지 들 것이다. 우리나라 어디를 다녀도 이렇게 다양한 신을 모셔 놓은 데가 없다.

거기다 고려시대 국조사찰, 호국사찰의 커다란 명성을 가지고 있으니 비록 지금은 많이 쇄락했지만 이만한 절이 어디에 있겠는가? 한편의 우리 민족의 살아있는 신앙의 박물관이자 살아있는 역사 교과서가 아니겠는가.

낡고 협소하지만 겉모습 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면면히 이어오는 그 깊은 정신을 느끼기 위해 여기에 온 것이 아닌가.

이제 또 다시 먼 과거로의 여행을 해보자 .
이절의 배치 상 중심점임을 간과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기둥에 남북통일세계평화기원대도량(南北統一世界平和祈願大道場)이라는 글을 써놓은 것이 이채롭다.

개태사가 호국의 성격을 지닌 사찰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 절을 지켜온 분들이 개인의 영달만을 위한 기복을 뛰어 넘어 항상 국가를 염려 했던 분들임에 감사를 드린다.

안으로 들어가면  오른쪽부터 단군, 부처, 좌편이 관우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 창운각 속에 모셔진 단군영정. 이 그림은 조선말 유명한 '심전 안중식'(安中植, 1861~1919)이 그린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면 오른쪽에 계신 분 ‘단군상제(檀君上帝)’, 우리의 시조이신 분이다.
가까이 가서 얼굴을 흩어 보려면 먼저 향을 한대 올리고 나름대로의 의식을 한 후, 이렇게 해야 혼나지 않을 것 같으니까, 단군은 커다란 영 능력자이셨다고 한다.

자 영정에 계신 분의 눈부터 마주쳐 보자.
시선을 마주친다는 것은  중요한 것이다. 시선을 마주치는 것으로부터 새로운 역사가 일어난다.
그리고 시선을 마주치면서 좌우로 움직여 보자.

좀 놀라울 것이다.
단군할아버지가 내 눈을 응시하면서 따라다니시면서 쳐다보고 있지 않은가?
그래도 향을 한대 올렸으니 후손으로 최소한의 도리는 다했다고 보는데 마치 “너는 누구냐” 하시는 것 같다. 그래도 이 영정에 그려지신 단군할아버지는 다정다감한 눈동자를 가지셨다.

우리 회화사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18세기 초 선비 화가 공재 윤두서의자화상은 역시 시선이 가는 데로 따라온다. 형형한 눈매, 불꽃처럼 꿈틀거리는 수염, 안면의 핍진한 묘사가 압권인데 좀 으스스하다.

그런데 그 눈동자와 마주치면 귀신에게 홀린 듯 눈동자에 시선을 뗄 수 없으니, 쳐다보는 이의 눈을 통해 흉중까지 꿰뚫는 듯하다.

희여 번뜩한 눈빛은 보는 이를 그냥 놔두지 않고 파고드는데 그 안광이 얼마나 집요한지, 그림을 벗어나서도 잔상이 어른거린다. 한마디로 오싹하다. 그림이 저 정도이니 이에 반해 단군할아버지는 참 편안한 눈동자를 가지셨다.

유명한 모나리자의 눈동자도 쳐다보는 데로 시선이 따라온다.

왜 그럴까?

이렇듯 쳐다보는 각도에도 불구하고 그림속의 눈동자의 위치는 우리와 맞추어져 마치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회화는 2차원의 평면인데, 실제 공간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해 원근법을 적용해 3차원을 만든 것이다.

원근법을 이용한 풍경화가 실제 풍경처럼 보이는 것도 그림속의 눈동자가 어느 쪽에서 보든 우리와 마주쳐 마치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모두 평면 안에 가상의 입체를 그려 넣어 생긴 미술기법인 것이다.

이 그림은 조선말 유명한 ‘심전 안중식’(安中植, 1861~1919)이 그린 그림이란다. 
안중식은 오원 장승업을 사사하여 많은 영향을 받고 조선시대의 전통화단과 근대화단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 유명한 분이다.

이 영정은 한때 분실되어 사라졌다가 논산출신의 수장가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이 그림이 개태사에 있던 그림임을 알아보고 흔쾌히 돌려주었다고 하는 일화가 있다.

단군영정으로는 잘 그려진 그림으로 손꼽이며 계룡산일대는 개태사의 영정을 표준으로 많이 모시고 있다.
남한에서는 최초로 모셔진 영정으로 알려져 있다.

단군영정은 원래 1946년 음력 3월 3일 김광영 씨가 전국 8도를 상징하는 여덟 칸 창운각을 지어, 남한에서는 최초로 단군 영정을 모셨다고 하는데 그러면 창운각은 옆에 나반존자가 모셔진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원래 팔각정은 단군을 모시는 장소인 것이다.

