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醫林落穗 1963년 6월호

韓東錫

緖論

  『誰知盤中손이 粒粒皆辛苦랴』하는 말이 있다. 이것은 古人들의 節米思想에 대한 아낌없는 述懷이다. 이러한 心境을 가진 詩人의 눈에 萬一 벼이삭 한개만 눈에 띄었다면 보다 더 感情에 찬 詩句가 또 흘러 나왔을 것이다.

  世態人情의 不勻性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다. 旬日一食도 못하여 集團自殺을 企圖하는 사람에게는 恨없이 貴重한 金粒落穗도 쌀밥이 싱거워서 못먹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발아래 흙과 함께 부서져버릴 것이 아닌가?

  이것은 우리 醫學徒들에게도 吟味할 만한 가치가 있다.

  古人의 名著나 名醫의 秘方이라면 血眼이 되어 돌아다니지만 臨床周邊에 흩어져 있는 우리 醫林의 落穗는 疏忽히 하는 傾向이 없지 않다.

  筆者는 這間 어떠한 患者를 治療하다가 落穗 한개를 發見하고 過去의 나의 學究生活이 적은데 注意를 기울일 줄 몰랐던 形式的인 惰性을 慨嘆한 적이 있다.

  그래서 筆者는 이 글을 쓰면서 또 이렇게 생각하여본다. 『萬若 三千會員들이 一人 一穗 運動을 일으킨다면 - 臨床 周邊에서 주울 수 있는 - 또한 自己自身을 充分히 가르쳤다고 생각하는 餘適들에다가 生理學的인 뼈와 病理學的인 살을 붙여서 學界에 내놓는다면 이것이 바로 생생한 臨床 敎科書가 될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하여 본다.

本論

  때는 一九六三年 四月一日 弟嫂가 나의 患者로서 忠州에서 왔다.

  全身 浮腫에다 몸을 자유로이 움직이지 못하는 -보기에도 무시무시한- 환자였다. 罹病過程을 잠간 打診하였더니 漢藥을 몇 貼 먹기만 하면 浮腫은 당장에 빠지는데 數日 內로 또 再發하곤 하더니 乃終에는 漢藥도 效果를 나타내지 못함으로 할 수 없이 忠州道立病阮에 가서 診察을 시켜보았더니 急性子宮炎과 腎臟炎이 竝發하였기 때문에 至急히 子宮 切除手術을 하지 않으면 生命이 危篤하다는 것이다.

  筆者는 以上의 事由를 들은 다음 診察하여 본즉 小腹部는 勿論 大腹까지도 堅硬如石하며 굉장한 痛證이 있어서 都是 觸診을 할 수가 없을 程度고 脈은 極히 沈伏狀態를 나타내며 또 惡寒이 恒常 나서 더욱 苦痛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異常한 것은 이러한 重態임에도 不拘하고 食事는 如前하다.

  筆者는 이 病의 本末 關係를 쉽게 찾을 수 있는 어떠한 「힌트」를 얻었다. 漢藥 몇 貼만 쓰면 浮腫이 쉽게 빠지나 곧 다시 再發한다는 事實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病源이 浮腫이 아니라는 證據다. 萬若 그 本源體가 浮腫인 것이 事實이라면 그럴 리는 없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飮食이 如前하다는데서 病이 下焦陰中에 陷入한 것이고 아직 胃氣를 犯하지는 않았다는 事實도 아울러 發見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 病은 무엇일까? 所謂洋醫가 말하는 子宮炎症이 틀림없다.

  우리들로서 이야기하면 이것은 血가證인 것이다. 그러나 아직 診斷이 끝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血가證을 다시 區分하여야 하겠기 때문이다. 血中血滯와 血中氣滯의 어느 쪽인지를 가려내지 못하면 안 된다. 그러나 患者의 病狀은 隱然中에 『나는 血中氣滯다』하고 一大暗示를 던지고 있지 않은가? 萬一 血中血滯라면 陰偏在於下 陽偏在於上하는 關係로 반드시 上焦諸疾이 오는 것이 通常인데도 不拘하고 그러한 副證이라고는 全然 없다는 事實에서 筆者는 이 病의 原因을 血中氣滯라고 斷定하고 處方을 썼다.

