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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20 정역성지-향적산방
  2. 2008.06.09 黃帝內經講義 (五) 1965년 8월호
  3. 2008.06.09 黃帝內經講義 (1) 1964년 10월호






Posted by 무중 이승수 지지닷컴


출처: http://www.handongseok.org/lecture5.htm

黃帝內經講義 (5) 1965년 8월호

第一編 變化原理

第三節 五行의 相生과 相克

    가. 相生

  五行이라는 槪念과 五運이라는 槪念은 서로 다르다. 五行이라고 하면 木火土金水 다섯 種類의 氣가 아무런 變化없이 循環하는 自然的인 狀態를 말하는 것이요 五運이라고 하면 이미 그 純粹性을 잃고 變化하는 狀態를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五行이라고 할 때에는 東方에서는 木을 生하고 南方에서는 火를 生하고 中央에서는 土를 生하고 西方에서는 金을 生하고 北方에서는 水를 生한다고 하는 基本的인 法則을 말하는 것이므로 여기서 말하는 木火土金水란 五行法則은 그 性質이 純粹하여 아무런 變化나 鬪爭도 없는 基本的 槪念을 말하는 것이다.

  다만 이와 같은 基本的 槪念은 五行은 原則的으로 相生하거나 或은 相克하는 作用을 하는 五原質 自體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五原質이 相生과 相克作用 즉 相扶相助와 豫備對立을 일으키고 있거나 或은 일으킨 다음의 狀態를 五運이라고 하는 것이니 그렇게 되면 五行은 여기서 이미 純粹性을 잃은 混濁之象이 된다.

  이와 같은 五行이 純粹性을 잃으면 그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五行이 곧 變化하는 狀態의 五行이니 이것을 五運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五行이란 槪念과 五運이란 槪念은 區別하여야 하는 것이거니와 五運에 대한 說明을 後로 미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五行만을 說明하기로 하겠다.

  그러면 五行 즉 純粹 五原質의 相生原理부터 說明하기로 하겠다. 이 原理는 河圖에 나타난 것이므로 河圖의 象을 그대로 表示하고 五行相生圖와 對照하여 보기로 하겠다.

  河圖


  五行相生圖


  河圖의 象을 보면 東쪽에 있는 三과 八은 五行相生圖의 東方에 있는 甲乙木이니 甲은 三이고 乙은 八이다. 河圖의 南쪽에 二와 七은 相生圖의 丙丁火이니 丙은 七이요 丁은 二다. 河圖中央의 上下便에 各各 五가 있고 正中央에도 五가 있으니 이것은 相生圖의 戊己五十土이다. 河圖의 西方에 四와 九가 있으니 이것은 相生圖의 西方에 있는 庚辛金이다. 庚은 九요 辛은 四다. 河圖의 北方에 一과 六이 있으니, 이것은 相生圖의 北方에 있는 壬癸水다. 壬은 一이요, 癸는 六이다.

  이와 같이 본즉 五行相生도는 河圖를 그냥 옮겨놓은 것에 不過하다(다만 東西南北의 間方에 辰戌丑未를 表示한 것은 이 四個의 土가 五行과 合하여 作用할 때에 變化가 생기므로 記載하여 둔 것이고 여기서 論할 것은 아니다).

  그런데 爲先 相生圖와 河圖를 對照한 結果 한 개의 疑問이 나타난다. 즉 相生圖를 順序로 볼 때에 壬癸와 甲乙은 一六과 三八의 順序로 되어있는데 왜 丙丁과 庚辛은 七二과 九四의 順序로 되는가? 하는 問題다. 이것은 다만 表面에 나타나 있어서 누구나 알 수 있는 問題點이거니와 좀더 깊이 살펴보면 그밖에도 많은 問題點이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河洛의 變化를 說明할 때에 說明할 問題들이다.

  却說 相生이란 것은 河圖 그대로의 表示라는 것을 말하였다. 그러나 그것들이 어떻게 相生하는가? 하는 問題를 硏究하여야 한다. 즉 甲乙三八木은 丙丁二七火를 生하는데 이것은 五行의 一般的 槪念에서 說明한 바와 갈이 가장 힘이 있고 또 통가다리인 木氣가 다시 再分裂하는 過程이니 즉 통가다리인 木이 그것을 基礎로 無數한 再分裂을 함으로써 內容은 衰弱하여지면서 外形은 가장 旺盛하는 過程이 바로 木生火의 過程이니 이것이 解放의 第二契機 인 것이다.

  그 다음 丙丁二七火가 戊己五十土를 어떻게 生하는가? 火란 것은 木이 再分裂 한 것이라는 것은 이미 말하였다. 그런데 火는 또다시 分裂하여서 分裂의 極端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分裂을 爲한 分裂이 아니고 分裂에 終止符를 찍기 위한 分裂이다. 이것이 解放의 第三契機가 되는 火의 分裂인즉 그것이 바로 火가 土를 生하는 過程인 것이다. 이와 같은 火의 分裂은 解放의 終點인 同時에 統一의 始點인 土를 現象化하는 中繼點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時點이 바로 無極을 生하여서 矛盾對立을 止揚하고 萬物을 成熟하게 하며 人間은 統覺(神明)이 생기며 靑年은 圓熟해지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칸트가 말한바 感性과 理性의 二 契機가 融合하는 곳이다. 즉 統一의 第一 契機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戊己土는 庚辛金을 生하나니 金이란 表面을 굳게 하는 性質이다. 다시 말하면 第三分裂인 火의 分裂은 純粹中立인 無極(土)으로 化한즉 그 土(無極)는 中立의 性質로서 外炎灼熱한 바의 第三分裂을 柔懷抱捉하여 놓게되면 그것은 바로 火인지 土인지 혹은 水인지를 분별할 수조차 없는 象을 만들어 놓는 것이다. 그런즉 이러한 象은 火土水의 和合한 象이므로 外堅性을 가진 金으로서는 捕捉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分裂을 捕捉(綜合)하는 第二의 契機를 生하는 것을 土生金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여 成立된 金은 水를 生하게 마련이니 즉 金이 水를 生한다는 말은 金氣의 外表堅斂作用이 한걸음 더 나가서 그 內面까지 貞固하게 하는 作用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統一의 第三契機가 形成되는 것이니 이것이 易에서 말하는 坎爲水오 탈레스가 말한 물이다. 뿐만 아니라 孔子가 易繫辭에 太極生兩儀라고 한 太極의 母體인 것이다.