이러한 단군영정은 지방의 크고 작은 단군성전에 모두 다 걸려 있지만 일제  시대를 거치면서 많은 수난을 당해 한결같지는 않은데 해남에는, 대종교 1대교주인 나철이 망국의 통분을 하고 순사한 황해도 구월산의 유명한  삼성사에서 모셨다는 단군영정이 있다.

단군화상은 화가인 솔거가 꿈에 단군이 꿈에 나타나시고 그 모습을 천여 장이나 그려 이웃에 돌렸다고 하는데 정부지정 단군표준영정의 모습도 다양하니...

여기서 가까이 있는 부여의 장암면 장하리 천진전의 단군영정은 국내 어느 영정보다 제작 년대나 채식, 바탕, 필선, 구도 등에서 수준이 높은 국보급영정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부여박물관에 기증되어 보존되고 있다고 하나 박물관에 확인해보니 소유주의 허락 없이는 볼 수 없다고 한다. 소유주도 모른다고 하고, 알려주지도 않는데 아쉽다. 아쉽지만, 가는 길에 그 유명한 ‘장하리 삼층석탑’의 가날 픈 몸매를 살펴보는 재미를 느껴보기 바란다.

대전 서구 정림동에는 신도 안에서 이주해온 단군성전인 단묘(檀廟)가 있어 매년 대전대학교 주최로 어천대제(御天大祭)가 해마다 열리고 있다. 신도 안에서 철거 당시 완강히 철거를 거부하여 육군본부에서 남선리에 있는 시설물 일체를 그대로 옮겨준 유일한 건물이라고 한다. 찾아가 보니 아담하게 잘 정리가 되었으나 주변정리가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단군은 누구인가?

우리의 고대사에 아직도 논쟁중이지만 이제는 그 동안의 연구나 각종 유적을 볼 때 고조선을 단군을 부인함은 억지 주장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제는 실재성을 떠나 당시의 영역, 사회, 국가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가 시작돼야 하지 않을까?

그것도 남의 땅도 내 것이라고 하는 국제사회의 냉엄한 현실을 역사에서 수차례 겪었음에도 미리대비하고 준비를 하지 않고 있다가는 겨우 한다는 것이 국사 교과서에 ‘단군조선은 있었다.’ 라는  단군의 실재성의 표현이라니, ‘가을바람에 새털’ 격인 사학자들이 들썩이는 우리나라가 불쌍하다.

치열한 민족의식과 고민하는 자세는 어디도 찾아 볼 수 없으니 단채신채호 선생이 하늘에서 통탄하고 계실 것 같다. ‘강아지에게 메주 멍석 맡긴 셈’이니 믿지 못할 사람에게 나라역사를  맡겨 불안하다.
그래도 늦었지만 국사교과서에도 단군조선을 인정하기로 했다고 하니 그나마 위안을 삼아야 할 것 같다.

차길진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지난 80년부터 구명시식을 통해 영가들을 천도하는 일을 하고, 또한 나름대로 영혼의 세계를 공부하면서 단군을 만난 것은 여러 번이다. 이것에 대해 내가 지금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단군은 실재 인물이며 강력한 정신성, 곧 뇌파를 가진 인물 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쉽게 이야기하면 그는 샤먼(무당)과 같이 뇌파의 델타 파장 영역까지를 넘나드는 굉장한 영 능력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역사를 기록한 <삼국유사>, <제왕운기>, <세종실록지리지>, <동국여지승람> 등에는 자세하게 전해지지는 않고 있다. 단지 배달민족의 건국 시조로서 환웅과 웅녀 사이에서 태어난 신화적 인물로만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내가 구명시식을 하면서 만난 단군의 모습은 도포를 입고 턱수염을 길게 기른 모습이 아니고, ‘청동 검으로 무장을 하고 갑옷과 투구를 쓴 젊은 전사’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왜 그가 젊은 전사의 모습으로 나타났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그는 실제로 신화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같이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내려온 것이 아니라 ‘만주, 시베리아 등지에서부터 들어온 선진 문명(청동기 문화)을 가지고 있었던 이민족’이었던 것이다.

구명시식에 나타난 단군은 ‘천상에서 내려온 환웅과 웅녀의 아들이 아니라, 중구 북부 만주 지방에서 먼저 청동기 문명을 발달시킨 부족의 한 명이었으며, 특히 고아시아족들이 살고 있는 한반도를 침략하는 데 앞장 선 전투부대 대장’이었던 것이다.

