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찮게 유튜브를 통해서 안초 선생님의 강의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두~세번을 반복해서 시청해도 동양학에 대해 워낙 기초 지식이 없었던 터라,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무슨 뜻인지 알듯 말듯 했었는데, 지금은 책도 좀 보고, 자료도 찾아보고 하다보니 희미하게나마 개념 정리를 해 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아직은 과연 제가 어디까지 공부 해 나갈수 있을지, 언제까지 이런 열정을 지속 해 나갈수 있을지 의문과 두려움으로 걱정이 많습니다.....그렇지만 한가지, 우주 삼라만상의 생성 이치에 대하여 처음으로 생각 해 볼수 있었고,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도 이치로 생각해 가면 충분히 진리에 도달 할수도 있겠구나 하는 확신은 가지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도와 주신다면, 지금의 걱정이 한결 덜어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3.10.01. 10:38

 

한 10 여일동안 5운 6기 동영상 강의를 들었습니다.

강의를 듣는 동안은 알듯 하고 남아 있는것이 있었는데 며칠만 지나면, 머리속이 그져 하얗게 되기만 하니 원...

자고 일어나는 횟수만큼 기억력은 쇠퇴해 져만 가는군요...

하지만, 공부 하는동안 만큼은 잡념없이 즐겁고, 행복합니다.

다들 건강하세요

2013.10.15. 10:43

 

 

 

세상 만물이 모두 "자화"와 "상화"의 상호 작용으로 창조되고 움직인다는 "화리"라는 이야기가 많이 혼란스럽습니다.

"토" 중심의 오행과도 다르고 "중" 이라는 존재도 부정하는듯 해서, 더더욱 어려워 집니다.

우주변화의 원리를 좀더 열심히 공부해야 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2013.10.16. 09:30

 

동영상 강의의 장점 이랄까요.... 

직접 강의실에서 듣는 강의가 아닌 동영상 강의 일지라도, 반복해서 들을수 있어서 오히려 좋습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중요한 단어나 문장과 문장사이의 조사들도 반복해서 들을때 그 의미가 새롭게 와 닿는듯 하고,

그럼으로서 문단의 뜻도 더 명확해집니다..

하나가 이해되고 깨달을때, 정말 기쁩니다... 감사합니다.

2013.10.19. 20:00

 

동양학에 대해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고,  우연찮게 입문한 저에게는 조금 어렵습니다.

동영상 강의는 워낙 명강의 이시라 어느정도 이해는 됩니다만, "우주 변화의 원리" 책을 보면

정말이지 어려운 단락과 글들이 많아서, 망막할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그래도 금연을 시작 할때의 심정처럼.... 게속 해야지요..

애연가 였던 제가, 처음 하루를 끊었던것이 아까워서 이틀을 끊었고,.... 한달을 금연한것이 아까워서

한달 하루를, 1년을 끊었던것이 너무 아까워서, 계속 하루 하루 이겨냈던것이 지금은 15년여.. 이젠 완전히 담배를

끊었습니다.

2013.10.23. 10:17

갯츠비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처음에 책을 우연히 구입해서 보면서 모르는 것이 있어서 궁금해하면서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인터넷 검색중에 강의가 보여서 이곳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것도 연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강의 중에 궁금해하던 것이 해결될 때마다 기쁨이 많습니다.

좋은 강의를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2013.10.02. 18:44

소나무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안녕하세요.

 

좋은 강의를 선뜻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 한테 내 보인다는것이 쉬운일이 아닌데, 비디오 보면서도 느꼈지만, 담담하시면서, 겸손하시고, 사려 깊으신걸 접하면서 비디오 내용 뿐만 아니라  학문하는 자세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제 자신을 뒤돌아 보게 되었습니다.동양학관련  공부하다가, 우주변화의 원리 책 을 사둔지는 한참이 되었습니다만, 읽다가 덮어 두고, 답이 보이지 않아 한참을 헤메였었는데, 전체적으로 접근할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또한 더  공부 해야 되겠다는 좋은 쪽의 압박감의 동기 부여도 해 주셨습니다.  

 

기초 라고 하셨지만, 아직 이해 되지 못한 부분도 많아서, 다시금 책도 읽고, 한번더 비디오도 보면서 열공하겠습니다. 중의 원리 갔다가 또 다시 와야겠습니다.

한번 더 감사 드립니다. .

 

GoodLuck
2013.09.20. 16:07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아띠

2013.07.09 19:47:13

 

 

동양학에 관심을 두고 관련 분야 책을 구입하여 혼자 공부하게 됐는데 우연히 한동석 선생의 <우주변화의 원리>를 접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내용이 무척 어려워서 갈피를 못잡고 있던 차에 선생님의 무료강의를 듣고 어렴풋이 감이 잡히게 되었습니다.

동양학을 배우려는 후학들을 위하여 무료강의를 행하시는 선생님의 거룩한 헌신에 경의를 표합니다.

 

내친 김에 선생님의 <중의 원리> <정역><운기경전>에 도전해보려고 오늘 도서구매 신청했습니다. 

선생님을 만나게 된 것은 제게 소중한 인연이고 한동석 선생님 말씀처럼 어렵게 良師를 만나게 되었고 

이제 제게 보약이 될 신비의 영약을 구하러 깊은 산중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거듭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저절로

2013.06.24 20:44:24

 

 

혼자서 우주변화의 원리 책을 여러번 읽어도 보았고,  나름 머릿속으로 정리도 하고 했지만,

이렇게 카페를 통해 또다시 전편을 좀 더 깊이 있고 폭넓은 시각으로 풀어서 해주시는 강의를 접하니~ 

더욱~  우주의 신비!! 그 매력에 흠뻑~ 빠져들고,  강좌를 듣는 내내 마음은 더 없이 평화롭고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    시간내서 꼭 찾아뵙고 싶습니다~!!!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노나메기

2012.12.17 09:15:11

 

우주변화 원리 강의를 듣고 수강후기 남깁니다.

아직 책을 완독한 상태가 아니고 강의를 1차적으로만 들어서

강의하신 내용을 완벽히 이해했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워낙 어렵다고 알려진 책이어서 사놓고 읽어볼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무중 선생님의 강의를 통해서 책을 읽고

내용을 이해하고자 하는 용기를 얻은 것이 가장 큰 수확 같습니다.

시간되는대로 몇차례 반복하여 책의 내용을 파악하고

제 나름의 관을 수립하고자 합니다.

강의 공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응일
2011.03.01 22:25:26

하나를 잡는다는 것이 지난한 일이지만 언젠가는 허물어지는 날이 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우주변화의 원리 속에서

헤메이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일관된 설명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엠티맨
2010.12.08 22:18:12

우주변화의 원리를 수강하고 있습니다

 

처음 동양철학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풍수지리를 공부하다가 인연이 되었습니다

각종 이론을 공부하면서 열심히 외우기만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이론이 나오게된 원리가 궁금해 지드라구요. 넘 궁금해서 사주명리 등 여기저기 기웃거려 보았지만 갈증만 더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우주변화의 원리를 접하게 되었는데 도대체 머리말 부터 막혀서 다음 페이지를 넘길 수 없을 만큼  너무 어려워 여러번 실의에 빠지다가 모 종교방송에서 무료방송을 보면서 겨우겨우 1독을 했지만 모르기는 매 한가지였습니다.