  이와 같이 太極이 成立되면 水는 다시 木을 生하게 되는 것이니 즉 貞固한 속에 囚閉되었던 氣는 다시 活動하여 木을 生하게 되나니 이것이 解放의 第一契機가 되는 것이다. 宇宙의 構成要素인 土元質은 이와 같이 統一과 解放作用을 쉴 사이 없이 反復하는 것이니 이 運動을 陰陽運動이라고 하며 또 그 陰陽運動이 다시 五元質인 五行의 承繼作用에 의하여 解放과 統一의 作用인 陰陽作用을 周流不編하는 法則을 五行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法則인 五行各個의 槪念을 定함에 있어서 甲乙木 丙丁火 戊己土 庚辛金 壬癸水라는 槪念을 附與하는 것이니 이 槪念은 곧 五氣五行運動의 基本的 原則인 五行의 槪念인 것이오 三八, 二七, 五十, 四九, 一六 등은 다시 木火土金水의 生成原理를 確認하는 數自體의 自然法則인 것이다.

  위에서 五行의 相生을 말했다. 그것을 여기서 要約해보면 水生木 木生火 火生土의 發展까지는 解放過程의 三契機요 火生土 土生金 金生水는 統一의 三契機였다. 이와 같이 보면 發展의 過程은 土에서 끝나는데 또한 統一의 過程도 그 土에서 始作하였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土는 二重性格을 띈 것이 分明하다. 왜 그런가? 하는 疑問은 다음에 六氣를 說明함으로써 分明해진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基礎的으로 그렇게 記憶만 남겨두기를 바란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가 兼하여 또 記憶해야 할 것은 언제 어떠한 場所에서든지 五行의 槪念이 木火土金水의 順序로 配列되면 여기는 相生原理를 內包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또 한가지 注意할 것은 甲乙木 丙丁火 戊己土 庚辛金 壬癸水라는 槪念이 木火土金水에 붙으면 이것은 五行의 基本原理이고 또한 變化하는 五運의 原理가 아니라는 것을 銘心해야하는 것이다.

    나. 五行의 相克

  五行이 지닌바 基本原理의 또 한개의 側面으로서 相克原理가 있다. 相克作用은 相生作用의 反對作用이므로 相生은 木火土金水의 順行法則이었던 것과는 反對로 이것은 金木水火土의 逆行作用을 하는 法則인 것이다. 相生作用이 相扶相助의 基本的 本質이었다면 相克作用은 矛盾對立의 基本的 要素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相生作用은 陽의 作用이요 相克作用은 陰의 作用이다.

  여기서 陰陽二契機의 矛盾과 對立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對立을 위한 矛盾이 아니고 發展과 統一을 위한 矛盾이다. 그러므로 相克의 必要性이 認定되는 것이니 그것을 人道的 立場에서 보면 善을 保護하기 위한 必要惡이기 때문이다.

  却說 이 相克原理는 洛書에서 啓示되는 原理이다. 그러므로 다음에 五行相克圖와 洛書를 그려놓고서 서로 對照하면서 硏究하기로 하겠다.

  洛書


  五行相克圖

  註 ()內의 金火와 四九.二七은 바꿔진 것을 表示한 것

  원에 두개의 그림을 對照하여 보면 爲先 洛書는 河圖와 다른 점으로 河圖의 四九와 二七이 易位된 點이다. 다시 말하면 河圖는 四九가 西에, 二七이 南에 있었는데 洛書는 四九가 南에, 二七이 西에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이 數가 易位되었다는 말은 數의 本體인 金火가 易位되었다는 말이다.

  이밖에도 洛書와 河圖는 그 象이 다른 점이 많지만 여기서는 다만 金火가 四九 二七이 交易된 點만을 말하겠다. 이와 같이 交易되었다고 말을 하거나 또한 象을 表示하는 것은 勿論 사람이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自然의 運行法則이 .그렇게 垂象했기 때문에 人間은 그것은 그냥 文字로서 옮겨 놓은 것 뿐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圖表는 어떠한 根據에 依하여 成立되었는가?

  五行이 相生할 때는 木生火 火生土 土生金 金生水 水生木의 順序로 그 生하는 바의 基本的인 原則만을 說明한 것이었다. 그러나 相克法則은 그 生하는 側面, 즉 生하기 위한 必要惡을 說明하는 것이다. 宇宙의 運行하는 象을 詳察하면 火가 南에서 旺盛하기 바로 前인 巳(이것은 六氣說明에서 詳論)에서 이미 金의 收斂運動이 싹트게 된다. 그리하여 그것이 차츰 勢力을 얻어서 西에 이르게 되면 南에서 旺盛하던 火는 金氣에 依하여 完全包圍를 當하게 된다. 그러므로 宇宙의 運行을 다만 相生하는 面에서만 보면 五行은 生成作用의 基本的인 法則에 不過하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서 變化하는 面에서 보면 다시 말하여서 어떻게 生成하느냐? 하는 面에서 보면 이와 같은 金火交易의 必要克에 依하여 生成作用은 實現되는 것이다.

