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변화의원리'에 해당되는 글 37건

  1. 2015.06.15 큰틀을 잡아주셔서 감사합니다.-ChiroShin-
  2. 2015.06.15 근본적인 맥을 집어주는 강의에 감사드립니다. -stefanet-
  3. 2015.06.15 강의를 모두 들어봐야 알겠지만... 많은 고민을 하신 흔적이 느껴집니다. -wshanyak-
  4. 2015.06.15 마음이 너무 시원합니다. -토덕-
  5. 2015.06.15 모르겠습니다.......-최우제-
  6. 2015.06.15 몇년동안 갈피를 못잡던 저에게 길잡이를 해주셨습니다. -은하-
  7. 2015.06.15 이보다 더 귀중한 근본 학문이 무었이 있겠읍니까? -일광-
  8. 2008.09.10 한동석선생은 증산도와 무관하다.
  9. 2008.06.09 臨床秘話 1966년 8월호
  10. 2008.06.09 黃帝內經講義 (五) 1965년 8월호
  11. 2008.06.09 黃帝內經講義 (四) 1965년 7월호
  12. 2008.06.09 黃帝內經講義 (3) 1965년 3월호
  13. 2008.06.09 의림낙수 1963년 6월호
  14. 2008.06.09 대한한의학회보 기고문
  15. 2008.05.13 우주변화의원리, 한동석
  16. 2008.05.13 한동석선생 이야기(4)
  17. 2008.05.13 한동석선생 이야기(3)
  18. 2008.05.12 한동석선생 이야기(2)
  19. 2008.05.12 한동석선생 이야기(1)
  20. 2008.05.12 두암 한동석 일화
  21. 2008.05.04 6,25의 발발원인의 남다른 해석(한의사 한동석)
  22. 2008.05.03 명리학과 한의학 꿰뚫은 대가 한동석의 대예언3
  23. 2008.05.02 명리학과 한의학 꿰뚫은 대가 한동석의 대예언2
  24. 2008.05.01 명리학과 한의학 꿰뚫은 대가 한동석의 대예언1
  25. 2008.04.07 우주변화의원리 행림/대원 출판사 글자 비교 판단11
  26. 2008.04.06 우주변화의원리 행림/대원 출판사 글자 비교 판단10
  27. 2008.04.06 우주변화의원리 행림/대원 출판사 글자 비교 판단9
  28. 2008.04.05 우주변화의원리 행림/대원 출판사 글자 비교 판단8
  29. 2008.04.04 우주변화의원리 행림/대원 출판사 글자 비교 판단7
  30. 2008.04.02 우주변화의원리 행림/대원 출판사 글자 비교 판단6


동양햑의 초보자에게 우주변화의 원리를 쉽게 접근할 수 있게 길과 문을 열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의 공부도 正名 과  시,공의 觀을 가지고 깨달음의 지혜로 나아갈 수 있게 인도하여 주셔서

이승수 선생님께 존경과 함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꾸벅.  

2013.10.23. 14:30

ChiroShin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stefanet
2010.05.06 14:32:15

인연이 되어 주역과 명리학공부를 시작했으나

암중모색, 안개속을 헤매는 느낌이었습니다.

상생방송의 <우주변화의 원리>를 들었으나

나름 초보자에게는 의미있는  강의였으나,

큰 흐름이나 맥락을 집어주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었읍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강의는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해주는 명쾌한 강의입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세요.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wshanyak
2012.02.19 00:32:03

 

 

우주변화의 원리를 10번 정독했습니다. 처음 3번을 읽으니 이제 뭔가 읽기 시작되는것 같았고, 6번 읽으니 다 아는 것 같았고. 9번 읽으니 대략의 흐름이 보였지만 중간중간 작은 강처럼 떨어져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한 20번 읽으면 알려나...... 하던 중 강의가 있다고 해서 듣고 있습니다.   6기를 들으려니 등업에 막히네요... 이 강의를 통해서 변화원리의 전체가 하나로 이어졌으면 합니다.  다음에는 중의 원리를 읽어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우주변화의 원리를 모두 이해하기 전까 다른 책은 참고서적으로만 보려고합니다.   개인적으론 등업의 절차가 없이 빠르게 강의를 듣고 싶습니다..     등업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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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강의가 끝났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법칙편을 더 어렵고 감탄하면서 들었습니다.  아마도 기본을 잡아주는 다른 참고서적들이 적었던 탓이 아닐까 ... 싶습니다.

제가 폭넓게 공부를 하지 못해서 다양한 지식들과 엮어서 우주변화의 원리를 해석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강의를 들으면서 하나 걸리는게 있었습니다.

이렇게 전부 들어버리면 내 스스로의 힘을 잃어버리는거 아닌가 ... 하는 의심입니다.

저야 다행스럽게도 9번 10번 정도 읽고 봤는데 (그래도 좀 아쉽더군요 15번? 정도 읽고 강의를 들었으면 더 좋았을걸.. 하구요.)

(이제막 전체의 맥락이 잡아지는 정도였거든요....)

 

어쨌든 강의 잘 들었구요.

곧바로 중의 원리를 공부하고 싶지만, 조금만 참고 우주변화의 원리 몇번 더 읽어보렵니다.

 

혹시 아직 강의를 듣지 않으신 분이 이글을 보신다면... 강의듣기 전에 책 9번 정도... 스스로 읽어보고 강의들으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토덕
2010.02.23 21:39:33

 

주역을 혼자 공부한지 5개월 째...... 안개속에서 헤메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우주변화의 원리를 구입하여 3회독을 하던 중 우연히 선생님의 강의를 알게 되었습니다.

혼자서 책을 볼 때는 100여미터 앞에 있는 것이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할 정도라고 표현하면

선생니믜 강의를 듣고 나면 최소한 10여미터 앞에서 그 사람의 생김새까지 본다는 느낌이라 할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사람마다 이해의 정도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만 세상의 설계도를 보고 이해할수 있을 거라는 희열과 자신감이 생깁니다.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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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제

2009.12.26 13:15:31

처음 동양학을 공부하려고 결심한 이유는 '동양학이 과학적이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에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 우주변화의 원리를 들으며 이런 생각이 어리석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어느 것이 옳고 그른 것인지 어느 것이 이치와 진리인지..

 

다만 이전에 깨달았던 자유와 동양학을  배우며 무지를 알았을 뿐입니다.

 

지금은 그저 그렇습니다. 감정과 생각이 이끄는 대로 가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그토록 괴로웠었는데...

 

다만 저는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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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이 무릇 결과와 같지 아니하듯

노력함은 곧 완벽이 아니다.

의식함은 곧 노력의 시작이니

보이지 않으니 알아주는 이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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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
2009.11.23 13:24:37

동양학에 관심이 많았었는데 마땅히 공부할 곳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안초 선생님의 < 중의 원리>와 <우주변화의 원리> 강의를 듣게 되었습니다.

 

몇년동안 명리공부를 하였지만 그저 막막한 상태였는데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어느정도 동양학에 대한 맥락을 잡게 되었습니다.

이제 시작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제 시야에 있던 안개가 걷히는 느낌입니다.

 

강의를 알기 쉽게 해 주시고 원리를 강조하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존경스럽습니다.

선생님의 강의말씀이 알알이 곡식이 되어 저의 공부에 많은 양분이 되었습니다.

 

강의를 듣다보니 한 번도 뵌적이 없는 선생님과 혼자 친숙해(죄송..^^)졌습니다

앞으로도 부지런히 선생님의 강의를 되새김질 하며 더욱더 열심히 공부 하겠습니다. 

귀한강의를 공개해 주셔서 지면으로나마 이렇게 감사함을 남김니다.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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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광
2009.10.07 15:06:29

불초소생 감히 수강후기를 작성할 자격도 없음을 익히 잘알고 있으나.

정말 노심초사 본 학문 연구와 발전 그리고 근본을 세우시려는 선생님의 노고에 적게나마 힘이 되실거 같아 몇자적어올립니다.

 

1996년 정월 제인생의 커다란 (소인으로봐서는 대단히 큰일)일로 인하여 파경을 헤메다가 문득 제자신을 알아보기위해 명리학을 시작한 이래 어언 13년세월 ....... 

저자신을 안다는것은 너무나 힘든일이었고 모든것이 모순투성이로만 저에게 다가왔읍니다. 물론 저의 부족함이지요.

하지만 도저히 더이상의 진전을 보기는 힘들었읍니다.

그러던중 우주변화의원리를 접하게되고 하나둘씩 법칙과 변화에 대하여 조금씩 머리가 틔워져가는거 같더만 이또한 정확한 신을 세우지못하고 방황을 하던중 ...

 

천지신명님의은총으로 말미암아  선생님의 강의를 접하게 되었읍니다.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소인이 추구하였던 모든것들을  정립할수 있게 되었읍니다.

매일같이 감사에 감사를 드리면서 더욱더 새로운세계를 향해 보고듣고 보고듣고를 반복하고있읍니다.

 

시대적으로 세상의이치가 암흑기를 맞이하고 있지만 암흑기 자체를 비추어주고 인도해주는  불빛은 바로 이학문이 아닌가 싶읍니다.

 

모든 지식인들이 이학문을 근본으로 하였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아무쪼록 선생님께 감사를 드릴뿐입니다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가끔 한동석선생과 증산도의 관계를 묻는 분이 계십니다.

'결론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단지 증산도에서 우주변화의원리 책을 활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위 말은 증산도에서 우주변화의원리를 강의하시는 윤창렬교수님도 분명히 하고 계십니다. (아래 글 참조)

우주변화원리는 한동석선생이 돌아가시기 1년 전인 1966년에 출간된 책입니다. 여기에 무슨 사심이 있었겠습니까. 분명히 우주원리와 동양학의 발전을 위해서 순수한 마음으로 쓰인 책이지, 결코 증산도의 포교를 목적으로 쓰여진 책이 아닙니다. 책의 내용으로 보면 알 수 있지만, 불교 교리를 좀 더 연구하지 못했음을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또한 돌아가실 때는 천주교 루까라는 본명으로 세례를 받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책을 쓰는 과정에서 계룡산 향적산방에 기거하시면서, 정신을 집중하던 기록과 발자취가 곳곳에서 회자되고 있습니다. 위 향적산방은 본래 일부선생이 제자들에게 정역을 가르치던 곳이었습니다. 제1기, 제2기를 거쳐 현재까지 동양학을 연구하는 학문의 전당으로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당연히 증산도와는 무관한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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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우주변화의 원리’ 알기 쉽게 풀었어요

엄상현 기자 주간동아 3월 11일 626호 95p

한의사이자 동양철학자인 한동석이 1966년 펴낸 ‘우주변화의 원리’는 동양철학자와 한의학도들의 필독서다. 하지만 우주변화의 원리를 음양오행설로 풀어 설명한 이 책은 내용이 너무 난해해 끝까지 읽고 이해한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

이 책을 25년간 연구하고 대중화에 나선 사람이 있다. 대전대 한의대 윤창열 교수(51·한의학 박사)가 그 주인공이다. 대학에서 의역학과 의철학을 가르치는 윤 교수는 2006년 3월부터 1년간 63회분 방송용 강좌의 녹화를 마쳤다. 이를 지난해 3월 개국한 케이블TV 상생방송(STB)이 방송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는 것.

윤 교수는 “읽고 싶지만 어려워서 엄두가 나지 않던 책을 알기 쉽게 설명해줘서 좋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고 했다.

1976년 경희대 한의학과에 입학해 이 책을 처음 접한 윤 교수 역시 한 번도 끝까지 읽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하기 일쑤였다. 그러던 중 82년 증산도에 입문해 안운산 종도사와 안경전 종정에게 설명을 듣고 비로소 깨우치기 시작했다는 것. 저자 한동석은 물론 ‘우주변화의 원리’도 증산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윤 교수는 다만 “증산도는 한동석 선생이 집대성한 우주변화의 원리를 활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윤 교수에 따르면 음양오행설은 우주의 절대적 진리다. 철학자마다 다른 철학체계를 추구하는 서양철학과 달리 동양철학은 음양오행이라는 절대불변의 진리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십간십이지(十干十二支), 8괘, 자연수가 사용된다. “음양오행은 이런 숫자를 통해 과거와 현재, 미래를 관통한다”는 것이 윤 교수의 주장이다.

윤 교수는 “우리 민족의 고대사에 대해서도 깊이 연구하고 있다”면서 “‘환단고기’(한국 상고사를 다룬 책)를 100회 정도로 나눠 상생방송 등을 통해 강독한 뒤 많은 사람에게 우리 민족의 우수성과 민족정신을 전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끝)

주간동아 3월 11일 626호 95p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출처: http://www.handongseok.org/secretstory.htm

臨床秘話 1966년 8월호

韓東錫

  人間의 生理現象이 病理的 變化를 일으킬 때처럼 그것을 측량하기 어려운 때는 없다. 가령 患者가 어떠한 身上의 呼訴를 할 때 醫師는 당연히 그 속에 秘藏되어 있는 病魔의 秘密을 探索하고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이것은 事實上 難中之難事다. 왜냐하면 患者의 陳述하는 바가 患者 自身이 느끼고 있는 感覺的 現象인 것 뿐이기 때문이다. 人間의 感覺은 언제나 그 뒤에 伏魔殿과도 같은 幽玄世界를 背景으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人間의 感覺 즉 感性的 作用은 一種의 幻像에 不過한 것이다.

  이와 같이 생각해 볼 때 感性的인 人間인 患者의 陳述이나 呼訴한 것을 따지고 보면 一種의 幻像이 自己를 演出하고 있는데 不過한 것이다.

  그러므로 醫師가 患者의 病理的 秘密과 問答한다는 것은 결코 容易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人間의 病理的 變化는 이러한 程度인 것뿐만 아니라 때로는 突然的인 異變을 나타내는 때가 있다. 좀더 仔細히 말하면 갑자기 子宮에서 물(水)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든지 或은 밤(夜)사이에 눈(眼)이 튀어나와서 마치 개구리(蛙)의 눈처럼 되었다든지 하는 것과 같은 것은 變化 中에서도 特殊한 變化이며 또한 突然的인 異變인 것이다.

  그런즉 醫師가 萬一 이러한 境遇를 當하게 되면 당황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醫師는 이러한 경우일수록 그 態度는 沈着하여야 하며 그 머리는 慧智的이어야 하며 그 思索은 哲學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醫師가 그러한 姿勢와 準備를 갖춤으로써 만일 위와 같은 秘密을 探索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런즉 이것이 바로 「臨床秘話」다.

  筆者는 이러한 境地에 臨하고 있는 學界에나 自身이 經驗한 바와 硏究한 바에 對하여 理論的 根據를 紹介함으로써 學術的 批判을 받으려고 하는 바이다. 그런데 이 글은 當分間 連載할 計劃인 즉 그 批判은 끝맺은 後에 있기를 부탁한다.

(一) 子宮出水

  1966年 6月 13日 31歲 가량의 靑年이 來院하였다. 그는 自己 婦人이 産後 2週日인데 子宮에서 물(水)이 터져 나와서 只今 ×××病院에 入院하고 있는 中이니 往診하여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唐惶하였다. 大抵 子宮에서 물이 나온다는 말을 듣고 그 물 나오는 까닭을 都是 알 수 없기 때문이다. 或是 解産할 때에 醫師의 不注意로 因하여 膀胱을 破裂시킨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症狀을 물어보았으나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러므로 可能하면 그 往診을 避하려고 하였지만 그것도 不可能하다. 왜냐하면 그와 이야기하고 있던 바로 그때에 筆者의 親友 R氏로부터 그 患者를 잘 보아달라는 부탁의 電話가 걸려 왔기 때문이다.

  나는 할 수 없이 그와 같이 ×××病院으로 떠났다. 나의 머리는 車 中에서도 그 生覺으로 가득했다.

  病院에 들어서서 患者를 診察하여 본즉 産後 2週日의 産母로서는 至極히 건강하다. 食事도 잘하고 大小便에도 異常이 없고 「컨디션」도 좋다. 다만 脈이 다소간 浮大하고 있을 뿐이다. 姓名은 禹希貞 年歲는 29歲 四象은 太陰人이다.

  그런데 子宮에서 물이 나오는 量을 물은즉 婦人들이 月經帶로 쓰는 綿布를 2枚씩 겹으로 깔고 있는데 30分間이면 물이 흐를 程度로 젖는다는 것이다. 나는 아무런 言質도 주지 못한 채 默默히 病院門을 나왔다. 患者의 男便되는 靑年도 따라 나섰다.

  집에 돌아온 나는 沈默에 사로잡혔다. 얼마동안 時間이 흐른 다음 나는 나의 머릿속에서 어떠한 閃光이 번쩍하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때에 바로 婦人들의 月經血에 물(水)이 섞여서 血色에 淡色을 띠는 境遇를 聯想하기 始作하였던 것이다. 醫書는 이것을 「經色淡者 痰也」. 「經色帶淡者 有水混之也」. 「經色 淡白氣血俱虛也」라 하였은즉 只今 이 경우가 바로 이것이로구나 하고 生覺하였던 것이다.

  좀더 仔細히 말하면 이 患者의 境遇는 産後 2週日인즉 孕胎 中에 消耗했던 衝任脈의 피(血)를 다시 再生産하여야만 할 重大한 契機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不拘하고 造血作用에 沒頭하여야 할 衝任이 그 機能에 故障이 생겨서 피를 생산하지 못하고 反對로 이것이 물(水)이 되어서 나오는 것이라고 判斷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判斷 뒤에는 반드시 推理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다시 말하면 이것이 醫學所謂 「血化爲水」라는 것인데 要는 人體는 어떻게 하여서 피(血)가 될 것이 물(水)로 變化할까? 하는 것을 解決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거기에는 두 가지 境遇가 있을 것이다. "첫째"로 體內에 濕氣가 鬱結됨으로써 熱을 蘊釀하게 되고 이와 같은 邪熱 즉 濕熱이 蓄積하게 되는 경우에 이것이 衝任의 造血機能을 痲痺시킬 때 子宮에는 물(水)이 고이게 될 것이다. 그런데 子宮에는 攝血機能은 있지만 攝水機能은 없다. 그러므로 물(水)이 不斷히 排泄하게 마련인 것이다.

  "둘째"로는 衝任經에 寒氣가 鬱結하여서 그것이 오랫동안 係留하게 됨으로써 寒生熱하여서 子宮의 造血機能을 압박하는 경우가 있으니 이 때에 또한 子宮의 造血作用은 血化爲水하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면 위에서 말한바 邪熱이 造血作用을 妨害할 때에 그것이 어떻게 하여서 피(血)가 물(水)로 변하는가? 하는 問題를 解決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이것을 醫哲學의 原理로서 말한다면 至極히 簡單하게 解決된다.

  즉 「寅申相火의 造血作用이 辰戌水나 丑未土의 非正常的인 沈滯象態와 結付될 때에 人體의 피(血)는 반드시 물로 變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물론 讀者 諸賢 中에는 이 文句에 對해서 「어리둥절」해질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나라에는 이와 같은 醫哲學의 原理인 陰陽五行의 原理를 硏磨하고 있는 數名의 同好者가 있다. 이분들은 이 文句를 보고 暫間 동안만 生覺하면 「그렇지」하고 快哉를 부를 것이다.

  勿論 筆者의 心境도 여기에서 이 原理를 解明하여놓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그러나 이것은 簡單한 時間이나 紙面으로써 解決될 問題가 아니므로 不得已 略하거니와 要는 不斷히 變化하는 人體는 恒常 이 原理 그대로 運動하고 있다는 事實에는 어김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人體에서 일어나는 몇 가지 病變作用에서 實例를 들어서 硏究해보면 一目瞭然하게 理解될 수 있기 때문에 다음은 그러한 實例를 한두 개 들어서 硏究해보기로 하겠다.

  가령 우리가 항상 경험하고 있는 腫瘡에서 이것을 살펴보면 瘡이 發할 때에 그것을 詳察하여 보면 첫번에는 그 部位에 加熱되어서 炎證이 생기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런즉 이것이 바로 前記한 바의 邪熱이 凝結하고 있는 狀態인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이 凝結한 炎證은 그 狀態를 永遠히 계속해 내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結局은 이것이 潰決하게 되는 것이니 그것이 바로 腫瘡의 終結點인데 그 때에 터지게 되는 膿化作用이 바로 或은 濕化爲水요 或은 寒化爲水하는 狀態인 것이다.

  그런즉 우리는 여기에서 이른바 子宮水畜作用도 또한 이와 같은 腫瘡의 生成原理에서 엿볼 수가 넉넉히 있는 것이다.

  그런데 좀더 가까운 데서 찾아보면 우리는 浮腫에서 이것을 엿볼 수가 있다.

  가령 극도로 수척했던 患者가 久病으로 因하여 水穀을 全혀 攝取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밤사이에 全身이 浮腫으로 變하는 경우를 우리는 얼마든지 보는 수가 있다. 그렇다면 이 물(水)이 大抵 어디에서 왔는가 하는 것이 問題點이다. 萬一 患者가 水分을 많이 攝取하였다면 그것으로써 浮腫의 原因을 斷定할 수 있을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患者는 水穀을 全혀 攝取하지 못하였은즉 이것이 바로 血化爲水한 것이다.

  그런즉 이러한 部類의 病原因은 或은 痰(濕生熱 熱生痰) 때문에 惑은 寒(寒凝爲熱) 때문에 或은 氣血이 俱虛(氣血이 運行能力을 喪失하면 留而爲熱)하기 때문에 血化爲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즉 이것이 바로 위에서 말한 바의 醫書의 「經色淡者 痰也」. 「經色이 帶淡者 有水混之也」. 「經色이 淡白者는 氣血이 俱虛也」라고 한 것은 上記한 바와 같은 原理에서 推愆한 것이 分明한 것이다.

  나는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에 近來에 많이 發病하는 「子宮물혹」이나 水疝등도 이렇게 하여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아울러 느끼게 되었다.

  고요히 눈을 뜨고 窓밖을 바라보니 窓문에 쏴부치는 夕陽의 光線은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다. 患者의 男便되는 靑年은 아직까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내가 「當身 婦人의 病은 治療할 수가 있습니다.」하는 말 한마디를 던졌던 바 靑年의 얼굴에서 歡喜의 紅潮가 흘러내렸다.

  그러나 나의 머리 속에는 아직도 검은 구름이 자욱하다. 왜냐하면 내가 構想한 處方이 아직까지 患者 禹孃의 體質的인 特徵과 잘 符合하지 않기 때문이다. 좀더 仔細히 말하면 禹孃의 體質은 肝熱이 動하기 쉽기 때문에 肺가 影響을 받아서 高原水道之源이 枯渴하기 쉬운 體質인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그의 病現象이 子宮水畜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一般的인 患者의 경우와 同一하다고 할지라도 治療技術을 實際로 施行함에 있어서는 이것이 重大問題로 擡頭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머리에서는 完全無缺한 方法이 떠오르지 않는다. 할 수 없이 窮餘之一策으로 다음과 같은 處方을 그려놓았다.

  그렇다면 이 病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濕이 子宮에 鬱熱을 造成하거나 或은 寒이 鬱하여서 子宮에 鬱熱을 造成하던가 或은 氣血이 本虛하여서 그 循環作用이 活潑하지 못하기 때문에 드디어 鬱熱을 釀成하기에 이른다던가 하는 等等으로써 그 原因을 이룩하는 것이다.

  그런즉 이 病을 除去하기 爲하여서는 于先 二陳의 힘을 빌어서 健脾燥濕하는 한편 氣血의 運行을 順調롭게 함으로써 正邪의 勝負之氣를 調和시키는 것을 急先務로 하지 않을 수 없다. 왜 그런가 하면 먼저 이러한 措處를 해놓아야만 子宮鬱熱의 基盤을 除去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더욱 重要한 것은 人蔘과 白朮의 功이다. 왜 그런가 하면 二陳湯의 君藥인 半夏가 人蔘 白朮을 얻으면 上焦에서 浮散하려고 하는 元氣를 下焦로 下降시켜서 마치 사라지려는 불을 모아놓는 것과 같은 役割을 하기 때문이다.

  좀더 仔細히 말하면 半夏는 補脾燥濕할 뿐만 아니라 「下逆氣而 行腎水」하는 特性을 가지고 있다. 그 말이 무슨 말인고 하면 一切 上逆之氣를 모아서 腎인 生命의 本源點에 歸宿하게 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本草에 半夏의 特性을 가르쳐서 「宣通陰陽而能眠」이라고 하였으니 그것은 바로 這間의 消息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性能을 가진 半夏가 人蔘을 얻으면 人蔘의 肺中元氣(肺金속에 陽氣를 包藏함으로써 活力素를 만드는 것을 補肺作用이라고 한다)를 補하는 作用과 合勢하여서 耗散하려는 陽氣를 保護하면서 體內에 흩어져 있는 老廢物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런데 白朮은 「利腰臍間血」하는 藥이다. 腰臍間에 있는 血을 利한다는 말은 腰臍間에 모이지 못하고 흩어지려는 血을 흩어지지 못하도록 묶어(束) 놓는다는 말이다. 이와 같이 考察해보면 二陳湯에 人蔘 白朮을 加함으로써 이루어진 六君子湯은 다만 補氣去痰하는 藥이라고 漠然하게 생각하던 思考方式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一身의 元氣를 그 元氣의 出發點인 丹田(坎位)에 모아놓음으로써 保護의 實을 거두는 것과 함께 耗散하려는 피(血)까지도 元氣와 같이 血海에 歸宿시키는 處方이라는 具體的인 事實까지도 아울러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즉 子宮水畜之證을 治療함에 있어서 또한 解決하여야 할 일은 水邪 때문에 耗散되어버린 氣血을 本院點에 모아놓고 保護하는 일부터 먼저 할 수밖에 道理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患者의 境遇는 피가 다 물로 化하여 버렸기 때문에 極度의 子宮貧血症을 나타내고 있은즉 當歸 川芎 등의 調血劑를 써서 血의 生成作用을 도와주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吾人은 여기에서 當歸 川芎이 어떻게 調血하는가 하는 것을 于先 살펴보아야 하겠다.

  當歸는 心肝脾의 統血藥이다. 統血이란 말은 피를 丹田에 歸宿시킨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藥名을 當歸라고 하였으니 피를 마땅히 돌아가야 할 곳인 丹田에 돌려보낸다는 말이다.

  그 다음 川芎은 潤肝補肝하면서 升陽開鬱하는 血中氣藥이다. 그런즉 川芎이 血中氣藥이란 말은 피의 動力藥이란 뜻이요 當歸를 統血藥이라고 하는 것은 피를 動에서 靜으로 誘導하는 藥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六君子가 氣血創造의 契機와 排水 做元의 要因을 만들어 놓은 뒤에는 반드시 當歸 川芎의 調血 養血하는 힘과 함께 함으로써만이 解産 後에 缺乏狀態에 빠졌던 造血之元이 復活하게 되어서 子宮은 自己 機能인 바의 攝血作用을 完遂하게 되는 것이다.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출처: http://www.handongseok.org/lecture5.htm

黃帝內經講義 (5) 1965년 8월호

第一編 變化原理

第三節 五行의 相生과 相克

    가. 相生

  五行이라는 槪念과 五運이라는 槪念은 서로 다르다. 五行이라고 하면 木火土金水 다섯 種類의 氣가 아무런 變化없이 循環하는 自然的인 狀態를 말하는 것이요 五運이라고 하면 이미 그 純粹性을 잃고 變化하는 狀態를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五行이라고 할 때에는 東方에서는 木을 生하고 南方에서는 火를 生하고 中央에서는 土를 生하고 西方에서는 金을 生하고 北方에서는 水를 生한다고 하는 基本的인 法則을 말하는 것이므로 여기서 말하는 木火土金水란 五行法則은 그 性質이 純粹하여 아무런 變化나 鬪爭도 없는 基本的 槪念을 말하는 것이다.