 

한동석 선생님 말씀따라 좀 넓게 파야되겠다 싶어 음양오행 관련 서적을 탐독하다보니 다소간의 진척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정리가 안되는 거예요. 회의감도 몰려들기 시작했지요 그럴때 유일한 위안은 막고 품는 것이었지요 몰라도 여러번 읽었습니다. 언젠가는 되겠지 하고요 조금씩 용어에 대한 적응은 돼가는데 전체적인 흐름이 꿰어지지 않는 거예요 그러던 중 음양오행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한  '오행의 새로운 이해(은남근 저)'를 보고나서 동양철학을 계속 공부해야할지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때의 상실감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죠.  근 2년간 미친듯이 달려왔는데 음양오행이라는 것이 추연, 동중서, 유흠 등에 의한 정치적 산물 이상의 의미가 없다는 내용을 보고 충격이 컸습니다. 그래도 동양철학에 대한 인연이 그 충격보다는 커서 였던지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 와중에 본 강좌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며칠동안 흥분의 나날이었고 그간 잘 버텨 여기까지 이르게 해준 하늘에 감사했습니다

 

음양오행을 체계적으로 배우기는 매우 어려운게 현실인 거 같습니다

시중에 많은 서적이 범람하고 동영상 강좌가 있지만(가격도 만만치 않죠) 내용이 다 달라 혼선이 빚어지지고 그럴수록 더 미궁으로 빠져들게 되는 같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이번 강좌는 저와 같이 갈증에 허덕이는 초학들에게는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습니다 갈증도 해소해주고 나아갈 좌표까지 제시하니깐요 강좌수강을 통해서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첫째

하나 하나의 용어에 묻혀서 전체적인 그림을 볼 수 없었는데 선생님의 강의 통해 큰 틀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면서 곁가지 까지도 많이 이해되었다는 것입니다. 늘 답답해 하는 부분이었는데 그 흐름들이 꿰어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엄청난 희열을 느꼈습니다. 이책 저책 기웃기웃거렸는데 운기, 주역, 정역분야로 구분하시는 강의를 듣는 순간 앞으로 어떻게 공부해 나갈지 방향이 보이는 듯 했습니다.  덜 헤매고 탄력이 붙을 거 같습니다

 

둘째

그간 음양오행에 대해서 반신반의 하던 부분이 싹 사라지고 음양오행을 우주변화의 진정한 법칙으로 믿고 자신있게 이 공부를 해도 되겠구나 하는 확신이 섰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제게 삶의 좌표를 그려주는 크나큰 행복있었습니다

 

셋째

이 수업이 지금 향적산방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아는데 직접 계룡산에 가지 않고도 집에서 수강(그것도 무료로)할 있다는 점입니다.

돈도 안들이고 이 엄청난 강의를 듣고 있노라면 죄스런 마음도 듭니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해야되겠단 생각도 들고요 그외에도 많지만 너무 길어져 이만 줄이겠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自天祐之 吉无不利 란 경구를 가슴에 새기며 계속 정진토록 하겠습니다.

 

선생님 !!!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우주변화의 원리" "중의원리" 의 무중선생님 강의는 동양철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

 

연수
2012.02.26 16:23:44

 

처음 동양학에 관심을 두고 어떤 책으로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할지 정말 막막했다. 지인들에게 물어보고 인터넷을 뒤지고 절판된 책을 국립도서관에 가서 복사하여 책으로 만들고 온갖 정성으로 접하고자 했으나 허공에 손짓만 하는것 같아 답답했다.

 

음양오행이 모든 동양학의 근본이겠거니 하고 우선 음양오행의 원리를 알고자 인터넷서점에서 뒤지던중 원리를 설명한 책은 하나도 없고 "우주변화의 원리"라는 책만 원리를 밝혀놓은 책이라는 설명과 한의대교수도 어려워서 3장 읽고 덮는다고 하여 망설임 끝에 덜컹사서 읽었는데 무슨말인지 무엇을 설명하는 것인지 알수가 없어 1번은 읽었으나 도저히 이해가 안갔다.  마침 우주변화의 원리에 대한 무료강의가 있어 지지닷컴을 접하게 되었고 ,

 

처음 강의부터 엄청난 강의에 정신을 잃고 빠져들어 며칠만에 우주변화의 원리 강의를 마쳤다. 선생님의 혜안으로 원리를 밝히고 그것을 쉽게 풀어 설명해주었기에 초급자인 나도 알아들을수 있었다. 내친김에 선생님의 필작인 "중의원리"를 연달아 강의를 듣고 우주변화의 원리에서 미쳐 설명하지 못한 부분까지 설명이 되어있어 이해가 더 빨랐다. 물론 책을 먼저 읽고 강의를 들었으면 더 깊이있게 알수 있었겠지만 강의를 듣는 기쁜마음에 강의를 듣고 이제 책을 읽어야 겠다. 읽고 또 읽다보면 선생님이 원리를 세우고 밝히고자 하는 깊은 뜻을 조금은 더 알아갈 수 있을것 같다.

 

선생님의 강의를 듣게 된것을 나에겐 엄청난 행운과 복이다. 그렇게 찾아해메던 지난 시간이 이런 행운을 가져다 주었나보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경전, 응용강의도 모두 섭렵하고자 합니다. 그후 오프라인에서 만날수 있다고 하니 한번이라도 전체를 공부한 뒤에 뵐수 있을것 같습니다.

 

이제는 해메지 않고 공부를 할 수 있어 정말 다행이고 기쁩니다. 감사합니다.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추윤식
2009.09.15 20:53:13

⊙ 현재 한동석선생님의 우주변화의원리를 보고 잇습니다.


⊙ 한문판이 아닌 한글판이 요번에 새로 나와서 한문을 모르는 저로서는 다행한일이 아닐 수 없더군요


⊙ 이책을 보기전에 요즘 유명하시다구하시는분들의 책을 읽어 보앗습니다. 하지만 그 책들의 내용은 대부분 원리가 아닌 "이런게 있으니깐 그냥 외우세요" 이런 식으로 책내용이 구성되어있더군요 과연 역학이 암기로만 가능한가하는 의문이 생겻고 이건 아니다싶어 이리저리 자료를 다시 찾기 시작하여 다행히 안초선생님을 알게되엇구 그로인해 한동석선생님의 우주변화의원리라는 아주 귀중한 책을 얻게 되엇습니다.


⊙ 첨에 우변원을 읽을땐 무척난해하고 어려웟는데 두세번읽을때마다 조금씩 이해가 되더군요 지금은 역이란것이 어떤것이다라는 감을 잡기시작햇습니다. 계속적으로 책을 접하면서 처음 가졌던 어렵구나 하는 느낌에서 이젠 조금은 단순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엇습니다 하지만 부분적인 이해는 가능하나 종합적인 이해가 힘들더군요


⊙ 그래서 이렇게 힘을빌어 종합적인 이해를 얻고자 온라인 강의를 신청하게 되엇습니다. 머리는 둔하나 하고자하는 의욕으로 열심히 배워나가겟습니다.


2003.10.24.

경남 진주에서
추윤식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선생님 안녕하세요?

공부를 하가가 궁금한 점이 생겨서 염치 무릅쓰고 여쭙게 되었습니다.

바쁘시더라도 틈을 내시어 답을 해 주시면 공부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우주변화의 원리’의  ‘오운육기’부분에서 천간에서는 합에 해당하는 갑기토, 을경금, ... 지지에서는 충에 해당하는 자오(소음군화), 축미(태음습토), .... 을 사용하는데 있어서 궁금한 점이 있어서 몇 가지 여쭙겠습니다.

 

 

질문1. 오운육기에서 천간에서는 합을, 지지에서는 충을 사용한다는 문헌은 내경에 있다고

선생님강의를 들어 알고 있습니다만 제가 궁금한 것은

 

 

천간에서 갑기합토, 을경합금 등등이 아닌 지지처럼 충이되는 (예로 갑경, 을신, 병임, 등) 것을 사용.