특히 단군 자신은 ‘태백산 신단수 아래서 환웅이 곰과 만나 아들을 낳으니 이가 단군이다’라는 대목에 대해서도 설명을 했다. 한반도 북부를 평정한 단군의 아버지, 곧 환웅의 전투부대가 토착부족, 특히 곰과 호랑이를 토템으로 숭상하던 부족들 중에 곰 부족의 한 귀족 딸을 부인으로 맞아 낳은 아들이 바로 단군 자신이라는 것이었다.

단군은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었다.

특히 ‘쑥과 마늘을 가지고 동굴에서 견디라’는 이야기는, 그 당시 단군의 어머니와 같은 지배자의 부인들은 다른 여자들과 같이 밖에 나가서 잡혼을 하지 않고 한 집에 머무르면서 지배자만을 섬기게 되어 있었던 것을 뜻한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단군 영가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나로서는 확인할 길이 없다. 또 그는 가끔 나타나 자신은 영과 육, 정신과 물질을 모두 다루는 능력이 있었다고 자랑한다.

그러나 지금 내가 생각하기에는 ‘93년 겨울 구명시식 가운데 나타났던 단군 영가가 전한 메시지를 봤을 때 이러한 말들은 사실인 것 같다.

그때 흰 도복을 입고 나타난 단군의 영혼은 나타나자마자 나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말해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이런 일하는 것으로 말하면 내가 제일’이라는 것이었다.
얼떨결에 나는 그가 시키는 대로 무릎을 꿇고 말았는데, 그는 그 당시 내가 ‘어린 시절 아버님 차일혁 총경의 죽음 이후 가졌던 영 능력을 능가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 후로 나는 현재까지 구명 의식을 행할 때마다 소위 설치고 힘이 세고 심술을 부리는 영가를 만날 때 그들이 덤비면 ‘영력으로 그들을 제압하는 기술’이 발달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요즘도 가끔 단군의 영가는 구명시식 가운데 모습을 드러내지만 그렇게 강한 메시지를 주지는 않는다.

다만 그는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하는데, 6척 거구에 살도 많이 찐 편이며 얼굴이 붉고 눈이 작은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2007년 6월 22일자 주간조선)

단군, 긴 이야기가 필요 없는 분 아닌가.

단군영전 옆에는 천부경이 놓여 있고 문화일보 이규행사장과 애국사상선양회에서 기증한 백두산천지그림도 함께하고 있다.

개태사는 이래서 재미있다.

이 절을 중창하신 분은 단군 하면 ‘이 정도는 알아야지’ 하시는 것 같다.
후손들에게 점잖이 꾸짖고 계시는 것이니, 천부경(天符經), 삼일신고(三一神誥), 366사(참전계경), 이 책은 환인, 환웅, 단군이 우리민족의 우주와 인간의 법도를 가르쳐 전래해온 세상살이 기록이다.

이러한 책들을 시간을 내서 읽어 본다면 진정한 인간의 가치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책들을 보다보면 사서삼경을 중심으로 한 유교나 도교 등이 모두 여기에서 비롯되는 느낌을 수 없이 받게 된다.

중국대륙에서는 아직껏 발견되지 않았거나 발견되었다 하더라도 미 해독된 갑골문자들이 우리의 농은유집 천부경문에 다수 발견되고 확인됨으로써 결국 갑골문자가 중국인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널리 알리게 되었다.

“일시무시일( 一始無始一)
 석삼극무진본(析三極無盡本)
 천일일지일이인일삼 (天一一地一二人一三)
 일적십거무궤화삼(一積十鉅無匱化三)
 천이삼지이삼인이삼(天二三地二三人二三)
 대삼합육생칠팔구운(大三合六生七八九運)
 삼사성환오칠일묘연(三四成環五七一妙衍)
 만왕만래용변부동본 (萬往萬來用變不動本)
 본심본태양 (本心本太陽)
 앙명인중천지일(昻明人中天地一)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
이라고 쓰여 있다.

한번 읽어 보고 나오기를 권한다.
한문이 어려운 부분이 있으니 미리 알고 가면 도움이 될 듯 싶다.

여기서 한 부분은 알고 가야 재미가 있을 것 같다.
‘석삼극무진본(析三極無盡本)’이라는 글인데 여기서도 ‘3’자가 나오니까 이 부분에 대해서 좀 알고 가야 할 것 같다.

어려운 부분이라 해석도 다양하지만 김인훈옹 이분은 민의학에 대가이신 분으로 이분이 생전에 강연하신 내용이 용어는 어려워도 재미있게 되어 있어 여기서 인용해본다.