  다만 이와 같은 基本的 槪念은 五行은 原則的으로 相生하거나 或은 相克하는 作用을 하는 五原質 自體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五原質이 相生과 相克作用 즉 相扶相助와 豫備對立을 일으키고 있거나 或은 일으킨 다음의 狀態를 五運이라고 하는 것이니 그렇게 되면 五行은 여기서 이미 純粹性을 잃은 混濁之象이 된다.

  이와 같은 五行이 純粹性을 잃으면 그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五行이 곧 變化하는 狀態의 五行이니 이것을 五運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五行이란 槪念과 五運이란 槪念은 區別하여야 하는 것이거니와 五運에 대한 說明을 後로 미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五行만을 說明하기로 하겠다.

  그러면 五行 즉 純粹 五原質의 相生原理부터 說明하기로 하겠다. 이 原理는 河圖에 나타난 것이므로 河圖의 象을 그대로 表示하고 五行相生圖와 對照하여 보기로 하겠다.

  河圖


  五行相生圖


  河圖의 象을 보면 東쪽에 있는 三과 八은 五行相生圖의 東方에 있는 甲乙木이니 甲은 三이고 乙은 八이다. 河圖의 南쪽에 二와 七은 相生圖의 丙丁火이니 丙은 七이요 丁은 二다. 河圖中央의 上下便에 各各 五가 있고 正中央에도 五가 있으니 이것은 相生圖의 戊己五十土이다. 河圖의 西方에 四와 九가 있으니 이것은 相生圖의 西方에 있는 庚辛金이다. 庚은 九요 辛은 四다. 河圖의 北方에 一과 六이 있으니, 이것은 相生圖의 北方에 있는 壬癸水다. 壬은 一이요, 癸는 六이다.

  이와 같이 본즉 五行相生도는 河圖를 그냥 옮겨놓은 것에 不過하다(다만 東西南北의 間方에 辰戌丑未를 表示한 것은 이 四個의 土가 五行과 合하여 作用할 때에 變化가 생기므로 記載하여 둔 것이고 여기서 論할 것은 아니다).

  그런데 爲先 相生圖와 河圖를 對照한 結果 한 개의 疑問이 나타난다. 즉 相生圖를 順序로 볼 때에 壬癸와 甲乙은 一六과 三八의 順序로 되어있는데 왜 丙丁과 庚辛은 七二과 九四의 順序로 되는가? 하는 問題다. 이것은 다만 表面에 나타나 있어서 누구나 알 수 있는 問題點이거니와 좀더 깊이 살펴보면 그밖에도 많은 問題點이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河洛의 變化를 說明할 때에 說明할 問題들이다.

  却說 相生이란 것은 河圖 그대로의 表示라는 것을 말하였다. 그러나 그것들이 어떻게 相生하는가? 하는 問題를 硏究하여야 한다. 즉 甲乙三八木은 丙丁二七火를 生하는데 이것은 五行의 一般的 槪念에서 說明한 바와 갈이 가장 힘이 있고 또 통가다리인 木氣가 다시 再分裂하는 過程이니 즉 통가다리인 木이 그것을 基礎로 無數한 再分裂을 함으로써 內容은 衰弱하여지면서 外形은 가장 旺盛하는 過程이 바로 木生火의 過程이니 이것이 解放의 第二契機 인 것이다.

  그 다음 丙丁二七火가 戊己五十土를 어떻게 生하는가? 火란 것은 木이 再分裂 한 것이라는 것은 이미 말하였다. 그런데 火는 또다시 分裂하여서 分裂의 極端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分裂을 爲한 分裂이 아니고 分裂에 終止符를 찍기 위한 分裂이다. 이것이 解放의 第三契機가 되는 火의 分裂인즉 그것이 바로 火가 土를 生하는 過程인 것이다. 이와 같은 火의 分裂은 解放의 終點인 同時에 統一의 始點인 土를 現象化하는 中繼點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時點이 바로 無極을 生하여서 矛盾對立을 止揚하고 萬物을 成熟하게 하며 人間은 統覺(神明)이 생기며 靑年은 圓熟해지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칸트가 말한바 感性과 理性의 二 契機가 融合하는 곳이다. 즉 統一의 第一 契機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戊己土는 庚辛金을 生하나니 金이란 表面을 굳게 하는 性質이다. 다시 말하면 第三分裂인 火의 分裂은 純粹中立인 無極(土)으로 化한즉 그 土(無極)는 中立의 性質로서 外炎灼熱한 바의 第三分裂을 柔懷抱捉하여 놓게되면 그것은 바로 火인지 土인지 혹은 水인지를 분별할 수조차 없는 象을 만들어 놓는 것이다. 그런즉 이러한 象은 火土水의 和合한 象이므로 外堅性을 가진 金으로서는 捕捉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分裂을 捕捉(綜合)하는 第二의 契機를 生하는 것을 土生金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여 成立된 金은 水를 生하게 마련이니 즉 金이 水를 生한다는 말은 金氣의 外表堅斂作用이 한걸음 더 나가서 그 內面까지 貞固하게 하는 作用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統一의 第三契機가 形成되는 것이니 이것이 易에서 말하는 坎爲水오 탈레스가 말한 물이다. 뿐만 아니라 孔子가 易繫辭에 太極生兩儀라고 한 太極의 母體인 것이다.

  이와 같이 太極이 成立되면 水는 다시 木을 生하게 되는 것이니 즉 貞固한 속에 囚閉되었던 氣는 다시 活動하여 木을 生하게 되나니 이것이 解放의 第一契機가 되는 것이다. 宇宙의 構成要素인 土元質은 이와 같이 統一과 解放作用을 쉴 사이 없이 反復하는 것이니 이 運動을 陰陽運動이라고 하며 또 그 陰陽運動이 다시 五元質인 五行의 承繼作用에 의하여 解放과 統一의 作用인 陰陽作用을 周流不編하는 法則을 五行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法則인 五行各個의 槪念을 定함에 있어서 甲乙木 丙丁火 戊己土 庚辛金 壬癸水라는 槪念을 附與하는 것이니 이 槪念은 곧 五氣五行運動의 基本的 原則인 五行의 槪念인 것이오 三八, 二七, 五十, 四九, 一六 등은 다시 木火土金水의 生成原理를 確認하는 數自體의 自然法則인 것이다.

  위에서 五行의 相生을 말했다. 그것을 여기서 要約해보면 水生木 木生火 火生土의 發展까지는 解放過程의 三契機요 火生土 土生金 金生水는 統一의 三契機였다. 이와 같이 보면 發展의 過程은 土에서 끝나는데 또한 統一의 過程도 그 土에서 始作하였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土는 二重性格을 띈 것이 分明하다. 왜 그런가? 하는 疑問은 다음에 六氣를 說明함으로써 分明해진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基礎的으로 그렇게 記憶만 남겨두기를 바란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가 兼하여 또 記憶해야 할 것은 언제 어떠한 場所에서든지 五行의 槪念이 木火土金水의 順序로 配列되면 여기는 相生原理를 內包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또 한가지 注意할 것은 甲乙木 丙丁火 戊己土 庚辛金 壬癸水라는 槪念이 木火土金水에 붙으면 이것은 五行의 基本原理이고 또한 變化하는 五運의 原理가 아니라는 것을 銘心해야하는 것이다.

    나. 五行의 相克

  五行이 지닌바 基本原理의 또 한개의 側面으로서 相克原理가 있다. 相克作用은 相生作用의 反對作用이므로 相生은 木火土金水의 順行法則이었던 것과는 反對로 이것은 金木水火土의 逆行作用을 하는 法則인 것이다. 相生作用이 相扶相助의 基本的 本質이었다면 相克作用은 矛盾對立의 基本的 要素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相生作用은 陽의 作用이요 相克作用은 陰의 作用이다.

  여기서 陰陽二契機의 矛盾과 對立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對立을 위한 矛盾이 아니고 發展과 統一을 위한 矛盾이다. 그러므로 相克의 必要性이 認定되는 것이니 그것을 人道的 立場에서 보면 善을 保護하기 위한 必要惡이기 때문이다.

  却說 이 相克原理는 洛書에서 啓示되는 原理이다. 그러므로 다음에 五行相克圖와 洛書를 그려놓고서 서로 對照하면서 硏究하기로 하겠다.

  洛書


  五行相克圖

  註 ()內의 金火와 四九.二七은 바꿔진 것을 表示한 것

  원에 두개의 그림을 對照하여 보면 爲先 洛書는 河圖와 다른 점으로 河圖의 四九와 二七이 易位된 點이다. 다시 말하면 河圖는 四九가 西에, 二七이 南에 있었는데 洛書는 四九가 南에, 二七이 西에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이 數가 易位되었다는 말은 數의 本體인 金火가 易位되었다는 말이다.

  이밖에도 洛書와 河圖는 그 象이 다른 점이 많지만 여기서는 다만 金火가 四九 二七이 交易된 點만을 말하겠다. 이와 같이 交易되었다고 말을 하거나 또한 象을 表示하는 것은 勿論 사람이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自然의 運行法則이 .그렇게 垂象했기 때문에 人間은 그것은 그냥 文字로서 옮겨 놓은 것 뿐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圖表는 어떠한 根據에 依하여 成立되었는가?

  五行이 相生할 때는 木生火 火生土 土生金 金生水 水生木의 順序로 그 生하는 바의 基本的인 原則만을 說明한 것이었다. 그러나 相克法則은 그 生하는 側面, 즉 生하기 위한 必要惡을 說明하는 것이다. 宇宙의 運行하는 象을 詳察하면 火가 南에서 旺盛하기 바로 前인 巳(이것은 六氣說明에서 詳論)에서 이미 金의 收斂運動이 싹트게 된다. 그리하여 그것이 차츰 勢力을 얻어서 西에 이르게 되면 南에서 旺盛하던 火는 金氣에 依하여 完全包圍를 當하게 된다. 그러므로 宇宙의 運行을 다만 相生하는 面에서만 보면 五行은 生成作用의 基本的인 法則에 不過하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서 變化하는 面에서 보면 다시 말하여서 어떻게 生成하느냐? 하는 面에서 보면 이와 같은 金火交易의 必要克에 依하여 生成作用은 實現되는 것이다.

  그런즉 相克原理란 生成作用의 裏面 즉 成하는 바의 本質的 內容을 표시한 것이 바로 相克法則인 것이다.

  그런데 相生作用은 北方水位에서부터 始作하여 左旋運動을 하였는데 相克運動은 相克圖에서 表示한 바와 같이 南方火位(卽 四九金位)에서 始作하여서 오히려 生의 作用을 側面에서 돕고 있는 克인 것이다. 그러므로 相克作用은 金에서 始作하여 右旋運動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金木水火土의 順으로서 五行相克 序列을 定하는 것이다.

  天地運行에 있어서 이와 같은 生成作用은 恒常 必要惡인 相克作用을 絶對로 要求하기 때문에 北方水가 水生木을 하려고 하면 南方火는 벌써 金을 克하여서 金克木의 準備態勢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相生作用 즉 水生木 木生火 火生土 土生金 金生水를 始作하면 相克作用은 同時에 金克木 木剋土 土克水 水克火 火克金의 反對作用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것을 相克이라고 하거니와 이와 같은 相克은 宇宙의 變化와 人間의 生成에 있어서 不可無의 必要克이며 必要惡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헤에겔이 말한 辨證的 發展過程이기도 한 것이다.

  註 헤에겔은 이와 같은 過程의 飛躍까지만을 보고 그의 統一法則을 發見하지 못하였다.

  世界가 實現하는 矛盾과 對立은 이와 같은 五行運動의 生克過程에서 일어나는 必要惡이므로 이와 같은 矛盾과 對立이 바로 世界이며 그것이 또한 世界의 生命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矛盾과 對立이 없는 世界란 形成될 수도 없고 또한 形成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變化도 찾아볼 수 없는 無意味한 暗黑界일 것이다.

  註 以上 論한 바를 初步者로서는 完全히 理解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다만 宇宙發展에 있어서 相生과 相克의 絶對 必要性을 記憶함과 아울러 金火交易이 萬物生成의 裏面的 內容이 된다는 것을 銘心하기만 하면 된다. 다만 아직 이 程度의 進度에서 좀 지나치게 깊은 곳을 말한 감도 不無하다. 그러나 한번 이 程度의 아웃트라인 이라도 스쳐 지나가는 것이 金火交易 土化作用 寅申相火 等의 깊은 곳을 硏究할 때에 理解를 促進시킬 수 있으리라고 生覺되기 때문에 蛇足을 添加한 것이다.

 

 

  그렇다면 五行의 變化인 五運에 대해서 硏究하기로 하겠다.

第四節 五運과 變化

  運이란 槪念이 運動 運行 等에 對한 基本槪念이다. 運字를 만들 때에 軍字와  字를 合하여 만든 것은 軍이 가는 것(走)을 象徵한 것이다. 軍隊란 盲進만을 目的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前進할 때는 前進하고 後退할 때는 後退하는 것을 軍이라고 하는 것이다. 軍隊에서는 이것을 作戰이라고 한다. 軍이란 것은 이와 같은 作戰에 依하여 戰勢에 變化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한 意味에서 運字가 軍字와  字를 合하여 取象한 것은 運이란 것은 軍의 行進이 戰鬪에 變化를 나타내는 것처럼 運의 律動도 또한 一種의 戰鬪的 變化를 나타내면서 나가는 것이며 同時에 軍隊의 行進처럼 一進一退하면서 前進하는 宇宙變化의 律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運이라고 하거니와 여기에다가 五字를 合하여 五運이라고 하는 것은 宇宙運行의 基本法則인 五行이 變化하는 象을 五運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五行이라고 하면 五行 自體의 基本的인 法則을 意味하는 것이오 五運이라고 하면 五行이 變化를 實現하는 宇宙現象의 象을 意味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吾人이 五運을 硏究하려면 그의 名稱과 槪念부터 硏究하여야 하고 또한 宇宙는 運行하는 象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數를 나타내는 것이므로 自然數의 生成關係를 硏究하여야 한다. 그런 다음에라야 五運이 變化現象과 물의 生化成形하는 것을 硏究할 수 있는 것이다.

    가 五運의 名稱과 方位의 否定

    A. 名稱

  五行이라는 五氣의 基本法則과 五運이라는 그가 運行하는 象인 律動이 서로 다른 한 그 의 名稱이 다른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러므로 甲己를 土運이라고 하고 乙庚을 金運이라고 하고 丙辛을 水運이라고 하고 丁壬을 木運이라고 하고 戊癸를 火運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을 圖表에 依하여 說明하면 다음과 같다.

  五運圖









  위의 그림에서 보면 運은 土運에서부터 運行하기 始作하는 것이니 왜 이것이 土運에서부터 始作하는가? 하는 것부터 硏究하여야 한다. 다시 말하면 五行의 相生作用은 木(木火土金水)에서부터 始作하였고 相克作用은 金(金木水火土)에서부터 始作하였는데 五運은 왜 土에서부터 始作하였느냐? 하는 것부터 硏究하여야 한다.

  위에서 말한바와 같이 五運이란 것은 變化現象의 象이다. 그런데 五行가운데서 오직 中立不偏하는 象을 나타내는 곳은 土位인 것이다. 水火金木은 各各 偏僻된 性質을 가지고 있지만 土만은 無이며 中이며 空인바의 象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象을 나타내는 五運이 土에서 出發하여야 할 것은 明若觀火한 것이다.

  그러므로 土는 甲에서 己에 이르는 變化過程에서 생겨나므로 甲己化土라고 하면 그 다음으로 乙에서 庚에 이르는 사이에서 金이 생겨나므로 乙庚化金이라고 하며 그 다음은 丙에서辛에 이르는 사이에서 水가 생겨나므로 丙辛化水라고 하며 그 다음은 丁에서 壬에 이르는 사이에서 木이 생겨나므로 丁壬化木이라고 하며 그 다음은 戊에서 癸에 이르는 사이에서 火가 생겨나므로 戊癸化火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五運의 名稱(槪念)을 甲己土 乙庚金 丙辛水 丁壬木 戊癸火로 規定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五運이 化하는 面에서 본 名稱인 것이다. 그러므로 各人이 萬一 五運이 變化하는 面을 規定한다고 하면 應當 己甲土 庚乙金 辛丙水 壬丁木 癸戊火가 成立될 수 있다는 것도 머리에 넣고 生覺하여야 한다. 뿐만 아니라 五行에서 變化하여서 五運이되는 根據를 論據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五運의 變化에서 說明하겠다.

  다만 여기에서 記憶하여야 할 것은 五行과 五運은 本質的으로는 그 槪念이 同一하다. 그러나 五行은 基本적인 法則이고 五運은 變化하는 現象이므로 本體와 作用의 面에서 名稱을 分離한 것이다.

    B. 方位의 否定

  五行에 있어서는 甲乙木 丙丁火와 같은 方位의 規定이 嚴格하였다. 그러나 五運에서는 方位를 定할 必要도 없고 또한 定하여 낼 수도 없다. 왜 그러냐 하면 五行은 五原質의 基本法則이었지만 五運은 運動하는 變化의 現象이므로 方位를 定할 수 없는 것이다. 現象은 언제나 流動的이므로 方位와 같은 固定性이 介在될 수 없다. 同一한 原質의 五行의 個性이 옮겨지는 空間과 時間에 依하여 各其相殊한 變化를 造成하는 것뿐이므로 運에서는 時空間的인 象을 다루는 데만 目的이 있는 것이고 方位나 場所와 같은 固定的인 面 - 다시 말해서 方位의 固定性은 變化를 拒否하는 것이므로 - 은 벌써 五運의 對象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五行의 基本인 方位가 없이는 五運의 流動인 象이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나.數

  數를 硏究하려면 먼저 數의 槪念과 成立을 生覺하여야 하고 그 다음에 數의 變化를 硏究해야 한다.

    A. 數의 槪念

  數에도 亦是 哲學的 哲念과 言語學的 槪念의 두 가지가 있다. 言語學的인 面에서 考察하여 보면 數라는 것은 事物의 質量을 計算하는 手段에 不過할 것이다. 그러나 哲學的인 面에서 살펴보면 數는 事物의 幾微이며 有가 無에 이르는 過程이며 單이 多로 化하는 象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宇宙間에 存在하는 事物의 變化하는 象을 詳察하여보면 形(物質)이 分化하고 象(無)이 綜合하는 有無分合의 法則的 循環이 繼繼承承하는 물(水)의 波濤와 泡沫인 것이다. 그러므로 列子는 人物의 律動하는 變化를 물 속에서 出沒하는 潛水夫의 妙技로 보았고 伏羲는 그 물을 一(全體)이 六으로 分化하고 六이 一로 綜合하는 象을 河圖에서 發見하였고 文王은 그 물이 다시 分裂되어서 泡沫이 되고 그 泡沫(無)이 綜合의 契機로 飛躍하는 金火交易의 幾微를 洛書에서보았고 一夫는 이와 같은 先聖의 達觀에 依하여 正易을 著述하였고 또한 그것이 이루어지는 中心點(無極)을 指稱하여 十十一一之空이라고 함으로써 비로소 律動하는 물의 神秘는 開發되고야 말았다.

  却說 數라는 것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은 물(水)의 分化하는 形象을 象徵하는 물 自體의 表現인 것이니 그것이 바로 變化의 烙印이며 妙萬物의 母體인 것이다. 字典을 稽考하여보면 數字의 意味를 幾, 計, 細密 等으로 表示하였으니 幾라는 것은 幾微만 있어서 實在를 把握할 수 없는 것이다. 計라는 것은 一이 十으로 分裂되는 過程에서 생기는 事物의 發展과 그 綜合을 말하는 것이고 細密이란 것은 물이 泡沫이 되어서 물로서의 形을 喪失하고 다시 化合하기 始作하는 飛躍의 象을 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字典의 內容을 稽考하여 보면 數라는것은 上記한 바와 같이 古代의 先聖들이 立法한 河洛의 變化인 分化하는 물 自體의 表現 方式인 것이 分明한 것이다.

  宇宙란 것은 變化하는 時空間이다. 時空間이란 것은 變化하는 幾微의 一點 卽 十字의 交叉點인 것이다. 時의 延長과 空의 收藏은 반드시 이 間(十字의 交叉點)을 얻음으로써 飛躍할 수 있는 것이며, 또한 變化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意味에서 筆者는 緖論에서 「피묻은 十字架」 라는 表現을 빌려 쓴 일이 있거니와 이러한 時空間的 變化인 形象의 發展을 그 自體의 모습대로 나타내는 것이 바로 數라고 生覺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數는 變化하는 現象을 記錄하는 表示일 뿐만 아니라 바로 그것이 變化自體의 모습인 것이다. 그런즉 우리는 여기서 宋學이 「有氣則 有度 有度則 有數」라고 한 深奧한 底意를 엿볼 수 있으니 이것을 좀더 풀어서 말하면 宇宙라는 變化하는 大氣圈은 언제나 五行氣로서 充滿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모든 것이 動靜하게 마련이다. 이와 같이 動靜하는 것은 氣가 있기 때문이요 氣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度가 있고 度가 있는 곳에 數가 따르는 法이다. 그것이 바로 推進力과 引退力인 陰陽의 運動力이다. 그러므로 地球와 日月의 秩序整然한 運行도 이와 같은 氣度數의 現象으로서 나타나는 것이오 曆命數와 物象數의 現象도 實로 여기 緣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數의 槪念을 一層 더 좁혀서 말한다면 數란 自然法則 自體의 運動現象의 表現인 것이다.

    B. 數의 成立

  自然數의 數列은 一, 二, 三, 四, 五, 六, 七, 八, 九, 十의 順序로 配列하여 成立되었다. 그런데 이 列을 자세히 살펴보면 奇數와 偶數가 서로 交代하면서 規則的으로 配列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奇數+偶數=數列」이라는 公式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問題되는 것은 이러한 數의 成立이 人爲的이냐? 或은 自然的이냐? 하는 것이 問題된다. 一般的으로 이 問題를 人爲的인 것으로 生覺하는 傾向이 많다. 그렇다면 自然數라는 槪念부터 먼저 따져 보아야 할 것이다. 萬一 數의 成立을 人爲的이라고 한다면 自然數란 槪念은 반드시 自然所産인 事物을 計量하는 것이 모든 自然數라고 한다고 하여야 옳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槪念學上으로 보아서 잘 首肯되지 않는다. 自然數란 말은 數 自體가 自然의 法則 그대로의 表象이기 때문에 自然數라고 한다고 하여야 槪念的으로 妥當하게 느껴진다. 萬一 數의 成立을 人爲的으로 된 것이라고 한다면 옛적에 數를 만들 때에 가령 數列을 一, 三, 四, 七, 九 等으로 粗雜하게 配定하였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오랜 동안의 歷史的 習慣에 依하여 事物을 그렇게 計量했을 것이다. 그것은 勿論 計數上으로는 無妨할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一 다음에 三이라고 計數하더라도 그것이 習慣化 되기만 하면 一 다음은 二라고 認識하는 것을 一 다음은 三이라고 習慣으로 認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人爲的인 數를 使用한다면 哲學의 發展은 있을 수 없다. 특히 東洋哲學은 基本을 數에다 두었다. 그것은 위에서 말한바와 같이 數라는 것은 動靜하는 事物의 現象 自體이기 때문이다. 勿論 西洋哲學에 있어서도 數를 대단히 重視한 피타고라스와 같은 學者가 있기는 하였다.

  그는 모든 것을 다 疑心하였지만 思惟하는 나 我와 數만은 疑心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만 보아도 그가 數를 얼마나 重視하였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서 數에 대한 思索과 硏磨의 자취는 찾을 수 있지만 反面 數的인 法則을 硏究하였다는 것을 엿볼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東洋哲學은 그 出發부터 數로서 始作하였다. 다음의 河圖에서 그것을 엿보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위의 그림의 一, 三, 五, 七, 九는 白色圓이다. 이것은 奇數니 陽을 象徵하는 것이오 二, 四, 六, 八, 十의 黑色圓은 偶數이니 偶數는 陰을 象徵하는 것이다. 또 一, 三, 五, 七, 九의 五位 中에서 一, 三, 五는 陽數로서의 生數요 七, 九는 陽數로서의 成數다. 二, 四, 六, 八, 十 中에서 二, 四는 陰數로서의 生數요, 六, 八, 十은 陰數로서의 成數다. 이것을 다시 추려보면 自然數의 數列은 一二三四五六七八九十인데 그 중에서 一二三四五는 生數라고 하고 六七八九十은 成數라고 한다. 그런데 生數인 五位 즉 一二三四五 中에서 奇數인 一三五는 陽의 生數요 二四는 陰의 生數다. 또 成數인 六七八九十 中에서 六八十은 成數 中의 陰數요 七九는 成數 中의 陽數이다. 이와 같이 生數와 成數가 各各 奇偶數를 가지고 있는데 生數는 萬物이 變化하는 基本原理이고 成數는 萬物이 變化하는 實現形態인 것이다. 그런데 自然數는 이와 같은 性質을 가진 奇偶가 互相交雜하여 一陰一陽하면서 數列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法則으로서 成立된 數列의 理論的 根據가 바로 河圖에서부터 나왔다. 그것이 바로 數의 化生이며 同時에 萬事萬物의 化生인 것이다.

  여기서 河圖에서 나타난 數理를 대략 說明하면 一과 二인 水火의 生數는 宇宙變化의 二大 基本原理이고 三과 四의 木金은 一二 즉 水火의 運動을 돕기 위한 幇助的인 原理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一이 二로 化하려면 三의 도움이 必要하고 二가 一로 變하려면 三의 도움이 必要하다. 그런즉 宇宙의 運動은 一과 二의 互惠運動이므로 自然數의 一은 그 基本要素인 一二가 차례로 配列되고 그 다음은 一이 二로 發展하는 것을 돕는 要素인 三이 配置되고 그 다음은 二가 一로 歸藏하는 것을 돕는 要素인 四가 配置됨으로서 變化와 生成의 序列이 決定된 것이다. 이것이 一二三四의 順位가 法則的으로 形成되지 않을 수 없는 河圖의 序列인 것이다. 이것을 變化의 法則인 五行運動에서 보면 水火는 宇宙變化의 基本要素이고 木金은 幇助的 要素이므로 水火를 一二順位로 하고 木金을 三四位로 하였다는 말과 相通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生數 중에서 아직 남아있는 것은 五이다. 五는 生數 中에서 中數다. 이것을 五行의 槪念으로 바꿔놓으면 土다. 土의 性格이 不偏不黨한 中이라면 五의 性格이 그러한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水火金木이 偏僻된 性格者라면 一二三四가 그러할 것도 當然한 것이다. 그러므로 一二三四의 다음에 五가 配置되어야 할 것은 水火金木의 中位에 土가 있어야 하는 것과 一般인 것이다. 그러므로 五는 數列의 中位인 五位에 配置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河圖를 살펴보면 中央의 五가 十에 依하여 包圍 當하고 있다. 五는 一二三四五의 生數의 끝이므로 十의 가운데 있으면서 生하려는 뜻을 內包하고 있는 것을 表象한 것이다. 위에서 變化의 化生數인 生數의 成立을 말했다. 그러면 다음은 變化形成數인 成數의 配置된 理由를 말하겠다.

  宇宙를 彌滿한 것은 萬物이다. 萬物은 大小와 粗密의 反復運動을 하면서 形上形下에 形象을 나타낸다. 그 運動의 過程에서 形而上的 表象이 바로 生數인 一二三四五의 化生이며 形而下的 表現이 成數인 六七八九十의 形成인 것이다.

