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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25 향적산 국사봉
  2. 2008.08.25 계룡의 산(계룡산,향적산,천마산)
  3. 2008.04.12 향적산방
  4. 2008.03.28 계룡 향적산 국사봉 위치


향적산(국사봉)

향적산(香積山) 국사봉은 이성계가 신도안에 도읍을 정할때 친히 올라가 신하들과 국사를 논했다고 하여 국사봉이라 한다.
국사봉은 계룡산을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등산 코스이며, 종교연구가들에게는 제2의 신도안이자 한국 최고의 무속촌이었다.
국사봉에는 일부(一夫) 김항 선생이 정역(正易)을 공부하였다는 거북바위와 용바위가 있고 맨재 소류지 위쪽에는 국제선원 무상사가 자리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멀리 대전시가, 가까이 발 밑으로는 계룡대와 계룡시가 보이고 서쪽으로는 연천봉 능선이 북쪽으로는 계룡산 천황봉과 머리봉이 지척에 있으며 남쪽으로는 연산면으로 뻗어나간 국사봉 능선이 용의 허리를 닮아 있다.

 
향적산(국사봉)의 전설

국사봉 정상에는 오행비와 천지창운비가 자리잡고 있다.
중국 위나라에 관로라는 점성술의 대가가 있었다.
어느 날, 그는 남양현이란 시골 동네를 여행하는 중이었는데, 밭 한가운데서 일하고 있는 안초라는 청년을 만났다.
그런데 안초의 관상을 보아하니 머지않아 죽을 운명이었다. 관로는 “아아, 안타까운 일이다.
이 잘 생긴 소년이 고작 스무살까지밖에 살 수 없다니!”라고 중얼거렸다.

소년의 부친은 이 소식을 듣고 관로에게 찿아와 아들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애원하자 관로는 안초를 불러 말했다.
 "집에 돌아가서 청주 한통과, 말린 육포를 준비해, 묘(卯)일에 자네 밭의 남쪽 끝 뽕나무 아래로 가게,
거기서 두사람의 노인이 바둑을 두고 있을테니, 그 옆에 술을 따르고 육포를 놓아두면, 두사람이 술을 마시고 육포를 먹을 것이네. 그들이 잔을 비우면 술을 따르고 이렇게 해서 술을 다 먹을때까지 기다리게. 만약 그들이 무어라고 말을 하더라도
아무말 하지말고 그저 머리 숙여 인사만 하면 되네, 그러면 그들이 자네를 구해줄 걸세."

안초는 관로가 일러준 날짜에 그 뽕나무 아래에 가봤더니 과연 두 노인이 바둑에 몰두해 있었다. 북쪽에 앉은 노인은 검은 도포를, 남쪽에 앉은 노인은 붉은 도포를 입고 있었는데, 이들의 풍모가 신선같았다. 안초는 관로가 시킨대로 그들 앞에 술과 안주를 가만히 놓아두었다. 두 신선은 바둑에 푹 빠져 무의식중에 술과 고기를 맛있게 먹었다. 술이 몇 순배 돌자 신선들은 기분좋게 취하게 되었다.
그때 북쪽에 않아 있던 검은 도포를 입은 신선이 안초를 보고 꾸짖듯 말했다. "이런데서 뭘 하는게야, 저리 가거라."
그러나 안초는 머리만 조아려 인사만 할 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붉은 도포를 입은 노인이 안타까운 듯이 말했다.
"방금 우리가 이 청년이 가져온 술과 안주를 먹었으니, 그렇게 박대하지 말게." 그러자 검은 도포노인은 "그럼 저 소년의 수명을 늘려주자는 말인가? 이 소년의 수명은 태어나서부터 정해져 있네. 자네 명부에 적혀 있는 탄생일과 내 명부에 적혀있는 죽는 날을 우리 맘대로 고친다면, 이 세상의 질서는 금방 어지러워질 것이 아닌가?"라고 응수했다.
"그렇긴 하네만, 이미 저 친구에게 실컷 얻어먹은 우리가 아닌가? 그것도 빚은 빚이니 우리 어떤 방법을 강구해보자구."

붉은 옷을 입은 노인의 끈질긴 설득에 검은 옷 입은 신선은 하는 수 없이 "그 친구 참 끈질기기도 허이, 그래 여기 수명부가 있으니 자네 요량대로 해보게."라고 말하며 승낙하고 말았다."
붉은 도포의 신선은 수명부에서 소년의 이름을 찾아보니 소년의 수명은 19(十九)세에 불과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붉은 도포 신선은 붓을 들어 열십(十)자에 한 획을 더해 아홉구(九)자를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소년의 수명은 아흔 아옵(九九)살이 되었다.

안초가 돌아와 관로에게 이야기를 전해주니, 관로는 "북쪽에 앉은 검은 도포를 입은 신선은 북두칠성이고, 남쪽에 앉은 붉은 도포를 입은 신선은 남두육성일세, 북두칠성은 죽음을 관장하고 남두육성은 삶을 관장하지. 인간이 어머니의 뱃속에 깃들면 남두육성은 탄생일을 기록하고, 북두칠성은 사망일을 기록하는 거야." 말하고는 멀리 떠나갔다

http://blog.daum.net/hargy/5323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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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일보

충청 산하를 지키자-계룡의 산(계룡·향적산등)

기사입력 2008-06-03 23:12


계룡산과 향적산, 천마산 등이 감싸고 있는 계룡시는 말 그대로 상록 도시이다. 천혜의 비경을 자랑하고 유구한 세월을 동고동락한 역사의 산증인 인 계룡의 산. 이들 산에 대해 자연과의 조화를 고려하지 않은 개발은 가급적 자제하고 인간과 자연이 상생할 수 있는 자연친화적 개발이 상록 도시를 표방하고 있는 계룡시에 우선시 되고 있다. 역사의 숨결이 살아 꿈틀대는 계룡의 산을 자연 그대로 보존하고 잘 가꿔 후손에 물려주는 것은 이제 우리의 몫일 것이다.