또는 지지에서는 자오소음군화가 아닌 자축은 합토 인해는 합목과 같이 사용하도 될 것을 천간에서는 합을, 지지에서는 충을 사용하는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질문2. 천간의 갑기합토, 을경금, 병신수....와 자오소음군화는 대화작용이나 자화작용을 통해서 화로, 축미태음습토로 변하는데

 

1)천간에서 갑경, 을신, 병임, 정계, 무기는 어떻게 변할 수 있으며(예로 갑경은 화로 변한다), 또한 어느 문헌에 나오는지요?

2)지지에서 자축은 합토, 인해는 합목, 묘술은 합화, 진유는 합금, 사신은 합수, 오미는 합화는 어느 문헌에 나오는지요?

 

 

제가 아직 공부가 많이 부족한 관계로 선생님께서 강의한 부분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있다면 너그럽게 봐 주십시오.

혹, 문헌이 없다면 선생님 사견이라도 부탁드리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답]

1. 동양에서는 하늘은 1D 圓, 땅은 2D 方, 사람은 3D 角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땅은 2D 음양이 별도로 존재합니다. 지지에 6충(자오,축미..)이 있고 반대 작용인 6합(자축,인해..) 등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하늘은 1D이므로 음양이 없습니다. 그래서 5운(갑기,을경..)만 존재합니다. 즉 예로든 갑경, 을신, 병임, 등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2. 갑경, 을신, 병임.. 은 문헌에는 없고, 근대 명리에서만 일부 언급하지만 논리가 맞지 않아 저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3. 6충(자오,축미..)과 5운(갑기,을경..)은 황제내경 운기에 존재합니다. 그러나 6합(자축,인해..)은 황제내경 운기에는 없고, 고전 명리학에 존재하므로, 저는 인정하고 있습니다.


수고하십시오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출처: http://www.handongseok.org/lecture2.htm
黃帝內經講義 (2) 1965년 1월호

韓東錫

第一編 變化原理

第一章 總論

第四節 天地日月의 運行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五行이란 것은 太極이 갈라져서 「陰陽→四象→五行」의 順序로 發展된 象을 말하는 것이거니와 果然 무엇이 그것을 그렇게 하였는가? 또는 그렇게 하는 힘 다시 말하면 그의 正體는 무엇인가? 하는 問題를 硏究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天道의 運行 즉 日月과 地球의 運行을 硏究하여야 할 必要性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天道의 運行하는 象을 把握하지 못하고서는 五行의 本質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음에 天地와 日月의 運行에 對한 分紀와 道理(道程)를 論함으로써 變化原理를 解得하는데 便宜를 提供함과 아울러 五行原理에 대한 所自出點을 明示하려 하는 바이다.

  天體에는 本來 南北極이 있으니 이것이 樞軸이 되어서 모든 運行의 基盤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唯一不動한 곳인 것이다. 그렇지만 그 不動하는 곳이 오히려 動할수 있는 기본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不動之處인 極이 있기 때문에 天地日月이 三百六十度의 循環運動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今日의 天文學的 知識으로는 地球와 日月은 동하지만 天體는 動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나 그러나 그러한 天體로 역시 動하는 것이라고 보는 東洋哲學의 觀點에 오히려 至大한 妙味와 關心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地球와 日月은 勿論 天體까지도 動하고 있다고 보는 것은 事實인 同時에 絶對的인 眞理인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이것들은 如何한 힘에 依하여 動하게 되는가? 하는 것이 問題點인 것이다.

  그러므로 東洋哲學的 變化原理로써 보면 宇宙間에 있는 모든 有形體 즉 地球日月로부터 禽獸草木에 이르기까지 모두 躍動하는 힘을 가지고 있으니 이것들의 動하는 힘은 모두 天體의 動하는 힘 때문이라고 規定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天動說의 起源인 것이니 이 天動說은 地靜說과 相配되고 또 天圓說과 地方說이 따라서 나오게 되는 바 이 說들은 今日 學界에 많은 誤解를 쌓게 되었던 것이다. 西洋의 地動說 以前의 天動說과 뇌화부동시켜가지고 所謂 未開時代의 邪說로써 烙印을 찍어버리려는 傾向이 甚히 濃厚하거니와 그렇다면 天動說이라는 것이 果然 그와 같이 無價値한 것인지 또는 今日의 學界가 果然 天動地靜說을 올바르게 把握하고 있는가? 어떠한가? 하는 等等 問題는 各論에서 다루기로 하겠거니와 다만 本論에서 말하려는 바는 天動說을 前提로 한다는 點이다. 却說 위에서 말한 바 運行하는 天體에 包括되어 있는 日月과 地球의 運行은 如何히 하는 것인가? 하는 問題를 論述하여야 하겠다.

  그러나 本論을 敍述함에 앞서 먼저 本論을 理解시키기 爲한 豫備知識이 必要하다. 그것은 本論에서 뿐만 아니라 象數에 관한 學問을 硏究함에 있어서는 如何한 分野의 學問을 勿論하고 第一 먼저 이 點부터 認識하여야 비로서 變化와 象數를 理解하게 될 것이다. 萬一 그렇지 못하면 五里霧中에 빠져서 都是 갈피를 잡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것을 具體的으로 말하면 東洋哲學의 硏究對象은 어떤 事物의 本體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 事物의 作用에 있다고 하는 事實이다. 다시 말하면 地球가 太陽의 周圍를 돌고 달(月)이 地球의 周圍를 돌고 있다는 等을 硏究하는데 그 目的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作用을 對象으로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日月이 地球에 비치는 結果로 如何한 現象이 일어나며 또 어떠한 變化가 생기며 또 그 變化하는 原理는 무엇인가? 하는 것 즉 그 本體가 아니고 다만 그 作用面을 硏究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醫學에 있어서도 五臟六腑의 本體나 그 位置를 밝히려는데 그의 對象이 있는 것이 아니고 다만 그들의 作用 즉 눈에 보이지 않는 活動과 거기서 일어나는 變化를 硏究하려는데 바로 目的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硏究의 對象을 本體的 分析에 두는 것이 아니라 作用의 綜合的 檢討에 두기 때문에 近日 科學敎育에 머리가 젖어있는 우리로서는 얼핏 生覺하기에는 東洋哲學이란 觀念的 抽象的인 一種의 迷信에 不過한 것같이 여기기도 하지만 其實 깊숙이 들어가서 생각해 보면 事物의 本體를 硏究하려는 科學的인 것이 아니고 적어도 눈으로 볼 수도 없고 귀로 들을 수도 없는 作用까지 合하여 硏究하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단순한 形而下가 아니고 形而上과 形而下를 綜合 硏究하려는 哲學이기 때문에 不得不 그 作用硏究에 置重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萬一 그 本體面에만 硏究의 對象을 둔다고 하면 그것은 科學이요 哲學은 될 수 없으며 또 그것은 洋醫學의 特徵일지언정 漢醫學의 特徵으로는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東洋哲學은 天地日月의 運行을 說明함에 있어서도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作用面 硏究에 더욱 置重하는 것이며 또 거기서 變化原理를 찾으려는 것임을 미리 理解하고 硏究하여야 한다는 것을 여기에 미리 밝혀두는 바이다.

  그러면 日月은 어떻게 運行하는 것인가? 하는 것부터 硏究해보기로 하겠다.

  天道에는 黃道와 赤道가 있다. 赤道라는 것은 天腰의 中半點이니 그 北쪽을 外廓이라 하고 그 南쪽을 內廓이라고 한다. 北極이란 것은 外廓의 極盡處인 것이요, 南極이란 것은 內廓의 極盡處인 것이다.