  위에서 生數는 變化의 基本原理요 成數는 萬物이 變化하는 實現形態라고 한 것도 實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즉 成數는 生數의 基本原理를 얻음으로써 萬物의 實現形態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이고 生數는 成數의 實現形態를 얻음으로써 基本原理 즉 生命을 保存할 수 있는 것이니 이것이 陰陽의 互惠運動인 것이다. 그러므로 生數인 一二三四五는 成數인 六七八九十을 얻음으로써 萬物이 實現되는 것이다. 數가 自然自體인즉 數 自體의 發展도 自然自體의 發展과 同一할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것이 生數가 成數로 發展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즉 生數는 一二三四五의 五位이지만 五는 一二三四의 綜合者 土로서의 性格을 가졌으므로 五가 곧 一二三四의 代表이며 同時에 生成의 本質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一+五=六, 二+五=七, 三+五=八, 四+五=九, 五+五=十의 公式으로 成數가 形成된 것이다. 그런즉 六은 五라는 形成의 本質과 一이라는 生化의 基本原理가 서로 綜合됨으로써 물(水)의 形質을 갖추게 되었고 七은 五라는 形成의 本質과 二라는 生化의 基本原理가 서로 綜合되어 서로 불(火)의 形質을 갖춘 것이다.(以下略)

  이와 같이 하여 生數와 成數의 互惠生成하는 運動을 陰陽의 五元化運動인 五行法則으로 規定한 것이다.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출처: http://www.handongseok.org/lecture4.htm

黃帝內經講義 (4) 1965년 7월호

韓東錫


第一編 變化原理

    C. 十五分紀와 그의 槪念

  위에서 말한 바는 五行의 一般的 性質 다시 말하면 五行의 普遍的인 槪念에 不過했던 것이다. 그러나 宇宙의 變化原理인 五行은 各各 그가 지닌 바의 一般的 原理를 가지고 있거니와 여기에서 그의 一般的인 普遍性을 좀더 分析하여야 할 必要가 있기도 하며 또 그 自體가 普遍性에서 脫出하여 具體性을 띠려고 애쓰고 있기도 한 것이다.

  가령 木氣의 境遇에서 例를 들어보면 木을 生하는 힘(力)이라고 規定하는 것은 木의 作用에 대한 一般的인 모습에 不過한 것이다. 그러나 實際로 生하는 힘을 測定함에 있어서 그 힘의 强弱의 差를 無視할 수 없는 것이므로 여기에서 다시 힘을 細分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木의 힘이 絶對的으로 中道的 作用을 하는 境遇와 또는 너무 過强한 境遇와 너무 不及한 境遇의 셋으로 區別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各人이 現象界를 觀望할 때에 위에서 말한바와 같은 세 가지 分裂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無數한 分裂을 目睹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우리 人間의 認識이 언제나 皮相的인 觀望에만 머물기 쉽고 具體的인 觀察을 하여내지 못하게 되는 때문인 까닭이다. 萬一 吾人이 이것을 細密하게 觀察하여 낸다고 하면 그의 所謂 無數한 分裂을 하는 것 같던 變化狀態는 一이 三에서 分裂되고 또 그 一이 (첫번에 一이 三에서 分裂되면 三으로 分裂했다는 結果가 되지만 그 發展한 바의 三이란 것은 또한 獨立된 三個의 一에 不過한 것이다.) 다시 三으로 分裂하는 過程의 無數한 反復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즉 變化過程에 있어서의 所謂 分裂作用은 本質的으로는 三數의 反復分裂이므로 五行의 一般的 槪念은 다시 다섯 가지라도 그 하나하나는 반드시 三으로 分裂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畢竟 이것은 五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十五로 分裂되고야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槪念設定에 있어서도 十五種의 新槪念이 다시 設定되어야 하는 것이니 여기에서 一般的인 槪念과 具體的인 槪念으로 나뉘게 되며 따라서 十五分紀設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런즉 平氣 太過 不及이 五行의 三種이 된다는 것도 찬언할 餘地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以下에 그의 十五種槪念을 說明하기로 하겠다.

    (가) 평기

  木氣

  木氣의 平氣를 敷和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木의 平氣라는 것은 木氣가 生함에 있어서 가장 알맞은 氣運을 平氣라고 한다. (火土金水의 境遇도 一般이다) 그러므로 그 槪念을 敷和라고 하는 것이니 이제 그의 뜻을 硏究하여보면 「敷」자의 뜻은 한오리로 쭉 뻗어나가는 狀態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日用하는 말에서 그 例를 찾아보면 鐵道를 建設하는 것을 敷設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그의 建設하는 形態가 一絲不亂하게 두 줄로 쭉 펴져 나가는 까닭에 敷設이라고 하는 것이다.

  또 「和」자의 뜻을 生覺하여 보면 不强不弱하며 맞게 適用될 수 있는 것이 和인 것이다. 그런즉 木氣의 正氣는 오직 敷하기에 알맞으며 동시에 그것이 和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過不及이 없는 木化作用을 할 수 있는 形象을 代表하는 것이 바로 敷和인 것이다.

    (나) 火氣

  升明

  火의 平氣를 升明이라고 하는 것이니 升字의 뜻을 살펴보면 十字의 변에 千字를 쓴 것이다.(此後부터는 ㅆ十+ㅆ千이라고 表示하겠다.) 그런데 自然數에 있어서 十과 千은 모다 陰數의 分裂인즉(下의 自然數에 詳論할 것임) 宇宙間의 明은 여기에서부터 생기는 것이다. 그런즉 火氣의 平氣는 明을 生하기에 알맞은 것이며 또한 그의 正常的인 發展의 目的은 明을 生하려는 데에 있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면 明이란 것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말하면 火水가 均衡狀態에 놓였을 때에 明이 생기는 것이며 또한 그 明은 萬物을 完成시키며 모든 일의 目的을 達成하는 基本일 것이다.

  그러면 그것을 具體的으로 말하면 어떻게 생기는 것이며 또 그 正體는 무엇인가? 하는 것을 說明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그것은 精神問題를 說明할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다) 土氣

  備化

  土의 公正한 作用이란 것은 모든 化할 수 있는 條件이 갖추어졌을 때 비로소 平氣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化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모든 氣運이(金木水火土) 가장 잘 中化되어서 不偏不黨하게 되면 그것은 바로 木火金水와 같이 偏僻됨이 없는 오직 絶對的인 中이며 또한 正中化한 土가 되는 것이니 즉 備化가 되는 것이다. 化字의 뜻은 本是 和字와 同意異稱인것에 不過한 것이다. 즉 和는 事物에 대한 指稱이며 反面에 化는 形而上에 대한 標示인 것이다.

  그런즉 化는 陰陽之中이기 때문에 그의 作用하는 面으로 보면 모든 事物의 過不及을 調節하는 氣運이지만 그 象으로 보면 寂然不動한 動靜의 中인 것이다.(中은 알맞다는 뜻이 있음) 그러므로 一般的으로 土를 가리켜서 中이라고 하지만 嚴密히 區分하면 平氣의 土 즉 備化만이 絶對中인 것이다. 그런즉 여기에서 平氣의 土를 備化라고 命名한 것은 實로 這邊에 理由가 있는 것이다.(詳細는 土化作用에서)

    (라) 金氣

 審平

  金氣는 萬物을 生長에서 收藏으로 轉換하게 하는 最初의 氣運이란 것은 위에서 이미 말한바 있거니와 收하는 기운이 藏하는 기운과 같이 恒常 殺伐하는 性質이 있으므로 그러한 境遇에 金氣가 萬一 公正性을 잃으면 收藏之道에서 第一 重要한 目的인 包陽作用∼다시 말하자면 金水가 包藏하는 바의 精神이 滅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五行中에서 金氣처럼 平氣의 維持가 重한 것은 없는 것이다.

  金氣는 本來 平定하는 것이 그의 機能이지만 또한 그의 性質이 자칫하면 猛暴에 치우치기도 쉬우므로 그의 平氣를 審平이라고 한 것이니∼다시 말하면 平定하기는 하여야 하지만 잘 살펴서 하여야 하는 것이므로 審字에도 역시 土의 性質을 內包하고 있다는 것을 잘 記憶하면 되는 것이다.

    (마) 水氣

  靜順

  水氣는 本是 五行의 墳墓이며 또한 精神의 府庫이기도 한 것이다.(精神論에서 詳述할 것임) 그런데 水氣를 詳察하여 보면 그 象은 靜的이고 其性은 順한 것이다. 우리가 一般的으로 靜寂이란 말을 많이 쓰는데 이것을 잘 考察하여 보면 靜이라는 것은 絶對的인 것을 말하는 것이요 寂이라는 것은 相對的인 것을 意味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寂은 動하려고 하여도 動할 수가 없는 것이요 靜은 동하려면 動할 수는 있지만 動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을 글자의 象에서 살펴보면 寂字가 ㅆ ㅆ叔 으로 되어있는 것은 收藏하기에는 아직 어리다는 뜻이 있고 靜字의 象을 살펴보면 ㅆ靑ㅆ爭 한 것은 靑(木)과 相爭하려는 意志는 있으나 아직 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吾人은 여기에서 寂에는 土의 象이 內包되어 있고 靜에는 水의 象이 潛藏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 水의 平氣를 正名함에 있어서 靜字를 쓴 이유를 알 수가 있는 것이다. 또한 順字의 意味를 生覺하여 보면 順字가 ㅆ ㅆ頁 하였으니 坤의( 는 坤의 古字) 큰 머리라는 象이 있으니 즉 坤土의 始作이란 뜻이 있다.

  이와 같이 보면 水가 平意일 때는 絶對的인 靜的 狀態에 놓이게 되지만 水는 將次 動하여야 할 것이므로 土化作用의 要素도 內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水의 平氣를 靜順이라고 命名하였던 것이다.

  (附言) 難解를 걱정 말고 復習을 反復하면 講義가 前進함에 따라 모든 難題가 解決될 것인즉 念慮할 것은 없다.

  不及

  木氣

  委和

  木氣가 不及한 것을 委和라고 한다. 그런데 一般的으로 말하는 木氣가 不足이라고 하는 말과 不及이라고 하는 말은 어떻게 다른가? 不足이라는 말과 不及이라는 말은 그의 槪念이 전혀 다르다. 不及이라는 말은 힘(力)은 있지만 아직 時期가 이르다고 하는 境遇나 或은 힘이 어떠한 外的 障害 때문에 그 힘을 發揮할 수가 없는 때에 쓰이는 通稱이요 不足이란 말은 힘이 根本的으로 모자라는 境遇에 쓰이는 말인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말하는 不及之氣는 氣의 不足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不及을 말하는 것이니 不足과 不及을 혼동하여서는 안 된다.

  이제 여기에서 木氣不及을 委和라고 한 것을 檢討하여 보면 委字의 뜻은 委屈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어떠한 勢力에 威壓當하여서 生하려고 하여도 生하여 낼 수가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즉 委和라는 말은 和氣가 委屈되어서 나올 수가 없는 象態를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和氣라는 것은 무엇일까? 위에서도 이미 말한바와 같이 化氣라는 말과 和氣라는 말은 同意異語에 不過한 것이다. 勿論 天道가 모든 事物에 있어서 木氣를 生할 때에는 반드시 和氣(토)가 先行함으로써만이 坎水(子)의 凝固作用에서 脫出하여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면 健全한 和氣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은 말할 餘地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和氣가 委屈되어서 그의 所任인 化和作用을 하지 못한다고 하면 木氣는 生하지 못하거나 혹은 生한다 하더라도 그 生은 遲遲不進할 것이다. 그런즉 木氣의 不及은 木氣自體의 缺點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土氣의 化和 作用에 그 缺點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土氣가 正常化하여서 化和作用을 잘 한다면 木化作用도 正常的이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不及之氣를 委和라고 命名하였던 것이다.(土氣가 委屈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하는 것은 土化作用에서 解明할 것이다.)

  火氣

  伏明

  伏字의 뜻은 潛伏을 意味하는 것이다. 換言하면 기운이 없는 것이 아니라 潛伏하여 있기 때문에 머리를 들지 못하고 있는 象을 말하는 것이다.

  明에 對해서는 위에서도 말한바와 같이 神明論에 詳述할 것이거니와 다만 여기에서 簡單하게 말한다면 分裂을 어느 程度 抑制하면서 自己의 形體를 保存하려고 할 때에 自然的으로 形成되는 것이 明이니 이것은 天道運行의 必然的인 過程의 所産인 것이다.

  그러므로 天道의 運行은 萬一 이 過程(火의 過程에 過不及이 없으면 升明이라는 正常的인 氣化作用을 하게 될 것이고 萬一 不及하게 되면 明이 生할 수 없거나 或은 生한다고 하여도 微微 不振한 狀態에 빠지게 될 것이니 이것을 伏明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즉 不及을 伏明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즉 不及을 伏明이라고 하는 것은 明이 不足한 것이 아니라 一時的인 潛伏으로 因한 不及이란 것을 말하는 것이다.

  土氣

  卑監

  土氣가 알맞으면 備化之氣가 되므로 陰陽의 相乘을 잘 調節하게 되는 것이니 矛盾과 對立은 그 힘에 依하여서 融和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土氣가 萬一 不及하게 되면 土化作用은 正常을 잃고 卑監으로 化하게 되므로 陰陽의 對立과 矛盾을 仲裁하여 내지 못함은 勿論 事物의 備化作用이 中絶되어서 人事는 不和에 빠지게 되고 모든 生物은 氣가 下陷함으로 因하여 生命力인 陽氣가 發動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天地之道도 또한 同一한 原理에 屬하여서 陰盛陽虛가 되면 凶年과 疾病에 빠지게되는 것이니 이와 같은 阿鼻叫喚의 慘狀을 빚어내는 것도 또한 土氣不及에서 오는 것이다.

  이와 같은 意味에서 土氣가 不及한 象을 卑監이라고 하는 것이니 卑字의 뜻을 高字의 뜻과는 反對가 되는 것이다.

  모든 事物은 陽氣가 많으면 高化되게 마련이요 陽氣가 不及하면 卑縮하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陰陽의 本性인 것이다.

  監字의 뜻은 視 또는 臨의 뜻이 있는 것이다. 그런즉 土가 卑監이 되는 것은 前半期의 陽作用이 不及하였을 境遇에는 土化作用에 미치는 影響이 크므로 그 때문에 不及이 되는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土의 本性은 솜(綿)처럼 피우는 作用이 있기 때문에 모든 事物을 醇化함으로써 事物의 組織을 中化시키는 것인데 萬若에 土가 下陷하여 卑監이 되면 土가 제구실을 못하게 되고 오직 下陷만을 계속하므로 다만 낮은 쪽만 바라본다는 뜻에서 卑監이라고 命名한 것이다.(詳細한 것은 土化作用을 論할 때에 詳述할 것임)

  金氣

  從革

  위에서 金氣의 平氣가 審平이란 것을 말한 바 있다. 金氣가 萬一 金의 그 사나운 性格 때문에 殺伐의 念慮를 警戒하여야 할 것은 勿論이지만 不及하는 境遇에 있어서도 그것만 못하지 않은 걱정이 있는 것이다.

  金이라는 것은 本是 收藏의 始初이기 때문에 木火의 때에 發展했던 陽을 自己(金氣)의 품안에 包藏하려는 本能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金과 火는 가장 相爭이 甚한 對立性을 가지고 있으므로 土의 仲裁를 기다려서 自己의 所任을 遂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土가 萬一 適當히 仲裁를 하면 金이 平氣를 얻을 수 있고 土가 萬若 調和力을 잃으면 金이 火를 包藏할 수 도 없으며 雖是 包藏한다고 하여도 이것은 金의 正氣를 나타내지 못하게 되므로 結局 金氣가 不及이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金氣의 不及을 從革이라고 하는 것이다.

  革字의 뜻은 一般的으로는 改革이라는 말로 쓰여지는 것이나 그러나 좀더 詳細히 稽考하여보면 革字와 皮字는 그의 槪念이 서로 다르다. 皮字의 뜻은 生命體 그대로 있을 때를 말하는 것이오 革字의 뜻은 生命體에서 이미 離脫시키서 人工을 加했을 때에 革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製革이라는 語彙는 있어도 製皮라는 말은 없는 것이다.

  勿論 이것은 皮에다가 人工을 가한 境遇를 말하는 것이거니와 天工의 경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위에서 말한바와 같이 金火가 交易하는 過程에서 萬若 火氣가 尙多하기 때문에 金의 收藏作用이 微弱하게 되는 그 象을 가리켜서 革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것을 人體에서 觀察하여 보면 皮膚의 毛髮은 火氣가 過하고 金氣가 不及할 때에 毛髮이 脫落되는 것과 同一한 原理에 속하는 것이므로 이러한 現象을 革化라고 한다. 그러므로 金氣不及의 作用을 從革이라고 하는 것이다.(詳細는 金火相爭에서)

  水氣

  流연

  水氣라는 것은 本來 流動의 源泉이며 萬物의 生命이며 精神의 府庫라는 것은 위에서 이미 말한바 있다. 그렇다면 水氣는 어떻게 流動하는 것일까? 하는 것을 考察하여 보기로 하자. 宇宙안에 있는 森羅萬象은 動하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나 그 動하는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면 어느 하나 할 것 없이 물(水)의 流動이 아닌 것이 없는 것이다. 胎卵草木은 물덩어리에서 出發하게 마련이며 萬華方暢의 華麗한 춤도 또한 懸水三千 의 물(水)의 律動에 不過한 것이다.

  그런즉 萬物은 물에서 나왔다가 물로 다시 돌아가는 輪廻反復인 것뿐이다. 이것을 易에서는 坎이라고 하는 것이요 五行學에서는 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 水라는 것은 果然 어떠한 것인가.

  그것은 바로 水氣自體의 特徵인 凝固力으로써 萬物의 生命이며 또한 精神이기도 한 陽덩어리를 密閉하는 作用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水氣가 一旦 門을 닫으면 核은 그의 陽을 貯藏하는 것이요 萬若 門을 열면 싹이 터서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 모습이 바로 水氣가 作用하는 形象이며 또한 律動하는 물의 幻像인 것이다.

  그러한 까닭에 人間 世上에는 善惡의 對立과 生存의 競爭이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極致에서 살펴보면 萬物의 變化過程은 다만 물 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헤엄쳐 나오는 일만을 反復하는 潛水夫의 一生이야말로 바로 變變化化하는 造物界의 生涯와도 彷佛한 것이다.

  그런즉 물은 水氣에 의해서 形成되어진 것인즉 水의 存亡은 바로 萬物의 存亡인 것이다. 그것은 水源이 마르면 江이 마르게 되는 것과 같이 水氣가 宇宙에서  渴되어버리게 되면 律動하는 물의 變化는 찾아볼 수도 없겠기 때문이다.(詳細는 水火一體論에서)

 

 

  그러므로 水氣가 不足한 것을  流라고 命名한 것이니  字의 뜻은 一般的으로 물이 마른다는 말이지만 이 字에는 이것밖에  字의 뜻이 있는 것이다.  자에는 閉塞한다는 뜻이 있으므로 水氣가  한다는 말은 渴한다는 뜻과는 다른 것이오나 다만 水氣가 不及하다는 뜻뿐인 것이다.

  流字는 古字를  不자로 썼던 것이다. 옛적에는 왜 이와 같이 流字를  不로서 標示하였던가? 이제 여기에서  不자의 象을 考察하여 보면  不字는 ㅆ水ㅆ不 하였으니 不자의 뜻은 木이 아직 一을 貫通하지 못하고 있는 象이다. 그러나 이 字를 水邊에 쓴 것은 不이 木으로 못된 것은 一水의 障碍때문이란 것을 알 수 있도록 暗示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즉  不字의 象 가운데는 動하는 힘이 潛藏하여있는 象이 있는 것이므로  流하는 말에는 動의 根源이 아직 不及하고 있다는 意味가 內包되어 있는 것이다. 水不及을  流하고 한 것은 실로 이러한 深奧한 理致가 있기 때문이다.

  太過之氣

  위에서는 不及으로 因한 缺點을 말했거니와 여기에서 말하려는 바의 太過는 바로 그의 反對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기운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物化作用의 正常的인 發展과 收縮에 支障을 招來하는 境遇를 말하려는 것이다.

  木氣

  發生

  木의 太過를 發生이라는 槪念으로 命名한 것을 不及의 槪念을 委和라고 한 것과 比較硏究하여 보면 가장 明瞭한 것이다.

  그러므로 委和를 和氣가 委屈된 것이라고 한다면 發生은 나아가는 힘이 너무 많을 것을 意味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例를 하나 들어보면 銃彈이 爆發하는 모습은 바로 木氣의 太過現象이기 때문에 爆發이라고 하는 用語가 되어있는 것이며 또한 여러 해 묵은 씨앗에서는 종다리가 나오는 것은 여러 해 묵어서 凝固作用이 過多하기 때문에 木氣는 따라서 過多하게 된 것이므로 이것을 發芽라고 하는 것도 또한 그 때문인 것이다.

  그런즉 이와 같이 五行氣가 平氣를 維持하지 못하고 太過나 不及이 생기게 되는 것은 허물이 水에 있는 것이며 따라서 其他 四氣의 境遇도 同一例인 것이다.(詳細는 生克論에서)

  火氣

  赫曦

  火氣가 太過한 것을 赫曦라고 하는 것이다. 火光이 沖天하는 것을 赫이라고 하고 日光이 曝射하는 것을 曦라고 한다.

  그런즉 赫曦라는 말은 灼熱이 蕃盛하는 象인즉 그것이 바로 火氣太過하는 모습이며 또한 伏明의 反對인 것이다.

  易에서는 이것을 亢龍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 뜻은 陽氣가 너무 많아서 限없이 上升하여 後悔莫及의 境地에까지 오르는 象을 意味하는 것인즉 亢龍과 赫曦는 同一한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다만 亢龍이라는 것은 陽氣의 縱發하는 性質을 警戒한 것이오 赫曦라는 것은 陽性의 橫散하는 暴威를 말하는 것이니 각각 陽性(火)의 一面씩을 說明한 것이다.

  그러므로 植物이 萬一 赫曦之氣를 만나게 되면 枯死하게 마련이요 人間의 生理組織에 陽盛陰衰의 變故가 생기게 되면 빳빳하게 마르고 살이 생겨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니 이것들은 모다 赫曦의 罪科인 것이다.

  土氣

  敦阜

  土氣의 太過를 敦阜라고 하는 것이다. 敦字의 뜻을 生覺하여 보건대 敦字와 厚字는 意味가 同一한 것 같지만 實은 다르다. 氣化作用이 두터워지는 것을 敦이라고 하고 形化作用이 두터워지는 것을 厚라고 하는 것이다.

  阜字의 뜻은 土山이나 大陸이나 혹은 肥大한 것들을 指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阜字와 丘字는 意味가 서로 다르다. 丘는 阜에 비해 面積이 훨씬 적은 것을 말하는 것이니 氣가 넓게 펴져서 이룬 것은 阜가 되고 氣가 잘 펴지지 못하고 이루어진 언덕은 丘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즉 土化作用이 中正을 잃으면 或은 不及하여서 丘가 되고 或은 太過하여서 敦阜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경우는 前記한 赫曦의 경우와는 反對로 모든 組織이 지나치게 繁殖하게 되므로 사람이나 動物같은 것은 너무 肥大하게 되고 草木의 경우는 根幹에 비해서 枝葉이 지나치게 茂盛하는 結果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金氣

  堅成

  堅字와 固字는 그 뜻이 서로 다르다. 表氣가 굳어진 것을 堅이라고 하고 裏氣가 굳어진 것을 固라고 한다. 그러므로 金의 性質은 堅이요 水의 性質은 固인 것이다.

  成字의 뜻은 事物이 完成된 것을 意味하는 것이니 예컨대 果穀의 完熟이나 人事의 完決은 모다 成인 것이다.

  이와 같이 보면 收와 成은 同一 意味로 相通되는 것이다. 但只 火의 立場에서 보면 成이지만 反面 金의 立場에서 보면 收인것 뿐이며 또 全體的(變化的) 見地에서 보면 收라고 할 것이며 個物的(四時的) 見地에서 보면 成이라고 할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金氣가 太過하다는 말은 堅으로서 成收하였다는 말이므로 이것을 堅成이라고 命名하였던 것이다.

  그런즉 金氣의 경우에 있어서도 다른 原質의 경우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거기에 隨伴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것은 모다 金이 審平이 되지 못한데서 오는 犯罪인 것이다.

  水氣

  流衍

  流字는 古字로 쓰면  不로서 표시되는데  不의 象을 보면 여기에는 動하는 모습이 內包되어 있다는 것은 前에 말한바 있다.

  衍字는 ㅆ行ㅆ水하였은즉 여기는 動하는 象이 있는 것이며 또 反面에는 水가 行하려고 하여도 行해내지 못하는 象도 있는 것이다. 이 글자의 意味를 詳考하여 보면 늘어진다는 뜻도 있고 또 箱子라는 뜻도 있는 것이다. 그런즉 여기에서 流衍이라는 槪念을 檢討함에 있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事實을 알아낼 수가 있는 것이다. 즉 衍에는 늘어질 수 있는 바탕이 있기는 하지만 水氣가 太過하기 때문에 오히려 箱子속에 幽閉당하여 있는 象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流衍이라는 槪念속에는 動할 수 있는 要因만 갖추고 있을 뿐 아직 감히 동해내지 못하고 있는 象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不及之氣인  流와 이것을 비교해보면  流의 경우에 있어서는 動할 수 있는 힘이 缺乏한 것이 아니고 水의 凝固力이 太過하기 때문에 감히 動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에서  流는 內的 條件의 不備에서 생기는 缺陷이며 流衍은 外的 狀態의 不應에서 오는 事故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① 五行法則과 엠페도클레스의 原理

  B.C. 495∼435 間에 希臘의 哲人 엠페도클레스 Empedokles는 宇宙의 原質을 四原素로서 主張한 일이 있다.

  그가 이와 같은 主張을 하게 된 것은 畢竟 存在와 生命問題를 矛盾없이 解決하여 내려는 意圖에서였으리라고 生覺된다.

  그가 이와 같이 四元論을 主張하고 탈레스Thales 以後의 一元論을 排斥하게 된 것은 그로서는 여러 가지 理由가 있었겠지만 吾人이 볼 때는 그가 古代의 一元論을 그의 머리로서는 演釋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라고 生覺되기도 하는 것이다.

  아니 도리어 初期의 自然哲學을 無價値한 것으로 輕蔑하였을런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것은 오직 옘페도클레스에 있어서만 局限되었던 것은 아니고 歷代 哲學들의 通弊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筆者가 여기에서 論하려는 바는 그의 短點을 指摘하거나 批判하려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의 長點的인 着眼을 들어서 東洋的인 象數原理와 比較하여 보려는 것이다.

  이제 아래에 잠시 그의 所論을 紹介하여 보기로 하겠다.

  宇宙의 原質은 불(火), 공기, 물(水), 땅의 넷으로 生覺하고 다시 그 性質을 區別하여 말하기를 四種의 原理는 變할 수 없는 自己 同一性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서 다만 그 變化하는 性質만 다르다고 生覺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 四種의 根源은 서로 그의 性質을 달리하면서도 또한 永遠히 같은 性質을 確保하고 있는 것이며 따라서 같은 것에도 還元되지 않으며 아무런 새로운 性質도 가질 수가 없고 다만 離會集散함으로써 現實界의 變化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면 이와 같은 異質的인 四原素들이 어떻게 離會集散 할 수 있는가? 하는 問題에 對答하기를 그것은 四種의 根源이 가장 잘 融合된 圓球로서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生覺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分合集散하는 要因으로서 憎惡와 사랑을 生覺해 냈으니 憎惡로서는 分離시키고 사랑으로서는 統合시킨다고 主張하였던 것이다.