  그런즉 相克原理란 生成作用의 裏面 즉 成하는 바의 本質的 內容을 표시한 것이 바로 相克法則인 것이다.

  그런데 相生作用은 北方水位에서부터 始作하여 左旋運動을 하였는데 相克運動은 相克圖에서 表示한 바와 같이 南方火位(卽 四九金位)에서 始作하여서 오히려 生의 作用을 側面에서 돕고 있는 克인 것이다. 그러므로 相克作用은 金에서 始作하여 右旋運動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金木水火土의 順으로서 五行相克 序列을 定하는 것이다.

  天地運行에 있어서 이와 같은 生成作用은 恒常 必要惡인 相克作用을 絶對로 要求하기 때문에 北方水가 水生木을 하려고 하면 南方火는 벌써 金을 克하여서 金克木의 準備態勢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相生作用 즉 水生木 木生火 火生土 土生金 金生水를 始作하면 相克作用은 同時에 金克木 木剋土 土克水 水克火 火克金의 反對作用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것을 相克이라고 하거니와 이와 같은 相克은 宇宙의 變化와 人間의 生成에 있어서 不可無의 必要克이며 必要惡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헤에겔이 말한 辨證的 發展過程이기도 한 것이다.

  註 헤에겔은 이와 같은 過程의 飛躍까지만을 보고 그의 統一法則을 發見하지 못하였다.

  世界가 實現하는 矛盾과 對立은 이와 같은 五行運動의 生克過程에서 일어나는 必要惡이므로 이와 같은 矛盾과 對立이 바로 世界이며 그것이 또한 世界의 生命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矛盾과 對立이 없는 世界란 形成될 수도 없고 또한 形成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變化도 찾아볼 수 없는 無意味한 暗黑界일 것이다.

  註 以上 論한 바를 初步者로서는 完全히 理解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다만 宇宙發展에 있어서 相生과 相克의 絶對 必要性을 記憶함과 아울러 金火交易이 萬物生成의 裏面的 內容이 된다는 것을 銘心하기만 하면 된다. 다만 아직 이 程度의 進度에서 좀 지나치게 깊은 곳을 말한 감도 不無하다. 그러나 한번 이 程度의 아웃트라인 이라도 스쳐 지나가는 것이 金火交易 土化作用 寅申相火 等의 깊은 곳을 硏究할 때에 理解를 促進시킬 수 있으리라고 生覺되기 때문에 蛇足을 添加한 것이다.

 

 

  그렇다면 五行의 變化인 五運에 대해서 硏究하기로 하겠다.

第四節 五運과 變化

  運이란 槪念이 運動 運行 等에 對한 基本槪念이다. 運字를 만들 때에 軍字와  字를 合하여 만든 것은 軍이 가는 것(走)을 象徵한 것이다. 軍隊란 盲進만을 目的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前進할 때는 前進하고 後退할 때는 後退하는 것을 軍이라고 하는 것이다. 軍隊에서는 이것을 作戰이라고 한다. 軍이란 것은 이와 같은 作戰에 依하여 戰勢에 變化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한 意味에서 運字가 軍字와  字를 合하여 取象한 것은 運이란 것은 軍의 行進이 戰鬪에 變化를 나타내는 것처럼 運의 律動도 또한 一種의 戰鬪的 變化를 나타내면서 나가는 것이며 同時에 軍隊의 行進처럼 一進一退하면서 前進하는 宇宙變化의 律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運이라고 하거니와 여기에다가 五字를 合하여 五運이라고 하는 것은 宇宙運行의 基本法則인 五行이 變化하는 象을 五運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五行이라고 하면 五行 自體의 基本的인 法則을 意味하는 것이오 五運이라고 하면 五行이 變化를 實現하는 宇宙現象의 象을 意味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吾人이 五運을 硏究하려면 그의 名稱과 槪念부터 硏究하여야 하고 또한 宇宙는 運行하는 象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數를 나타내는 것이므로 自然數의 生成關係를 硏究하여야 한다. 그런 다음에라야 五運이 變化現象과 물의 生化成形하는 것을 硏究할 수 있는 것이다.

    가 五運의 名稱과 方位의 否定

    A. 名稱

  五行이라는 五氣의 基本法則과 五運이라는 그가 運行하는 象인 律動이 서로 다른 한 그 의 名稱이 다른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러므로 甲己를 土運이라고 하고 乙庚을 金運이라고 하고 丙辛을 水運이라고 하고 丁壬을 木運이라고 하고 戊癸를 火運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을 圖表에 依하여 說明하면 다음과 같다.

  五運圖









  위의 그림에서 보면 運은 土運에서부터 運行하기 始作하는 것이니 왜 이것이 土運에서부터 始作하는가? 하는 것부터 硏究하여야 한다. 다시 말하면 五行의 相生作用은 木(木火土金水)에서부터 始作하였고 相克作用은 金(金木水火土)에서부터 始作하였는데 五運은 왜 土에서부터 始作하였느냐? 하는 것부터 硏究하여야 한다.

