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속의 감나무와 요사채

<전설 속의 감나무>

 
 
 
  ▲ 개태사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오른편에 나오는 전설속의 감나무. 1970년대에는 이 감나무 가지에서 엄나무가 자랐으나 지난 1995년경에 죽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최근에 다시 이름모를 넝쿨이 자라고 있다.(사진)  
 
오른쪽에 커다란 감나무가 한그루가 서있다.
그저 맹하니 서있다.

물론 가을되면 홍시도 주렁주렁 열린다.
그때는 정말 보기도 좋다.

예전에 감나무의 갈라진 가지 사이로 엄나무가 뚫고 나와 자라고 있어 매우 희귀한 일로 커다란 화제가 되었는데 몇 년 전만해도 이 엄나무가 자라고 있었고 이를 보라고 사다리도 있었으나 지금은 아무 흔적도 없으니 도깨비에게 속은 것 같다.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으니, “일제하에서 독립될 당시 주지승의 어머니인 김광영 여사가 이 절에서 수도를 하면서 매일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던 중 계시를 받았는데, 그 계시에는 감나무에서 엄나무가 자라나기 시작하면 미륵불이 출현한 것을 알라고 했다는 것이다.
 

   
 
  ▲ 전설속의 감나무 가지 사이로 자라고 있는 이름모를 넝쿨의 모습  
 
수십 년이 넘은 감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1970년대에 그 감나무의 굵은 가지 사이에서 엄나무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예전에 그 감나무에 엄나무를 접목한 사실도 없고 또한 자라나는 그 부위에 흙이 있는 것도 아닌데, 종류가 다른 두 나무가 한 뿌리에서 동시에 자라고 있어 화제가 된 것이다. 

엄나무는 1995년경에 죽었고 이 감나무 단목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고 인구에 회자되기도 했으나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사실이 없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말라 죽은 엄나무 고목이 감나무가지 사이에 거시기 만하게 불쑥 솟아 있었는데 이것을 보라고 사다리까지 비치되어 있었다.

엄나무가 감나무를 아래서 몸을 파고 들어가 감나무 윗가지 사이로 자라고 있었으니, 이런 것은 자꾸 부연해보면 엄나무가 감나무를 뚫고 들어가는 뿌리의 모습이 남녀의 성행위와 흡사하여 보는 이가 민망스러웠는데, 지금은 아쉽지만 그런 것도 없다.

불교신도 분들은 종교성지에서 웬 음란한 생각을 하느냐고 힐난할지도 모르지만 얼마 전까지 이 뿌리에서 자라던 엄나무를 태워버린 흔적이 있었던 것을 보면 피장파장이다. ‘아쉬워 엄나무 방석’이라고 어쩔 수 없이 베임을 당한 것 같다.

그런데 최근에 여기에 웬 넝쿨이 자라고 있다.
많이도 자랐다.
이것은 무슨 징조인지 궁금하다.

‘TV는 신비 속으로’에 나가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면서 조용히 미소를 머금어 본다.

상상의 자유는 무한대이니까 즐거운 마음으로 활력소를 찾는 것이 여정의 기쁨이 아니겠는가?
 
원래 나무 두 가지가 서로 휘어 감고 자라는 것을 연리목(連理木)이라 하여 우리 조상들은 이것이 상서럽고 좋은 기운을 준다고 하여 인위적으로 만들곤 하였다. 한 몸이 된 이상 수분과 영양도 함께 나누면서 그렇게 한 나무인 양 살아간다. 마치 부부가 포옹한 모습으로 보인다고 하여 옛날부터 부부의 금실을 표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감나무는 원래 동티나는 나무인지라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 엄나무가 자랐으리라 생각되지만 가을에 와서 감 서리나 해야겠다.

<깊은 뜻이 담긴 요사채>

 
 
 
  ▲ 뫼산(山)자 형태를 하고 있는 우주당의 모습  
 
옆에 새로 지어진 건물이 있다. 3동으로 지어졌다. 여기도 '3'의 형상화가 나온다. 그런데 건물이 조금 이상하다. 3동으로 된 집이 약간 튀어 나와 보이는데 설계가 잘못된 것은 아닌 것 같다.