  그런데 黃道란 것은 地球가 太陽의 周圍를 도는 길(道)인데 이 黃道는 赤道의 北쪽으로 二十四度, 赤道의 南쪽으로 二十四度까지 나갈 수 있는 것이고 그 밖으로 더 나가기는 못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春分後에는 赤道의 北쪽을 向하여 二十四度까지 나갈 수 있고 秋分後에는 赤道의 南쪽으로 二十四度까지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地球의 軸이 二十四度 以上 傾斜지는 法이 없기 때문이다.(現在는 二十三度 七分 傾斜져 있음)

  단 여기에서 黃道에 對해서 한마디 附言하여 둘 것은 「視黃道說」이다. 우리가 實地로 볼 때 地球가 太陽의 周圍를 돌고 있는 것이 事實이다. 그러나 그것은 前에 말한 바와 같이 地球 運行의 本體面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作用面 즉 現象面에서 보면 恒常 太陽이 地球의 周圍를 돌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日月이 地球에 光線을 던져 줌으로써 일어나는 모든 現象에서 變化를 把握하는데 便利하게 하기 爲해서는 一旦 太陽이 地球의 周圍를 돌고 있는 것으로 假定해 놓는 것이다. 그러므로 今日의 曆象學은 이것을 太陽이 地球의 周圍를 도는 것처럼 假定하고 그것에 「視黃道」라는 槪念을 設定한 것이다. 그런즉 여기 結論에서 筆者가 地球의 運行하는 길이 黃道라고 썼지만 原典에는 日行(즉 太陽이 간다)이라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以下 모든 說明은 視黃道에 依하여 說明할 것인즉 미리 여기서 讀者 諸位의 諒解를 바라는 바이다.

  그러면 다음은 달(月)의 運行에 대해 말하기로 하겠다.

  달(月)이 運行하는 길은 九個가 있으니 黃道 黑道 赤道(太陽이 運行하는 경우에 말하는 赤道와는 다른 것이다) 白道 靑道로서 區分되는데 그 중 黃道만 一個이고 다른 四道는 各各 두 개씩 있으므로 合하여 九道가 되는 것이다.

  九道 가운데 오직 黃道만은 一道로서 中央에 位하고 其他 八道는 黃道를 中心으로한 東西南北에 그들이 運行하는 길(道)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黑道는 黃道의 北에 있고 赤道는 黃道의 南에 있고 白道는 黃道의 西에 있고 靑道는 黃道의 東에 位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宇宙間의 變化現象을 나타내는 九宮八風의 原理는 이와 같이 달이 運行하는 軌道에서 그 起原이 생겼던 것이다.(九宮八風原理는 各論에서 詳論할 것임)

  「殷」以後에 太陽曆制度를 採擇한 것도 實로 여기에 緣由한 것이다.(그 前에는 三六五日曆을 썼다) 뿐만 아니라 今日의 달(月)은 병든 달(月)이다. 그러나 병든 달(月)이 이 地球에 影響을 주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의 變化와 오늘날의 文物을 生産하기도 하는 것이다.

  (大體 달이 병들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하는 점 亦是 各論에 說明하겠다)

  다음은 地球에 對해서 말하기로 하겠다. 東西를 莫論하고 地球에 對해서는 많은 學者들 사이에 所謂 天圓地方說(天體는 둥글고 地球는 모나서 動하지 못한다고 하는 說)을 提唱하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不過 數世紀前에 提唱된 바 있는 「코페르닉쓰」의 地動說이 마치 地動原理로서 世界 最初의 것인 것처럼 誤解하고 있는 것이다. 이 問題가 오늘날 東洋사람들에 있어서까지 如此狂信하고 있는 것은 東洋사람 自身이 自己 文明을 探求하는데 너무나 疏忽히 하고 科學文明에만 無條件 陶醉하여 버리는 後進國的 文化硏究態勢의 結果이기는 하겠지만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重大한 問題일수록 精神을 가다듬어서 自己의 硏究態勢를 살펴 볼 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古代 東洋의 天文學은 地球의 運動을 如何히 보았던가? 하는 問題는 진실로 흥미있는 問題꺼리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內經의 素問에 記載된 바의 五運行大論의 本文 몇 節을 紹介하면서 地球의 모습과 運行에 對해서 稽考해 보기로 하겠다. (여기에 論하는 바는 總論임에도 不拘하고 如此 本文紹介에 까지 論及하려는 바는 現代人의 知識이 너무나 科學一邊倒로 偏在하여 있기 때문에 마치 筆者가 現代 天文學思想에 대한 知識을 빌어 가지고 東洋天文學思想이라고 牽强附會나 하는 것처럼 誤解하지 않을까? 하는 念慮가 있기 때문인 것이다)

  黃帝가 岐伯에게 묻기를 「모든 宇宙간에 있는 것들이 이 所謂 動하며 또 靜한다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여 주시오」하고 간청하였던 것이다.(「本文」帝曰 動靜如何)

  그때에 岐伯이 對答하기를 「宇宙間에 있는 모든 存在는 위에서 作用하는 것은 반드시 右行하는 法이오 아래에서 作用하는 모든 存在는 반드시 左行하는 法이므로 그들 存在는 恒常 一左一右하면서 天體가운데서 돌고 있다고 對答하였던 것이다. (岐伯曰 上者右行 下者左行 左右周天)

  다시 말하면 地球 위에 存在하는 모든 作用體는 永遠不變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단 上向作用을 하던 것은 반드시 右遷하게 마련이며 따라서 右遷作用이 끝나면 또다시 繼續하여 左遷하는 作用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作用을 繼續하는 狀態가 바로 左右周天하는 作用인 것이다. 그런즉 春夏와 秋冬이 바뀌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오 靑年이 老年으로 變하는 것도 바로 이 運動 때문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 左右周天 하는 것 때문에 地球上에 있는 모든 것들이 地球와 함께 左右周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黃帝가 只今까지 알기로는 地球는 方으로써 不動體인 것으로 알았던 것인데 이제 地球가 動한다고 認識하기는 벅찬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黃帝는 再問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黃帝가 묻기를 「내가 前에 鬼臾區(六臣 中의 한사람)에게 들은즉 모든 應地하는 것은 靜한다고 들었는데 지금 夫子(岐伯)가 하시는 말씀은 모든 아래로 作用하는 것(卽 地)은 左行한다고 하니 무슨 말씀인지 理解할 수 없습니다」하고 다시 물었던 것이다. (帝曰 余聞鬼臾區 應地者靜 今夫子言 下者左行 不知其所謂也) 다시 말하면 前에 鬼臾區는 地에 應하는 것은 靜而不動한다고 하였는데 ...... 즉 地球가 萬一 動한다면 그위에 있는 모든 存在物은 반드시 흔들릴 것으로 生覺하는 것이 常識이므로 地球는 靜而不動하는 것으로 黃帝도 生覺하였던 모양이나 이것은 物의 大小와 空間의 廣狹이 陰極似陽 陽極似陰의 象을 나타낸다는 原則을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只今 夫子께서 地球가 動하는 것으로서 左行한다고 하는 것은 疑惑이 아닐 수가 없는 것이다.(中略)

  그러므로 黃帝는 岐伯에게 「地球는 아래에 가만히 놓여 있는 것이 아닙니까?」하고 다시 물었던 것이다. (帝曰 地之爲下否)

  그 때 岐伯이 對答하기를 地球란 것은 우리 人間 中心으로 볼 때는 아래 있는 것이지만 天體로서 볼 때는 다만 虛空에 있는 것으로서 꼭 아래 있다 혹은 위에 있다 할 수 없는 것이다. (岐伯曰 地爲人之下 太虛之中者也)

  다시 말하면 사람은 恒常 自己의 발이 놓여 있는 곳을 가리켜서 이것을 아래(下)라고 生覺하는 習性 때문에 그렇게 生覺하는 것 뿐이다. 그러나 冷靜하게 따져보면 地球는 大氣의 中間에 떠 있는 것인데 人間이 自己가 지닌 바의 尺覺(近視眼的 感覺) 때문에 그와 같이 誤解하는 것이라고 對答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黃帝는 아직도 疑心이 풀리지 않아서 다시 물었던 것이다.