  以上에 論述한 바는 그의 思想의 要約이거니와 筆者가 여기에서 그것을 要約하는 것은 그의 所論 中 「四種의 根源은 서로 性質을 달리하면서 또한 永遠히 같은 性質을 確保하는 것이며 같은 것에로 還元되지도 아니하며 아무런 새로운 性質로 가질 수가 없고 다만 離合集散함으로써 現實에 變化를 나타낸다」고 하는 卓越한 觀點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論文을 詳察하여보면 그의 四原質 自體도 아직 完全치 못하며 또한 四原質의 基本點에 對해서 論及하고 있지 못한 것이다. 그것은 비록 希臘 前期의 自然哲學 다시 말하면 그 時代의 一元論을 理解하지 못하였던데 緣由한 것이며 따라서 後期的인 變質要因이기는 하지만 비록 그렇다하더라도 여기에는 아직까지 前期的인 一元論의 命脈이 남아있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東洋의 象數原理 즉 木火土金水의 法則인 運動原理와 彷佛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思想을 조금만 修正하여서 運動하는 原質이 五元素임을 밝히고 또한 그의 中樞가 陰陽의 本源인 太極이라는 點까지만 發展시켰더라면 그것으로써 宇宙原理는 完全하게 될 것이며 따라서 象數原理와 엠페도클레스 原理와의 사이에는 아무런 差異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렇게 하고 「四種의 根源은 서로 性質을 달리하면서도 또한 永遠히 같은 性質을 確保하는 것이며 또한 같은 것에로 還元하지도 아니하며 아무런 새로운 性質도 가질 수 없고 다만 離合集散하면서 現實界에 變化를 나타낸다」는 말을 하였더라면 希臘哲學의 次元은 훨씬 달라졌을 것이다.

  이와 같이 그는 動하고 있는 現實的 存在만을 보고 靜하고 있는 基本的 存在를 보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그의 思想의 一端에서 能히 엿볼 수 있으니 「憎惡로서 分離하고 사랑으로 統合한다」는 一節만에서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象數的 立場에서 보다면 木火發展의 過程에서는 憎惡心이 생기는 것이요 金水收藏의 過程에서는 博愛心이 생기는 것은 勿論이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憎惡나 博愛는 宇宙의 運動法則인 四象(木火金水)에서 抽出한 人道的 原理일 분이고 그 自體가 바로 分裂에서 綜合으로 誘導하는 萬象의 原質이거나 法則일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萬物이 分裂할 때 이것을 인간이 사랑한다고 하여서 그 分離를 停止시키거나 또는 萬物이 綜合過程에 있을 때에 우리가 이것을 憎惡함으로써 그 綜合을 停止시킬 수가 없다는 것을 認定하는 한 그의 理論은 空念佛이 되고 말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가 비록 現實과 本體, 人間과 天道는 同一한 法則에 依해서 움직인다는 點까지 看破하지 못하였다고 할지라도 사랑과 憎惡에도 分合의 原理가 있다고 본 點만은 看過할 수 없는 것이다. 一言으로 要約하면 그는 寶庫의 門고리는 잡았지만 아직까지 室內에 들어가지 못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東洋哲學은 이러한 愚를 犯하게 하지 말도록 하기 위하여서 모든 硏究에있어서 이와 같은 法則發見을 重視하였던 것이다.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출처: http://www.handongseok.org/lecture3.htm

黃帝內經講義 (3) 1965년 3월호

韓東錫

第二章 五運

第一節 五行學의 發達

  宇宙는 무엇으로써 構成되었을까?

  또는 어떻게 움직이며 무엇이 이것을 움직이게 하는가? 神의 攝理인가? 物質自體의 運動인가? 하는 問題는 科學的 哲學的인 領域을 거쳐서 有史以後 今日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大宇宙의 一大宿題로서 남아있을 뿐이다.

  돌이켜 西洋哲學界에서 這間의 消息을 살펴보건대 古代 希臘의 「탈레쓰」Thales(B.C. 640∼550)는 宇宙의 本質을 「물」이라고 生覺하였고 「아낙시메네쓰」Anaximenes (B.C. 588∼524)는 「空氣」라고 生覺하였고 「헤라크레이토쓰」Herakleitos (B.C. 535∼475)는 「불」이라고 生覺하였고 「엠페도클레쓰」Empedokles는 「불」 「공기」 「물」 「땅」의 四元素로 組織된 것으로 生覺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데모크리토쓰」Demoklitos(B.C. 460∼370)는 宇宙를 構成하는 原質을 原子로서 生覺하였던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原子理論의 始初가 되었으며 또한 唯物論의 胎動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宇宙의 運動을 原子群이 機械的으로 離合集散하는 現象으로 보았으며 따라서 感覺이나 視覺도 內外가 原子群間의 衝突에서 오는 反應이라고 生覺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의 科學文明이 싹트게 되었고 따라서 二十世紀의 華麗한 物質文明을 産出하기까지 이르렀거니와 本講에서 論하려는 바는 이에 대해서 그 功罪를 論하려는 것도 아니고 그 內容을 硏究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希臘의 自然哲學이 「데모크리토쓰」Demoklitos에 이르러서 科學化의 발판이 생기면서부터 「탈레쓰」Thales 以後 「엠페도클레쓰」Empedokles 까지 사이에 發達하였던 自然哲學의 硏究는 차츰 影子를 감추기 始作하였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哲學의 硏究手段이었던 自然法則인 精神的 方向이 차츰 物質的 方向으로 옮겨가기 始作하였던 것이다.

  勿論 十九世紀 初葉에 「헤겔」Hegel(1770∼1830)에 依하여 宇宙精神이 提唱되었고 또한 그의 獨特한 辨證法에 依하여 萬物의 生化運動의 規範인 自然運動의 原理를 一部分이나마 回復시켰다 할지라도 아직까지 遼遠하기 限量없는 것이다.

  당행 「헤겔」과 同時代의 사람 「쉘링」Scelling(1775∼1854)이 나옴으로써 自然原理와 그의 法則에 接近하였지만 哲學界는 아직까지도 여기에 注目하려 하지 않는 것 같으니 답답하고 애달픈 마음 禁할 길이 없다.

  그렇다면 宇宙原理를 硏究하는 데 있어서 가장 올바른 態度는 어떠한 것이어야 할 것인가?

  그것은 그의 影子에서 찾아 낼 수는 없는 것이오 正確한 本體를 찾아냄으로써만이 가능할 것이다. 왜냐하면 動하는 物質은 影子에 不過한 것이고 決코 本體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不拘하고 物質에서 宇宙의 本質을 찾아내려는 西洋哲學의 경우는 眞實로 緣木求魚와도 彷佛한 것이다. 여기에 오늘날 그들의 盲點이 있기도 하며 同時 「데모크리토쓰」Demoklitos의 過誤도 實로 여기오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東洋哲學 즉 象數學은 이 問題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

  五千餘 年 前으로 推算되는 먼 옛날 伏羲氏 때 물 속에서 河圖(龍馬가 그림을 지고 나온 것)가 나왔다. 伏羲氏는 이것에 대해 專心致思한 끝에 드디어 그 그림 속에서 거기에 變化莫測한 宇宙의 動靜하는 모습이 있다는 것을 알아내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무엇에 衣하여 「힌트」를 얻었는가? 河圖는 「象」(凡人의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볼 수 있는 準備를 갖춘 사람은 볼 수도 있는 모습이 「象」이니 이것은 無形이 有形으로 轉換하는 中間過程에서 나타난다.)과 「數」로써 象徵되어 있다는 事實을 發見하였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象」을 正確히 把握하기는 비록 어려운 일이고 또한 認識方法이 觀念에 屬한다 할지라도 「數」의 計算만은 自然數 自體가 分裂과 綜合하는 一定한 法則에 依하는 것이므로 數列이나 數式의 變化에는 거짓말이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象은 思惟와 認識에 依해서 觀察하고 그 「象」自體가 演出하는 바의 「數」의 分合現象은 이것을 反證하여주기 때문에 이것을 象數原理라고 하는 것이다.

  西洋에서도 數에 對해서 相當히 關心을 가지고 있었으니 비록 東洋에 있어서처럼 象數의 一元的인 原理로서는 發達하지 못하였지만 「피타고라스」Pythagoras(B.C. 580∼500)가 「萬物은 無限한 것과 有限한 것이 綜合하여서 生成하는 것이니 이것은 數의 奇偶가 綜合하여 變化하는 것과 同一한 原理」라고 말한 것이나 또 「쏘크라테쓰」Socrates(B.C. 469∼399)가 「幾何學을 모르는 사람은 자기의 學校에 오지도 말라」고 한 것 等으로 미루어서 生覺하여보아도 西洋에 있어서의 哲學과 數의 關係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伏羲氏의 象數發見은 이미 五十 世紀 前에 벌써 萬古不變의 眞理로서 이 世上에 擡頭하게 되자 이것이 文王, 周公, 孔子를 거쳐서 易學의 大系를 이루었고 다른 쪽으로는 伏羲, 箕子, 老子, 公孫龍子, 鄒衍을 거쳐서 陰陽五行의 變化原理를 完成하여 놓았던 것이다. 勿論 這間에 있어서 老子의 自然觀은 勿論 列子, 莊子 등이 寓話形式을 取하면서 自然原理를 解明함으로써 實로 偉大한 功積을 남겨 놓았던 것은 다시 말할 必要도 없는 것이다.

  위에 말한 것과 같이 學派에 區別이 있었고 敷衍하는 方法에 있어서 多少間의 差異는 있었을 망정 그러나 그 原理의 歸着點을 살펴보면 一源同流에 不過한 것이며 따라서 그 法則은 어느 것을 勿論하고 宇宙動靜의 原理에서 出發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東洋에 있어서의 哲學의 方向은 端的이 아니며 統一的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東洋哲學은 希臘哲學의 胎動期에 있어서처럼 그의 原質을 어떤 낱개의 物質이나 性質에서 찾으려는 것이 아니고 反對로 統一된 形象에서 찾으려는 것이니 즉 統一된 每個의 宇宙에서 찾아내려는 것이다.

  왜냐하면 東洋哲學은 前記한 바와 같이 河圖에 象徵된 바에 依하여 象數의 法則을 찾아내고 따라서 自然을 支配하는 宇宙精神도 이 法則에 立脚한 것이라는 것을 基本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如何한 生命體에 있어서나 그의 大小를 莫論하고 各各 小宇宙를 形成하고 있다는 事實을 看過하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이 萬物은 모다 每個의 小宇宙인 이상 그 宇宙라는 것은 精과 神의 反復하는 運動인 것이며 物과 質이 散合하는 모습에 不過한 것이다. 이리하여 精神과 物質이 서로 媒介하면서 끊임없는 變化 作用을 일으키게되고 그 結果로 生成된 것이 存在이며 따라서 生成을 가능케 한 그 原質이 바로 存在者인것이다.

  그러므로 「精神+物質=存在」라는 公式은 哲學의 硏究에 있어서 絶對眞理가 아닐 수 없으며 따라서 이 公式을 無視하고서는 宇宙의 本質을 찾아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不拘하고 [물]이나 [불]과 같은 物質에서 宇宙의 本源을 찾아보려는 一部 西洋哲學者가 犯했던 것과 같은 矛盾을 다시 되풀이하려는 學者도 없지는 않은 것이다.

  그러나 筆者는 上古의 希臘哲人들에게 無限한 敬意를 表하는 바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自然哲學的 思想 속에는 自然法則이 그냥 흐르고 있다는 事實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下에 論할 機會가 있음)

  却說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精神+物質=存在」라는 公式에 가장 忠實한 것이 우리의 立場인 것이다. 그렇다면 萬物이 動靜하는 모습도 역시 「精神+物質=存在」의 運動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런즉 吾人은 여기에서 精神的 存在와 物質的 存在를 抽出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며 따라서 精神存在에서는 精과 神을 區別하여야 할 것이며 物質存在에서는 物과 質을 辨別하지 않으면 안된다.

  萬一 그것들을 철저히 가려내지 못한다고 하면 그 法則은 宇宙의 本質을 探索하려는 法則으로서 너무나 無能力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이러한 哲學적 要求 때문에 이에 副應할 수 있는 自然法則의 發見이야말로 哲學徒에게 내려진 至上命令인 것이다. 그러므로 東洋哲學은 基本法則을 設定함에 있어서 「陽+陰=太極」, 「木+火+土+金+水=陰陽」이라는 公式으로 歸納되는 것이며 또는 「太極=陰+陽」, 「陰陽=木+火+土+金+水」로서 다시 演繹하기도 하는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萬物의 尺度이며 따라서 그의 分合運動과 그 本質을 測定하는 法則이기도 한 것이다.

  이와 같은 萬物의 過程的 變化에서 그 原理를 硏究할 수 있는 契機가 마련되었고 그 契機에 依하여 樹立된 法則이 바로 陰陽五行의 運動法則이며 同時에 萬物과 宇宙의 本源도 여기에서 찾아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法則은 宇宙間의 모든 變化現象을 探求할 수 있는 大本이기 때문에 哲學, 醫學, 科學, 法律, 政治, 社會學 등의 原理의 探求도 여기에 依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以下에 論하려는 바는 實로 그 目的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第二節 五行의 槪念

    A. 緖論

  五行이란 말은 위에서도 若干 言及한 바와 같이 太極이라고 불리우는 統一體가 太易 太初 太始 太素의 四段階를 거쳐서 비로소 太極으로 發展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發展되는 過程的 段階에 대해서는 列子에 詳述되어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略하거니와 要는 太極이 생김으로써 거기에서 다시 陰陽이기가 갈라지게 됐고 그 갈라진 바의 陰陽二氣는 거기에서 또 다른 分合作用이 促進되므로 因하여 五行의 原質이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니 이것을 五行이라고 하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地球 위에 있는 森羅萬象이 비록 數億을 算한다 할지라도 萬一 우리가 그것들의 性과 質을 一一이 따져본다고 하면 어느 것 할 것 없이 五行의 기운으로 되어있지 않은 것이 없는 것이다. 비록 그렇다 할지라도 이것을 萬一 科學的 立場에서 觀察한다면 宇宙間에 차있는 萬物은 모다 元素의 集合體에 不過할 것이다.

  그러나 原素라고 하는 것은 物質만의 單位이기 때문에 元素로서 모든 生命力 있는 物質을 規定함에 있어서 그 分析能力만으로는 오히려 不足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生命力이 없는 純粹物體를 分析하기에는 알맞은 方法이겠지만 活力體를 이것으로써 規定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일인 것이다.

  그러므로 象數의 法則인 五行法則은 有와 無를 測定할 수 있는 自體의 要素를 內包하고 哲學界에 君臨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즉 五行法則이란 것은 物質單位 만으로서 萬象을 測定하려는 方法이 아니고 精神이나 生命을 가진 살아있는 物質의 原質을 規定하며 또 測定하는 方法인 것이다. 古聖이 이와 같은 方法을 發見하게 된 것은 그 以前에 벌써 萬物의 動靜은 五行氣의 動靜이라는 것을 알아내었기 때문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萬物의 움직임은 五行이라고 하는 五原質의 綜合體가 움직이는 것인즉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하는 問題는 가장 重要한 硏究 課題인 것이다.

  모든 時空에 彌滿하고 있는 것은 그 自體가 五行의 氣運이 아닌 것이 없다. 그러므로 萬物이란 것은 별것이 아니라 宇宙間에 가득 차 있는 五行氣運이 凝固하게 되면 形體를 이루게 되고 萬一 瓦解하게 되면 다시 純粹한 五行氣가 되는 까닭이다.

  이러한 過程에서 生成하며 消滅하기도 하는 것이 物質이기 때문에 그 物質 속에는 躍動하는 精神과 生命이 內包되지 않을 수 없으므로 萬物은 반드시 自己自體의 活力素를 가지고 나게 되는 것이다. (精神과 生命의 創造에 대해서는 別途로 論할 것임) 宇宙間의 萬物은 이와 같은 條件에서 生成하였고 따라서 그 自體가 變化無雙한 것은 五行이 氣化變固하는 作用에 依한 것뿐이기 때문에 그 自體 亦是 無形과 有形의 어느 쪽에나 適應될 수 있는 五行法則만이 萬象硏究에 있어서 至上의 規範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 法則을 五行이라고 命名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爲先 「五」字를 위에 붙인 것부터 生覺하여보자. 五行이라는 法則에는 다섯 가지의 原質이 共棲하고 있다는 말이다.

  「行」字를 놓은 것은 氣運이 循環하는 모습을 말하는 것이니 거기에는 離散의 意味도 內包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여기에서 「行」자를 分析하여 보면 「 」(자축거리며 걸을 척)字와 「 」(앙감질 촉)字의 두자가 합하여 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 」字에는 가는 길에 비록 難關이 있다 하더라도 能히 行을 克服하여낸다는 뜻이 있고 「 」字에는 前進이 아니고 後退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行이라는 것은 一進一退를 意味하는 것이니 즉 「行=往+來」라는 公式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宇宙의 一往一來하는 모습이 五行氣의 運動規範이라는 것을 表示하기 위해서 如此命名한 것이다. 따라서 五行運動은 分合運動이기 때문에 陽運動의 過程인 木火에서는 分散하고 陰運動의 過程인 金水에서는 綜合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聚散의 意味가 (行字 속에) 內包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近日 돈이 聚散하는 곳을 「銀行」이라고 하며 物件이 聚散하는 곳을 「洋行」이라고 하는 것 같은 것은 實로 이 「行」자체가 가지고 있는 意味 때문인 것이다.

  그러면 다음은 五原質인 五行에 對해서 그의 한 개 한 개의 槪念을 硏究하여 보기로 하자.

    B. 五行의 一般的 槪念

  宇宙의 原質을 五種으로 命名할 때 이것을 木火土金水라고 하였다. 그러나 決코 木이라는 것은 나무 自體이며 火라는 것은 불 自體를 意味하는 것은 아니다. 勿論 木火土金水의 五行은 나무 불 흙 금 물 등의 形氣具存한 物質들로 包含되어 있는 것은 事實이다. 그렇지만 五行法則의 符號는 單純한 物質의 代表符號만은 아니요 그의 生命이나 精神도 代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形」자나 「氣」자를 附加하여 「木氣」或은 「木形」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하면 有形的인 形而下와 無形的인 形而上을 다 代表하는 것이 五行인 것이다. 萬一 哲學硏究에 있어서 가장 重要한 그의 原質을 代表하는 符號가 形의 上下나 或은 有無의 어느 한쪽만을 代表하는 데에 치우친다면 그것으로써 變化律動하는 大自然의 모습을 探索하기는 너무나 不自由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古代의 希臘人들이 犯했던 失手이며 또 오늘의 西洋哲學者들이 갈피를 못 잡고 彷徨하고 있는 點이기도 한 것인즉 그것은 바로 哲學의 基本法則이며 思惟의 唯一한 案內者인 法則自體에서 媒介된 矛盾點인 것이다.

  그러므로 象數學은 그의 原質法則의 基本槪念을 決定하는데 있어서 이와 같이 形과 氣(有無)를 自由로이 代表할 수 있는 融通性 있는 基本槪念을 設定하여 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人間의 任意的 決定이 아니고 大自然의 啓示이며 또한 命令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變化하는 大自然의 本質을 詳察하여 보면 이것은 形도 氣도 아닌 것으로써 다만 分裂과 綜合을 永遠히 反復하고 있는 宇宙變化의 一大幻像에 不過한 것이므로 그 運動에는 永遠한 恒久란 있을 수가 없고 다만 感應과 恒久가 反復하는 것뿐이라는 것을 直觀하고 움직이는 自然 그대로 ∼ 다시 말하면 그러한 自然을 測定하며 또 探索하기에 가장 알맞게 定한 것이기 때문이다.(註 直觀이라는 말은 틀림없이 觀察한다는 말이고 決코 보고 느낀 그대로라는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人間이 보고 느끼는 곳에는 恒常 自己의 感情이 앞서기 때문에 바로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니 이것은 直觀이 될 수는 없다. 그러므로 近來에 直觀을 「보고 느낀 대로」라고 解釋하는 것은 잘못이다.)

 

 

    가. 木

  木이라는 것은 奮發하는 기운을 代表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生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湧力이나 湧出하는 것은 다 生과 마찬가지로 木氣에 대한 象徵인 것이다.

  例를 들면 사람이나 動物의 境遇에 있어서 힘이 强하다는 것은 그것은 木氣를 가장 많이 所有하고 있다는 말과 共通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木氣가 生이나 湧出 湧力의 主體가 되는 것은 그 힘이 集中되어 있기 때문인 것이다. 萬一 그 힘이 集中되지 못하고 分散한다면 여기에는 生도 없으며 勇力이나 湧出도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生하는 그 힘은 如何한 形態에서 充足되어지는 것일까?

  變化를 일으키는 陰陽의 造化는 恒常 蓄積과 發散의 反復인 것이다. 그러므로 木氣가 發하는 때는 內部에 蓄積되었던 陽이 外部로 脫出하려고 하지만 萬一 外部의 陰形이 아직 勢强하여서 陽氣의 噴出을 許容하지 않게 되면 그 속에서 潛伏하여 있는 陽氣는 더욱 더욱 그 힘이 强하여 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힘이 脫出할 때에 생기는 反應이 바로 生이며 勇力이며 또는 噴出인 것이다.

  例를 들면 椅子나 寢臺 같은 것의 湧心鐵은 밟으면 밟을수록 점점 反撥力이 强하여 지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上記한 바의 木氣의 運動原理인 것이다.

  英語의 語彙에 實로 滋味있는 것이 있으니 「스프링」Spring이라는 單語 같은 것이 바로 그것의 一例이다. 즉 Spring이라는 「봄」「湧心鐵」「泉水가 湧出하는 모습」등을 表現하는 것인데 여기에서 生覺하여 볼 것은 英國사람들이 옛적에 이 單語를 말들 적에 벌써 우리가 只今 말하는 바의 木氣의 原理를 知悉하고 Spring이라는 語彙로서 以上과 같은 말본으로 統一시킨 것이라고 生覺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如何間 Spring이라는 單語에는 木氣의 機能이 가장 잘 代表되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木氣는 五行 中에서 어느 것보다도 陽氣를 抑制하는 힘이 强한 同時에 그 힘도 가장 强한 것이다. 따라서 慾心도 가장 强한 것이 또한 木氣인 것이다. 그러나 이곳이 바로 힘과 慾心을 埋沒하는 무덤이기도 한 것이다. 왜냐하면 木氣는 水氣를 발판으로 하는 最初의 發展이기 때문에 힘과 慾心이 强하지만 反面에서 보면 여기에 이르면 循環하는 바의 五行의 位置는 벌써 陽地에 접어든 것이니 그 힘과 慾心이 어찌 그냥 維持될 수 있을 것인가?

  水란 本是 凝固가 甚하여서 勇力을 潛藏하고 있을 뿐이고 뜻을 이루어내지는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때가 이르면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은 木氣로 變質되면서 힘(力)이 活動하기 始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水氣는 木氣의 母體가 되는 것이며 그 凝固를 爲主로 하던 水氣가 木氣의 때에 이르면 水氣의 凝固力은 점점 弱化되면서 陽氣는 潛藏에서부터 脫出하게 되므로 陽의 活動이 開始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木氣의 活動하는 모습이며 또 힘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自然數도 여기에서부터 火가 끝마치는 때까지는 逆數하게 되는 것이다. (自然數의 逆行云云은 「五行의 變化」에서 說明할 것임) 이와 같이 水氣를 바탕으로 發展을 하는 바의 木氣는 그가 漸漸 發展하는 동안에 이미 水氣에서 받았던 튼튼한 形質은 漸次로 엷어지게 되어서 火氣가 始作되는 곳까지 이르면 自己의 모습은 化하여 火氣로 바꿔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木氣가 發動하는 時期를 봄이라고 하며 또 東方이라고 하니 봄은 萬物의 싹(生)이 통가다리를 維持하는 때의 指稱인 것이오 東方은 陽이 發하는 곳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萬物의 싹이 다시 分裂하기 始作하는 때가 이르게 되면 이것은 火氣의 때에 속하는 것이므로 春氣는 여기에서 消盡하고 마는 것이다.

  이와 같은 理由로 人生一代에 있어서도 木氣發動의 時期는 바로 幼少年期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人間이 自己의 가지(枝)를 내기 以前이니 이것이 곧 人間의 봄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때는 힘도 漸漸 생기며 따라서 모든 發育은 앞에 올 蕃盛을 對備하고 있는 것이다.

      (註) 筆者는 위에서 發展이란 말을 썼다. 發展은 前進이란 말과 다르다. 前進은 다만 앞으로 나가는 現象인 反面에 發展은 前進이면서도 그 모습에 屈伸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많은 障碍物을 克服하면서 前進하는 것을 發展이라고 하는 것이다. 自然의 運動에는 前進은 없고 다만 發展이 있을 따름이다. 象數學의 硏究에 있어서 이와 같이 正名하지 않으면 모든 硏究는 끝장이 나고 마는 것이다. 따라서 律動하는 自己만의 모습을 알 수도 없게 되는 것이다.

    나. 火

  火氣란 것은 分散을 爲主로 하는 氣運이니 그러므로 모든 分散作用은 火氣의 象徵인 것이다. 따라서 宇宙의 모든 變化는 最初에는 木氣로서 出發하여 가지고 그 木氣가 끝날 무렵에 火氣가 繼承하여가지고 第二段階의 變化作用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 作用이 바로 長盛과 分裂을 爲主로 하는 바의 火氣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火氣가 分裂하며 자라는 作用은 그의 基盤을 木氣에 두고 있는 것이므로 木氣가 正常的인 發展을 經由하였을 때는 火氣도 正常的인 發展을 하게 되지만 萬若에 木氣가 正常을 잃었을 境遇에는 火도 亦是 不完全한 發展을 하게 될 것이니 이것은 火에서 뿐만 아니라 金木水火土의 어느 境遇에 있어서도 마찬가진 것이다. 그러므로 木氣의 發展은 통가다라를 維持하는 것이 特徵이었지만 繼承하여 火氣로 發展하게 되면 그 特徵은 벌써 消盡되고 分裂과 長盛이 特徵으로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木氣의 때에 힘과 勇氣가 特長이었다면 分裂과 長盛은 木氣에서 分家한 것에 不過한 것이다. 同時에 모든 慾心이 木에서 旺盛을 끝마치고 그 火氣의 때에 이르면 점점 稀薄하여지게 되는 것이다.

  裏面의 陽氣가 火氣의 때에 이르게 되면 外面으로 向하여 相當한 部分까지 나왔다는 證據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게 되면 形質은 自然히 軟弱하여져서 外部의 形과 裏面의 陽은 그들의 抗爭에서 形體가 陽氣 앞에 判定敗를 당하고 말 것이다. 이와 같이 힘이 弱化되는 反面에 外面은 더욱 華麗하게 되는 것이니 이것을 萬一 植物에서 觀察한다면 꽃피고 가지가 벌어지는 時期인 것이오 人生 一代에서 보면 靑年期인 것이다.(形과 氣의 互相對立하는 關係는 五行生克에서 論하겠음)

  그러므로 이것을 四時의 配屬에서 보면 여름인 것이며 또한 南方인 것이니 여름이야말로 外形을 보면 萬華方暢한 때이지만 內面에서 보면 힘의 空虛에로 가는 것이며 同時에 生長이 끝나고 老衰로 접어들여는 準備段階에 不過한 것이다.

  이와 같이 宇宙의 發展은(發展은 木火의 때에만 있음) 離別을 告하고 一大轉換을 일으켜야 할 때 金火의 相爭을 中和시키기 위하여 土氣가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다. 土

  위에서 木火의 生長過程에 對해 말했다. 萬一 宇宙間에 있는 모든 生長分裂이 無制限으로 發展한다고 하면 人間의 키가 數千 尺에 달할 수 있는 것이고 樹木의 높이가 하늘을 찌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天道에는 반드시 마디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發展은 生長過程에 있어서 盲目的인 前進이 아니고 發展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적은 마디에 不過한 것이고 이제 火氣가 끝날 무렵에 들어오게 되는 바의 土氣야말로 眞實로 큰 마디인 것이다.

