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아이앤 뉴스에서는 변금섭 법무사와 공동으로 계룡시민들에게 계룡의 유적지와 사찰, 인물 등에 대해 낱낱이 파헤쳐봄으로써 계룡의 진정한 묘미가 무엇인지를 알려주기 위해 8월부터 30여회에 걸쳐 「계룡의 묘미」에 대해 연재하고자 합니다.

계룡산에 진입하는 초입이 되는 양정고개로부터 출발하여 사계 김장생 선생에 이르기까지 계룡의 역사와 일화는 물론 먹거리까지 계룡시의 구석구석을 자세하게 소개할 예정입니다.
이 글은 특정 종교와 무관하게 쓴 자료임을 밝히는 바입니다.                                      [편집자주]

글 : 변금섭   사진/편집 : 지아이앤 뉴스 편집국    

--------------------------------------------------------------------------
양정 고개-이제 출발해보자

 
 
 
  ▲ 지금의 양정고개의 모습. 지금은 대전-논산을 잇는 국도가 지나가지만 예전에는 이곳이 힘들게 통행하던 높은 고개였던 것 같다. 예전 사진이 없는 게 안타깝다.  
 
양정 고개, 양정치(兩政峙)는 모든 이들에게 계룡산에 진입하는 초입이 되었다.

진안 마이산과 대둔산에서 올라오는 금남정맥이 천호산을 넘어서 계룡지구대에서 잠시 쉬고 양정 고개를 지나고 비사벌 아파트를 거쳐 ‘천지대안도’ 건물을 지나면서, 도깨비 터의 중심인 ‘계룡정사’에서 오래 머물다 능선을 타고 ‘계룡웰빙타운’(예전에 이 자리에는 약사암이 있었다.)을 통하고 235봉을 타면 계룡산에 이르게 된다.

마지막으로 힘을 내서 내달리고 나니 부여의 부소산에서 그 뜨거운 열기를 내뿜고 종착역에 이르게 된다.
   
예전부터 양정 고개는 고개 마루가 높아 힘들게 통행하는 길이었던 모양이다.
경사가 너무 심해 증기기관차가 늘 퍼지기 일쑤여서 오르다가 못 올라가면 후진해서 이곳 연산역으로 되돌아가서 물을 넣고 다시 올라가곤 하였다고 하는데 연산역에는 아직도 그 당시의 급수탑이 남아있다.

 
 
 
  ▲ 양정삼거리의 모습. 양정고개에는 현재 논산경찰서 계룡지구대와 양정 시외버스터미널 등이 위치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룡산에 진입하는 모든 이들을 위해 이곳에 어염집들이 많이 있었으니 지금도 이 골목에 들어서면 지금은 다소 낡았지만 제법 큰 여관 건물이며 한약방, 간이역과 각종 음식점들이 옛날의 호화스러움을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지만 이곳으로 철길이 나고 새로 대전 논산 간에 도로가 뚫리면서 흐르는 금남정맥이 흩어지고 많이 약해진 느낌이 든다.

양정 고개에는 이러한 전설이 전래되어 오고 있다.

옛날 어느 해에 가뭄이 극심하여 백성들은 먹을 것이 없어 아우성이었는데 조정에서는 중신들이 나라 일을 돌보지 않고 서로 모함을 해가며 권력을 잡기 위한 싸움이 그치질 않고 계속되니 백성들의 원성은 더욱 높아만 갔다.

이 때 경상도에 사는 한 선비가 있었다.
그는 열심히 글을 읽어 크게 출세할 것을 결심하고 노력하였는데 세상일 돌아가는 것을 보고 책을 팽개친 채 출세할 것을 포기하고 유람 길에 나섰다.
그는 여기 저기 발길 닿는 대로 다니면서 세상을 살폈다.

농부들은 먹을 것이 없어 저렇게 굶주리고 있는데 아직도 조정에서는 싸움질뿐이니 걱정이로구나. 한탄하면서 이거 나라에 무슨 정변이라도 일어나야 백성들이 살지, 큰일이구나 하면서 걱정을 하였다.

그는 금강산에 도착하였다. 이곳에 와서 보니 딴 세상 같았다.
차라리 이곳에서 평생 동안 세상을 등지고 살고 싶었다.