  위에서 말한바와 같이 五運이란 것은 變化現象의 象이다. 그런데 五行가운데서 오직 中立不偏하는 象을 나타내는 곳은 土位인 것이다. 水火金木은 各各 偏僻된 性質을 가지고 있지만 土만은 無이며 中이며 空인바의 象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象을 나타내는 五運이 土에서 出發하여야 할 것은 明若觀火한 것이다.

  그러므로 土는 甲에서 己에 이르는 變化過程에서 생겨나므로 甲己化土라고 하면 그 다음으로 乙에서 庚에 이르는 사이에서 金이 생겨나므로 乙庚化金이라고 하며 그 다음은 丙에서辛에 이르는 사이에서 水가 생겨나므로 丙辛化水라고 하며 그 다음은 丁에서 壬에 이르는 사이에서 木이 생겨나므로 丁壬化木이라고 하며 그 다음은 戊에서 癸에 이르는 사이에서 火가 생겨나므로 戊癸化火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五運의 名稱(槪念)을 甲己土 乙庚金 丙辛水 丁壬木 戊癸火로 規定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五運이 化하는 面에서 본 名稱인 것이다. 그러므로 各人이 萬一 五運이 變化하는 面을 規定한다고 하면 應當 己甲土 庚乙金 辛丙水 壬丁木 癸戊火가 成立될 수 있다는 것도 머리에 넣고 生覺하여야 한다. 뿐만 아니라 五行에서 變化하여서 五運이되는 根據를 論據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五運의 變化에서 說明하겠다.

  다만 여기에서 記憶하여야 할 것은 五行과 五運은 本質的으로는 그 槪念이 同一하다. 그러나 五行은 基本적인 法則이고 五運은 變化하는 現象이므로 本體와 作用의 面에서 名稱을 分離한 것이다.

    B. 方位의 否定

  五行에 있어서는 甲乙木 丙丁火와 같은 方位의 規定이 嚴格하였다. 그러나 五運에서는 方位를 定할 必要도 없고 또한 定하여 낼 수도 없다. 왜 그러냐 하면 五行은 五原質의 基本法則이었지만 五運은 運動하는 變化의 現象이므로 方位를 定할 수 없는 것이다. 現象은 언제나 流動的이므로 方位와 같은 固定性이 介在될 수 없다. 同一한 原質의 五行의 個性이 옮겨지는 空間과 時間에 依하여 各其相殊한 變化를 造成하는 것뿐이므로 運에서는 時空間的인 象을 다루는 데만 目的이 있는 것이고 方位나 場所와 같은 固定的인 面 - 다시 말해서 方位의 固定性은 變化를 拒否하는 것이므로 - 은 벌써 五運의 對象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五行의 基本인 方位가 없이는 五運의 流動인 象이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나.數

  數를 硏究하려면 먼저 數의 槪念과 成立을 生覺하여야 하고 그 다음에 數의 變化를 硏究해야 한다.

    A. 數의 槪念

  數에도 亦是 哲學的 哲念과 言語學的 槪念의 두 가지가 있다. 言語學的인 面에서 考察하여 보면 數라는 것은 事物의 質量을 計算하는 手段에 不過할 것이다. 그러나 哲學的인 面에서 살펴보면 數는 事物의 幾微이며 有가 無에 이르는 過程이며 單이 多로 化하는 象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宇宙間에 存在하는 事物의 變化하는 象을 詳察하여보면 形(物質)이 分化하고 象(無)이 綜合하는 有無分合의 法則的 循環이 繼繼承承하는 물(水)의 波濤와 泡沫인 것이다. 그러므로 列子는 人物의 律動하는 變化를 물 속에서 出沒하는 潛水夫의 妙技로 보았고 伏羲는 그 물을 一(全體)이 六으로 分化하고 六이 一로 綜合하는 象을 河圖에서 發見하였고 文王은 그 물이 다시 分裂되어서 泡沫이 되고 그 泡沫(無)이 綜合의 契機로 飛躍하는 金火交易의 幾微를 洛書에서보았고 一夫는 이와 같은 先聖의 達觀에 依하여 正易을 著述하였고 또한 그것이 이루어지는 中心點(無極)을 指稱하여 十十一一之空이라고 함으로써 비로소 律動하는 물의 神秘는 開發되고야 말았다.

  却說 數라는 것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은 물(水)의 分化하는 形象을 象徵하는 물 自體의 表現인 것이니 그것이 바로 變化의 烙印이며 妙萬物의 母體인 것이다. 字典을 稽考하여보면 數字의 意味를 幾, 計, 細密 等으로 表示하였으니 幾라는 것은 幾微만 있어서 實在를 把握할 수 없는 것이다. 計라는 것은 一이 十으로 分裂되는 過程에서 생기는 事物의 發展과 그 綜合을 말하는 것이고 細密이란 것은 물이 泡沫이 되어서 물로서의 形을 喪失하고 다시 化合하기 始作하는 飛躍의 象을 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字典의 內容을 稽考하여 보면 數라는것은 上記한 바와 같이 古代의 先聖들이 立法한 河洛의 變化인 分化하는 물 自體의 表現 方式인 것이 分明한 것이다.