  물론 全身浮腫은 考慮에 넣지도 않았다. - 이 境遇 浮腫된 原因은 論外所關이므로 省略한다.

 

 

  處方은 當歸四逆湯에다가 梔子一錢을 가하였다. 三日 服用한즉 患者가 매우 氣分이 輕快해지고 浮腫이 全然 없어지고 惡寒이나 痛證도 없다. 腹診을 하여보았더니 子宮部位에 鷄卵狀의 積塊가 있어서 壓痛을 느끼는 外에는 病痕迹이라고는 全然 찾아볼 수 없을 程度다.

  그러나 十日 後 다시 診察하여본즉 十日前 診察時와 比하여 少毫의 差異點도 發見할 수 없었다. 筆者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 충격이란 十日前에 意外의 快效를 發見했을 때 보다 훨씬 그 以上이었다.

  落穗를 주운 것도 바로 今後에 속하는 일이다. 以上 所記한 事實이란 다만 다음에 올 事實을 紹介하기 위한 前奏曲인 것뿐! 어떤 意味에서 보면 時間과 紙筆의 浪費에 不過한 것이다.

  却說! 筆者는 생각하였다. 이것은 반드시 病理的 推理에 어떠한 잘못이 있다고. 그렇다면 무엇일까? 하고 推理를 거듭하여 보았으나 알 수는 없었다. 漢醫學이 아무리 親切하다고 자랑해보았댔자 이런 境遇의 說明을 찾아낼 수는 없다. 다만 理囊 속에서 끄집어낼 수밖에 없는데 元來 石頭라서 아무런 神通한 道理도 없었다.

  그러는中 우연히도 「會陰」一句가 머리에 떠올랐다. 『왜 聖人은 會陰이란 말을 使用하였을까』하고 생각하여 보는 것이다. 『아- 諸陰이 會合하는 곳이란 뜻이로구나』하고 중얼거렸다.

  이때 머리 속에 어떤 閃光이 비췄다. 腹部는 三陰所行之地인데 이 三陰이 全部 會陰穴을 거쳐서 會通하고 있지 않은가? 萬若 그렇다면 三陰 中에서 指揮役을 어느 經絡이 맡는가? 조용히 經絡分布를 考察하여 보면 오직 厥陰經이 少陰 太陰을 둘러싸고 있다는 생각이 떠오르자 患者의 腹部와 股脚間의 橫紋部의 筋을 押按하였더니 痛證을 느낀다. 그리고는 다시 계속해 생각한다. 男女의 腹部에는 竪筋이 둘러싸고 있지 않은가? 竪筋의 司令官이 厥陰經이라는 것을 아울러 考慮할 때 이 疾患의 所侵之道는 오직 肝經之咎라는 結論이 저절로 나온다. 아 一夫 金恒 先生이 二八數가 「所謂堯舜闕中之中」이라고 暗示한 卓見 앞에 머리가 저절로 수그러지는 것을 어찌하리오.

  이 순간에 筆者는 저도 모르게 羞惡之心으로 배가 가득했다. 『이러고도 人間의 健康을 責任질 수 있겠는가』라고 自問自答하는 良心的 충동 때문에 이마에서는 구슬땀이 손끝을 적시었다.

  處方은 고쳐진다. 이번에는 四逆湯에 黃連一錢에 吳茱萸三分을 加味하였다. 黃連 吳茱萸는 모다 肝經藥일 뿐 아니라 黃連으로 子宮炎證을 消炎하고 吳茱萸로 血中下陷之氣를 升擧시키려는 것이다.

  三日間 服用시킨 후 다시 診察하여 보았더니 雲捲晴天이 아닌가? 비로소 梔子一味는 上中焦의 鬱에는 名手이면서도 血中隱伏之氣鬱에는 全혀 無名之卒밖에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達醫들의 眼目으로 볼 때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을 - 아니 오히려 常識以下의 問題인 것을 筆者는 애쓰고 또 애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富者집 뜰에 흩어진 落穗는 닭들이나 주어먹는데 醫林의 落穗는 나같은 未熟漢이나 모아 넣는구나 하고 생각하면 羞恥스럽기도 하지만 反面 나도 이러한 落穗나마 많이 모으면 富者가 된다고 생각하니 愈快하기 측량없다.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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