그는 한 절간에 머무르면서 며칠간을 쉬다가 하루는 꿈을 꾸게 되었다.
꿈속에서 한 장수가 나타나더니 그래 쓸 만한 놈들은 세상을 피하여 산속에 쳐 박혀 있고 몹쓸 놈들은 임금님 옆에서 서로 제가 잘났다고 야단들이니, 허참. 세상 잘 돌아가는구나 하고 한숨을 내쉬며 탄식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장수 앞에 나가 앉으며 대체 당신은 누구요?
누구 시온 데 저에게 그런 말씀을...하고 물었다.

그 장수는 나는 충청도 사는 장수인데 당신을 계속 따라다니고 있소.
당신은 여기 있을 사람이 못되니 어서 빨리 충청도에 있는 계룡산으로 가시오.
그때 내가 말 하리다 하고 사라졌다.

그는 꿈에서 깨어나 생각해보니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나 꿈속에 나타났던 그 장수는 아무래도 이 어지러운 세상을 차마 볼 수 없어 나에게 어떤 깨우침을 주려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그 이튿날 날이 밝자 여장을 차리고 충청도 계룡산으로 갔다.
충청도에 들어서서 지금의 두계 고을에 다다르자 밤이 어두워졌다.

피곤한 여독을 풀기 위하여 그 근처에 있는 주막집에서 하루 저녁을 유숙하는데 꿈속에 먼저 나타났던 그 장수가 또 나타났다.
잘 왔소. 그런데 이것 참 큰일이오.
이 혼란한 세상을 바로 잡으려면 꼭 정씨가 나와야 하는데 나오질 않고 있고, 그것도 정씨 한 사람이 아니라 정씨 여덟 사람이 나와서 이 세상을 평정해 놓고 그 여덟 사람 중 두 사람이 싸우다가 한사람이 죽어야만 이 나라가 평온해 지는데 여덟 사람의 정씨도 아직 나오지 않았으니 참으로 큰일이요. 근심스러워 하면서 말하였다.

그렇다면 그 여덟 사람의 정씨가 어디 사는 누구인지 알고 있소? 하고 그 선비가 묻자 그걸 알면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하겠소, 누구인지 한 사람도 모르오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왜 나를 여기로 오라고 했소? 하며 선비는 장수에게 다그쳐 물었다.
그야 당신은 정씨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요.

단 한 가지 알려 드리리다. 정씨 두 사람이 나타날 때에는 금강 물줄기가 변하여 논산 강경으로 흐르게 될 것이요. 웅진 땅 계룡산 밑을 흘러서 말이요. 하면, 나는 어찌하란 말이요? 하는데 그 장수는 또 어디로인지 사라졌다.

꿈을 깨고 난 선비는 참으로 이상한 꿈이로다. 한 번도 아닌 두 번 씩이나 나타난 그 장수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하며 생각해 보아도 알도리가 없었다. 그러면서 그렇다면 온다는 정씨는 과연 언제 나타난다는 것이냐?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알 수 없는 일들 뿐이었다.

그 선비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신도 안에 정씨가 도읍한다면 틀림없이 이 고개야말로 정씨가 나타날 고개일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이곳에서 묵으며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정씨는 나타나지 않고 이제는 노잣돈까지 떨어져서 아주 이 고개 아래에 뗏 집을 짓고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갖은 고생을 다하면서 희망을 잃지 않고 어렵게 살아가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백성들의 생황은 어려움이 더해갔지만 나라를 구한다는 여덟 정씨의 모습은 좀처럼 나타날 줄 몰랐다. 그래도 그는 기다렸다. 꿈에 나타났던 그 장수가 거짓말을 할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세월은 흘러 그는 이제 늙어서 허리는 꼬부라지고 머리는 백발이 되었다.

그래도 그는 죽는 날까지 이곳에서 기다리기로 하였다.
어느 날 그 선비는 자기가 며칠 안가서 죽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가끔 들리는 초동들에게 기다림에 대한 사연을 들려주고 내가 죽은 후라도 정씨가 나타나면 내가 기다리다 늙어 죽었다고 꼭 전해주기 바란다고 했다.
그리고 그 선비는 숨을 거두었다.

사람들은 양정 고개에서 정씨 두 사람이 나타나서 왕관을 놓고 싸워야 할 고개라고 전하며 기다리다 지친 어느 선비의 한이 맺힌 고개라고도 한다.                          (계룡시청  민속문화·전설 중에서)

그래서 두 정씨가 대립한다고 해서 양정(兩鄭)고개로 불리기도 한다.

http://www.gi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466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