  그러므로 萬物은 여기에서 生長을 停止하고 되는 것이니 그것은 첫째로 生長에서 成遂에로 轉換하려는 것이요 둘째로 金火의 相爭을 막으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金火相爭이란 무엇인가?

  天道의 運行은 木火에서 無限分裂을 하게 되면 分列은 一旦 中止되고 다시금 그가 이미 分裂한 바를 綜合하여야하는 것이니 이 綜合作用은 金水가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火氣의 分裂을 金水의 氣運으로 綜合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五行氣中에서도 金과 火의 性質은 유달리 서로 容納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金氣로서 火氣를 包圍하려하지만 火의 分裂은 金氣를 녹여버리기가 일수인 것이다.

  이것을 金火相爭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土氣가 中間에 介入하여서 이러한 弊端을 防止하는 것이 그의 任務이니 天道에 비록 四大節이 있다고 하더라도 土(未)만 더 큰 마디는 없는 것이다.(詳細는 土化作用을 說明할 때에)

  그러면 그 土氣는 果然 如何한 것일까?

  그 기운은 和順하여 不偏不黨하는 絶對的인 中和之氣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生長인 發展의 便도 아니며 成遂인 收藏의 便도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作用이 陽的인 動도 아니고 陰的인 靜도 아닌 것이다.

  이러한 公正한 存在이기 때문에 木火의 無制限한 發展을 防止할 수 있고 다시 成遂에로 誘導할 수 있는 唯一한 適格者인 것이다. 그러므로 土氣만은 外向性도 없고 內向性도 없기 때문에 또한 金火의 調節者로 登場하게 되는 것이다. 土는 그밖에 또 萬物을 繁殖시키며 살찌게 하는 일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木火金水와 갈이 一方的인 特徵에서가 아니고 土의 自然的인 調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例를 든다면 살찐다는 것은 마음의 平和에서 오는 것이고 또 肥 한다는 것은 細胞가 잘 繁殖하기 때문이란 것을 吾人은 知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즉 마음의 平和나 細胞의 繁殖은 전혀 土의 平和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과 같이 宇宙의 調和도 오직 土氣의 이와 같은 自然性에 依해서 만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土氣는 어디에 그의 발판이 있는 것일까? 勿論 火氣에 그의 基盤이 있는 것이다. 즉 火氣가 無限分裂할 때 생기는 副産物이 바로 土氣이므로 土는 有形 無形의 中間的인 存在인 것이다. 長夏가 土에 配屬되며 方位는 中央에 位하여서 萬物의 繁殖에 寄與하는 것도 또한 그의 自然的 功用인 것이다.

      (註) 自然이란 것은 其然(陽的 行動)과 不然(陰的 行動)의 中心이므로 그 特性은 絶對 公正한 것이다.

  그러나 土는 반드시 火氣의 때에만 생기는 것도 아니고 비록 大小의 差는 있을망정 四季에는 언제나 土氣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四季의 末은 土用(土의 作用)이라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그것은 後에 詳述)

  이와 갈이 土氣는 五行中에 가장 複雜微妙한 內容을 지니고 있으므로 簡單한 說明으로써 理解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第二節에 土化作用이란 題目에서 詳述하기로 하겠다.

  다만 여기에서는 土는 木火에서 發展했던 것을 金水에서 收藏할 수 있도록 媒介하며 同時에 金火相爭을 調和하는 至公無私한 存在이며 따라서 五行中에서 萬物을 살리게 하고 繁殖시키는 唯一한 存在라는 것만 論及하려는 것이다.

    라. 金

  宇宙의 變化는 土氣의 公正無私한 黃婆(土의 仲媒調和하는 것을 黃婆의 作用이라고 함) 作用에 依하여 木火의 作用에 終止符를 찍게 하고 金水가 作用하게 하는 것이 이른바 陰陽作用의 四大節인데 이와 같이 收藏단계로 접어드는 最初의 段階가 바로 金氣의 作用인 것이다.

  그러므로 金과 木은 그 性質이 全혀 反對이니 木의 때에 있어서는 裏陽이 表面으로 脫出하려는 發展의 最初段階였지민 金氣의 境遇는 表陽이 內部에 收藏되어지려는 靜歸運行의 始作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萬物은 春氣에 있어서는 그 힘이 表面으로 湧出하려고 하지만 가을에는 內部에 潛入하여 고요히 잠들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봄에는 萬物의 外殼이 軟化하여지는 것이나 가을에는 外殼이 漸漸 硬變하여지게 되는 것이다. 吾人이 봄에는 被服을 漸漸 엷게 입으며 가을이 되면 차츰 두껍게 입는 것은 從天道의 原理에 依함이요 또 靑少年은 皮膚毛髮이 부드럽고 아름답지만 壯老期에 접어들게 되면 그 容貌 筋骨이 거칠고 추하게 마련인 것은 避할 수 없는 金木의 反復作用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와 같은 金木의 反復作用은 金火의 散布作用에서 媒介되었던 것이며 金火의 散布作用은 土에 依해서 媒介되었던 것이다.(金火의 散布作用은 「寅申相火」에서 論하겠음)

  그러므로 自然數도 여기에서부터 順行하게 되는 것이니 여기 대해서는 다음 「數의 變化」를 말할 때 詳述할 것이다.

      (註) ([散]字의 뜻은 火의 無限分裂을 意味하는 것이오 [布]字의 뜻은 金氣가 綜合作用을 始作할 때 表面부터 統一이 形成되어지는 모습을 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金氣는 木氣와는 全然 反對되는 作用을 하는 것이니 그 基盤을 土에 두고 있으며 그 性質은 堅斂을 爲主로 하므로 人間의 慾心도 金氣에서 始作하여 木氣에서 끝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金氣는 季節로 보면 가을에 配屬되며 方位로 보면 西方이고 人間一代에서 보면 老壯期인 것이다. 이것은 모두 收斂을 象徵하는 것이니 그것은 다음에 올 凝固作用을 爲한 準備인 것이다.

    마. 水

  萬物의 收斂作用은 위에서 말한바와 같은 金氣作用을 거쳐서 비로소 收藏作用을 完成시키는 것이다.

  金氣는 表面을 堅斂시키는 일을 하였지만 水氣에 이르면 그 深度가 濃厚하여져서 內部까지 凝固시키고 애오라지 萬物의 生命인 核만은 本來의 軟性대로 保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가 生命의 倉庫이며 또 精神의 집인 것이다. 이것이 躍動의 本源이며 形貌의 母體인 것을 어찌하리오.

  이와 같은 水氣에 依하여 萬象은 精神과 肉體를 얻어서 그의 一代를 華麗하게 裝飾하는 것이며 또다시 歸藏하고 마는 玄微한 寶庫인 것이다. 象數의 硏究目標는 實로 여기에 있는 것이며 따라서 數千年 哲學史가 메마른 筆鋒으로 表皮만 더듬고 만 것도 畢竟은 玄玄妙妙한 이 境地를 開拓하지 못하였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러나 東西의 古代 聖哲들의 한마디 한마디 속에는 言中有骨이었던 것을! 이것이 바로 「물」의 意志이며 坎의 變化인줄을 누가 알았으리요.

  却說 이와 같이 玄妙한 水氣는 오로지 自己의 全部를 犧牲하면서 淸楚한 봄과 華麗한 여름을 꾸미고 莊嚴한 가을과 嚴肅한 겨울을 만들어서 自己保存을 反復하는 無窮한 大宇宙의 本質이며 同時에 現實存在를 超越한 基本存在로서 永世無窮토록 이 宇宙에 君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즉 물이야말로 宇宙의 本質이 아니고 무엇이리오

  「탈레스」(Thales)가 「宇宙의 本質은 물이다」라고 외친 한마디가 眞實로 蔑視의 對象일 것인가? 尊敬의 對象일 것인가?

  經驗은 眞理만큼 眞實한 경우가 많다.

  나는 數年 前에 어떤 園藝家에게서 다음과 같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百合꽃을 크리스마스 때에 내면 좋은 장사가 되는데 그것을 그 때에 알맞게 내는 方法으로서 六七月에 百合의 뿌리를 七八度 가량의 冷室에 넣었다가 溫床에 栽培하면 그때에 꽃이 滿發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勿論 그는 우연한 經驗에서 體得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왜 그렇게 되는 理由는 모른다. 그러나 宇宙의 變化現象을 살필 줄 아는 사람이 보면 水氣作用의 功德인 것을 어찌하리요.

  嗚呼라 偉大한 眞理가 어찌 百合 한 송이에만 適用되리오!! 天地萬物이 모두 그 품에서 나(生)서 또다시 그 품안에 돌아가고야 말 것을!!

  銃알은 다져질수록 멀리 나가게 마련이며 한 알의 씨앗도 겨울의 凝固作用을 얻은 후에야 강한 싹을 내지 않는가

  그러므로 水氣의 活動은 萬物의 活動이며 萬物의 活動은 또한 水氣의 活動인 것이다.

  다만 北方 水氣를 四時에 配屬할 때 겨울에 속하는 것은 그의 本位를 말함에 不過한 것이다. 水氣는 火氣와는 性質이 相反되어서 發展의 敵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 相殘하는 곳에서 萬物의 生命이 保存되는 絶對的인 必要惡인 것이다.(詳細는 水火一體論에서 밝히겠음)

  (附言) 以上 論述한 바를 硏究함에 있어서 相當히 理解되지 않는 곳이 많을 것이나 다만 理解되지 않는 곳을 熟讀하고 熟考하면서 前進하면 講義가 進行함에 따라서 절로 解得하게 되는 것이니 이 點을 留意하면 된다. 筆鋒으로서 舌端을 代行하려하니 紙面과 時間이 모든 것을 許諾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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醫林落穗 1963년 6월호

韓東錫

緖論

  『誰知盤中손이 粒粒皆辛苦랴』하는 말이 있다. 이것은 古人들의 節米思想에 대한 아낌없는 述懷이다. 이러한 心境을 가진 詩人의 눈에 萬一 벼이삭 한개만 눈에 띄었다면 보다 더 感情에 찬 詩句가 또 흘러 나왔을 것이다.

  世態人情의 不勻性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다. 旬日一食도 못하여 集團自殺을 企圖하는 사람에게는 恨없이 貴重한 金粒落穗도 쌀밥이 싱거워서 못먹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발아래 흙과 함께 부서져버릴 것이 아닌가?

  이것은 우리 醫學徒들에게도 吟味할 만한 가치가 있다.

  古人의 名著나 名醫의 秘方이라면 血眼이 되어 돌아다니지만 臨床周邊에 흩어져 있는 우리 醫林의 落穗는 疏忽히 하는 傾向이 없지 않다.

  筆者는 這間 어떠한 患者를 治療하다가 落穗 한개를 發見하고 過去의 나의 學究生活이 적은데 注意를 기울일 줄 몰랐던 形式的인 惰性을 慨嘆한 적이 있다.

  그래서 筆者는 이 글을 쓰면서 또 이렇게 생각하여본다. 『萬若 三千會員들이 一人 一穗 運動을 일으킨다면 - 臨床 周邊에서 주울 수 있는 - 또한 自己自身을 充分히 가르쳤다고 생각하는 餘適들에다가 生理學的인 뼈와 病理學的인 살을 붙여서 學界에 내놓는다면 이것이 바로 생생한 臨床 敎科書가 될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하여 본다.

本論

  때는 一九六三年 四月一日 弟嫂가 나의 患者로서 忠州에서 왔다.

  全身 浮腫에다 몸을 자유로이 움직이지 못하는 -보기에도 무시무시한- 환자였다. 罹病過程을 잠간 打診하였더니 漢藥을 몇 貼 먹기만 하면 浮腫은 당장에 빠지는데 數日 內로 또 再發하곤 하더니 乃終에는 漢藥도 效果를 나타내지 못함으로 할 수 없이 忠州道立病阮에 가서 診察을 시켜보았더니 急性子宮炎과 腎臟炎이 竝發하였기 때문에 至急히 子宮 切除手術을 하지 않으면 生命이 危篤하다는 것이다.

  筆者는 以上의 事由를 들은 다음 診察하여 본즉 小腹部는 勿論 大腹까지도 堅硬如石하며 굉장한 痛證이 있어서 都是 觸診을 할 수가 없을 程度고 脈은 極히 沈伏狀態를 나타내며 또 惡寒이 恒常 나서 더욱 苦痛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異常한 것은 이러한 重態임에도 不拘하고 食事는 如前하다.

  筆者는 이 病의 本末 關係를 쉽게 찾을 수 있는 어떠한 「힌트」를 얻었다. 漢藥 몇 貼만 쓰면 浮腫이 쉽게 빠지나 곧 다시 再發한다는 事實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病源이 浮腫이 아니라는 證據다. 萬若 그 本源體가 浮腫인 것이 事實이라면 그럴 리는 없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飮食이 如前하다는데서 病이 下焦陰中에 陷入한 것이고 아직 胃氣를 犯하지는 않았다는 事實도 아울러 發見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 病은 무엇일까? 所謂洋醫가 말하는 子宮炎症이 틀림없다.

  우리들로서 이야기하면 이것은 血가證인 것이다. 그러나 아직 診斷이 끝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血가證을 다시 區分하여야 하겠기 때문이다. 血中血滯와 血中氣滯의 어느 쪽인지를 가려내지 못하면 안 된다. 그러나 患者의 病狀은 隱然中에 『나는 血中氣滯다』하고 一大暗示를 던지고 있지 않은가? 萬一 血中血滯라면 陰偏在於下 陽偏在於上하는 關係로 반드시 上焦諸疾이 오는 것이 通常인데도 不拘하고 그러한 副證이라고는 全然 없다는 事實에서 筆者는 이 病의 原因을 血中氣滯라고 斷定하고 處方을 썼다.

  물론 全身浮腫은 考慮에 넣지도 않았다. - 이 境遇 浮腫된 原因은 論外所關이므로 省略한다.

 

 

  處方은 當歸四逆湯에다가 梔子一錢을 가하였다. 三日 服用한즉 患者가 매우 氣分이 輕快해지고 浮腫이 全然 없어지고 惡寒이나 痛證도 없다. 腹診을 하여보았더니 子宮部位에 鷄卵狀의 積塊가 있어서 壓痛을 느끼는 外에는 病痕迹이라고는 全然 찾아볼 수 없을 程度다.

  그러나 十日 後 다시 診察하여본즉 十日前 診察時와 比하여 少毫의 差異點도 發見할 수 없었다. 筆者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 충격이란 十日前에 意外의 快效를 發見했을 때 보다 훨씬 그 以上이었다.

  落穗를 주운 것도 바로 今後에 속하는 일이다. 以上 所記한 事實이란 다만 다음에 올 事實을 紹介하기 위한 前奏曲인 것뿐! 어떤 意味에서 보면 時間과 紙筆의 浪費에 不過한 것이다.

  却說! 筆者는 생각하였다. 이것은 반드시 病理的 推理에 어떠한 잘못이 있다고. 그렇다면 무엇일까? 하고 推理를 거듭하여 보았으나 알 수는 없었다. 漢醫學이 아무리 親切하다고 자랑해보았댔자 이런 境遇의 說明을 찾아낼 수는 없다. 다만 理囊 속에서 끄집어낼 수밖에 없는데 元來 石頭라서 아무런 神通한 道理도 없었다.

  그러는中 우연히도 「會陰」一句가 머리에 떠올랐다. 『왜 聖人은 會陰이란 말을 使用하였을까』하고 생각하여 보는 것이다. 『아- 諸陰이 會合하는 곳이란 뜻이로구나』하고 중얼거렸다.

  이때 머리 속에 어떤 閃光이 비췄다. 腹部는 三陰所行之地인데 이 三陰이 全部 會陰穴을 거쳐서 會通하고 있지 않은가? 萬若 그렇다면 三陰 中에서 指揮役을 어느 經絡이 맡는가? 조용히 經絡分布를 考察하여 보면 오직 厥陰經이 少陰 太陰을 둘러싸고 있다는 생각이 떠오르자 患者의 腹部와 股脚間의 橫紋部의 筋을 押按하였더니 痛證을 느낀다. 그리고는 다시 계속해 생각한다. 男女의 腹部에는 竪筋이 둘러싸고 있지 않은가? 竪筋의 司令官이 厥陰經이라는 것을 아울러 考慮할 때 이 疾患의 所侵之道는 오직 肝經之咎라는 結論이 저절로 나온다. 아 一夫 金恒 先生이 二八數가 「所謂堯舜闕中之中」이라고 暗示한 卓見 앞에 머리가 저절로 수그러지는 것을 어찌하리오.

  이 순간에 筆者는 저도 모르게 羞惡之心으로 배가 가득했다. 『이러고도 人間의 健康을 責任질 수 있겠는가』라고 自問自答하는 良心的 충동 때문에 이마에서는 구슬땀이 손끝을 적시었다.

  處方은 고쳐진다. 이번에는 四逆湯에 黃連一錢에 吳茱萸三分을 加味하였다. 黃連 吳茱萸는 모다 肝經藥일 뿐 아니라 黃連으로 子宮炎證을 消炎하고 吳茱萸로 血中下陷之氣를 升擧시키려는 것이다.

  三日間 服用시킨 후 다시 診察하여 보았더니 雲捲晴天이 아닌가? 비로소 梔子一味는 上中焦의 鬱에는 名手이면서도 血中隱伏之氣鬱에는 全혀 無名之卒밖에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達醫들의 眼目으로 볼 때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을 - 아니 오히려 常識以下의 問題인 것을 筆者는 애쓰고 또 애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富者집 뜰에 흩어진 落穗는 닭들이나 주어먹는데 醫林의 落穗는 나같은 未熟漢이나 모아 넣는구나 하고 생각하면 羞恥스럽기도 하지만 反面 나도 이러한 落穗나마 많이 모으면 富者가 된다고 생각하니 愈快하기 측량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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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大韓漢醫學會報 寄稿文]

  출처: http://www.handongseok.org/main.htm

 [大韓漢醫學會報 寄稿文] 醫林落穗 1963년 6월호

黃帝內經講義(1) 1964년 10월호
黃帝內經講義(2) 1965년 1월호
黃帝內經講義(3) 1965년 3월호
黃帝內經講義(4) 1965년 7월호
黃帝內經講義(5) 1965년 8월호
黃帝內經講義(6) 1965년 10 11월 합권호 宇宙變化의 原理 pp.155∼161(數의 變化와 中), pp134∼141
黃帝內經講義(7) 1965년 12월호
五行의 質量變化 1966년 1월호 宇宙變化의 原理 pp.75∼83과 同一
黃帝內經講義(8) 1966년 2월호 宇宙變化의 原理 pp.141∼148(卦象, 物象)
 
臨床秘話 1966년 8월호
黃帝內經講義(6),(7),(8)과 五行의 質量變化는 입력하지 않았습니다.
黃帝內經講義는 『宇宙變化의 原理』 法則編과 내용이 비슷하니 비교해서 읽어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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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한동석 선생에 대하여

우주변화의 원리』의 저자인 한동석 선생은 1911(辛亥)년 음력 6월 5일(양력 7월 3일) 寅時에 함경남도 함주군 하조양면에서 출생하였다. 선생은 청주한씨(淸州韓氏) 예빈윤공파(禮賓尹公派) 22世孫으로 父 한희춘(韓希椿)과 母 辛卯生(1891년) 李氏(李泰欽의 딸)와의 사이에서 3남4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선생은 태어날 때 다리가 먼저 나오는 逆産으로써 어머니 李氏가 難産 끝에 가까스로 先生을 낳았다고 전한다. 본명은 항렬의 돌림자인 欽字를 써서 국흠(國欽)이었으나, 1950년 월남후 동석(東錫)으로 改名하였다고 한다. 호는 東岩 또는 斗岩이라고 하였다.

선생은 유년기에 상기천면에 있는 오로리 초등학교를 다녔으며, 15,6세가 되던 1920년대 중반에 집에서 정혼한 사람과 첫 번째 결혼을 하였으며 이때 영흥중학교를 다니다가 중퇴하였다.

17,8세가 되던해 집안의 어른들이 공부를 그만시켜야 되겠다는 말을 듣자 공부를 하기위해 장진으로 도망을 쳤는데, 이때 어느정도의 한문공부가 되어있었다고 하며, 초혼 부인과의 사이에 딸이 하나 있었으나 이때 이혼을 하였다.

20때 초반기에는 만주를 유력하였고, 27,8세때에는 함흥으로가서 장사를 하였으며, 이때 재혼을 하여 딸 둘을 두었다.

32세 되던 1942년에 재취부인이 폐병으로 죽고 난 뒤에 본격적으로 한의학 공부를 시작하였다. 부인이 죽기전에 동무 이제마선생의 二傳弟子인 김흥제선생에게 치료를 받았는데, 그가 부인의 병을 치료하면서 지금은 이렇게 고쳤으나 나중에 재발하면 못 고친다고 하였는데 후에 결국 병이 재발하여 사망하게되자 한의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것이 인연이 되어 김흥제선생 밑에서 한의학을 배웠다고 한다. 이후 조선 민주당 함경남도 조직국장(선전부장 이었다고도 한다.)을 맡았는데 음성이 좋고 언변이 뛰어나 이 직책을 맡았다고 한다.

6,25 발발이후 함흥에서 민선 경찰국장을 지내다가 중공군의 참전이후 월남을 하였는데, 40세 이전에 세 번째로 결혼하여 1남1녀를 두었다.

월남한 이후 41세가 되던 1951년 부산에서 한약방을 경영하는 사란과 동업하여 진료를 시작하였고, 이때 네 번째로 결혼을 하였으나, 그후 네 번째 부인은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다 한다.

1952년 부산 영도에서 진료하는 틈을 내서 동양의학 전문학원에 강사로 출강을 하였고, 1953년에는 부산 영도에서 제2회 한의사 국가고시에 응시하여 면허를 취득한후 정식으로 개원하여 仁溪漢醫院을 운영하였다.

1956년 선생의 나이 46세때 이웃에서 산부인과를 경영하던 이영자씨로부터 자신의 동생인 이옥자1)를 소개받아 결혼을 하여 슬하에 3남2녀를 두었다. 장녀 敬淑氏는 결혼하여 일본에 살고 있고, 장남 仁哲氏는 중국에서 중의학원을 졸업한후 대학원에 다니고 있으며, 차녀 敬姬氏는 서울에서 살고있고, 차남 秉哲氏는 소재가 不明하며, 삼남인 英哲氏는 현재 서울에서 살고 있다. 

이때 12월 서울로 와서 인사동 사거리에서 “韓東錫漢醫院”을 개원하였다. 이후『역학원론』의 저자이며 周易에 대해서 깊이 연구한 한장경(韓長庚) 선생으로부터 설태훈등과 함께 주역을 배웠다. 한장경 선생과는 북한에 있을때부터 정치생활을 함께 하여 서로 아는 사이였다.

또한 서울로 이사한 이후, 선생은 계룡산 국사봉을 출입하면서 주역과 正易등을 심도있게 공부하였다. 이 당시 李正浩2)는 정역을 연구하기 위하여 김일부선생께서 말년에 은거하던 계룡산 국사봉에 강학의 터전을 마련하고 권영원, 유승국, 백문섭, 이용희, 김근수, 한장경, 김경운, 유남상, 육종철등과 더불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정역을 공부하고 토론하였다. 이때 한동석선생은 한달에 3~4회, 어떤 때는 1주일에 2회씩 방문하여 이들과 학문을 연구하고 토론하였는데 『우주변화의 원리』에 나오는 정역에 대한 깊은 이해는 이때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측이 된다.

1960년을 전후하여 선생은 『내경』「운기편」,『주역』,『본초』등에 관한 내용을 한의사, 한의과 대학생등에게 한의원2층에서 강의를 시작하여 몇 년간 지속하였으며,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의 전신인 동양의약대학에 시간강사, 이후 전임강사로 출강하기도 하였다.

1960년대의 전반기에 선생은 많은 원고를 집필하여 한의학관련 잡지에 기고를 하였고, 일본의 天理敎大學에 6~7개월간 음양오행에 관한 원고를 연재하기도 하였다. 이때 우주변화의 원리』를 집필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며 여름만 되면 계룡산으로 내려와 목욕재계를 하며 원고를 수정하고 정리하였다고 한다.

1963년에는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편입하여 공부를 하였고, 이후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동양철학과에 입학을 하여 수료를 하고,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논문을 집필하였으나, 석사학위를 받지는 못하였다.

53세(1963)가 되던 4월 1일 대한 한의사협회 초대 이사에 임명되었고, 56세 때에는 인사동에서 삼선교 돈암동쪽으로 이사를 하였다.

『우주변화의 원리』는 1966년 5월5일에 행림출판사에서 초판발행이 되었으며, 이후 이제마선생의 자손집에 전해 내려오던 동무 이제마선생의 『동의수세보원』친필주를 입수하여 『동의수세보원 주석』을 집필하여 성리회출판사에서 출판을 하였다.

비증, 고혈압, 중풍 등으로 2년여 투병생활을 하던 선생은 1968년 58세가 되던 봄에 뇌졸증으로 쓰러졌고, 병원에서 집으로 옮긴이후 자신의 태어난 날인 음력 6월 5일에 세상을 떠났는데 병상에서 자신의 생일날 生時인 寅時를 넘기면 살수 있다고 하였으나 이를 넘기지 못하고 서세(逝世)하였다. 선생의 묘소는 도봉산 밑의 방학동 天主敎 墓地내에 위치해 있다.


대전대학교 한의학교수

윤창렬

1) 1931年生, 충북옥천 출생, 아버지가 세무서에 근무를 하여 이곳 저곳으로 전근을 다녔는데, 옥천에서 근무할 때 이옥자씨를 낳았다. 현재 생존.

2) 전 충남대학교 총장. 정역연구의 대가.  저서에 『정역과 일부』, 『정역: 원문대조국역주해』, 『주역정의: 그 정역적 의의』등이 있다

http://club.cyworld.com/club/main/club_main.asp?club_id=50842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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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상

 선생은 한의원에 따로 간호사도 두지 않고 부인이나 제자들이 약을 싸면서 도왔을 뿐, 대부분 선생 혼자서 한의원을 꾸려 나갔다. 선생에게 배우러 오는 사람이 여럿 있었는데 그 중 어떤 사람이 와 보고서 하는 말이 그렇게 용하다는데 왜 한의원이 이렇고, 환자도 별로 없고 이런가 하고 말하자, 배우러 온 사람들에게 "돈 벌려거든 오지 마라. 의원질 해서 돈 벌겠다는 그런 생각가지고 있으면 시장에 나가서 장사를 하지, 이걸 하느냐. 한번 잘못한다면 殺人하는게 의원인데."라고 하였다.

  어떤 젊은 사람이 약을 받아들고 "이거 먹으면 낫습니까?" 하고 물은 적이 있었다. 이에 선생은 "너는 병원에 가서도 그런 소리를 하느냐. 낫지 않으면 돈을 도로 달라는 말이냐. 어디서 그런 소리를 하느냐. 가라!"고 호통을 쳤다. 그런 반면, 약을 지었는데 돈이 없다고 하여 일돕는 사람들이 난감해 하면, "소위 仁術이라는게, 뭐가 仁術이냐. 약 먹고 살겠다는 사람, 돈없다고 지어 놓은 약을 그냥 주지 않고 그런 법이 있겠느냐."라고 하며 약을 지어 그냥 쥐어 보냈다. 나중에 돈을 가지고 오는 사람도 있었지만, 안 오는 사람도 제법 있어서 주위사람들이 뭐라고 하면, "돈 없다고 약 안주는 것은 못할 일이야"고 말하였다.