  宇宙란 것은 變化하는 時空間이다. 時空間이란 것은 變化하는 幾微의 一點 卽 十字의 交叉點인 것이다. 時의 延長과 空의 收藏은 반드시 이 間(十字의 交叉點)을 얻음으로써 飛躍할 수 있는 것이며, 또한 變化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意味에서 筆者는 緖論에서 「피묻은 十字架」 라는 表現을 빌려 쓴 일이 있거니와 이러한 時空間的 變化인 形象의 發展을 그 自體의 모습대로 나타내는 것이 바로 數라고 生覺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數는 變化하는 現象을 記錄하는 表示일 뿐만 아니라 바로 그것이 變化自體의 모습인 것이다. 그런즉 우리는 여기서 宋學이 「有氣則 有度 有度則 有數」라고 한 深奧한 底意를 엿볼 수 있으니 이것을 좀더 풀어서 말하면 宇宙라는 變化하는 大氣圈은 언제나 五行氣로서 充滿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모든 것이 動靜하게 마련이다. 이와 같이 動靜하는 것은 氣가 있기 때문이요 氣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度가 있고 度가 있는 곳에 數가 따르는 法이다. 그것이 바로 推進力과 引退力인 陰陽의 運動力이다. 그러므로 地球와 日月의 秩序整然한 運行도 이와 같은 氣度數의 現象으로서 나타나는 것이오 曆命數와 物象數의 現象도 實로 여기 緣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數의 槪念을 一層 더 좁혀서 말한다면 數란 自然法則 自體의 運動現象의 表現인 것이다.

    B. 數의 成立

  自然數의 數列은 一, 二, 三, 四, 五, 六, 七, 八, 九, 十의 順序로 配列하여 成立되었다. 그런데 이 列을 자세히 살펴보면 奇數와 偶數가 서로 交代하면서 規則的으로 配列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奇數+偶數=數列」이라는 公式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問題되는 것은 이러한 數의 成立이 人爲的이냐? 或은 自然的이냐? 하는 것이 問題된다. 一般的으로 이 問題를 人爲的인 것으로 生覺하는 傾向이 많다. 그렇다면 自然數라는 槪念부터 먼저 따져 보아야 할 것이다. 萬一 數의 成立을 人爲的이라고 한다면 自然數란 槪念은 반드시 自然所産인 事物을 計量하는 것이 모든 自然數라고 한다고 하여야 옳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槪念學上으로 보아서 잘 首肯되지 않는다. 自然數란 말은 數 自體가 自然의 法則 그대로의 表象이기 때문에 自然數라고 한다고 하여야 槪念的으로 妥當하게 느껴진다. 萬一 數의 成立을 人爲的으로 된 것이라고 한다면 옛적에 數를 만들 때에 가령 數列을 一, 三, 四, 七, 九 等으로 粗雜하게 配定하였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오랜 동안의 歷史的 習慣에 依하여 事物을 그렇게 計量했을 것이다. 그것은 勿論 計數上으로는 無妨할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一 다음에 三이라고 計數하더라도 그것이 習慣化 되기만 하면 一 다음은 二라고 認識하는 것을 一 다음은 三이라고 習慣으로 認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人爲的인 數를 使用한다면 哲學의 發展은 있을 수 없다. 특히 東洋哲學은 基本을 數에다 두었다. 그것은 위에서 말한바와 같이 數라는 것은 動靜하는 事物의 現象 自體이기 때문이다. 勿論 西洋哲學에 있어서도 數를 대단히 重視한 피타고라스와 같은 學者가 있기는 하였다.

  그는 모든 것을 다 疑心하였지만 思惟하는 나 我와 數만은 疑心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만 보아도 그가 數를 얼마나 重視하였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서 數에 대한 思索과 硏磨의 자취는 찾을 수 있지만 反面 數的인 法則을 硏究하였다는 것을 엿볼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東洋哲學은 그 出發부터 數로서 始作하였다. 다음의 河圖에서 그것을 엿보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위의 그림의 一, 三, 五, 七, 九는 白色圓이다. 이것은 奇數니 陽을 象徵하는 것이오 二, 四, 六, 八, 十의 黑色圓은 偶數이니 偶數는 陰을 象徵하는 것이다. 또 一, 三, 五, 七, 九의 五位 中에서 一, 三, 五는 陽數로서의 生數요 七, 九는 陽數로서의 成數다. 二, 四, 六, 八, 十 中에서 二, 四는 陰數로서의 生數요, 六, 八, 十은 陰數로서의 成數다. 이것을 다시 추려보면 自然數의 數列은 一二三四五六七八九十인데 그 중에서 一二三四五는 生數라고 하고 六七八九十은 成數라고 한다. 그런데 生數인 五位 즉 一二三四五 中에서 奇數인 一三五는 陽의 生數요 二四는 陰의 生數다. 또 成數인 六七八九十 中에서 六八十은 成數 中의 陰數요 七九는 成數 中의 陽數이다. 이와 같이 生數와 成數가 各各 奇偶數를 가지고 있는데 生數는 萬物이 變化하는 基本原理이고 成數는 萬物이 變化하는 實現形態인 것이다. 그런데 自然數는 이와 같은 性質을 가진 奇偶가 互相交雜하여 一陰一陽하면서 數列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法則으로서 成立된 數列의 理論的 根據가 바로 河圖에서부터 나왔다. 그것이 바로 數의 化生이며 同時에 萬事萬物의 化生인 것이다.