눈을 뜨고 잘 보면 이 건물이 바로 우주당이라고 하는 건물로 ‘뫼산(山)’자 형태를 하고 있다.
사찰 종무소와 다실, 요사채 등으로 쓰이고 있는데, 일설에는 석조삼존불의 세분부처가 뫼산(山)자 형태요.

이곳의 우주당의 요사채의 3동건물이 뫼산(山)자인 바 서로 어우러져 뫼산(山)자 형태로 가람배치를 한 것이라고도 한다.

1950년 초에 뫼산(山)자 형의 우주당 건물을 음력 5월 5일까지 급히 짓게 하여 관운장을 봉안했다고 하는데, 이는 다가올 환란인 6·25전쟁을 물리치기 위해서였다고 하니 예지력이 있는 분들이 당시에는 많았던 것 같은데, 지금 건물은 그것을 다시 산뜻하게 복원해 놓았다.

요사채 한 채를 건축하는 데도 깊은 뜻이 있었으니, 역시 호국불교의 성지로서 의무를 다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나라 사랑하는 법도 항상 물질로만 하는 것임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 같다.

이것도 예지력 있는 분들의 뜻이 있어 지었을까 하는 생각이 앞서니 호국 사찰로서의 전통은 계속 되는 것 같다.

요즈음은 약간의 예지력만 생기면 전 국민을 상대로 국운이니 예언이니 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분들이 참 많다. 그렇지만 이러한 능력은 자신의 수행도구로서 삼아야 하는 것이 일차적이며, 진정으로 나라의 운명에 급격한 변화가 예지된다면 보이지 않는 처방을 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 아닐까?

세상 이치를 읽는 능력을 받은 것은 축복일수도 있지만 그만큼 커다란 의무가 부과 되는 법이 아닐는지, 국민들의 삶만 더욱 혼란스럽게 한다.

최근에 지어진 건물은 가운데 건물이 좀 더 튀어 나와야 뫼산 자 형태가 되는데 일자로 되어 있다.
바랜 옛 사진을 보면 일자 형태로 되어 있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뫼산 자 형태가 아니고 순수하게 ‘3’의 형상이 아니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면서 아무 생각 없이 지어진 건물이라고 지나치는 것들이 이렇게 커다란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일 줄을 누가 알겠는가?

‘천생팔자가 누릉밥이라’ 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은 대단케 여기지 않는 누릉밥 정도라도 여행이 무엇인가? 하찮은 것에도 의미를 달고 찾아보는 것 그것이 진정 기쁨을 누리는 여행의 백미인 것이다.

‘찰찰(察察)이 불찰(不察)이니’ 무엇에 한번 맛을 붙이면 끈덕지게 떨어지기 싫어함으로 알기에 노력하고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했지만 그 보는 재미란 것이 야릇한 춘화도를 살짝 보는 것만큼이나 짜릿한 것을 어찌하랴!

여기에 있는 그 유명한 미륵삼존불도 가운데 부처님이 키가 더 크다. 이 역시 뫼산(山)이 아닌가?
그리고 이 요사채 건물도 뫼산(山)이니, 그렇다면 쌍권총을 가진 것이 아닌가?
완전히 대칭되는 두 가지 산이 있으니 산산(山山)!

세 분이 한자리에 모셔지면 뫼산(山)자가 된다는 이치를 깨달으라는 의미이며 산(山)이 온전히 형성되어야 비로소 출(出)자가 형성되고, 출(出)자가 형성되어야 미륵삼존불이 세상에 출(出)할 수가 있다는 것인데.

뫼산(山)자로 서서 계신 미륵삼존불 중  한분은 구천상제이고 한분은 옥황상제라고 하기도 한다고 하는데 한분은 아직도 몰라 두 분만으로는 뫼산(山)자가 형성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두 분으로는 뫼산(山)자를 온전히 형성되지 못하여 출(出)자가 형성될 수가 없고, 때문에 미륵삼존불이 세상에 출(出)할 수도 없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미륵삼존불이 출(出)하기 위해서는 인세에 오신 마지막 한 분의 정체를 더 밝혀 모셔야만 된다는 이치가 개태사의 이 미륵삼존불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마지막 한 분은 누구냐’ 하는 것! 그것을 찾는 여행, 그것이 우리가 사는 인생길이 아닐까?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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