  즉 「地球는 어떠한 곳에 依支하고 있는가? (帝曰 憑乎)

  다시 말하면 地球가 萬一 虛空에 떠 있다면 어떤 곳에 依支하지 않고서는 반드시 떨어질 것으로 生覺하였기 때문에 이와 같이 反問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岐伯은 對答하기를 그런 것이 아니고 다만 「大氣가 들고 있는 것이다」라고 對答하였던 것이다. (岐伯曰 大氣擧之也)

  그리고 그는 또 繼續하여 「燥以乾之」하고 「暑以蒸之」하고 「風以動之」하고 「濕以潤之」하고 「寒以堅之」하고 「火以溫之」라고 말하였으니 이것은 바로 地球가 虛空에 떠서 動하기 때문에 이것이 日月의 光을 받으면서 左右周天하므로써 五行이 생겨나고 다시 그것이 六氣의 變化所致로 上記한 바의 「燥暑風濕寒火」의 六氣運動을 하는 大本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즉 所謂 世俗的인 「天動地靜」說은 여기에서 崩壞되고 마는 것이니 老, 墨, 列. 莊의 思想은 이것을 받침하고 있다. 이것이 東洋의 古代天文思想의 境地(다시 말하면 地球와 日月이 動하는 것은 天體의 動하는 힘(力) 때문이라고 하는 것임을 生覺할 때 刮目한 만한 충분한 價値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地球와 日月은 그들의 運行에 있어서 반드시 規則的인 軌道의 運行을 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으니 이것을 가리켜서 六節藏象論(素問)에는 「行有分紀 周有道理」라고 明示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다만 本稿에서 말하려는 바는 「地球와 日月이 左右周天하는 그것 때문에 地球 위에서는 森羅萬象의 變化가 일어나게 되고 따라서 經度와 緯度의 차이 때문에 地方마다 各其 特殊한 物品을 生産하게 되는 것이니 이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는 問題가 생기게 된다는 것과, 또 地球의 軸이 二十三度 七分 傾斜져서 있는 까닭에 黃道가 (地球의 軸이 傾斜진 그만큼) 赤道의 內外廓으로 出入하므로써 春夏秋冬 四時의 現象이 나타나게 되고 이 現像이 反復往來하는 過程에서 「土」와 「相火」를 自生하여서 비로소 이 宇宙間의 모든 變化가 나타나게 된다는 것」뿐인 것이다. 물론 여기 附隨되는 問題로서 地球의 軸은 왜 傾斜졌는가? 따라서 地球와 日月을 運行시키는 原動力은 무엇인가? 하는 問題는 가장 重要한 問題인 것이다.

  그러나 只今 여기서 論하려는 바는 다만 槪括的인 것으로 그치고 詳述하는 것은 各論에 미루기로 할 것이다.

  다만 여기서 말하려는 것은 宇宙의 變化는 上述한 바의 모든 條件들 때문에 생기는 것이며 또 吾人은 이들 條件에 의하여 그 原理를 算出할 수 있다는 것을 認識할 수 있으면 本論의 目的은 끝나는 것이다.

 

 

第五節 河圖洛書와 太極說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地球 위에서 發生하는 모든 變化는 오로지 地球와 日月이 左右周天하는 運動過程의 所産이었던 것이다. 비록 그러하나 宇宙間에 그러한 形과 象이 있다는 그 事實만으로서는 哲學은 成立될 수 없는 것이다. 오직 그 象과 形에 대한 原理를 捕捉하고 거기다가 論理的 妥當性을 賦與하여서 學問的 體系로 誘導함으로써 비로소 哲學이 成立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인들은 宇宙간에는 이러한 變化原理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發見하였으며 또 어떻게 哲學體系를 세웠던가? 하는 問題를 硏究하여야 할 것이다.

  古代에 伏羲氏가 바다에서 龍馬가 그의 등에 異常한 그림을 지고 陸地에 나온 것을 發見하고 그 그림을 深思熟考한 結果 그것이 바로 五行原圖라는 것을 알아내었다. 그러므로 이 그림을 河圖라고 呼稱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伏羲氏는 河圖에서 五行原理를 發見한 것뿐만 아니라 그 作用 다시 말하면 變化하는 象을 捕捉하여서 그림으로써 그 象을 表示하여 놓은 것이 周易의 八卦인 것이니 이것이 易學의 基本이며 또 五行原理의 變化作用을 象으로 表示한 淵源이며 또 自然數가 生成變化하는 大本인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비로소 東洋哲學, 즉 象數學은 哲學的 素地를 갖추게 되었고 同時에 人間은 變化하는 象을 알아낼 수 있게 되었으며 또 그 原理를 自然數로서 立證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즉 이것은 變化하는 過程에서 보면 變化原理인 것이요 變化本然의 立場에서 보면 象數學인 것이다. 筆者가 本稿의 第一編을 「變化原理」라고 命名한 것도 實로 여기 있는 것이다.

  그러나 上述한 바의 河圖는 다만 萬象의 基本이 되며 또 萬物의 生成原理와 그의 象數를 表現한 것뿐이고 그 大變化의 象, 다시 말하면 生成의 現象을 表現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가리켜서 先天卦圖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때(時)는 반드시 萬物이 生長에서 成遂를 完遂하는 象, 즉 大變化의 象, 다시 말하면 金火交易하는 象을 明示할 聖人을 내고야 말 것이다. 때(時)는 夏禹氏에 이르렀다. 이때에 洛水에서 거북이가 그의 등(背)에 글을 지고 나왔으니 이름을 洛書라고 하거니와 이 그림은 거의 河圖와 같으나 다만 河圖 때는 二七火가 南方에 있었고 四九金이 西方에 그려져 있던 것인데 洛書에서는 二七火가 西方에 와있고 四九金이 南方에 와 있으며 또 河圖에서는 中央에 五十土가 있던 것이 洛書에 와서는 中央에 五土만이 있다는 點이 다른 것이다. 다시 말하면 洛書는 河圖에 比하여 이와 같은 特徵을 띄고 있는 바 여기서 問題되는 것은 왜 때(時)는 夏禹氏 때에 洛書를 보내어서 우리 人類에게 이와 같은 徵候를 가르쳤던가? 하는 것이다.

  이 問題에 對해서 硏究를 完成한 분이 바로 周文王이시니 그는 方不過 七十里의 諸侯領의 公子로서 紂王의 暴政아래  里獄에 投獄되어서 所謂 文王卦圖를 硏究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河圖原理가 洛書原理로의 轉換이며 同時에 生長原理에서 成遂原理로 變化하는 所謂 「金火交易原理」가 出現하는 契機의 創作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後天卦圖라고 한다.