  여기서 河圖에서 나타난 數理를 대략 說明하면 一과 二인 水火의 生數는 宇宙變化의 二大 基本原理이고 三과 四의 木金은 一二 즉 水火의 運動을 돕기 위한 幇助的인 原理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一이 二로 化하려면 三의 도움이 必要하고 二가 一로 變하려면 三의 도움이 必要하다. 그런즉 宇宙의 運動은 一과 二의 互惠運動이므로 自然數의 一은 그 基本要素인 一二가 차례로 配列되고 그 다음은 一이 二로 發展하는 것을 돕는 要素인 三이 配置되고 그 다음은 二가 一로 歸藏하는 것을 돕는 要素인 四가 配置됨으로서 變化와 生成의 序列이 決定된 것이다. 이것이 一二三四의 順位가 法則的으로 形成되지 않을 수 없는 河圖의 序列인 것이다. 이것을 變化의 法則인 五行運動에서 보면 水火는 宇宙變化의 基本要素이고 木金은 幇助的 要素이므로 水火를 一二順位로 하고 木金을 三四位로 하였다는 말과 相通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生數 중에서 아직 남아있는 것은 五이다. 五는 生數 中에서 中數다. 이것을 五行의 槪念으로 바꿔놓으면 土다. 土의 性格이 不偏不黨한 中이라면 五의 性格이 그러한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水火金木이 偏僻된 性格者라면 一二三四가 그러할 것도 當然한 것이다. 그러므로 一二三四의 다음에 五가 配置되어야 할 것은 水火金木의 中位에 土가 있어야 하는 것과 一般인 것이다. 그러므로 五는 數列의 中位인 五位에 配置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河圖를 살펴보면 中央의 五가 十에 依하여 包圍 當하고 있다. 五는 一二三四五의 生數의 끝이므로 十의 가운데 있으면서 生하려는 뜻을 內包하고 있는 것을 表象한 것이다. 위에서 變化의 化生數인 生數의 成立을 말했다. 그러면 다음은 變化形成數인 成數의 配置된 理由를 말하겠다.

  宇宙를 彌滿한 것은 萬物이다. 萬物은 大小와 粗密의 反復運動을 하면서 形上形下에 形象을 나타낸다. 그 運動의 過程에서 形而上的 表象이 바로 生數인 一二三四五의 化生이며 形而下的 表現이 成數인 六七八九十의 形成인 것이다.

  위에서 生數는 變化의 基本原理요 成數는 萬物이 變化하는 實現形態라고 한 것도 實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즉 成數는 生數의 基本原理를 얻음으로써 萬物의 實現形態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이고 生數는 成數의 實現形態를 얻음으로써 基本原理 즉 生命을 保存할 수 있는 것이니 이것이 陰陽의 互惠運動인 것이다. 그러므로 生數인 一二三四五는 成數인 六七八九十을 얻음으로써 萬物이 實現되는 것이다. 數가 自然自體인즉 數 自體의 發展도 自然自體의 發展과 同一할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것이 生數가 成數로 發展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즉 生數는 一二三四五의 五位이지만 五는 一二三四의 綜合者 土로서의 性格을 가졌으므로 五가 곧 一二三四의 代表이며 同時에 生成의 本質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一+五=六, 二+五=七, 三+五=八, 四+五=九, 五+五=十의 公式으로 成數가 形成된 것이다. 그런즉 六은 五라는 形成의 本質과 一이라는 生化의 基本原理가 서로 綜合됨으로써 물(水)의 形質을 갖추게 되었고 七은 五라는 形成의 本質과 二라는 生化의 基本原理가 서로 綜合되어 서로 불(火)의 形質을 갖춘 것이다.(以下略)

  이와 같이 하여 生數와 成數의 互惠生成하는 運動을 陰陽의 五元化運動인 五行法則으로 規定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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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handongseok.org/lecture1.htm
黃帝內經講義 (1) 1964년 10월호

韓東錫

第一編 變化原理

第一章 總論

第一節 緖論

  內經이라는 말은 黃帝時代에 그의 臣인 岐伯天師等 六臣과의 問答에 의해서 論述된 것을 蒐集記錄한 것이다. 이것을 黃帝內經이라고 하는 바 그 內容을 다시 區分하여보면 靈樞와 素問으로 區別된다.

  이제 여기에서 그 內容을 살펴보면 病理 生理 診斷 針灸 등 直接으로 人體와 關係되는 部分과 間接으로 宇宙와 關係되는 自然哲學的인 部分으로 區別된다.

  다시 말하면 宇宙의 自然現象은 그것이 비록 千態萬象이라고는 하지만 萬一 어떠한 法則으로서 이것을 測定한다고하면 그것은 바로 陰陽의 分合過程에서 생기는 五行運動에 不過한 것이라고 規定할 것이다. 이것이 所謂 自然哲學의 一分類인 象數學(五行學 或은 變化原理)과 醫學과의 區分이 되는 것이나 그러나 좀더 嚴密히 考察하여보면 醫學理論이 바로 宇宙原理를 基礎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內經이란 것은 如何한 學問인가? 하는 質問에 對하여 단 한마디로 對答한다면 그것은 '自然哲學原理'인 五行學에 依해서 人體의 生理變化를 알아내고 또 이것을 治療하는 醫學自體의 '基礎原理'라고 對答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問題되는 것은

  첫째로 宇宙運行의 自然哲學的 原理를 單純히 陰陽과 五行이라는 規範으로써 完全無缺하게 說明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問題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所謂 陰陽五行說이 지닌바 眞理性이 果然 躍如한가? 어떤가? 하는 것을 硏究하는 것이다.