  전문과목이 따로 있지는 않았다. 선생은 "특별히 어떤 병을 잘 본다는 것은 다른 것은 모른다는 말이다. 무슨 병을 잘 하고 무엇을 잘 보고하는 것을 쳐다보지 마라. 다른 병보다 그거 좀 낫단 말이고 다른 건 모른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선생의 처방은 일반적으로 보기에는 너무 과감하고 간결하여 마음편히 따라 쓰기에는 쉽지 않았다. 송륭섭 씨의 조카가 설사를 오래하여 양방병원에 다녀도 낫지 않아 선생에게 데리고 온 적이 있었다. 그러자 처방을 써주며 직접 지어가지고 가라 하였는데, 여기에는 부자가 한돈 반이 들어가 있었다고 한다. 두 번 다시 물으면 벽력같이 호통치는 성품을 잘 아는 터라 두번 묻지 않고 처방대로 약을 지어 와서 가족들에게 이야기 하였더니, 조카의 아버지인 그의 형이 부자는 함부로 쓰면 위험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 고민을 하다가, "그래도 교수님께서 설마 니 조카 죽으라고 처방 낸 건 아닐테니 먹여보자."고 하여 약을 달여 먹이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 어린 나이의 조카였던 탓에 약을 한꺼번에 먹이지 않고 한 첩을 달여 조금씩 떠 먹였는데, 한 접 달인 양의 반 정도를 먹일 즈음에 땀을 흠뻑 흘리면서 조카의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하더니 설사가 완전히 나았다.

또 그런 반면 아주 오랫동안 약을 투여하는 경우도 있었다. 여섯 제 이상씩 약을 투여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 두 첩으로 병을 치유하지 못하면 바로 거기서 한두제 또는 여섯제 까지 약을 복용시켰다. 함부로 이렇게 권하면 약을 팔기 위한 것으로 오해를 사기도 쉬운 일이고 환자들이 거부하여 투약할 수 없었겠지만, 선생의 성품과 위엄으로는 그것이 가능했다고 한다.

  한번은 앞서 언급했던 부산의 김기조 씨가 한의원으로 내방한 적이 있었다. 자신의 오빠인 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를 지내던 김기석씨가 腎臟結石으로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양방병원에서는 수술할 것을 권하여 수술 하기 전에 한방으로는 방법이 없나하여 찾아 왔는데, 내용을 들은 선생은 다짜고짜 "왜 수술해. 洋醫 멍텅구리 새끼나 腎臟수술을 하라지. 腎 속의 돌이 뭐야, 金氣지. 거기다 불을 넣으면 다 녹아."라고 하였다.

그러자 본인도 양방의사였던 김기조 씨는 병원에서는 당장 수술을 하라고 하는데 불을 넣으면 녹는다고 하니 신기하게 여기면서도, 죄송하지만 자기와 같이 세브란스 병원에 같이 가자고 청하였다. 그래서 병원에 가서 診脈을 하고 난 후, 약을 지어주면서 몰래 먹여 보라고 하였다. 수술날짜가 다되어 갈 즈음에, 김기석 씨가 통증이 없으니 조금 더 기다려 보고 난 후에 사진을 다시 한 번 찍어 보자고 했다. 그래서 1주일 후에 X-ray를 찍어 보니 結石이 없어진 것이었다. 그제서야 김기석 씨가 의사에게 한의사의 약을 먹었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러자, 그 의사는 선생에게 전화를 걸어 불손한 말투로 당신이 누구냐, 김기석 교수에게 약을 준 사람이냐, 그렇다면 세브란스 병원의 나에게로 와보라고 하자, 선생은 "에이, 요 호로새끼. 엇다 대고 니가 와라 가라야. 결석 하나 고치지 못해서 칼로 째는 백정새끼가 어디다 대고 와라 가라야. 요놈 새끼. 우리 집에 기어와도 내가 너를 대할랑 말랑해. 에이 상놈."하며 소리치면서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러나 무작정 양방의사를 싫어한 것은 아니었다. 마음을 열고 진지한 학문적 토론을 나눌 수 있거나 양방의료의 한계를 인정하고 허심탄회하게 다가오는 사람이면 한.양방을 가리지 않고 깍듯하게 예우했다.

  한봉흠 교수가 군대에 있을 때, 맹장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이 때로 선생이 약을 써서 이틀만에 치료했고 그 후에도 속이 냉하여 오는 여러 질환에 부자를 다량으로 투여하는 처방을 과감하게 사용하여 치료한 적이 많았다고 한다.

  선생은 麝香도 요긴하게 사용했던 것 같다. 한번은 황종안의 친척이 아무 것도 못 넘기고 있다고 와서 처방을 내 달라고 부탁을 하자, 물도 못 넘기고 있다면 사향을 좀 먹이고 그것도 먹을 때 목에 수건을 느슨히 감고 있다가 약을 넘기고 나서는 조이라고 시켰다 한다. 이것은 사향의 기운이 못 올라오게 하는 것이라 했다. 그렇게 사향을 5푼인가 먹고는 툭 터졌다고 한다. 설태훈 씨의 장녀가 홍역을 앓고 있었는데 앞을 보지 못할 정도였는데 선생이 주머니에서 조그마한 麝香을 꺼내 주면서 먹여보라 하였는데 그대로 하고 하룻밤 자고 나니 깨끗하게 없어졌다고 했다.

  선생은 앞으로 암 질환이 상당히 문제가 될 것이므로 이에 대한 연구가 필요함을 역설하였다. 당신이 스스로 암 환자를 무료 진료하면서 한 30년 정도 연구하면 이것을 잡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 치료 수단으로는 만삭이 되어 누에고치를 만들기 직전의 투명해진 누에와 인삼과 겨우살이가 좋을 것이라고 하였다. 암이라는 것은 금기 덩어리이기 때문에 이것을 녹이는 것은 오직 이와 같은 불밖에 없다고 한 것이다. 그리고 중금속 해독에는 마늘과 메밀을 사용하라고 이야기 하였는데 나중에 한봉흠 교수가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에 실험을 의뢰해 본 결과, 그 효능이 탁월했다고 한다.


별   세

  63년에 이미 당신 스스로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하였고 돌아기시기 한 해 전인 67년 12월 정도부터는 주위사람들에게 "내가 왜 이러지?" 하며 자신의 건강상태가 좋지 못함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자꾸만 머리가 커지는 것 같다는 말을 하고 이후에 "환한 봄날인데, 볕 좋은 봄날인데 환한 세상이 왜 이렇게 어둡냐."고 하는 등 서서히 죽음을 예감하였다.

  돌아가시던 68년에는 산책을 나가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였다. 당신이 죽고 난 뒤에 가족들의 생계가 매우 어려워질 것이라 예견하였으며(선생이 죽고 난 뒤에 온 식구가 거지가 되어 거리에 나 앉을 것이라며 대성통곡을 한 적이 있었다고 하는데, 과연 선생의 임종 후 가세가 기울고 가족이 흩어지는 시련을 겪었다) 혹시라도 당신의 生日과 生時만 넘기도록 살 수 있다면 회생할 것이나 완전한 건강을 되찾으려면 2,3년이 걸릴 것이라 하였는데, 아무래도 그날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하는 등, 자신의 죽음과 관련된 여러 일들을 미리 내다보았다. 그래서 자구책으로 자신의 생일을 넘기고 오겠노라고 계룡산으로 내려갔었으나, 꿈에 선생의 조모가 나타나 "여기가 어디라고 왔느냐, 빨리 너의 집으로 가거라!"고 소리치는 것을 보고서 그 곳이 머물러 있을 곳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황급히 서울로 돌아왔다. 돌아와서 제자들에게도 역시 갈 곳이 아니었기에 그랬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한다. 여느 때처럼 계룡산으로 갔다 하면 한달 씩 걸려야 올라오던 선생이 며칠만에 다시 서울로 돌아와서 주위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겼는데 이때부터 건강히 급격히 악화되었다.

  자신의 生時만 넘기면 된다는 선생의 말에 한봉흠 교수가 그렇다면 양방 치료를 시도해도 되겠느냐는 질문을 했는데 선생은 그것은 결코 안된다 하였다. 이영자 씨에 의하면 당시의 의료기술로는 양방으로도 어쩔수 없었다고 한다.

  결국 뇌혈관발작으로 혼수상태에 빠진지 열흘도 채 안되어 자신이 태어난 날에 태어난 時를 넘기지 못하고 1968년 음력 6월 5일(양력 6월 30일) 새벽, 가족과 제자들의 곁에서 별세하였으니, 이 때 선생의 나이 향년 58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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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술과 강의

선생은 부산의 동양의학전문학원에서부터 많은 이들을 상대로 한의학 강의를 시작했었다. 그 때에도 이미 여러 사람으로부터 강의가 조리 있고 내용이 좋아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이후, 1956년에 서울 인사동으로 와서 韓東錫漢醫院을 운영하고 주위의 사람들과 교류하면서도 강의를 하게 되었다. 주로 內經과 內經 運氣篇, 周易, 本草 등을 강의하였으며 학생, 한의사, 일반 지식인 등이 와서 선생의 강의를 들었다. 1960년에 동양의대 교수가 되고 난 후에도 야간 시간대에 있었던 한의원 2층에서의 강론은 계속 되었다.

  선생의 말투는 보통 속도에 함경도 사투리를 쓰지 않았고, 설명할 때는 말을 풀어 자세히 해 주었다. 부산 동양의학전문학원에서 강의할 때에도 배우려고 모인 사람들이 각처 사람들이다 보니 그 사람들이 혹 선생의 함경도 사투리를 못 알아들으면 다시 풀어서 설명해서 이해시키곤 했다. 그러나, 경우에 맞지 않거나 당신 앞에서 누군가가 과시하려고 하면 아주 무섭게 대했다고 한다.

  동양의대로 출강하게 되었을 때에는 內經과 運氣篇을 위주로 강의를 했는데 당시에는 전공별로 교수가 모두 배정이 되어 있지 않던 시기였기 때문에 임상강의도 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과와 오관과도 강의를 하였고 특히 종양치료에 관한 프린트물을 교재로 해서 수업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강의시간에 학생들에게 특히 辨證奇聞이 매우 좋은 임상서적이라고 추천했다고 한다.

  선생은 대한한의사회의 일에는 별로 관여하지 않았지만, 대한한의학회의 일에는 남 못지 않은 정성을 쏟았다. 그리하여 대한한의학회의 초대이사 및 대한한의학회의 교육부장을 맡은 것 외게 한의학회지의 기고에도 열심이었고, 한의사회가 주관하는 각종 강좌의 초청에 응하기도 하였다.

  선생은 대략 1960년대 초반부터 『宇宙變化의 原理』를 집필하기 시작했는데, 여름에 한 달씩 혹은 비정기적으로 계룡산에 숙소를 정해 두고, 매일 아침 시냇물에서 沐浴齋係를 하고 난 다음에 원고를 정리하였다.

  선생은 『宇宙變化의 原理』를 다 쓰고 나서 이 책의 제목을 과연 무엇으로 해야할지를 놓고 무척이나 고심했던 모양이다. 부인이 곁에서 그 모습을 보다 못해 무엇 때문에 그렇게 고민하느냐고 물었더니 책은 이제 다 썼는데 제목을 무엇으로 해야할지 고민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책 내용이 어떤 것이냐고 부인이 질문하자, 선생은 음양오행의 이치와 우주 삼라만상의 변화하는 이치 같은 것이 들어있다고 했고, 부인은 가볍게 툭 던지듯 그러면 '우주변화의 원리'로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고 한다. 그러자 선생은 무릎을 탁 치며 참 좋은 생각이라고 하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해 냈느냐고 부인을 칭찬했다고 한다.

  『우주변화의 원리』, 『동의수세보원주석』을 집필하여 출판하고 난 뒤에는 이미 건강이 많이 악화된 상태였다. 그러나, 이 책들에 상당한 애착을 가지면서 조금 더 수정해서 개정판을 내야한다고 말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주위 사람들이 한결같이 우주변화의 원리가 너무 어려우니 조금 더 쉽게 풀어 줄 수 없느냐고 했지만, 그러면 책의 값어치가 없어진다고 하였다. 당장은 어렵다고 하겠지만, 양의는 올 때까지 왔으니 앞으로는 한방의 세상이 될 것이라고 말하며 언젠가는 이 책이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될 것이라고 부인과 주위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다. 그 외에 또 다른 무언가를 하나 더 책으로 내겠다고 준비를 했다고 하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한봉흠 교수의 말에 의하면 황제내경 해석을 준비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기 타 일 화

이 글은 재단법인 한국기원에서 발행한 <<바둑이야기 3, 나의 스승 조남철>>에서 이 책의 저자인 김수영 7단이 한동석 선생과의 일화를 소개한 것이다.

  나의 스승과 일본의 다카가와 가쿠 선생이 국수전과 본인방전에서 연속 우승 행진이 9기로 끝난 공통점이 있음은 이미 밝힌 바와 같다. 어째서 9기연패로 끝나는가? 그점이 나에겐 의문이었다. 그래서 '선지식'을 찾아가 여쭈어 보았다.

  내가 찾아 간 '선지식'은 한동석 선생이라는 분이었다. 한동석 선생은 사상 한의학의 대가로 경희대 한의과대학의 교수이기도 했는데 주역에 조예가 깊어 그 방면의 권위자로 알려져 있었다.

  나의 의문에 대한 한동석 선생의 조언은 다음과 같이 알 듯 모를 듯 한 그것이었다.

  "우리 동양의 숫자 개념은 아홉이 마지막이다. 따라서 9기연패는 꽉 채웠음을 뜻하네."

  "그렇다면 10기 연속 우승은 불가능한가요?"

  "물론 10기 연패도 가능하지만 그 경우는 새롭게 한 회를 쌓아 나가는 것으로 해석해야겠지."

  아마추어 3단의 愛棋家 한동석 선생은 나의 스승의 주치의를 맡은 정도로 인연이 깊은 분이어서 나 역시 자주 찾아 뵙고 치료를 받는 등 폐를 많이 끼쳤다.

  천성적으로 욕심이 없었던 한동석 선생이지만 학구열만은 남달리 높아 끊임없이 공부하는 모습이었다. 함경도 한 고향인 나의 선친과 막역지교를 맺고 있었던 관계로 나의 스승의 주치의까지 맡았으며, 나를 친조카처럼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

  한동석 선생은 자신의 한의원을 찾아온 환자를 꾸짖기 일쑤였다. "건강한 분이 보약은 왜 필요합니까? 적당한 운동이나 꾸준히 하세요." 라며 돈도 싫은지 좀처럼 보약을 지어 주지 않았다. "자네는 더 건강해지면 안되네. 자칫 인생을 망칠 수도 있어." 역시 자주 쓰는 훈계였다.

  옛 중국에 편작이라는 신의가 있었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처럼 그의 친구들 중에도 이름난 의사가 많았다. 어느 날 친구의사들이 부친을 만나 뵈니 해소병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모두들 의아해 하며 약을 짓고, 다리고 하여 하루만에 완치시켜 드렸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편작을 만난 자리에서 "이 사람 편작이, 어찌 그리도 무심할 수 있나?"하고 나무랐다. "이 사람들아, 무슨 뚱딴지 같은 얘긴가?", "자네 어르신 해소병 말일세. 우리가 대신 고쳐 드렸네." 그러자 편작은 "아뿔사, 잔병 하나 가지고 계셔서 매사에 조심하는 덕분에 장수하실 분이었는데 이제 오래 사시기는 다 틀렸구나." 탄식하는 것이었다. 친구들은 비로소 그 깊은 뜻을 깨닫고 "과연 따를 수 없는 심오한 경지"라며 찬탄해 마지 않았다. 그 일화와 일맥상통한다 할까.

  나도 컨디션이 안 좋거나 몸살이 나 찾아 뵈면 "젊은 녀석이 벌써 부터 병원 출입하면 어디 쓰겠냐? 가서 숯불 갈비나 한 10대 뜯어. 그러면 괜찮을 거야." 하거나 "새벽 공복에 참기름 한 숟가락과 계란 노른자위를 섞어 꾸준히 먹어봐." 라며 잔뜩 꾸중만 하고 약은 지어 주지 않았지만 말씀대로 실천하면 어김없이 효과만점이었으니 신기할 노릇이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스승의 심부름으로 방문했더니 장안의 명의로 소문이 나 돈도 많이 벌고 큰 빌딩까지 신축한 한의사 내외가 화제(처방전)를 받으러 와 한동석 선생과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환자가 쇄도하여 밤 늦게까지 진료하느라 과로가 누적된 탓에 자신이 중병이 들었던 것.

  알고 보니 그 한의사는 한동석 선생의 제자였다. 남의 병은 잘 고쳐(?) 돈은 많이 벌었을 망정 자신의 병을 고칠 재주는 없었던 모양이다. 돈에 대한 탐욕이 그를 병들게 한 셈이었다.

  화제를 받은 제자 한의사는 "선생님, 제가 더운 체질인데 이건 더운 약 아닙니까?" 하고 질문했다. "이 사람아, 자네 여지껏 '이열치열'도 깨우치지 못했단 말인가?" 한동석 선생의 편잔이 떨어졌다. "그렇군요. 제가 그 생각을 미쳐 못했습니다." 제자 한의사는 비로소 감탄했다.

  "자네, 더 이상 돈 벌 생각 버리게,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거들랑 내 말 명심해야 하네. 그리고 공부 게을리 말게나." 한동석 선생은 자상하게 제자를 타일렀다.

  이런 일도 있었다. 하루는 왕진 요청이 있어 한동석 선생이 안내자를 따라 나섰다. 그런데 환자의 집에 도착한 안내자는 으리으리한 저택의 대문을 놔두고 집 뒷편 골목으로 난 쪽문으로 인도하는 것이었다. 그 행동거지가 미심쩍었지만 한동석 선생은 개의치 않았다.

  그 집의 안방 마님인 환자는 자리에 누운 채로 꼼짝 못하는 심각한 상태였다. 진맥을 끝낸 한동석 선생은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꼭 나으실테니 걱정마십시오."라고 환자를 안심시켰다.

  "아는 것을 안다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아는 것이다."라는 공자님 말씀처럼 애당초 자신이 없거나 치유불능인 환자에게는 "제 능력으로는 불가합니다."라고 솔직히 말하는 분이 그런 표현을 사용한 것은 크게 희망적임을 뜻한다.

  그 날부터 꾸준히 약을 복용한 그 중년 부인은 6개월 후 거의 완쾌되어 혼자 걸어서 나들이를 할 만큼 건강이 회복되었다. 백약이 무효요, 어떤 의사도 고치지 못했던 병명 미상의 중환자가 감쪽같이 나았으니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그 환자의 남편이 사회적으로 명성이 높은 의학박사(내과전문의)였다는 점이다. 그 내과 전문의는 평소 한의사를 불신하는 편이어서 "우리가 고치지 못하는 병을 어찌 한의사가 고칠 수 있으랴." 여기던 차에 부인의 마지막 간청을 마지 못해 들어주었던 것.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번번이 안내자가 대문 아닌 쪽문으로 한동석 선생을 모시고 들어갔던 것이다. 남들이 알까봐 창피하고 두려운 심리상태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부인이 완쾌된 다음 환자의 남편인 내과 전문의가 한동석 선생을 예방하여 "내자를 살려 주셔서 무어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불치병을 고치시다니 한선생님 참으로 명의십니다."하고 사의를 표했다. 이에 대해 한동석 선생은 "명의는 제가 아니라 바로 선생님이십니다."라고 답례했다. "제가 못 고친 환자를 완치시키신 분이 그건 또 어인 말씀이십니까?" 그 내과 전문의가 의아스러워했다.

  "제 말씀 좀 들어보십시오. 제가 부인을 치료하는 동안 차도가 있음을 감지하시고 계속 맡겨 주셨기에 성공할 수 있었지요. 만약 선생의 그런 높은 안목이 아니였다면, 그리고 저에게 계속 치료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면 전들 어쩌겠습니까? 그래서 말씀입니다."

  "아, 그런가요. 사실 의사를 믿지 못하고 이 병원 저 병원을 옮겨다니는 환자가 적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그래 가지고는 효과적인 치료가 어렵지요." 한동석 선생의 겸양지덕도 특별했지만 두 분 명의는 금방 의기투합했다. '한방'과 '양방'으로 서로의 전공은 다를망정 병든 사람들에게 '인술'을 베풀고 국민 보건에 이바지하는 의사라는 공통점이 있는데다가 흔지 않은 인연으로 만난 두 분은 그날 밤이 늦도록 술잔을 다투며 친교를 맺었다.

  '인명은 재천'인가. 이렇듯 훌륭한 인품의 명의 한동석 선생도 하늘의 부름만은 거역할 수 없었던지 후두암으로 회갑도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났으니 애통하다. '참 인술'의 거룩한 정신이 점점 사라져가는 요즘 한동석 선생이 더욱 그립다. 황금만능주의에 찌든 오늘날 그런 분이 계시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일까?

 김수영, 나의 스승 조남철, 서울, 재단법인 한국기원, 1996, p.288~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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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교수는 선생의 말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周易공부하고 한의학 공부하면서 모두 가짜 한의학 공부한다고 그랬어. 宇宙 變化하는 거 모르고 어떻게 한의사를 하고 세상을 아는가 그랬거든. 오행을 기본으로 놓고 여기서부터 천기 보는 거, 하늘을 보고 땅을 봐라. 버러지 보고 나무에 잎이 나오는 거. 여기 지금 봄인데 木의 봄에, 하늘에 木이 들어 왔다는 거거든. 이러면 혁명이 난다는 거거든. 사회가 시끄러워 진다는 거거든. 木이 너무 많아도 곤란하다는 거거든. 올해 무슨 곡식이 잘 될까 그러거든. 아니야. 가을에 火氣가 많이 들면 쌀도 잘 되지만, 고추나 마늘도 잘 돼. 근데 그거를 알면 통치자 한 두 사람이 알아야지, 만인이 알면 사회가 문란해진다는 거거든. 그걸 가지고 장사를 한다는 게야. 그러기 때문에 한 사람이 알아야 되고, 알고 나면 그 사람은 죽어야 된다. 천기를 누설해서 죽었다는 거 나도 그렇게 봐."

  韓봉흠 교수가 선생에게 주역 공부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질문한 적이 있었다. 이 때, 선생은 韓 교수에에 "글자나 해석하는 게 주역공부가 아니야. 주역공부를 제대로 하면 다 보여.", "천기 보는 거를 배워라. 천기를 보는 게 하늘을 쳐다보면 천기를 보는 거야? 아니야, 땅을 봐라. 땅에 이렇게 보면 풀이 있고 돌멩이가 있고 이렇게 흔들리지? 지렁이, 털벌레, 딱정벌레 요거로 천기를 보는 거야. 딱정벌레가 많이 있는 거는 이 地上에 金氣가 많이 왔다는 거야. 이제 발이 많은 돈지네가 많이 끓을 때가 있다면 火氣가 왔다는 거야. 땅에 지렁이가 많으면 土氣가 많다는 거고. 이렇게 해 가지고 천기를 보는 거야. 그러니까 지금은 이른 봄인데 金氣가 왜 이렇게 많으냐."고 말하였다.

  인사동 사거리에서 한의원을 하는 동안, 틈나는 대로 인사동의 통문관 등의 고서점들을 돌면서 여러 서적들을 구해 읽곤 했었다. 선생의 학문에 대한 열정은 주위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 할 정도로 대단했었다. 한의원에서건 어디서건 잠시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한다. 매일 아침 6시 정도에 일어나서 2시간 정도를 소리내어 책을 읽고 외우기를 되풀이 하였다. 밤을 새워 공부하고 미진한 부분은 새벽부터 나비다방에 나가 커피를 마시며 고민하기도 하였다. 사람이 많아 시끄럽거나 해도 곧장 나비다방으로 가서 책을 보았다.

  한의원에 환자가 붐비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밥 먹을 정도만 되면 되었지, 환자 욕심은 낼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당시 국회의원 원내총무를 하던 김진만 씨가 한의원에 와서 자기 병을 꼭 고칠 수 있겠느냐고 다짐을 하자, 주위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믿을 수 없다면 오지 말라고 하며 벽력같이 소리지른 적도 있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한의원에 환자는 그리 많지 않았으며, 오직 책만 보고 저녁으로는 다른 이들을 가르치면서 공부에만 정진하였다. 종종 부인인 이옥자 씨에게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겨야 한다고 말하였는데 그런 것이 선생의 욕심이었을 뿐, 다른 부분에서는 욕심을 내지 않았다.


평상시의 선생

 선생은 명예와 부를 구하지 않고 굉장히 검소한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집안의 경제권도 직접 전담하여 관리하였으며, 주로 남대문 시장에서 싼 옷만 사 입었고, 부인에게도 그런 것을 사주었다. 선생은 돈을 함부로 쓰면 돈의 보복을 받고 물질을 함부로 남용하면 반드시 물질의 보복을 받는다고 하였다. 반면, 대의명분이 있는 일에는 목돈을 내놓았다. 속되고 안일한 것에 빠지지 않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무리 힘들어도 밀고 나가는 성격이었다.

  그리고 선생의 집안은 지방에서 올라와 유학하던 선생의 조카들이나 다른 친척들로 항상 붐볐다고 한다.

  선생은 술은 드시지 않았고 담배는 즐겼다. 술은 젊은 시절에는 마셨으나, 후에는 공부에 방해가 된다하여 입에도 대지 않았고, 담배는 즐겨 피운 편이었다. 영화와 바둑에 취미가 있었는데, 영화를 보러가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택시를 타고 갔다가 영화만 보고는 다시 택시를 타고 돌아왔다. 바둑에도 취미가 있었고 바둑계의 원로들과도 교분이 있었다. 선생의 기력은 아마추어 3단의 실력이었다. 김수영 7단의 부친인 김탁씨와 같은 함경도 고향출신이어서 이를 통해 조남철9단과도 알게 되었다. 조남철 9단은 본인이 워낙 약골이어서 한선생님 신세를 많이 졌다면서 그 때를 회고했고, 본 저자에게 김탁씨의 아들이자 자신의 제자인 김수영 7단을 소개했다.(기타 일화 참조:운영자註) 김수영 7단은 어릴때 부터 선생에게서 약을 지어먹곤 했고 특히 조남철 9단과 친했으며 김탁씨의 후원을 받던 조치훈 9단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기전에 한의원에 와서 인사를 하고 떠났다.

  선생은 인사동 네거리에서 개원을 하고 있었고 설태훈 선생은 가까운 곳에서 개원을 했기 때문에 서로 왕래하기가 좋았다고 한다. 아침저녁으로 서로 내왕하였는데 주로 건국대학교 분교(인사동) 근처에 있던 나비다방에서 만났다. 선생은 밤을 새워 공부하였고 새벽에는 그 곳 나비다방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 커피한잔씩을 마시며 생각에 잠기곤 했다고 한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책을 들고 나비다방에 나가서 공부하다가 10시 쯤 다시 들어와 아침식사를 하고 진료를 시작하였다. 그 외에도 생각할 것이 있거나 책을 보고 싶으면 한의원에서 나와 나비다방을 찾곤 했는데 선생을 만나려면 그 나비다방에 가야 만날 수 있다고 할 정도였다.

  선생은 항상 무언가를 열심히 외우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언제나 황제내경을 옆에 끼고 다녔으며 인사동 골목길을 다닐 때나, 아침에 아들을 데리고 산책을 나갈 때에도 항상 무언가를 손가락으로 꼽아가며 외우곤 했다. 부인인 이옥자씨의 말에 의하면 선생은 "나는 의사인데 이것은 항상 놓지 말고 외워야 한다"고 하며 약성가를 아침저녁으로 외웠다고 하며, 한봉흠 교수는 황제내경 운기편일 것이라고 했다.