▲계룡산 (천황봉)

계룡산의 주봉이자 배달민족의 영봉인 천황봉은 해발 845.1m로 국운을 굽어 살피고 있는 듯한 자세로 산의 경관이 수려, 삼국시대부터 백제를 대표하는 영산으로 알려져 있다.

기암절벽으로 이뤄진 정상에는 나라가 어지러울 때 하늘에 제를 올리는 산제단(山祭壇)이 있고 이 곳에 서면 신선이 노니는 듯한 계룡산의 전역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이는 계룡산이 그다지 높지 않아 운무(雲霧)가 별로 없고 주변의 산들이 상대적으로 낮아 시야를 별로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계룡시 어디에서 보아도 선뜻 이마에 닿을 듯이 솟아 있는 천황봉은 계절따라 형형색색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이 변화무쌍함은 대자연의 신비 자체로 웅장한 산봉우리 위에 찬란한 해가 솟아 오르면 보는 이의 가슴에 용기와 희망을 주기에 충분해 계룡시는 매년 이 곳에서 새해 첫 날 해맞이 행사를 열고 있다.

천황봉은 자태가 백성을 품안에 안고 있는 제왕의 모습이라 하여 상제봉(上帝峰)이라고도 했으며, 상봉(上峰) 혹은 제자봉(帝字峰) 이라 불리기도 했다. 제자봉은 부남리와 석계리 뒤편에 있는 산봉우리를 지칭하는데 이 봉우리를 경계로 암용추와 숫용추가 좌청룡, 우백호의 전설을 품고 있기도 하다.

또 대궐터의 주봉이기도 했던 제자봉은 신도안 신흥종교가 번성했을 당시 교주들과 신도들이 가장 신성히 여겨 수시로 찾아 간바 있으며 무속 ,민속종교 등의 교인들과 등산객들의 기도장소로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현재는 이 곳 일대가 군사보호구역으로 묶여 출입에 제한이 있으며 예전에 이곳을 즐겨 찾던 산악인들은 지금까지 그 향수(鄕愁)를 잊지 못하고 있다.

한편 천황봉 정상에는 1948년에 설치한 철탑이 우뚝 솟아 미관을 저해하고 있다. 이 철탑의 제거와 함께 일상적인 등산로의 개방은 우리가 머지않아 풀어내야할 과제로 남아 있다.

▲향적산 (국사봉)

계룡산을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등산코스로 유명한 국사봉은 종교연구가에게 있어 제2의 신도안이자 한국 최고의 무속촌이었다.

조선 초 태조 이성계가 신도안에 도읍을 정할 때 친히 올라가 국사를 논했다하여 국사봉이라 유래된 이 곳은 두마면 향한리와 도곡리 일대의 산으로 계룡산맥의 남쪽 능선을 이루고 있는 봉우리이다.

해발 574m로 일명 향적산(香積山)이라고도 불리는 국사봉은 향기로운 땀이 쌓여 있는 산이자 공부와 도를 깨우치기 위해 용맹정진하는 곳으로 알려져 왔다.

또 국사봉에는 일부(一夫) 김항 선생이 정역(正易) 공부를 하였다는 거북바위와 용바위가 있고 맨재소류지 위쪽으로는 국제선원 무상사가 자리잡고 있다.

국사봉을 오르면 멀리 동쪽으로 대전시가 한눈에 들어오며, 가까이 눈 아래로는 계룡대와 계룡시가지가 훤히 펼쳐져 있다.

서쪽으로는 연천봉 능선이, 북쪽으로는 천황봉과 머리봉이 지척이며, 남쪽으로는 연산면으로 뻗어나간 국사봉 능선이 용의 허리와 흡사한 모습으로 굽이쳐 있다.

한편 국사봉 정상에는 오(五), 화(火), 취(娶), 일(一) 등 네 글자가 음각된 오행비와 함께 천지창운비라는 비석이 있는데 이 비의 크기는 2m정도로 동서남북 각 면에 천계황지(天鷄黃地), 불(佛), 남두육성(南斗六星), 북두칠성(北斗七星)이란 글씨가 각각 새겨져 있다.

이는 한반도가 1000년 이상 동방예의지국으로 유지되도록 하는 단군성조의 깊은 뜻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국사봉의 맨재골 최상단에는 약수와 같은 샘물이 난다하여 약수암이 있고 이는 논산, 연산천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계룡지역에는 지역민들이 쉽게 찾고 있는 천마산이 금암동을 아우르며 친근하게 다가서고 있다. 천마산 정상에는 천마정이라는 정자가 있어 수려한 천마산을 쉽게 볼 수 있고 동쪽으로는 계룡시 금암 신시가지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며 서남쪽으로는 백제 계백장군의 충혼이 어린 황산벌이 멀리 보인다.

천마산 서편 기슭으로 왕건이 하늘의 도움으로 후백제를 멸망시키고 세웠다는 개태사가 자리하고 있는 등 역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이처럼 어느 한 곳 민족 역사와 숨결이 배어있지 않은 곳이 없는게 계룡의 산이다. 계룡의 산을 제대로 보존하고 소중히 가꿔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계룡=이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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