  둘째 人體의 모든 組織과 그의 運動原理가 自然哲學的 宇宙原理와 同一한가? 어떤가? 하는 問題를 硏究하지 않으면 안된다. 萬一에 自然界를 說明하려는 이 陰陽五行原理에 어떠한 矛盾이 있다든가 或은 人體가 宇宙의 運動原理와는 相反되는 運動原理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면 內經은 醫學의 經典이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同時에 吾人의 硏究對象으로서도 何等의 價値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內經은 그 自體가 지닌 바 經典的인 價値와 또 哲學的인 絶對眞理가 있다고 하면 다시 말해서 人體의 病變現像을 探索하고 治療하는데 있어서 確固不動한 最高哲學으로서의 原理가 있다는 것을 認識할 수 있게 되고 또 探索에 沒頭하게 되면 醫道施術의 神化 즉 如何한 病이라도 自由로이 處理할 수 있는 實力이 생긴다고 하는 結論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目的을 實現하기 위하여서는 爲先 위에서 말한바 宇宙의 自然原理 陰陽과 五行의 運動原理부터 먼저 硏究하지 않고서는 人體의 모든 現象을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內經一書는 비록 數萬字에 達하는 尨大한 內容을 지니고 있지만 宇宙의 自然原理(즉 五行)만을 完全히 把握한다고 하면 其他의 모든 部分 즉 生理 病理 脈色 針灸 等은 講義를 들을 必要도 없이 自解自得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本講은

第一編 變化原理

  이것을 先講하여 自然哲學的 規範인 五行原理(象數學)을 納得시키는 것을 爲先으로 하고

第二編 運氣編

  을 內經本文대로 紹介함으로써 天道原理硏究의 解別明彰을 돕게 하고

第三編 疾病編

  을 넣어서 天人合一의 大本을 說明하기로 하고

第四編 針灸와 診療編

  을 넣어서 本講을 終了하도록 하는 것이 內經學의 體系上 옳지 않을까 生覺하는 바이다.

  다음은 筆者가 硏究過程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고 또 現在에 있어서나 未來에 있어서도 亦然하리라고 生覺하는 바의 書籍을 紹介하려고 하는 바이다.

  그러나 그 內容이 너무 어려워서 이것들이 內經硏究의 參考書라기 보다는 오히려 內經이 그들의 參考書라고 할만한 것이기는 하나 互相參照하면서 硏究하면 不知不識間에 理解를 促進시켜서 奈終에는 그것들이 오히려 偉大한 師表가 된다는 것을 附言하는 바이다.

  ◇ 記 ◇

  一 周易과 正易

  二 墨子의 經上下, 經說上下, 大取, 小取

  三 老子

  四 列子의 天瑞篇, 黃帝篇, 仲尼篇

  五 莊子의 天下篇(全篇을 讀破하면 더욱 可함)

  六 公孫龍子(이것은 글도 많지 않으니 꼭 읽어둘 必要가 있다. 이것을 完全納得하면 墨經을 解得할 수 있는 實力이 생긴다.)

  七 荀子의 不苟篇 解蔽篇 正名篇

  八 近思錄의 道體篇

  九 皇極經世

 

 

第二節 內經의 由來

  中國의 哲學과 醫學思想은 本來 南北으로 갈라져서 各其 相異한 方向으로 발달하였던 것이다.

  黃老學派는 南方에서 自然哲學的으로 發達되었던 것이니 이것은 黃帝의 內經, 中經, 天符經을 祖宗으로 하였고(萬歲不易之典所載) 儒敎學派는 北方을 中心으로 發達하였던 것이니 이것은 人性主義立場에서 孔子를 中心으로 發達되었던 것이다.

  却說 黃老學派의 自然哲學이란 것이 이른바 陰陽五行說이니 이것이 오늘날 말하는 象數學이요 또 變化原理이기도 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古聖들이 宇宙自然의 運行法則을 把握하므로서 거기서 宇宙와 人事 其他 모든 原理를 發明하였던 것이니 이것이 五行學의 基礎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地球 위에서 생기는 모든 原理는 宇宙運行原理와 同一하다고 規定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黃老學派의 發達은 戰國末에 秦始皇이 焚書坑儒하기 以前까지는 非常한 發達을 하므로서 儒學은 無色할 程度로 劣勢에 놓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漢代 以後 儒敎가 國敎로서 登場하기 始作하면서부터 自然哲學思想은 漸漸 轉落하게 되었던 것이다.(여기에는 政治的 社會的으로 重大한 理由가 있으나 略함)

  그렇던 것이 近來에 와서는 그 眞價가 차츰 學界에 認識되어가게 되어서 西歐哲學에 있어서 마저 이에 關心을 기울이게 되고 있는 것은 實로 多幸한 일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本論의 目的하는 바는 南北學派의 優劣이나 長短을 誹辦하려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自家誹辦에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近來에 와서 內經 思想의 基本인 五行思想에 대해서 이것이 醫學發展의 途中에 導入된 것이고 內經 本來의 思想이 아니라고 生覺하는 見解가 바로 그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不得已 여기에서 一言하려는 바이다.

  첫째로 問題되는 것은 黃帝時代에 文字가 없었거늘 어찌 그 尨大한 內容을 갖춘 內經이 完成될 수 있었겠는가? 하는 點이다. 그렇게 考察하면 內經은 分明히 後人所作이라고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筆者도 이 點에 對하여서는 頑强히 反對할 意思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春秋時代의 文體만 參考하여보아도 그 時代의 筆致와 內經의 文體와의 사이에는 相異한 點이 있어야 하겠거늘 而況 黃帝時代와 比較한다고 하면 그 差異點은 뚜렷이 달라야할 것이다.

  그러함에도 不拘하고 現存한 內經의 文體를 살펴보건대 오히려 戰國時代 以後의 文體와 彷佛한즉 內經은 黃帝時代의 所作이 아니라는 理由가 成立되는 것이다.