  1960년 전후인 50세 전후에는 내경 운기편, 류경, 주역, 본초 등을 한의사를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 한의원2층에서 강의하기 시작했고, 동아.조선일보 등의 일간지에 한방관련 기사를 투고하기도 하고 양방의사들과 논쟁을 벌이는 글을 싣기도 했다. 그리고 틈틈히 일본의 천리교대학에 6, 7개월간 음양오행에 관한 원고를 쓰고 이양구씨가 이를 번역하여 연재하기도 했으며, 이 때부터 우주변화의 원리를 집필하기 시작했는데, 여름에 한달씩 계룡산으로 가서 숙소를 정해두고, 매일 아침 시냇물에서 목욕재계를 하고 난 다음에 원고를 정리하곤 하였다.

  1960년에 경희대학교 한의과 대학의 전신인 동양의약대학에 출강하게 되었다. 4.19 혁명을 앞두고 있던 때에 동양의대에는 폐쇄령이 내려져 있었고 몇몇 교수들이 학교를 떠난 상태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생들과 다시 동양의대의 임시관리책임자였던 전 서울신문사사장 오종식 씨가 협의하여 교수충원을 시도하게 되었다. 조교와 학생들이 추천하면 검토하여 발령을 내는 방식이었으며 그때 추천받은 사람들은 모두 교수로 발령을 받았다. 당시에 학년대표를 맡고 있던 문독전 전 경희대 한의대 교수와 이덕준씨가 한동석 한의원으로 내방하였고 그때 선생은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것을 계기로 선생은 동양의대의 강사로 출강하게 되었고 6개월 정도 후에 전임강사로 발령을 받았다. 이때 동양의대로 발령을 받게 된 사람은 선생 외에도 윤길영, 안병국 교수가 있었다.

  이 무렵 가까이 지내던 조재관 교수가 총장으로 있던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편입하여 정치학사를 63년 2월에 수료하였고 성균관 대학교 일반대학원 동양철학과에 입학하였으나 석사학위는 받지 못하였다. 성균관대학교 일반대학원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기 위해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논문을 준비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석사학위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 논문은 현재 성균관 대학교에 보관되어 있지 않다.

그에 대한 이야기가 서로 엇갈리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그러한 제목과 주제로 논문을 쓰려 하였으나, 당시의 선생의 대학원 지도교수였던 유승국 박사가 그런 거창한 주제의 논문을 선생이 어찌 쓸 수 있겠느냐는 투의 말을 하자 기분이 상해 아예 논문을 쓰지도 않았다는 것이고, 그것과 조금 다른 것은 당시 지도교수였던 유승국 교수의 말에 의한 것인데 그 원고를 읽어보니 논문의 체계가 제대로 잡히지 않은 소설이나 수필과도 같은 것이어서 논문으로 인정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 원고를 탈고하였는지, 아니면 계획만 가지고 있다가 지도교수와의 의견충돌로 아예 시작도 하지 않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선생의 마지막 제자인 오세정씨의 증언에 의하면 결국 그 원고를 반 정도로 줄인 것이 우주변화의 원리라고 했다.

  동양의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계속하였으나, 그것도 오래지 않아 동양의약대학의 제2대 학장으로 양방의사인 이종규 박사가 취임하자 그 날로 교수직을 그만 두고 학교를 그만두게 된다. 이종규 박사와는 평소에 교분이 있었고 처형이 되는 이영자씨, 이영자씨의 동료이자 선배인 김기조 씨 등과 함께 서로 친한 사이였지만, 한의과대학에 양방의사가 학장을 하는 것은 한의사를 모독하는 것이며 불합리한 처사라고 하며 동양의약대학의 교수직을 그만 두었다.

  이 시기에는 강의나 기고 등 활발하게 외부적인 활동을 하였다. 고위층 인사들과의 교류도 적지 않았으며, 한의사협회의 활동에도 참가하였다. 대학한의학회가 성립되면서 이와 더불어 63년 4월 1일에는 대한한의학회 초대이사에 임명되기도 했다. 이 무렵에는 한의학회보에 임상경험을 기고하면서 다른 한의사들의 참여를 독려하였고, 황제내경 강좌에 많은 글들을 연재하였고 또한 대한한의학회가 개최하는 각종 강연에 강사로 참여하기도 하였고, 방송에도 출연한 적이 있었다.

  1966년 인사동에서 삼선교 돈암동 쪽에 있는 좀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였다. 당시에 성균관대의 모교수가 여기서 살았는데 이 집이 흉가라 하여 헐값에 내놓고 이사간 집을 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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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 문 연 구

선생은 어려서부터 한문을 공부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어려서는 형제, 종형제들과 함께 학교를 다녔는데 당시 숙부였던 한희관이 조선 말엽에 과거에 응시했던 것으로 보아 학문을 하는 집안이었을 것이라는 것을 추정할 수 있고 따라서 한학 공부를 하며 자랐을 것으로 보여진다.

  20대 후반에 함흥에서 장사를 하면서 재혼을 하고 어느 정도 재력을 쌓아 종형제들을 돌보기도 했는데, 그 부인이 폐병을 앓아 42년도에 사망하였다. 이 때 부인이 죽기 전에 폐병을 치료하기 위해 그 당시 동무 이제마 선생의 이전제자 중의 하나라고 하는 김홍제란 사람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 때 김홍제 선생이 처음에 부인의 병을 치료해 주면서 나중에 다시 재발하면 못 고친다 하였는데, 후에 결국 이 병이 재발하여 사망하자 한의학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운영자 註: "二神散의 捕虜"와 내용이 약간 다름. "二神散의 捕虜"는 선생이 직접 쓰신 기고문인데, 여기서는 30년 전에 二神散으로 동생의 晨洩을 고친 후부터 한의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 의림 기고문 참고 -)

이것을 인연으로 김홍제 선생 밑에서 한의학을 배웠다고 한다. 이것은 한동석 선생의 종제인 한봉흠 교수의 구술에 의한 것이나, 설태훈 씨에 구술에 따르면 북청의 양경호라는 이에게서 한의학을 배웠다고 하고 일설에는 선생 자신이 많이 아팠는데 한의사에게 치료를 받고 완쾌되자 이를 계기로 한의학을 공부하게 되었다고 한다.

  여러 사람의 증언에 의하면 선생은 북한에서 김홍제, 양경호 등의 인물에게서 한의학을 배우기 시작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외에도 선생의 종제인 한봉흠 교수에 의하면 진외 종조부가 이제마 선생의 제자였다고도 하니 그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 추측할 뿐이다.

  6.25가 발발하면서 월남한 선생은 부산으로 가서 한약방을 운영하는 이와 동업하여 진료를 시작하였다. 이 때에도 이미 진료를 할 정도의 수준에는 도달했으나 항상 부족함을 느꼈고 마땅한 스승을 찾지 못해 오직 책 속에만 열중했다. 그래서 주로 독학(獨學)을 했지만 자신의 부족한 점에 대해서는 머리 숙여 배우려고 했다. 자기보다 나은 이가 있으면 찾아가든지 모셔와 자신의 집에 기거시키면서 주위의 한의사들을 모아 같이 배웠다.(1953년에 한장경 선생에게 2개월 동안 周易을 배웠고, 이후에도 설태훈 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과 함께 방학동 등지에서 몇 차례 수학하였다. 한장경 선생과는 북한에 있을 때부터 정치생활을 함께 하여 이미 하는 사이였다).

  그러던 중 황제내경(黃帝內經) 운기편(運氣篇)을 보게 되고, 이것을 만독(萬讀), 內經 전체를 천독(千讀)하는 것을 목표로 內經을 공부했다. 한봉흠 교수에 의하면 선생은 실제로 黃帝內經 運氣篇을 萬讀했다고 한다.

선생이 생전에 한봉흠 교수와 이야기를 나눌 때에 三千讀을 하고 나면 뭔가 알게 될 것 같다고 말하며 공부를 했었는데, 三千讀을 하고 났지만 잘 모르겠다고 하였다. 그러면서부터는 오대산, 계룡산 등지로 공부를 하러 가기 시작했고, 주역을 배우기 위해 사람을 찾아 헤맨 것도 같다고 한봉흠 교수는 이야기했다.

그렇게 六千讀을 하고 나니 구름 밑에 뭔가가 있는 것 같으니, 三千讀을 더 해봐야겠다고 하며 다시 三千讀을 더 하였다. 그 후에는 "저거 봐라. 야구 선수들이 코치가 던지라는 대로 탁탁 던지잖니? 저거도 도통한 거다. 철봉대에서 저거 봐라. 외팔로써 빙글빙글 돌지 않니? 저거도 다 저 분야에서 도통한 거다. 그런데 九千讀해서 안 트이는구나. 萬讀을 채워야겠다. 萬讀을 하고 나면 뭔가 통할 거야."라는 말씀을 하고 萬讀을 넘겼다고 한다.

  밤새워 공부하고 아침에는 인근에 있는 나비다방에 가서 커피 한잔을 마시고 밤사이에 한 생각들을 정리했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변사람들에게 이러한 것이 있는데 이렇게 생각할 수 있었다고 들려주었다.

  한번씩 한의원을 장기간 비워두고 공부하러 떠나기도 했는데, 주로 계룡산이나 오대산에 들어가 한 달 씩 공부하다 돌아오기도 했으며 돌아와서는 제자들을 불러모아 그 동안 공부한 성과를 들려주었다. 나중에 우주변화의 원리를 집필하면서부터도 방대한 원고를 들고 계룡산으로 내려가 원고의 정리와 집필을 했다.

  이 당시 이정호 씨는 正易을 연구하기 위하여 金一夫 先生이 말년에 은거하던 계룡산 국사봉에 강학의 장소를 마련하고 권영원, 이용휘, 유승국, 백문섭, 김근수, 한장경, 김경운, 유남상, 육종철, 정성장 등과 더불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正易을 공부하고 토론하고 있었다. 이 때 한동석 선생이 한달에 3∼4회, 1주일에 2회씩도 방문하여 이들과 학문을 연구하고 토론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한장경 선생과 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생의 집중력은 실로 대단하여 주위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하였고, 의문점이 생기면 추호도 마음에 거리끼는 것이 없을 때에야 다음으로 넘어가는 철저함을 보였다. 이것은 학문을 하는 데에만 적용된 것이 아니라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과정에서도 철두철미하게 임하여 한치의 어긋남도 없었다.

  성균관대학교 일반대학원 철학과에 입학하기 위해 입학시험을 준비할 때에는 당시 유명했던 영문법 책이었던 삼위일체 를 그대로 다 암기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 때의 나이가 53,4세 가량 되었을 때였는데, 제자들이 어떻게 그 내용을 다 외울 수 있느냐고 여쭈자, 이 정도도 제대로 못하면 공부는 어떻게 하겠느냐고 하시며 그 내용을 모두 외웠다고 한다.

  우주변화의 원리의 내용이 쉽지가 않아 한봉흠 교수가 선생에게, "형님, 좀 쉽게 풀어서 쓰시지요. 교수고 박사인 내가 보아도 잘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내가 읽고 알게는 써야 되지 않겠습니까?"하고 청한 적이 있었다. 이 때, 선생은 "가만 나둬. 진리라는 거는 알 사람만 알면 되는 게야."라 했다. "진리라는 것은 정치를 하는 단 한 사람만이 알아야지, 여러 사람이 알면 장사를 하게 돼."하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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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가 배출된다는 계룡산 국사봉 밑의 향적산방은 국운의 융창을 감지했던 수많은 학인·술사들의 아지트였다. 19세기 중반 ‘후천개벽’이라는 전 지구적 패러다임의 변화를 예언한 김일부(金一夫)가 그 대표적 인물이다.

1950~60년대 이 향적산방을 드나들었던 멤버들을 하나하나 추적하는 과정에서 마주친 인물이 또 하나 있었으니, 그 사람이 두암(斗庵) 한동석(韓東錫·1911~68)이었다.

두암은 환자를 치료하는 한의사였으면서 동시에 국가의 중대사에 대해 예언을 남겨 놓은 예언자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가 1960년대 중반에 저술한 ‘우주변화의 원리’라는 책은 전국 대학의 한의학과 학생들에게 현재까지 여전히 필독서로 꼽힐 만큼 유명한 책이기도 하다. 그는 한의학의 기본이 되는 음양오행을 연구하다 계룡산 향적산방의 멤버들과 인연이 닿았고, 이 멤버들과의 교류를 통해 ‘정역’(正易)의 세계에 깊이 심취하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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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암이 남긴 국가의 중대사에 관한 예언이란 정권교체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에 대한 예언을 말한다. 그의 예언을 가장 소상하게 알고 있는 생존 인물이 두암의 사촌동생 한봉흠(76) 박사다. 사촌 간이라서 두암 생존시 흉허물을 터놓고 깊은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고려대 독문학과 교수를 지냈고 현재는 정년퇴직해서 서울 정릉에 살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였다. 정릉의 자택으로 한박사를 방문한 시점은 2002년 10월 하순이었다.

한박사로부터 간추린 두암의 예언은 다음과 같았다.
‘월간중앙’ 12월호에 소개한 내용이다.
“박대통령이 죽고 난 후 정치적 혼란기가 다시 한 번 오게 되는데, 이때도 1년 반 정도의 시간 동안 정치형세가 서너 번 바뀔 것이라고 했습니다. 무정부 상태를 거친다는 거였죠. 그 다음에 군사독재가 한 번 더 온다는 겁니다. 군사독재 다음에는 군인도 아니고 민간인도 아닌 어정쩡한 인물이 정권을 잡은 다음, 금기(金氣)를 지닌 사람들이 한 10년 정도 정권을 잡는다는 거예요. 지금 생각하니 금기를 지닌 사람들이란 양김(兩金)씨를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금기 다음 정권은 목기와 화기를 지닌 사람이 연합한다고 했습니다. 목기와 화기를 가진 연합팀이 정권을 잡았을 때 비로소 남북이 통일된다는 것이었죠.”

“목기와 화기의 연합이란 누구를 말하는 것이죠?”
“저도 그것은 확실하게 모르겠어요. 목은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게 어렴풋이 짐작되는데, 화기를 지닌 인물은 누구를 가리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올해 대선이 끝나고 나서 다음 정권이 들어서면 그때 총리가 과연 누가 될 것인지를 주의 깊게 관망하고 있습니다. 어찌 됐든 목기와 화기를 지닌 사람이 연합해야 피를 안 흘린다. 그리고 이 시기에 통일된다고 했습니다…. 통일되려면 남쪽에 약간의 혼란이 있다고 했습니다.”

두암의 예언 가운데 핵심은 ‘목기와 화기를 가진 연합팀이 정권을 잡는다’는 대목이다. 한박사의 증언에 의하면 이 대목은 두암이 사망하기 전인 1968년 이전에 행해졌던 예언이다. 그리고 한박사와 필자가 정릉의 한박사 자택에서 이 이야기를 나누던 시점은 2002년 10월 하순이었다.

---월간중앙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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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한의사 한동석은 6, 25의 발발원인을 남다르게 해석했다 물의 범람이 바로 그것 이었다는것이다

이남이 남방의 불이라면 이북은 풍수지리상 물에해당한다 소련의 상징인 백곰도 차가운물이고, 중국의상징인 용도 물에서 노는 동물이다 이북의 물에다 소련의물 중국의 물이 합해지니까 홍수가 났다.

이 홍수가 남쪽을 쓸면서 내려오다가 "큰 언덕"인 대구를 만나서 더이상 내려가지 못하고 막혀버렸다 대구는 나라의 홍수를막는 제방과 같은 역활을 했다는는게 한동석의 해석이다

대구는 기운이 뭉친 도시이다 "북 팔공, 남 비슬"의 산세가 큰언덕을 형성하고있다 북쪽으로는 팔공산이 둘러싸고 남쪽으로는 비슬산이 둘러쌓다 세계의 여러 대도시를 가보았지만, 대구처럼 인구 250만에 달하는 대도시를 해발 1000m급의 아름다운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대구는 그지세가 다른나라 의 도시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매우 도특한 곳이다 대구시내에 있는 앞산은 경주나 서울의 남산 같은 산이다 이 앞산은 비슬산의 끝자락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앞산 자락을 따라 쭉 거슬러 올라가면 비슬산을 만난다

풍수가의입장에서보면 "비슬산"이라는 명칭도 매우 음악적이다 "비" 는 고대 악기인 "비파"를 뜻하고 "슬"도 "큰거문고"를 뜻한다 산 이름만을 가지고 가지고 분석한다면 비슬산은 비파와 거문고가 숨겨져 있는산임을 추측할수있다 그렇다면 이 비파와 거문고는 어디에 숨겨져 있단 말인가? 내가 보기엔 거문고는 폐사지인 대견사 일대에있다 멀리서 대견사 일대를 바라보면 산세가 책상처럼 반듯하면서 비스듬하게 내려간다 이런모습은 무릎위에 놓여진거문고나 가야금으로 해석한다 비파는 유가사 뒤쪽의 산 정상에있다 정상의 둥그런 바위 모습은 비파의 둥그런 부분에 해당한다 2011년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가 열린다면 비슬산 의비파와 거문고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게 될 것이다

이글은 신문 에 나온 글로 대구를 고향으로 둔 사람으로 고향을 칭찬한 글이라 친구들과 함께읽고 싶어서......... 

[출처] 6,25의 발발원인의 남다른 해석(한의사 한동석)|작성자 도기
http://blog.naver.com/dogi802?Redirect=Log&logNo=80035304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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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대쪽같은 성품으로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고 의사로서 인술仁術을 펼쳤다.

 그 몇 가지 일화를 소개한다.

 선생은 한의원에 따로 간호사도 두지 않고 부인이나 제자들이 약을 싸면서 도왔을 뿐, 대부분 선생 혼자서 한의원을 꾸려 나갔다. 선생에게 배우러 오는 사람이 여럿 있었는데 그 중 어떤 사람이 와 보고서 하는 말이 그렇게 용하다는데 왜 한의원이 이렇고, 환자도 별로 없고 이런가 하고 말하자, 배우러 온 사람들에게 "돈 벌려거든 오지 마라. 의원질 해서 돈 벌겠다는 그런 생각가지고 있으면 시장에 나가서 장사를 하지, 이걸 하느냐. 한번 잘못한다면 살인殺人하는 게 의원인데."라고 하였다.

 어떤 젊은 사람이 약을 받아들고 "이거 먹으면 낫습니까?" 하고 물은 적이 있었다. 이에 선생은 "너는 병원에 가서도 그런 소리를 하느냐. 낫지 않으면 돈을 도로 달라는 말이냐. 어디서 그런 소리를 하느냐. 가라!"고 호통을 쳤다. 그런 반면, 약을 지었는데 돈이 없다고 하여 일 돕는 사람들이 난감해 하면, "소위 仁術이라는 게, 뭐가 仁術이냐. 약 먹고 살겠다는 사람, 돈 없다고 지어 놓은 약을 그냥 주지 않고 그런 법이 있겠느냐."라고 하며 약을 지어 그냥 쥐어 보냈다. 나중에 돈을 가지고 오는 사람도 있었지만, 안 오는 사람도 제법 있어서 주위사람들이 뭐라고 하면, "돈 없다고 약 안주는 것은 못할 일이야"고 말하였다

 한번은 부산의 김기조씨가 한의원으로 내방한 적이 있었다. 자신의 오빠인 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를 지내던 김기석씨가 신장결석腎臟結石으로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양방병원에서는 수술할 것을 권하여 수술하기 전에 한방으로는 방법이 없나하여 찾아 왔는데, 내용을 들은 선생은 다짜고짜 "왜 수술해. 양의洋醫 멍텅구리 새끼나 신장수술을 하라지.신腎 속의 돌이 뭐야, 금기金氣지. 거기다 불을 넣으면 다 녹아."라고 하였다. 그러자 본인도 양방의사였던 김기조씨는 병원에서는 당장 수술을 하라고 하는데 불을 넣으면 녹는다고 하니 신기하게 여기면서도, 죄송하지만 자기와 같이 세브란스 병원에 같이 가자고 청하였다. 그래서 병원에 가서 진맥을 하고 난 후, 약을 지어주면서 몰래 먹여 보라고 하였다. 수술날짜가 다되어 갈 즈음에, 김기석 씨가 통증이 없으니 조금 더 기다려 보고 난 후에 사진을 다시 한 번 찍어 보자고 했다. 그래서 1주일 후에 X-ray를 찍어 보니 結石이 없어진 것이었다. 그제서야 김기석 씨가 의사에게 한의사의 약을 먹었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러자, 그 의사는 선생에게 전화를 걸어 불손한 말투로 당신이 누구냐, 김기석 교수에게 약을 준 사람이냐, 그렇다면 세브란스 병원의 나에게로 와보라고 하자, 선생은 "에이, 요 호로새끼. 엇다 대고 니가 와라 가라야. 결석 하나 고치지 못해서 칼로 째는 백정새끼가 어디다 대고 와라 가라야. 요놈 새끼. 우리 집에 기어와도 내가 너를 대할랑 말랑해. 에이 상놈."하며 소리치면서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러나 무작정 양방의사를 싫어한 것은 아니었다. 마음을 열고 진지한 학문적 토론을 나눌 수 있거나 양방의료의 한계를 인정하고 허심탄회하게 다가오는 사람이면 한.양방을 가리지 않고 깍듯하게 예우했다.


[출처] [우주변화의 원리]와 한동석 선생님|작성자 행복해
http://blog.naver.com/bestzard?Redirect=Log&logNo=80004794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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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봉흠 교수가 본 한동석

 한봉흠은 1960년대 초반 독일 베를린 대학에서 독문학 박사를 하였으며, 63년부터 93년까지 고려대 교수로 근무하다 정년퇴임하였다. 한씨들 집안내력인지는 몰라도 이 양반도 역시 괄괄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인상을 받았다. 한박사는 사촌 형님인 한동석 선생과는 내면에 있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주고받은 친밀한 관계였으므로 반드시 인터뷰해볼 만한 인물로 여겨졌다


- 형님에게 들은 이야기 좀 해 주시죠.
' 내가 독일 유학을 갈 때가 1959년도인데 이승만 정권 때죠. 독일로 출발하기 전에 나에게 형님이 그랬어요. '이기붕 집안은 총에 맞아죽는다. 그리고 이박사는 하야하고 마는데 난리 나서 갈팡질팡할 것이다. 그 다음에 1년 정도 민주정부가 들어선다. 그 다음에는 군사독재가 시작된다. ' 독일에 있으면서 한국 정세를 보니 형님 말한 것이 전부 맞는 거예요. 그때부터 저는 형님이 무슨 이야기를 하면 귀를 쫑긋하고 들었죠. 1963년도에 귀국해 보니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 있더군요. 박정권은 어떻게 될 것 같으냐고 형님에게 물었더니, 육여사를 포함해서 부부간에 객사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대통령이 어떻게 객사할 수 있느냐고 따져 물으니 '누군가가 장난하지 않겠니' 하더군요. 총 맞아 죽을 수 있다고 그래요. 그리고 나서 1968년도에 형님은 죽었죠. 이 말을 머릿속에 담은 나는 1970년대에 고려대 총장을 지내던 김상협씨와 단둘이 만나 식사할 때마다 '대통령은 총 맞아 죽는다' 고 이야기하고는 했죠. 그때가 유신치하라서 살벌한시기인데 대통령 총 맞아 죽는다는 이야기를 대낮에 떠들어대니 김상협씨가 놀라서 '한교수 제발 대통령 총 맞아죽는다는 이야기 좀 하지 말라'고 저에게 여러 번 주의를 주고는 했습니다. 저는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정보부 지하실에 끌려가 두들겨 맞기도 해서 박정권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습니다. 틀림없이 총 맞아 죽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 그밖에 다른 예언은 없었읍니까.
' 박대통령이 죽고 난 후에 정치적 혼란기가 다시 한번 오게 되는데, 이때에도 1년 반 정도의 시간 동안 정치형세가 서너 번 바뀔 것이라고 했습니다. 무정부 상태를 거친다는 거였죠. 그 다음에 군사독재가 한 번 더 온다는 겁니다. 군사독재 다음에는 군인도 아니고 민간인도 아닌 어정쩡한 인물이 정권을 잡은 다음 금기(金氣)를 지닌 사람들이 한 10년 정도 정권을 잡는다는 거예요. 지금 생각하니 금기를 지닌 사람들이란 양김(兩金) 씨를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금기 다음 정권은 목기(木氣)와 화기(火氣)를 지닌 사람이 연합한다고 했습니다. 목기와 화기를 가진 연합 팀이 정권을 잡았을 때 비로소 남북이 통일된다는 것이죠.'


- 목기와 화기의 연합이란 누구를 말하는 것이죠?
' 저도 그것은 확실하게 모르겠어요. 목은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게 어렴풋이 짐작되는데, 화기를 지닌 인물은 누구를 가리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올해 대선이 끝나고 나서 다음 정권이 들어서면 그때 총리가 과연 누가 될 것인지를 주의 깊게 관망하고 있습니다. 어찌되었든 목기와 화기를 지닌 사람이 연합해야 피를 안 흘린다. 그리고 이 시기에 통일된다고 했습니다. 형님은 남북이 통일이 이루어질 때 남쪽이 80%, 북쪽이 20% 정도의 지분을 갖는 형태일 것이라고 했죠. 통일이 되려고 하면 남쪽에 약간 혼란이 있다고 했습니다. '


- 목기와 화기를 지닌 사람의 기질이나 성격은 어떻게 보았습니까.
' 형님 지론에 의하면 대통령은 목 · 화 기운이 되는 것이 국가에 이롭다고 말했어요. 왜냐하면 목 화는 밖으로 분출하는 형이어서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국운이 밖으로 팽창한다는 것이죠. 반대로 금 · 수는 수렴형이어서 안으로 저장하고 움츠러드는 경향이 있다는 거죠. 그러므로 내무부 장관이나 중앙정보부장 같은자리는 금 · 수를 많이 가진 인물을 배치해야 하고, 상공부나 생산하는 분야는 목 · 화를 많이 가진 인물을 배치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금융 분야는 토기(土氣)를 많이 가진 사람이 적당하다는 거죠. 금융은 양심적이고 공정해야 할 것 아닙니까. 토는 중립이어서 공정하죠. 이게 오행에 맞춘 인재 배치법이자 용병술이죠. 국가적인 차원의 인재 관리는 오행을 참고해야 한다는 게 형님 생각이었습니다. '


 자연 40년 전 한동석의 예언대로 목기와 화기를 가진 인물들이 등장하여 2002년 이후의 한국 정권을 운영하고, 이 시기에 진짜 통일이 될 것인가. 이는 지나 보아야 알 일이다. 예언이 100% 맞는다고는 누구도 장담할 수없다. 하지만이 예언을 밑그림에 깔고 앞으로 정국의 추이를 지켜보는 일도 흥미진진할 것 같다.

 한박사에 의하면 한동석선생은 6.25를 보는 안목도 특이하였다. 음양오행적인 시각에서 6 · 25의 발발을 해석하였다. 한반도의 중앙을 가로지는 강은 한탄강인데, 한탄강 이북이 북한이고 이남이 남한이다. 오행으로 보면 이북지역은 북방수(北方水)에 해당하고, 이남지역은 남방화(南方火)에 해당한다. 이북은 물이고 이남은 불이다. 그런데 소련의 상징이 백곰이다. 백곰은 차가운 얼음물에서 사는 동물이니 소련 역시 물이다. 중국은 상징동물이 용이다. 용은 물에서 노는 동물이어서 중국 역시 물로 본다. 이북도 물인데, 여기에 소련의 물과 중국의 물이 합해지니 홍수가 나서 남쪽으로 넘쳐 내려온 현상이 바로 6 25다.

 대전은 들판이라서 그 홍수가 그냥 통과하고, 전주·광주도 역시 마찬가지로 통과하였다. 그러나 대구는 큰 언덕이어서 물이 내려가다 막혔다. 울산·마산은 모두 산이어서 물이 넘어가지 못했다. 부산은 불가마(부산의 부釜는 가마라는 뜻이다.)이니 물을 불로 막을 수 있었다고 한다. 경상도가 6 · 25의 피해를 덜 본 이유는 이 때문이다.

