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 년 함경남도 함주군에서 출생한 한동석 선생은 한국 사상사에 있어서 신화적인 존재다.

1. 우주변화의 원리 저자 한동석에 대하여
명리학과 한의학의 연결고리는 오행사상에 있고, 이 오행에 대한 이해를 확실히 한 인물이 한동석(韓東錫, 1911-68) 선생이다. 1911년 함경남도 함주군에서 출생한 한동석은 '우주변화의 원리'라고 하는 문제의 저서를 남겼는데, 66년에 초판이 발행된 이 책은 40년 가까이 스테디셀러로 내려오고 있다. 한의학도들의 필독서로 꼽힌다. 한의과대학 학생치고 이 책 안 본 사람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평판이 자자한 책이다. 그런가 하면 동양사상이나 명리학을 심도 있게 공부하려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 책은 반드시 읽어봐야만 하는 책으로 회자되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한동석 선생은 오행사상에 대한 창신創新을 해낸 인물이다. '우주변화의 원리'는 오행의 원리를 스스로 입에 넣고 하나씩 씹어 철저하게 맛 본 다음 쓴 책이다.

 근래에 한.중.일 3국 중 오행에 대한 이해를 오늘의 맥락에서 이처럼 확실하게 해낸 인물은 없는 것 같다. 한국에서 인물이 나왔다. 오행에 대한 역작이 바로 한국의 한동석 선생이 저술한 '우주변화의 원리'이다. 이 책은 중국이나 일본의 연구자들도 공부해야 할 명저다.

 한동석 선생이 전념한 수도修道 방법은 무엇이었는가. 방법은 독경讀經이었다. 그는 황제내경 운기편을 일만 번 가까이 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에는 3,000독을 목표로 하였으나, 3,000독을 해도 신통찮다고 여기고 다시 6,000독 9,000독에 이르렀다고 한다. 9,000독에 가니 약간 보이더라고 술회하였다. 마지막 1만 독을 채우면서 활연 관통했던 것 같다.

 선생은 이 책의 의미에 대해 대한한의학회지 광고문 중 저자의 말 중에서 "우주도 변화하고 인간도 변화한다. 그러나 인간은 이것을 살필 줄 모른다. 이 원리를 계발하여 놓았지만 인간이 그 근주根株를 파헤치기는 진실로 어렵다. 필자는 내경을 연구하는 학도와 우주의 신비를 개발하려는 후학들에게 그 안내의 역을 다하려는 심정으로 이 글을 세상에 내보려는 바이다"  라고 운을 떼고 "평이한 말과 쉬운 문장으로 엮음으로써 누구나 알 수 있게 하는 데 노력하였다"고 밝혔다.

한동석 선생은..
 선생의 본관은 청주이며 본명은 국흠國欽으로 월남 후에 동석東錫으로 개명했다. 호는 두암斗庵 혹은 동암東庵이다. 1911년 신해년辛亥年 음력 6월 5일(양력 6월 30일) 인시寅時 함경남도 함주군 하조양면(오늘날 함남 영광군 용동리 근방)에서 청주한씨 예빈윤공파 22세손으로 부친 希春과 모친 李氏 사이에서 3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20대 후반까지는 장사를 하였다. 32세 되던 1942년에 부인이 폐병으로 죽고 난 뒤에 본격적으로 한의학 공부를 시작하였다. 부인이 죽기 전에 동무 이제마 선생(사상의학의 창시자)의 이전제자二傳弟子인 김흥제 선생에게 치료를 받았는데 이것이 인연이 되어 김흥제 선생 밑에서 한의학을 배웠다고 한다. 6.25 전쟁시 1952년 부산 영도에서 진료하는 틈을 내서 동양의학 전문학원에 강사로 출강을 하였고, 1953년에는 부산 영도에서 제2회 한의사 국가고시에 응시하여 면허를 취득한 후 정식으로 개원하여 인계한의원을 운영하였다.

1956 년 서울로 올라와서 인사동 사거리에 한동석한의원을 개원하였으며, 이후 <역학원론>의 저자이며 주역에 대해서 깊이 연구한 한장경선생으로부터 주역을 배웠다. 선생은 계룡산 국사봉(정역을 찬술하신 김일부대성사께서 도통하신 곳)을 출입하면서 주역과 정역 등을 심도 있게 공부하였다.