"천부경의 석삼극무진본에 대해서 삼극론(三極論)이 여기서 나와 시작하는데,  그래 왜 이걸 우리도 알게 쓰지 않았느냐 하는 사람도 없어요.

그럼 거기에 3종류로 나눠 놓고 뭣이 나오느냐?

거 많은 3종류인데 천지인삼재지도(天地人三才之道)에 들어가 3종류는 삼생만물(三生萬物)까지 천개어자(天開於子), 지벽어축(地闢於丑), 인생어인(人生於寅). 그래 그 3종류를 내내 따져 나가면 수천억이 나와요.

거기 뭣이 있느냐?

사람은 흙에서 생긴 물체이기 때문에 황색이 제일 먼저 주인공이라. 황색이 주인공인데.
황색에서 따라서 변하는 건 토생금(土生金)의 원리로 백색이 나오기로 돼 있어.

백색은 금기(金氣)라, 황색은 토기(土氣)이고. 토색 왈 황(黃)이요, 금색 왈 백(白)인데. 그래 토생금은 자연의 원리기 때문에 백인종이 나오기로 돼 있고, 황인종은 인의(仁義)도덕이 근본이고 백인종은 의리는 있어도 그 사람들은 용맹을 세워. 그래서 무기까지 개발해, 선구자야.

그러면 금생수 하는 원리로 백색에서 변해서 흑색이 또 나와, 그럼 흑인종이라. 흑인종은 뭐이냐?

이건 힘이 있는 걸 자랑으로 여기고, 우리도 상고(上古)엔 그랬지요.
흑인종은 오늘까지 힘이 앞서는 걸 자랑으로 여긴다. 그런가 하면 또 욕심이 또 많아.
그래 강욕자 왈(强慾者曰) 흑인(黑人)이라 하는 거거든, 이런데.

이건 인간의 삼종(三種)도 사실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거.

그러면 초목(草木)의 삼종도 마찬가지라.
초목의 조상은 버들나무[버드나무]인데, 거 물에 이끼 끼는 거 있어요, 청태(靑苔)라고.

이끼 끼는 이끼, 버들이 돼요. 건 내가 눈으로 본 일도 있고, 건 사실이고, 이런데.

이치만 가지고 확실하다는 건 자연에 있어서는 사실이나 그건 과학적으론 증명자료가 돼야, 그래서 나는 본 일이 있어요. 금강산 묘향산에 오래 살았기 때문에. 그런데, 거기에 버들나무도 세 종류라, 삼형제라.

소낙비가 오는 것도 하루 세 번 오는데, 걸 삼형제라고 그러지? 이런데.

버들나무가 있고, 고 다음 번에 생긴 놈이 수양버들, 고 다음 번에 생긴 놈이 백양(白楊),

거기서 생긴 소나무가 있는데. 소나무도, 소나무에 잣나무 있고 전나무가 있다.

그럼 그 다음에 생기는 향나무가 있어. 향나무엔 참향나무가 있는데, 고 다음엔 넉 줄이 뻗는 묘향나무가 있고.  고 다음엔 노가지향나무(노간주향나무), 두향나무라고 해요. 그것도 삼형제라.

그래서 거기 쪽 가면서 삼형제에서 삼형제를 두게 되면 몇 만으로 변할 수 있어요.

그래서 복숭아도 몇 백 종류가 될 수 있고, 포도나 이런 것도 그래요.  머루까지 나가면 상당한 종류가 있어요. 그러기 때문에 이 삼극에 가게 되면 무진본(無盡本)이야. 그 근본이 끝날 수가 없어.

이래서 내가 천부경에, 왜 젊어서 머리 좋을 적에 붓을 안 드느냐?
천부경을 써 놓게 되면 세상에 글이 없어져. 어떤 경전이고 다 없어져.

천부경은 천지가 생긴 이후에 그 이상의 글이 나올 수가 없어. 만약 석삼극무진본 하나 끝나는 덴 주역 같은 책이 천 권이 넘을 거요.

내가 그걸 죄다 밝히면 천부경을, 여든하나 천부경을 다 끝내는 날이면 지구엔 글이 없어져 버려. 그래서 죽은 후에 후세에 참고자료로 전할 순 있어도 살아서 그걸 글이라고 세상에 자랑할 거리는 못돼요.

너무 좋아요, 너무 좋은데. 내가 이야기하는 건, 그게 지금 삼극론에 들어가서 무진본이기 때문에 우리의 가장 필요한 얘기가 거기 전부가 있다 이거요."

해석은 다양하지만 그 근본원리는 하나인데 그것의 해석은 각자의 몫이라 본다.
이것도 우리의 것이니 한번 알아보는 것도 그 의미가 있지 않을까?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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