 그밖의 예언을 간추려 보면 2010년을 분기점으로 해서 임신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그러니까 그 전에 될 수 있으면 아이를 많이 낳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앞으로는 '딴따라' 세상이 될 것이라고 하였는데 그 말 또한 그대로 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우리나라 국토에도 변화가 생긴다고 보았다. 한반도 남쪽이 물에 잠기는 반면 서쪽 땅이 2배쯤 늘어난다고 예언하였다.

 한동석 선생은 이처럼 앞일을 내다보는 예언자로서의 면모를 아울러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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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 년 함경남도 함주군에서 출생한 한동석 선생은 한국 사상사에 있어서 신화적인 존재다.

1. 우주변화의 원리 저자 한동석에 대하여
명리학과 한의학의 연결고리는 오행사상에 있고, 이 오행에 대한 이해를 확실히 한 인물이 한동석(韓東錫, 1911-68) 선생이다. 1911년 함경남도 함주군에서 출생한 한동석은 '우주변화의 원리'라고 하는 문제의 저서를 남겼는데, 66년에 초판이 발행된 이 책은 40년 가까이 스테디셀러로 내려오고 있다. 한의학도들의 필독서로 꼽힌다. 한의과대학 학생치고 이 책 안 본 사람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평판이 자자한 책이다. 그런가 하면 동양사상이나 명리학을 심도 있게 공부하려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 책은 반드시 읽어봐야만 하는 책으로 회자되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한동석 선생은 오행사상에 대한 창신創新을 해낸 인물이다. '우주변화의 원리'는 오행의 원리를 스스로 입에 넣고 하나씩 씹어 철저하게 맛 본 다음 쓴 책이다.

 근래에 한.중.일 3국 중 오행에 대한 이해를 오늘의 맥락에서 이처럼 확실하게 해낸 인물은 없는 것 같다. 한국에서 인물이 나왔다. 오행에 대한 역작이 바로 한국의 한동석 선생이 저술한 '우주변화의 원리'이다. 이 책은 중국이나 일본의 연구자들도 공부해야 할 명저다.

 한동석 선생이 전념한 수도修道 방법은 무엇이었는가. 방법은 독경讀經이었다. 그는 황제내경 운기편을 일만 번 가까이 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에는 3,000독을 목표로 하였으나, 3,000독을 해도 신통찮다고 여기고 다시 6,000독 9,000독에 이르렀다고 한다. 9,000독에 가니 약간 보이더라고 술회하였다. 마지막 1만 독을 채우면서 활연 관통했던 것 같다.

 선생은 이 책의 의미에 대해 대한한의학회지 광고문 중 저자의 말 중에서 "우주도 변화하고 인간도 변화한다. 그러나 인간은 이것을 살필 줄 모른다. 이 원리를 계발하여 놓았지만 인간이 그 근주根株를 파헤치기는 진실로 어렵다. 필자는 내경을 연구하는 학도와 우주의 신비를 개발하려는 후학들에게 그 안내의 역을 다하려는 심정으로 이 글을 세상에 내보려는 바이다"  라고 운을 떼고 "평이한 말과 쉬운 문장으로 엮음으로써 누구나 알 수 있게 하는 데 노력하였다"고 밝혔다.

한동석 선생은..
 선생의 본관은 청주이며 본명은 국흠國欽으로 월남 후에 동석東錫으로 개명했다. 호는 두암斗庵 혹은 동암東庵이다. 1911년 신해년辛亥年 음력 6월 5일(양력 6월 30일) 인시寅時 함경남도 함주군 하조양면(오늘날 함남 영광군 용동리 근방)에서 청주한씨 예빈윤공파 22세손으로 부친 希春과 모친 李氏 사이에서 3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20대 후반까지는 장사를 하였다. 32세 되던 1942년에 부인이 폐병으로 죽고 난 뒤에 본격적으로 한의학 공부를 시작하였다. 부인이 죽기 전에 동무 이제마 선생(사상의학의 창시자)의 이전제자二傳弟子인 김흥제 선생에게 치료를 받았는데 이것이 인연이 되어 김흥제 선생 밑에서 한의학을 배웠다고 한다. 6.25 전쟁시 1952년 부산 영도에서 진료하는 틈을 내서 동양의학 전문학원에 강사로 출강을 하였고, 1953년에는 부산 영도에서 제2회 한의사 국가고시에 응시하여 면허를 취득한 후 정식으로 개원하여 인계한의원을 운영하였다.

1956 년 서울로 올라와서 인사동 사거리에 한동석한의원을 개원하였으며, 이후 <역학원론>의 저자이며 주역에 대해서 깊이 연구한 한장경선생으로부터 주역을 배웠다. 선생은 계룡산 국사봉(정역을 찬술하신 김일부대성사께서 도통하신 곳)을 출입하면서 주역과 정역 등을 심도 있게 공부하였다.

1960 년을 전후하여 선생은 <내경> '운기편', <주역>, <본초>등에 관한 내용을 한의사, 한의과 대학생 등에게 한의원 2층에서 강의를 시작하여 몇 년간 지속하였으며, 경희대학교 한의과 대학의 전신인 동양의약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이후 전임강사로 출강하였다. 1960년대 전반기부터 <우주변화의 원리>를 집필하기 시작하여 여름만 되면 계룡산에 내려와 목욕재계를 하며 원고를 수정하여 정리하였다고 한다.

선생은 58세가 되던 1968년 자신의 태어난 날인 음력 6월 5일에 세상을 떠났는데, 병상에서 자신의 생일날 生時인 寅時를 넘기면 살 수 있다고 하였으나 이를 넘기지 못하고 서세逝世하였다.

63 년에 이미 당신 스스로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하였고 돌아기시기 한 해 전인 67년 12월 정도부터는 주위사람들에게 "내가 왜 이러지?" 하며 자신의 건강상태가 좋지 못함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자꾸만 머리가 커지는 것 같다는 말을 하고 이후에 "환한 봄날인데, 볕 좋은 봄날인데 환한 세상이 왜 이렇게 어둡냐."고 하는 등 서서히 죽음을 예감하였다.

돌아가시던 68년에는 산책을 나가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였다. 당신이 죽고 난 뒤에 가족들의 생계가 매우 어려워질 것이라 예견하였으며(선생이 죽고 난 뒤에 온 식구가 거지가 되어 거리에 나 앉을 것이라며 대성통곡을 한 적이 있었다고 하는데, 과연 선생의 임종 후 가세가 기울고 가족이 흩어지는 시련을 겪었다) 혹시라도 당신의 生日과 生時만 넘기도록 살 수 있다면 회생할 것이나 완전한 건강을 되찾으려면 2,3년이 걸릴 것이라 하였는데, 아무래도 그날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하는 등, 자신의 죽음과 관련된 여러 일들을 미리 내다보았다.

 그래서 자구책으로 자신의 생일을 넘기고 오겠노라고 계룡산으로 내려갔었으나, 꿈에 선생의 조모가 나타나 "여기가 어디라고 왔느냐, 빨리 너의 집으로 가거라!"고 소리치는 것을 보고서 그 곳이 머물러 있을 곳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황급히 서울로 돌아왔다. 돌아와서 제자들에게도 역시 갈 곳이 아니었기에 그랬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한다. 여느 때처럼 계룡산으로 갔다 하면 한달 씩 걸려야 올라오던 선생이 며칠 만에 다시 서울로 돌아와서 주위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겼는데 이때부터 건강히 급격히 악화되었다.

 자신의 生時만 넘기면 된다는 선생의 말에 한봉흠 교수(한동석 선생의 사촌동생; 전 고려대교수)가 그렇다면 양방 치료를 시도해도 되겠느냐는 질문을 했는데 선생은 그것은 결코 안 된다 하였다. 결국 고혈압, 비증, 후두암 등으로 투병을 하다가 뇌혈관발작(뇌졸중)으로 혼수상태에 빠진지 열흘도 채 안되어 자신이 태어난 날에 태어난 時를 넘기지 못하고 1968년 무신년戊申年 음력 6월 5일(양력 6월 30일) 새벽 축시丑時, 가족과 제자들의 곁에서 별세하였으니, 이 때 선생의 나이 향년 58세 였다

여기에서 주목을 끄는 부분이 있다. 한동석 선생이 이승만 대통령 이후 한국의 정권교체에 대하여 밝혀놓은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 항간에 떠도는 말에 의하면 한동석 선생은 앞일을 미리 내다보는 예언 능력이 있었다고 전한다. 한의사이면서도 앞일을 귀신 같이 아는 도인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 대표적인 예언이 한국의 정권교체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었다. 이 예언을 좀더 구체적으로 알기 위하여 한동석 선생의 사촌동생인 한봉흠(76) 박사를 서울정릉의 자택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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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중의원리를 작업하기 위해 행림과 대원 차이를 정리했던 것입니다.
처음 숫자는 행림/대원의 쪽수입니다. [답]은 위 차이에 대한 판단을 한 것입니다. 참고로 위 차이는 공경옥님 발견하였고, 답은 안초가 판단 하였습니다.

한동석 우주변화의 원리
행림출판사 와 대원출판사의 내용, 글자 변형된 것만 모음 행림/대원으로 표시합니다.
2005.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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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6/403

문화의 조류는 서양으로 쏠려 버리고 吾東固有의 진리는 점점 쇠미의 길에 접어드는 때에 태어났으니 良師를 어디에서 구할 수 있을 것인가?

*吾東固有/ 우리 동양 고유...로 고쳤습니다. 한문 없애고..

( )308/405

한동석은 '우주변화의 원리 꿈(夢)을 타고 20年'에서, "嗚呼라, 松下問童子하니 言師採藥去라내 스승은 진실로 藥 캐러갔는가? 只在 此山中이련마는 雲深不知處라. 이 산중에 있기는 있는데 구름이 깊어서 알 수 없는가? 이것이 내가 20年의 꿈 속에서 부르고 불렀던 古人의 노래다. 그러나 나는 이 노래에서 신비의 고리를 잡을 수가 있었고 道通의 연원을 찾을 수가 있었다./ 대원에서는 아래와 같이 고쳤습니다.

嗚呼라, 松下問童子하니 言師採藥去라

只在 此山中이련마는 雲深不知處라

내 스승은 진실로 藥 캐러갔는가?

이 산중에 있기는 있는데 구름이 깊어서 알 수 없는가?

321/422

宇宙告發의 꿈(천국의 법정)'에서, "

어느 사이에 法王의 두 눈은 五色으로 繡놓은 太極으로 變하더니 거기에서는 命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法度는 이 時刻에 震邦의 門을 열기로 한다. 道使는 黃石公으로 定하고 王은 杜目之로 定하며 六名의 宰相으로써 12種族을 다스리게 한다」고 하는 法王의 분부가 끝나자 마자 王과 侍從들은 雅樂을 타고 사라져 버렸다. 天國은 또다시 옛적처럼 고요해졌다. 이때에 法問 앞에 홀로 남아 있던 老人의 가슴속은 虛無感으로 가득해졌다."라고 설명합니다.

*命令이/생명이...로 고쳤습니다.

*六名/여섯명..으로

328/432

天師는 다시 말을 계속했다.

「天下에는 반드시 法統이 있습니다. 法이란 것은 물 흐르는 대로 따라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물은 위로 흐르면 造化萬邦하는 것이요, 아래로 흐르면 變成萬國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太極宮의 命令이며 또한 造化입니다. 옛날 震邦의 醇朴(순박)한 人心이나 自然은 물의 法統이 이루어놓은 醇朴性입니다.

*醇朴(순박)한/ 소박한으로 다르게... 아래에 醇朴性/순박성으로 같게..

329/434

한동석은 '우주변화의 원리 黃石公의 啓示'에서, "「殿下께서는 離邦의 末葉에서 宗敎家들은 末世를 豫告했고 女子의 威勢가 커지기 시작했고 事物은 細分의 絶頂에 達했고 腐敗(부패)와 墮落(타락)은 極點에 이르는 光景을 보시었습니다.

/「殿下께서는 離邦의 末葉에서 宗敎家들은 末世를 豫告했고(,따옴표 넣음)女子의 威勢가 커지기 시작했고(,따옴표 넣음) 事物은 細分의 絶頂에 達했고(,따옴표 넣음) 腐敗와 墮落은 極點에 이르는 光景을 보시었습니다.

* 없던 ,(따옴표) 넣음

333/440

그밖에도 殿下께서는 많은 것을 보셨습니다. 三人의 侍女가 白鷺의 날개 밑에 숨어 버린 일이라든지, 天國의 衣冠이 모두 紺黑色(감흑색)이었던 것이나 많은 宮殿이 忽出忽沒(홀출홀몰)하던 것 같은 奇蹟(기적)들이 있었습니다.

*三人의/ 세 사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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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석 우주변화의 원리
행림출판사 와 대원출판사의 내용, 글자 변형된 것만 모음 행림/대원으로 표시합니다.
2005.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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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341 (이곳은 3개나 틀립니다.)

그런즉 亥子丑· 寅卯辰이라는 것은 陽이 精을 生하는 方位를 말하는 것이요,巳午未申酉戌이라는 것은 陰이 神을 生하는 방위를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陰이 精을 生한다는 말은 月이 精을 生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요, 陽이 神을 生한다는 말은 日이 神을 生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즉 우주정신은 최초에는 乾坤 본연의 작용에 의해서 生成한 것이지만 乾이 地球와 日月을 창조한 뒤에는 日月이 이것을 代行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인간정신은 坎離精神을 받아서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267/348

왜 그런가 하면 정신을 창조하는 土가 陰陽을 적당하게 伸縮할이만큼 조절할 때에 한하여 最優秀한 것이 生成되는 것이므로 土(다른 木火金水도 그렇다)의 太過不及은 모두 精神을 열등(劣等)하게 하는 것이다.

*伸縮할이만큼/伸縮할 만큼...

*陽이/陰이

*陰이/陽이로

*乾이/乾坤이로... 대원에서 고쳤습니다.

299/382

그런데 이와 같은<時空의 間>인 선후천의 境界點에 있어서는 만물이 最大分裂을 하는 것인즉 그 象의 數는 63, 72, 81의 過程이라는 것이다.

*그 象의 數는/ 그 象의 水는 ..으로 고쳤습니다.

295/386

좀더 자세하게 말하면 巳(木)· 午(火)· 未(土)· 申(相火; 相火는 無根而不用)· 酉(金)· 戌(水)의 順으로 되는 것이다. 그런즉 이것은 바로 巳午에서 未土와 交會하여 가지고 申酉戌에 와서 太極이 完成된다는 말이다.

* 交會하여/ 交合하여로...

300/393

그러나 360分~1日의 변화를 인식하기 용이하였다면 360年에 한 번씩 일어나는 1運의 변화는 우주에서 뚜렷하게 나타날 것이다.

*360分~1日/ 360分(1日)..로 고쳤습니다.

304/399

좀더 자세히 말하면 先天이 3天兩地運動을 하던 때의 달은 항상 陽을 감당하기 어려우므로 그 때문에 우주에는 수많은 말썽이 생겼는데 그와 같은 先天 달(古人月)이 坎(天心)을 기본으로 하고 일어난 것이 몇 번이나 됐느냐 하면서 멀지 않아 後天의 病 들지 않은 달이 나올 것을 예고한 詩인 것이다.

* 멀지 않아/ 머지 않아로..

305/401

한동석은 '우주변화의 원리 神秘의 行路'에서, "이것은 神秘라고 불리우는 우주의 비밀을 탐색하는 法則과 方法의 影子를 제시한 데 불과하다.

*불리우는/불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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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숫자는 행림/대원의 쪽수입니다. [답]은 위 차이에 대한 판단을 한 것입니다. 참고로 위 차이는 공경옥님 발견하였고, 답은 안초가 판단 하였습니다.

한동석 우주변화의 원리
행림출판사 와 대원출판사의 내용, 글자 변형된 것만 모음 행림/대원으로 표시합니다.
2005.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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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57

문왕도를 살펴보면 右에서 左로 向하는 단순히 相克하는 운동만을 하면서 南에서 金火가 交易하는 象을 나타내고 있는데 정역도를 보면 卦의 方位에서마다 金火가 交易하는 象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方位에서마다 /方位마다로 고침

197/257

그뿐만 아니라 사실 上火는 正南에서는 아직 10土(순수한 土)가 이루어지지 못한 5土의 자격으로서 調和하고 있는 것이다.

*上火/七火로 고침

197/258

東北의 8木은 4金을 根底로 했지만 여기에서는 火金이 3木을 위에서 포위하는 象이다.

*火金/ 九金으로 고침

199/260

즉 현실의 金火交易은 不完全한 交易이므로 변화가 불측하지만 정역괘도시대는 변화가 正常하게 되므로 불측지변이 없는 平和時代가 온다고 보는 것이다..

*하게/으로 고침

210/274

春夏는 陽이 발생하는 때이므로 일찍 일어남으로써 흥양(興陽)작용을 도와주고 늦게 잠으로써 陽이 作用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도록 하여 주어야만 順天時가 되는 것이다. 秋冬에는 晩起朝臥함으로써 될 수 있는 대로 陽을 귀숙하게 하려는 것이니 이것이 또한 順天時인 것이다.

*春夏는 /봄 여름은 으로

*秋冬에는 /가을 겨울은 으로 고침

216/281

社會的 變化와 性의 善惡'에서... 胎兒의 體軀는 부드럽다.

*胎兒의 이 體軀는 부드럽다./태아의 체구는 부드럽다로 이를 삭제.

그러면서도 陰은 늘어날이만큼 늘어나고야마는 것이다..

*늘어날이만큼/ 늘어나리만큼으로 고침

228/297

近取諸身...근취제신인지/ 근취저신인지? ?? 대원에서 근취저신으로 적혀있습니다.??

遠取諸物..원취제물인지 /원취저신인지?? 대원에서 원취저물로 적혀있습니다.??

諸 모든 제; ⾔-총16획; [zhū]

모든, 여러, 어조사, 어세 강조 발어사, -은·는, 이(대명사‘之’와 같다), -에게, -에서, 간수하다, 갈무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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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중의원리를 작업하기 위해 행림과 대원 차이를 정리했던 것입니다.
처음 숫자는 행림/대원의 쪽수입니다. [답]은 위 차이에 대한 판단을 한 것입니다. 참고로 위 차이는 공경옥님 발견하였고, 답은 안초가 판단 하였습니다.

한동석 우주변화의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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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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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173

한동석은 '우주변화의 원리 象의 槪念과 成立'에서, "象이라는 개념은 形과는 바로 반대되는 개념이다.

*바로/ 대원에서 삭제..

136/175

그런데 이와 같은 象이 北方正位에 있는 것은(이것이 艮方에 있는 것만 만족하지는 못하지만) 6이 결국 포위망을 이완(弛緩)하면서

것만/ 것만큼으로 고침.

140/180

그러므로 五土는 확장하려는 十이요 十土는 종합하려는 의미가 내포하고 있는 土라고 한다.

*十이요 / 대원에서 土요.. 로 고침

*내포하고/ 내포되어 ..로 고침

141/181

그런데 十이 비록 이와 같은 中이라고 할지라도 만일 子午의 正中線 서쪽에 조금만이라도 치우치게 되면

*조금만이라도/조금만이라고..

147/190

그러나 비록 이러한 象이라고 할지라도 눈이 적당히 노출하기만 했다면 그 성품도 비교적 너그러울 것이고 따라서 木火之氣(心肝)도 적당하게 발휘될 것이므로 의학 소위 氣下陷하는 병에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蹇의 象은 곧 뇌수해(雷水解)의 象으로 變하게 됨으로써 알맞게 조절되어지는 것이다.

*의학 소위/ 대원에서...의학에서 말하는 으로 고침..

153/197

그런즉 河圖가 東西南北의 內部에 이러한 數를 內包하고 있는 것은 우주운동의 四大元質의 기본인 生數의 발전순서가 이러하다는 것을 계시하기 위함이다.

*四大元質/ 四大原質로...(다른 글에는 四元質로 하였는데 이곳에만.)

160/206

數의 성립에 있어서 64卦의 生成은 65에서 本體數 1을 공제하므로써 64괘가 된다는 것을 말한바 있다.

*공제하므로써 /공제함으로써..

171/224

그러나 후천의 오원운동, 즉 지축이 바로 섬으로써 축미진술이 하는 운동은 위에서 말한 봐와 같은 삼원운동의 폐단을 지양하게 되는 것이다.

*正立하는 /正位하는으로

첫째로 그가 전부 정방형의 十字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土가로 고침

묵자에서 188/246

<鑑에 位景할새 一少而易하고 一大而하나니 設在 中之內外라 鑑團景一이니라.>

*缶 장군 부; ⽸-총6획; [fǒu]

장군, 액체를 담는 그릇의 하나, 용량(容量)의 단위, 사곡(四斛), 16두(斗) /

대원에서는 <缶> 이 글자를 정이라고 한글로 덧글을 넣었는데 그 글자가 아무리 찿아도 없습니다.

缶에서 위에 一선이 없는... 舌 자의 口대신 山자를 넣은 모양으로 정이라고 한글을 덧 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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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중의원리를 작업하기 위해 행림과 대원 차이를 정리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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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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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142

한동석은 '우주변화의 원리 水火 一體論과 탈레스의 思想'에서, "嗚呼라! 탈레스와 같은 대천재가 만일 太極이 兩儀로 발전하고 兩儀가 四象(水火金木;坎離震兌)으로 전개될 때에 土의 中和를 얻음으로써 五運의 변화작용이 일어났다고 하는 정도의 원칙만 알았다고 할지라도 ( 그리고 )아니 설명했더라면 희랍의 자연철학은 물론이고, 오늘의 哲學界는 그 위치가 달라졌을 것이다. 우리의 욕심으로 말한다면 거기에다가 지축의 경사 때문에 일어나는 五運과 六氣의 五六變化作用까지 말했더라면 금상첨화겠지만 그것은 바랄 수도 없었던 일이다. 아니 백보를 후퇴해서 물의 統一과 分裂作用 한 가지만 확실히 말했더라도 경박한 철인들이 탈레스가 動的 現象을 부정했다고 하는 것과 같은 엉뚱한 비판을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헤겔도 그의 변증법을 완성할 수가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다시 말하면 그의 변증법이 발전의 一面만에서 헤맸을 것이 아니라 統一의 二面에까지 미침으로써 完全한 변증법적 체계로써 宇宙의 變化를 설파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나도 말하리라. 땅 위에 있는 철학의 눈(眼)을 東으로 모으라. 그 다음에는 씹고, 또다시 씹으라. 그래도 안 되면 良師를 求하라. 時間과 良師는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라고 설명합니다.

*土의 中和를 얻음으로써 五運의 변화작용이 일어났다고 하는 정도의 원칙만 알았다고 할지라도 ( 그리고 )아니 설명했더라면 / 행림에는 없는 (그리고)를 새로 넣었습니다.

* /아니..를 삭제하였습니다.

120/155

이와 같이 體用으로 論하는 것이 옳은 방법이므로 6氣의 개념을 설정함에 있어서도 이와 같이 二面性을 띠게 한 것이다.

*띠게 / 띄게..

131/169 未토부분..

그런즉 20이라는 數는 사실상으로 19數의 基本인데 변화작용에서 數의 化合은 19를 넘지 못하므로 19로써 終止되거니와 19는 10土와 9金을 合한 것이다. 이와 같이 하여서 未土는 分裂인 火의 極이며 또한 統一의 始初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火의 과정을 다시 고찰해 보면 巳火의 數에는 10土의 象이 있었고 午火의 數에는 10土와 4金의 象이 있었다.

*행림에 적힌.. 이와 같이 하여서 未土는 分裂인 火의 極이며 또한 統一의 始初가 되는 것이다. / 이 부분은 대원에서 삭제 하고 없습니다.

132/171 戌토부분..

그 다음은 戌이 들어오는데 戌은 方位로서는 5토요, 변화로도 6水다. 여기에서는 6水로써 5土를 포위 보호하려는 것이다.

*변화로도/변화로는 으로 고침.

그러므로 이 1數는 아무리 自乘하여도 부를 수가 없는 것이니 그것이 바로 本體이며 또한 空이므로 伏羲는 그의 괘도에서 乾의 數를 一로 하였고 文王은 그의 괘도에서 乾을 西北方에 놓음으로써 하나는 數로써 乾의 本質을 表明했고 하나는 方位로써 乾의 象을 표시한 것인즉 이것은 모구 戌의 象과 數의 작용을 나타낸 것이다."라고 六氣의 自化作用을 설명합니다.

* 부를 수가/ 불릴 수가.. 로 고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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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숫자는 행림/대원의 쪽수입니다. [답]은 위 차이에 대한 판단을 한 것입니다. 참고로 위 차이는 공경옥님 발견하였고, 답은 안초가 판단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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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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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130

그러나 독자는 여기에서 약간의 의혹을 느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所論中에서 一面으로는 甲土의 運이 戊에까지 이른다고 하고 또 反面에서는 乙· 丙丁· 戊運 등이 行한다고 하였으므로 여기에서 다소간의 착각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所論中에서.../소론(小論) 중에서 ..로 고침

102/130

그 陽이 상술한 바와 같은 向上過程에서 戊火에까지 이르렀을 때는 陽을 제압하는 힘(力)이 극히 弱하여져서 만일 陽을 散失하게 되면 이것은 바로 道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후회가 있다고 한 것이다.

*弱하여져서 ../약해져서로..

103/131

이제 여기에서 甲運의 운행에 대해서 요약하여 보면 甲土運의 목적은 坎水 속에 包藏되어 있는 一陽을 유도해 내어서 극히 細分化될 때까지 발전시키려는 데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는 乙金· 丙水와 같은 방해자도 있었고 丁木· 戊火와 같은 升明作用을 감당해 내지 못할 것같이 보이는 것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것들은 인간의 近視眼的인 관찰에 기인한 것뿐이고 天道는 여기서 周密한 설계에 의해서 動靜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乙木· 丙水의 제어(惡)가 아니면 形을 보전할 수 없고 丁木· 戊火의 후퇴(火가 木이되고 土가 火로 된 것을 五行方位로서 볼 때에 각각 一步씩 후퇴한 것이다)가 아니면 土를 生하기 어렵기 때문에 天道는 이미 이와 같은 설계에 의해서 운행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것이 잘못 된 것인지??

* 아래쪽 乙木· ../대원에는 乙金으로되어있습니다.??

만일 그 氣質의 순수성이 보장되지 못하면 우주운동은 가장 중요한 統一作用에 있어서 一大破鏡의 우려가 있겠기 때문이다.

*있겠기../있기 로 고침.

109/140

그런데 象數學은 여기에 대해 行과 運의 운행법칙을 세웠고 또한 운동하는 목적으로써 水火一體運動의 散合法則을 세워놓은 것이니 이것을 水火一體論이라고 하는 것이다.

*목적으로써/ 목적으로...고침

110/141

五行運動의 과정에 있어서 水氣의 發散이 끝나는 때가 水의 終點인 동시에 火의 位요, 水氣의 綜合이 시작하는 때가 水의 始點인 동시에 土의 位인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土化(未土)作用을 일으켜서 分散된 바의 火를 다시 水 본연의 자세로 돌려보내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보면 水가 發散하면 (火의 )象이 되고 火가 綜合하면 그 象이 바로 水인 것이다. 그런즉 水와 火라는 개념은 변화현상으로서의 구별일 뿐이고 그 實相을 따져보면 火란 것은 水의 氣化作用에서 이루어진 물의 變形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火란 것은 現象界에 나타난 바의 多의 實體인 것이고 결코 萬物의 本體는 아니다. 그러므로 火는 주관적 실체인 1水의 影子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즉 水는 火를 散合하기 위해서 응고성과 자율성과 조화성을 가지고 있는 기본적 존재인 것이다."라고 설명합니다.

*행림에는 없던 火의.. 를 새로 넣었습니다.

現象界에 나타난 바의.../ 바의 를 삭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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