1960 년을 전후하여 선생은 <내경> '운기편', <주역>, <본초>등에 관한 내용을 한의사, 한의과 대학생 등에게 한의원 2층에서 강의를 시작하여 몇 년간 지속하였으며, 경희대학교 한의과 대학의 전신인 동양의약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이후 전임강사로 출강하였다. 1960년대 전반기부터 <우주변화의 원리>를 집필하기 시작하여 여름만 되면 계룡산에 내려와 목욕재계를 하며 원고를 수정하여 정리하였다고 한다.

선생은 58세가 되던 1968년 자신의 태어난 날인 음력 6월 5일에 세상을 떠났는데, 병상에서 자신의 생일날 生時인 寅時를 넘기면 살 수 있다고 하였으나 이를 넘기지 못하고 서세逝世하였다.

63 년에 이미 당신 스스로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하였고 돌아기시기 한 해 전인 67년 12월 정도부터는 주위사람들에게 "내가 왜 이러지?" 하며 자신의 건강상태가 좋지 못함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자꾸만 머리가 커지는 것 같다는 말을 하고 이후에 "환한 봄날인데, 볕 좋은 봄날인데 환한 세상이 왜 이렇게 어둡냐."고 하는 등 서서히 죽음을 예감하였다.

돌아가시던 68년에는 산책을 나가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였다. 당신이 죽고 난 뒤에 가족들의 생계가 매우 어려워질 것이라 예견하였으며(선생이 죽고 난 뒤에 온 식구가 거지가 되어 거리에 나 앉을 것이라며 대성통곡을 한 적이 있었다고 하는데, 과연 선생의 임종 후 가세가 기울고 가족이 흩어지는 시련을 겪었다) 혹시라도 당신의 生日과 生時만 넘기도록 살 수 있다면 회생할 것이나 완전한 건강을 되찾으려면 2,3년이 걸릴 것이라 하였는데, 아무래도 그날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하는 등, 자신의 죽음과 관련된 여러 일들을 미리 내다보았다.

 그래서 자구책으로 자신의 생일을 넘기고 오겠노라고 계룡산으로 내려갔었으나, 꿈에 선생의 조모가 나타나 "여기가 어디라고 왔느냐, 빨리 너의 집으로 가거라!"고 소리치는 것을 보고서 그 곳이 머물러 있을 곳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황급히 서울로 돌아왔다. 돌아와서 제자들에게도 역시 갈 곳이 아니었기에 그랬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한다. 여느 때처럼 계룡산으로 갔다 하면 한달 씩 걸려야 올라오던 선생이 며칠 만에 다시 서울로 돌아와서 주위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겼는데 이때부터 건강히 급격히 악화되었다.

 자신의 生時만 넘기면 된다는 선생의 말에 한봉흠 교수(한동석 선생의 사촌동생; 전 고려대교수)가 그렇다면 양방 치료를 시도해도 되겠느냐는 질문을 했는데 선생은 그것은 결코 안 된다 하였다. 결국 고혈압, 비증, 후두암 등으로 투병을 하다가 뇌혈관발작(뇌졸중)으로 혼수상태에 빠진지 열흘도 채 안되어 자신이 태어난 날에 태어난 時를 넘기지 못하고 1968년 무신년戊申年 음력 6월 5일(양력 6월 30일) 새벽 축시丑時, 가족과 제자들의 곁에서 별세하였으니, 이 때 선생의 나이 향년 58세 였다

여기에서 주목을 끄는 부분이 있다. 한동석 선생이 이승만 대통령 이후 한국의 정권교체에 대하여 밝혀놓은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 항간에 떠도는 말에 의하면 한동석 선생은 앞일을 미리 내다보는 예언 능력이 있었다고 전한다. 한의사이면서도 앞일을 귀신 같이 아는 도인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 대표적인 예언이 한국의 정권교체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었다. 이 예언을 좀더 구체적으로 알기 위하여 한동석 선생의 사촌동생인 한봉흠(76) 박사를 서울정릉의 자택에서 만났다.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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