德堂 金洪鉉 (덕당 김홍현)

諸門人 中에서 특히 덕당은 가장 文字가 없고 열성이 대단하여 자택을 山下의 마을 음절(엄사리)에 두고 百石에 가까운 추수를 하면서 선생을 위하여 국사봉 거북바위와 용바위 사이에 삼간 초막을 경영하여 주야로 시봉하고, 사방에서 모여드는 門人 過客을 위하여 스스로 「밥主人」이 되어 이에 대한 一切의 경비를 自擔하니 주위 학인이 감복하여 호를 덕당이라 하였다. 한다. 후일 덕당이 述懷하는 가운데 「왜 나는 금전 소중한 줄을 모르겠나. 그러나 배우고 싶은 마음에, 어께 넘어라도 배우고 싶어서...」하면서 추연해 하던 일을 필자도 기억하고 있다.

덕당의 공부가 가장 高調에 달하고, 가무로 인하여 內光이 되어 눈은 감으나 뜨나 환하고, 三年을 하루 같이 잠을 자지 않아도 졸리지 않았으며 음절이 국사봉에서 呎尺사이지만 추석과 설의 명절 외에는 집에 가지 않고, 스스로 「歌舞主人」이되어 주야로 정진한 것이 바로 이 시절의 일이었다 한다. 한 번은 눈이 몹시 쌓인 어느날 새벽, 同學의 한 사람이 小便을 보러 밖에 나가다 보니 그야말로 如山大虎가 門밖에서 두 발을 번쩍 쳐들고 德堂의 詠歌소리에 맞추어 좌우로 흔들흔들 춤을 추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그 사람이 얼결에 「호랑이 춤춘다! 」고 소리를 치니 無我中에 흔들거리던 호랑이는 휙 하고 바람 같이 사라고, 덕당을 위시하여 여러 제자들이 그 소리에 놀라 밖으로 뛰어 나왔을 때는 범은 이미 자취를 감춘 뒤여서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한다.

詠歌聲에 감응하여 범이 춤을 추는 일은 필자의 경험에 依하여도 그 확실함을 證한 일이 한두번이 아니다. 아마도 百獸中에 범은 특히 영가에 銳敏하고 또 쉽사리 동화되는 동물인 것 같다. 이 시절의 덕당의 힘은 또한 대단하여 한양3백리의 서울 길을 하루에 得達한 일도 있었다 한다.

덕당은 그 頭相과 體局이 흡사 거북과 같다. 정수리에는 뒤에서 앞으로 두 고랑의 뼈와 세 줄기의 뼈가 파이고 솟아서 마치 거북의 껍질을 연상케 하고, 두 눈은 웃으면 아주 감겨서 새카만 두 점으로 되어 버리는 것이 꼭 거북의 눈 같으며, 코는 끝이 몹시 가늘고 屈曲하여 영락없이 거북의 코와 彷彿하다. 그 뿐 아니라 그 넙쭉하고 평평한 두 어께와 등, 그 두툼한 앞가슴에 억센 두 팔과 손, 모똑한 열 손가락.... 무엇하나 龜相 아닌 것이 없다.

후일 일부선생이 기력이 쇠하여 등산과 하산이 여의치 않으매 덕당이 항상 선생을 등에 업어 모시고 국사봉에서 다오개로, 다오개에서 국사봉으로 왕래하여 종신토록 측근을 떠나지 않은 사실을 생각할 때 덕당의 거북상은 과연 우연치 않은 因果인 것 같은 느낌조차 든다." 라고 덕당 김홍현을 소개합니다.

- 이정호 '정역과 일부'에서 -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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