  이와 같은 象數學은 「河出圖 洛出書하여 聖人이 則之」(易繫辭)함으로써 發展한 것이지만 이것을 演繹硏究하여 보면 地球 日月이 運行하는 過程에서 人間이 알아낸 것이라고 하는 한마디로 歸納되는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바의 河圖와 洛書 또 伏羲圖와 文王圖가 發明됨으로써 哲學의 成立은 보았지만 決코 完成은 아니다. 이것이 戰國 때 鄒衍 等에 依하여 華麗한 發展을 하였지만 秦火以後 거의 자취가 사라지게 되었던 것인데 때마침 周廉溪가 太極圖說을 내놓음으로써 河圖와 洛書의 運行原理를 明示하였던 것이다. 그 圖와 設은 至極히 簡單하지마는 그의 眞理는 圖와 說 가운데 彌滿하여서 象과 數의 硏究에 대한 偉大한 公式을 남겨놓았던 것이다.

  그러면 太極圖說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여기에 說明해야 할 것이나 總論에서는 略하고 詳細는 各論으로 미루기로 하거니와 다만 本稿에서는 河圖와 洛書의 발전은 太極圖說의 發展으로 因하여 今日 東哲(즉 象數學)의 體系를 세워 놓았다는 것을 紹介하면 되는 것이다.

  以上에 紹介한 바는 甚히 難解한 部分이 많아서 理解하기 困難할 줄로 안다. 그러나 그것은 念慮할 것 없다. 以上에서 論述한 바는 다만 以下 各論에서 硏究할 것에 對해서 總括的으로 그 重要한 內容이 이러하다는 것을 紹介한 것이고 詳細한 것은 各論에서 逐條說明할 것인즉 이 점을 미리 理解만 하면 그만인 것이다.

第六節 正名學

  正名이라는 말은 오늘날의 流行語로써 바꿔 말하면 槪念이라는 말과 서로 相通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모든 事物은 이름(名)이 붙어진 後에 비로소 그것이 어떠한 것이라고 하는 것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즉 事物에 各其 이름을 붙이는 일은 本來 重要한 일이지만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人口의 增加와 함께 社會의 生活樣式과 文化의 發展形態가 漸漸 複雜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事物에 대한 名分關係는 絶對不可分의 關係로 登場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事物과 名稱關係는 마치 車의 兩輪이나 鳥의 兩翼關係와도 같아 서로 分離할 수 없으리만큼 必要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돌이켜 生覺하여보면 人類의 生活과 文化의 發展이 아직 草創하였던 때에 있어서는 名稱을 設定할 必要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漸漸 複雜化되어가는 今日에 있어서는 人類와 文化의 發展에 따라 事物에 名稱을 賦與함으로써 그의 複雜性을 整理하고 또 認識하는데 도움을 주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事物에 名稱을 賦與함으로써 哲學의 發展과 文化의 硏究에 對해서는 貢獻하는바 컸지만 反面 그 名稱은 도리어 自體矛盾을 誘發하기에 이르고 말았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名稱이란 것은 그의 槪念이 正確할 때에는 最上級의 功效가 있는 것이나 正名의 本質이 墮落될 때는 도리어 事物의 發展에 害毒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

  본래 東洋의 文字는 그 自體가 二面性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즉 一面으로는 言語學的인 面을 지니었고 다른 面으로는 哲學的인 面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天」字에서 이것을 稽考하여 보면 言語學的인 面에서 보면 「하늘」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哲學的 面에서 보면 「天」(하늘)이라는 것은 어떠한 것인가? 하는 意味가 그 글자의 象과 形 가운데 潛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萬一 正名精神이 墮落되면 글자의 意味는 言語學的인 面에서만 通用되고 哲學的인 面은 漸漸 退藏되어버리는 것이다.

  모든 事物은 名에 依해 代表되고 正名은 文字에 依해서 象徵되는 것이라는 것을 認定하는 한 正名의 墮落이 바로 哲學의 墮落이 된다는 것을 認定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오 따라서 人事에 있어서는 正名이 行해지지 못하면 腐敗와 墮落만이 助長되는 法이오 萬物에 있어서 正名이 行해지지 못하면 物質硏究는 發展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例는 史上 非一非再였거니와 特히 中國史에 있어서 春秋末과 戰國初期의 混亂相은 이것을 如實히 代表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孔子가 正名으로써만이 混亂한 社會를 矯正할 수 있다고 生覺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孔子가 人道에 있어서 名分을 바로잡음으로서 社會를 淨化하려고 한 까닭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人道哲學의 基盤을 後世에 남겨 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墨子도 亦是 人道主義를 排斥한 것은 아니다. 孔子의 形式主義的인 面을 否認하는 同時에 人道的인 正名만 가지고는 그 當時의 社會를 바로 잡을 수 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당시 墨子의 눈앞에 떠오른 것은 腐敗墮落하여 骨肉相殘으로 寧日이 없는 權力層들과 塗炭속에서 阿鼻叫喚하는 衆生들의 悲慘한 實相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첫째로 物質文明을 發展시켜서 民生의 富를 增殖시키고 둘째로 兼愛思想을 鼓吹하여 戰爭을 禁止토록 하고 셋째로 節約思想을 奬勵하여 財産을 蓄積하도록 하여야 道德도 그 속에서 自然히 蘇生된다고 力說하였던 것이다.

  墨子의 이와 같은 思想은 思想으로만 그친 것이 아니고 自己自身이 實踐하였으니 첫째로 事物의 正名을 철저히 함으로써 科學的 發達을 促進시켰으니 그의 科學的 所論은 오늘에 있어서는 믿지 못할 만한 卓越한 價値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註」光學, 力學 等을 參照) 그 다음 諸國을 歷訪하여 平和를 提唱하고 自己自身이 儉素한 生活을 하면서 勤儉을 奬勵한 것 등은 實로 본받을만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中에서도 吾人이 特히 본받을만한 것은 그가 物質文明을 發展시키기 위하여 모든 事物에 賦與되어 있는 名稱에 대해 正名(槪念決定)을 徹底히 하였고 또 그의 正名方法을 指示하였다는 점이다. 勿論 斯學의 發展은 秦火以後 비록 衰殘하여졌다고 할지라도 그의 著書가 今日까지 남아있기 때문에 오늘의 光明을 받게 되었거니와 따라서 正名思想과 天道法則 硏究는 漢醫學硏究에 있어서도 혹은 基本哲學으로 혹은 補助科學으로써 絶對的 經典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哲學이 正名段階를 거치고야 事物의 眞理를 探索할 수가 있고 醫學이 正名된 다음에야 人體의 秘密을 찾아내는데 吝嗇하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事物의 眞理를 探究하려면 正名이 必要하게 되고 따라서 正名하기 爲해서는 文字의 媒介를 기다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 글字 自體부터 바로잡지 못하면 事物의 名稱을 바로 잡을 수 없게 되고 그의 名稱이 바르지 못하면 事物의 標識이 不公正하여져서 眞理도 邪道에로 轉落하기 일수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哲學徒는 勿論 우리 漢醫學徒에 있어서도 正名할 줄을 알아야 할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아직 論議되어야 할 것은 正名方法인 것이다. 이 問題는 本稿에서 論할 性質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略하거니와 이제 여기에서 한마디로 말한다면 字典을 無限히 찾으면서 자기가 이미 알고 있다고 生覺되는 글자를 篆字나 古字까지 對照하면서 그의 象과 形을 檢討하는 일이오 다음은 正名에 關한 典籍을 잘 硏究할 것이오 세째로는 變化原理(五行思想)를 完全히 納得하게 되면 無難히 解決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本講에서 變化原理부터 先論하는 것도 實로 이와 같은 모든 難題解決의 基盤을 먼저 닦아놓으려는 것이다.(總論終)

<筆者=서울 鐘路區 韓東錫漢醫院長>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출처: http://www.handongseok.org/lecture1.htm
黃帝內經講義 (1) 1964년 10월호

韓東錫

第一編 變化原理

第一章 總論

第一節 緖論

  內經이라는 말은 黃帝時代에 그의 臣인 岐伯天師等 六臣과의 問答에 의해서 論述된 것을 蒐集記錄한 것이다. 이것을 黃帝內經이라고 하는 바 그 內容을 다시 區分하여보면 靈樞와 素問으로 區別된다.

  이제 여기에서 그 內容을 살펴보면 病理 生理 診斷 針灸 등 直接으로 人體와 關係되는 部分과 間接으로 宇宙와 關係되는 自然哲學的인 部分으로 區別된다.

  다시 말하면 宇宙의 自然現象은 그것이 비록 千態萬象이라고는 하지만 萬一 어떠한 法則으로서 이것을 測定한다고하면 그것은 바로 陰陽의 分合過程에서 생기는 五行運動에 不過한 것이라고 規定할 것이다. 이것이 所謂 自然哲學의 一分類인 象數學(五行學 或은 變化原理)과 醫學과의 區分이 되는 것이나 그러나 좀더 嚴密히 考察하여보면 醫學理論이 바로 宇宙原理를 基礎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內經이란 것은 如何한 學問인가? 하는 質問에 對하여 단 한마디로 對答한다면 그것은 '自然哲學原理'인 五行學에 依해서 人體의 生理變化를 알아내고 또 이것을 治療하는 醫學自體의 '基礎原理'라고 對答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問題되는 것은

  첫째로 宇宙運行의 自然哲學的 原理를 單純히 陰陽과 五行이라는 規範으로써 完全無缺하게 說明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問題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所謂 陰陽五行說이 지닌바 眞理性이 果然 躍如한가? 어떤가? 하는 것을 硏究하는 것이다.

  둘째 人體의 모든 組織과 그의 運動原理가 自然哲學的 宇宙原理와 同一한가? 어떤가? 하는 問題를 硏究하지 않으면 안된다. 萬一에 自然界를 說明하려는 이 陰陽五行原理에 어떠한 矛盾이 있다든가 或은 人體가 宇宙의 運動原理와는 相反되는 運動原理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면 內經은 醫學의 經典이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同時에 吾人의 硏究對象으로서도 何等의 價値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內經은 그 自體가 지닌 바 經典的인 價値와 또 哲學的인 絶對眞理가 있다고 하면 다시 말해서 人體의 病變現像을 探索하고 治療하는데 있어서 確固不動한 最高哲學으로서의 原理가 있다는 것을 認識할 수 있게 되고 또 探索에 沒頭하게 되면 醫道施術의 神化 즉 如何한 病이라도 自由로이 處理할 수 있는 實力이 생긴다고 하는 結論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目的을 實現하기 위하여서는 爲先 위에서 말한바 宇宙의 自然原理 陰陽과 五行의 運動原理부터 먼저 硏究하지 않고서는 人體의 모든 現象을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內經一書는 비록 數萬字에 達하는 尨大한 內容을 지니고 있지만 宇宙의 自然原理(즉 五行)만을 完全히 把握한다고 하면 其他의 모든 部分 즉 生理 病理 脈色 針灸 等은 講義를 들을 必要도 없이 自解自得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本講은

第一編 變化原理

  이것을 先講하여 自然哲學的 規範인 五行原理(象數學)을 納得시키는 것을 爲先으로 하고

第二編 運氣編

  을 內經本文대로 紹介함으로써 天道原理硏究의 解別明彰을 돕게 하고

第三編 疾病編

  을 넣어서 天人合一의 大本을 說明하기로 하고

第四編 針灸와 診療編

  을 넣어서 本講을 終了하도록 하는 것이 內經學의 體系上 옳지 않을까 生覺하는 바이다.

  다음은 筆者가 硏究過程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고 또 現在에 있어서나 未來에 있어서도 亦然하리라고 生覺하는 바의 書籍을 紹介하려고 하는 바이다.

  그러나 그 內容이 너무 어려워서 이것들이 內經硏究의 參考書라기 보다는 오히려 內經이 그들의 參考書라고 할만한 것이기는 하나 互相參照하면서 硏究하면 不知不識間에 理解를 促進시켜서 奈終에는 그것들이 오히려 偉大한 師表가 된다는 것을 附言하는 바이다.

  ◇ 記 ◇

  一 周易과 正易

  二 墨子의 經上下, 經說上下, 大取, 小取

  三 老子

  四 列子의 天瑞篇, 黃帝篇, 仲尼篇

  五 莊子의 天下篇(全篇을 讀破하면 더욱 可함)

  六 公孫龍子(이것은 글도 많지 않으니 꼭 읽어둘 必要가 있다. 이것을 完全納得하면 墨經을 解得할 수 있는 實力이 생긴다.)

  七 荀子의 不苟篇 解蔽篇 正名篇

  八 近思錄의 道體篇

  九 皇極經世

 

 

第二節 內經의 由來

  中國의 哲學과 醫學思想은 本來 南北으로 갈라져서 各其 相異한 方向으로 발달하였던 것이다.

  黃老學派는 南方에서 自然哲學的으로 發達되었던 것이니 이것은 黃帝의 內經, 中經, 天符經을 祖宗으로 하였고(萬歲不易之典所載) 儒敎學派는 北方을 中心으로 發達하였던 것이니 이것은 人性主義立場에서 孔子를 中心으로 發達되었던 것이다.

  却說 黃老學派의 自然哲學이란 것이 이른바 陰陽五行說이니 이것이 오늘날 말하는 象數學이요 또 變化原理이기도 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古聖들이 宇宙自然의 運行法則을 把握하므로서 거기서 宇宙와 人事 其他 모든 原理를 發明하였던 것이니 이것이 五行學의 基礎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地球 위에서 생기는 모든 原理는 宇宙運行原理와 同一하다고 規定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黃老學派의 發達은 戰國末에 秦始皇이 焚書坑儒하기 以前까지는 非常한 發達을 하므로서 儒學은 無色할 程度로 劣勢에 놓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漢代 以後 儒敎가 國敎로서 登場하기 始作하면서부터 自然哲學思想은 漸漸 轉落하게 되었던 것이다.(여기에는 政治的 社會的으로 重大한 理由가 있으나 略함)

  그렇던 것이 近來에 와서는 그 眞價가 차츰 學界에 認識되어가게 되어서 西歐哲學에 있어서 마저 이에 關心을 기울이게 되고 있는 것은 實로 多幸한 일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本論의 目的하는 바는 南北學派의 優劣이나 長短을 誹辦하려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自家誹辦에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近來에 와서 內經 思想의 基本인 五行思想에 대해서 이것이 醫學發展의 途中에 導入된 것이고 內經 本來의 思想이 아니라고 生覺하는 見解가 바로 그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不得已 여기에서 一言하려는 바이다.

  첫째로 問題되는 것은 黃帝時代에 文字가 없었거늘 어찌 그 尨大한 內容을 갖춘 內經이 完成될 수 있었겠는가? 하는 點이다. 그렇게 考察하면 內經은 分明히 後人所作이라고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筆者도 이 點에 對하여서는 頑强히 反對할 意思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春秋時代의 文體만 參考하여보아도 그 時代의 筆致와 內經의 文體와의 사이에는 相異한 點이 있어야 하겠거늘 而況 黃帝時代와 比較한다고 하면 그 差異點은 뚜렷이 달라야할 것이다.

  그러함에도 不拘하고 現存한 內經의 文體를 살펴보건대 오히려 戰國時代 以後의 文體와 彷佛한즉 內經은 黃帝時代의 所作이 아니라는 理由가 成立되는 것이다.

  생각컨대 戰國時代에 鄒衍이 五行說을 大發展시켰고 또 그 時代는 斯學의 全盛期였으니만큼 或是 鄒衍一派의 所作이 아니였든가? 生覺할 餘地는 充分히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서 醫學과 內經(즉 五行)은 別個였던 것이고 다만 五行說을 醫學의 發展途中에 導入한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妥當치 못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醫學과 五行은 同一人의 所作이 아니라는 말이 되는 것인즉 그것은 바로 內經이 同一人의 所作이 아니라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內經에서 五行精神을 除去한다고 하면 內經理論은 그의 基盤을 잃어버리게 되는 까닭이다.

  돌이켜 生覺컨대 周易의 河圖 洛書 自體가 바로 五行인데 孔子가 易에 十翼을 著述하여 周易을 完成시킬 때 河圖와 洛書를 卷頭에 싣는 것을 잊지 않았고 또 夫子가 詩書를 冊修할 때도 書傳에 洪範(箕子가 洪範에 五行說을 著述하였음)을 싣는 것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五行說은 周代 以前의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이며 또 孔子가 이것을 얼마나 重視하였던가? 하는 것도 알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墨子 老子 莊子 列子 公孫龍子 등의 自然哲學思想은 모두 五行說이 그들의 基幹을 이루고 있다는 것으로 미루어 보면 五行說은 다만 戰國時代에 와서 開花된 것뿐이고 그 源流는 멀리 黃帝時代에 있었다는 것을 넉넉히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筆者가 生覺하는 바로서는 內經을 黃帝時代의 所作이 틀림없고 다만 이것을 戰國時代에 와서 通俗化될 수 있는 程度로 發展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바이다. 뿐만 아니라 五行學은 漢醫學의 發展途中에 導入된 것이 아니고 漢醫學自體의 基本法則이라고 生覺하는 것이 妥當한 것이다.

  더욱이 이것을 가지고 曰可曰否할 生覺도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取할 態度는 다만 思惟하는 自我로서 眞理探究에 그 目的이 있기 때문에 誰何의 所作與否를 論할 것이 아니라 途中의 導入與否를 論할 것이 아니라 그가 果然 眞理이냐? 아니냐? 하는 것만 따지면 그만인 것이다.

第三節 五行의 發展

  위에서 五行이란 것은 宇宙의 造化이며 人體의 變化이며 同時에 모든 變化의 規範이라는 것을 말한 바 있다.

  萬一 그렇다면 그와 같이 重大한 五行現象은 果然 어떻게 生成하느냐? 하는 것을 硏究하여야 할 것이다.

  宇宙가 오늘날의 宇宙 다시 말하면 日月星辰과 地球가 形成되기 前에는 다만 寂寞無朕하여서 있는 듯도 하고 없는 듯도 한 形而上의 象만을 나타내고 있었던 때이므로 이것을 無極이라고 命名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無極이 漸次로 自己運動을 일으켜서 永遠한 運動을 계속하게 되니까 그 無極 가운데 混合內包되어 있던 바의 淸氣와 濁氣가 서로 갈라지기 始作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各其 同氣相求하는 性質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드디어 淸氣는 陽團을 이루고 濁氣는 陰團을 이루어서 서로 밀고 당기고 하는 運動을 始作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宇宙間에는 矛盾과 對立이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萬物이 發生하게 되었고 人間도 또한 生成하게 된 것이니 이 本源을 가리켜서 太極이라고 命名하였고 또한 太極의 運動狀態를 가리켜서 陰陽運動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宇宙의 變化는 이와 같은 引合運動만으로서는 決코 宇宙의 自然現象을 實現해낼 수는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大體로 볼 때는 陰陽運動에 不過하지만 細密히 살펴보면 陰陽運動은 다시 四介의 運動을 나타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바로 陰陽의 再分裂現象이니 즉 陰陽이 각각 自己運動과정에서 다시 陰陽으로 再分裂하여 四象이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陽中에서 갈라진 것을 陽中之陰陽이라고 하고 陰中에서 갈라진 것은 陰中之陰陽이라고 呼稱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宇宙의 陰陽運動은 本來는 陰陽 二本이던 것이 다시 分裂되어서 四象形態의 運動을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吾人의 感覺界에 나타나는 春夏秋冬 四時가 그의 代表的인 形象인 것이다. 그러므로 木은 陽中之陰, 火는 陽中之陽, 金은 陰中之陽, 水는 陰中之陰으로 區別되는 것이다.(下圖參照)

 




圖說

 (가) 右圖 左에서 右로 通한 線을 緯線이라하고 南北으로 通한 線을 經線이라고 함

 (나) 緯線以下는 用의 陰部라하고 緯線以上은 用의 陽部라고 함

 (다) 東哲은 (나)에서 말한 바 體와 用이란 述語를 重用하니 즉 本體와 作用이라는 말이다.

 (라) 東哲은 東西南北 즉 八方의 表示를 右圖와 같이함(그 理由는 講義가 前進됨에 따라서 自然히 알게 된다.

 (마) 東哲은 어떤 問題를 說明함에 있어서 大部分, 用 中心으로 說明하게 된다. 故로 여기서도 用을 主軸으로 하기 때문에 左下를 陽中之陰 左上을 陽中之陽 右上을 陰中之陽 右下를 陰中之陰이라함.

  圖에서 본 바와 같이 本來는 陰陽運動이던 것이 陽(左便用의 陽位)이 갈라져서 陽中之陽과 陽中之陰으로 갈라졌고 陰(右便用의 陰位)이 또 둘로 갈라져서 陰中之陽과 陰中之陰으로 되는 것이다. 그런즉 이와 같이 갈라져서 四介로 分割된 것을 四象 즉 木火金水라고 하는 것이다.

  위와 같이 되게 된 內容을 다시 생각하여 보면 本無極이었던 肇基가 太極으로 變함으로써 그 太極이 陰陽運動의 肇基가 되었고 陰陽運動이 다시 갈라져서 四象 즉 木火金水의 肇基가 되었다는 것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問題되는 것은 또 하나 있다. 위에서 말한 바의 四象이 그 自體만으로서는 아무런 變化도 이루어내지 못한다는 事實이다. 다시 말하면 四象의 本性은 異質的인 것들이다. 그러나 異質的인 것들은 항상 矛盾과 對立을 나타내면서 鬪爭함으로써 宇宙와 萬物의 變化를 實現하는 것이다.

  그런즉 鬪爭과 對立은 宇宙發展의 重要한 要因이다. 그렇지만 여기에 萬一 이것을 調節할 수 있는 어떠한 調和作用의 主體가 없다고 하면 宇宙와 萬物은 勿論 人體에 있어서도 이와 같은 矛盾對立의 鬪爭 때문에 모든 機能은 破滅되고 말 것이다. 그런 故로 四象의 運動이 自己運動過程에서 생기는 矛盾을 解決하기 爲해서 四象 自身이 「土」를 生하게 되는 것이다. 이 「土」야말로 矛盾을 調和시켜서 陰陽運動의 對立을 緩和시키며 따라서 五行各個의 過不足運動을 補短抑過하는 가장 重要한 것이다. 그러므로 『土+四象=五行』이란 結論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면 그 土라는 것은 무엇이며 또 五行이란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밝혀야 한다. 五行學의 硏究라는 것은 實로 여기에 있는 것이니 그것은 各論에서 이야기할 性質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論하지 않겠다. 그러나 總論에서 默過할수 없는 것은 所論한 바 五行을 生成하게 하는 것은 果然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故로 이것을 次節에 論하겠다. (次號 繼續)

 <筆者=서울 鐘路區 韓東錫漢醫院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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