  생각컨대 戰國時代에 鄒衍이 五行說을 大發展시켰고 또 그 時代는 斯學의 全盛期였으니만큼 或是 鄒衍一派의 所作이 아니였든가? 生覺할 餘地는 充分히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서 醫學과 內經(즉 五行)은 別個였던 것이고 다만 五行說을 醫學의 發展途中에 導入한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妥當치 못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醫學과 五行은 同一人의 所作이 아니라는 말이 되는 것인즉 그것은 바로 內經이 同一人의 所作이 아니라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內經에서 五行精神을 除去한다고 하면 內經理論은 그의 基盤을 잃어버리게 되는 까닭이다.

  돌이켜 生覺컨대 周易의 河圖 洛書 自體가 바로 五行인데 孔子가 易에 十翼을 著述하여 周易을 完成시킬 때 河圖와 洛書를 卷頭에 싣는 것을 잊지 않았고 또 夫子가 詩書를 冊修할 때도 書傳에 洪範(箕子가 洪範에 五行說을 著述하였음)을 싣는 것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五行說은 周代 以前의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이며 또 孔子가 이것을 얼마나 重視하였던가? 하는 것도 알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墨子 老子 莊子 列子 公孫龍子 등의 自然哲學思想은 모두 五行說이 그들의 基幹을 이루고 있다는 것으로 미루어 보면 五行說은 다만 戰國時代에 와서 開花된 것뿐이고 그 源流는 멀리 黃帝時代에 있었다는 것을 넉넉히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筆者가 生覺하는 바로서는 內經을 黃帝時代의 所作이 틀림없고 다만 이것을 戰國時代에 와서 通俗化될 수 있는 程度로 發展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바이다. 뿐만 아니라 五行學은 漢醫學의 發展途中에 導入된 것이 아니고 漢醫學自體의 基本法則이라고 生覺하는 것이 妥當한 것이다.

  더욱이 이것을 가지고 曰可曰否할 生覺도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取할 態度는 다만 思惟하는 自我로서 眞理探究에 그 目的이 있기 때문에 誰何의 所作與否를 論할 것이 아니라 途中의 導入與否를 論할 것이 아니라 그가 果然 眞理이냐? 아니냐? 하는 것만 따지면 그만인 것이다.

第三節 五行의 發展

  위에서 五行이란 것은 宇宙의 造化이며 人體의 變化이며 同時에 모든 變化의 規範이라는 것을 말한 바 있다.

  萬一 그렇다면 그와 같이 重大한 五行現象은 果然 어떻게 生成하느냐? 하는 것을 硏究하여야 할 것이다.

  宇宙가 오늘날의 宇宙 다시 말하면 日月星辰과 地球가 形成되기 前에는 다만 寂寞無朕하여서 있는 듯도 하고 없는 듯도 한 形而上의 象만을 나타내고 있었던 때이므로 이것을 無極이라고 命名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無極이 漸次로 自己運動을 일으켜서 永遠한 運動을 계속하게 되니까 그 無極 가운데 混合內包되어 있던 바의 淸氣와 濁氣가 서로 갈라지기 始作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各其 同氣相求하는 性質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드디어 淸氣는 陽團을 이루고 濁氣는 陰團을 이루어서 서로 밀고 당기고 하는 運動을 始作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宇宙間에는 矛盾과 對立이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萬物이 發生하게 되었고 人間도 또한 生成하게 된 것이니 이 本源을 가리켜서 太極이라고 命名하였고 또한 太極의 運動狀態를 가리켜서 陰陽運動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宇宙의 變化는 이와 같은 引合運動만으로서는 決코 宇宙의 自然現象을 實現해낼 수는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大體로 볼 때는 陰陽運動에 不過하지만 細密히 살펴보면 陰陽運動은 다시 四介의 運動을 나타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바로 陰陽의 再分裂現象이니 즉 陰陽이 각각 自己運動과정에서 다시 陰陽으로 再分裂하여 四象이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陽中에서 갈라진 것을 陽中之陰陽이라고 하고 陰中에서 갈라진 것은 陰中之陰陽이라고 呼稱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宇宙의 陰陽運動은 本來는 陰陽 二本이던 것이 다시 分裂되어서 四象形態의 運動을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吾人의 感覺界에 나타나는 春夏秋冬 四時가 그의 代表的인 形象인 것이다. 그러므로 木은 陽中之陰, 火는 陽中之陽, 金은 陰中之陽, 水는 陰中之陰으로 區別되는 것이다.(下圖參照)

 




圖說

 (가) 右圖 左에서 右로 通한 線을 緯線이라하고 南北으로 通한 線을 經線이라고 함

 (나) 緯線以下는 用의 陰部라하고 緯線以上은 用의 陽部라고 함

 (다) 東哲은 (나)에서 말한 바 體와 用이란 述語를 重用하니 즉 本體와 作用이라는 말이다.

 (라) 東哲은 東西南北 즉 八方의 表示를 右圖와 같이함(그 理由는 講義가 前進됨에 따라서 自然히 알게 된다.

 (마) 東哲은 어떤 問題를 說明함에 있어서 大部分, 用 中心으로 說明하게 된다. 故로 여기서도 用을 主軸으로 하기 때문에 左下를 陽中之陰 左上을 陽中之陽 右上을 陰中之陽 右下를 陰中之陰이라함.

  圖에서 본 바와 같이 本來는 陰陽運動이던 것이 陽(左便用의 陽位)이 갈라져서 陽中之陽과 陽中之陰으로 갈라졌고 陰(右便用의 陰位)이 또 둘로 갈라져서 陰中之陽과 陰中之陰으로 되는 것이다. 그런즉 이와 같이 갈라져서 四介로 分割된 것을 四象 즉 木火金水라고 하는 것이다.

  위와 같이 되게 된 內容을 다시 생각하여 보면 本無極이었던 肇基가 太極으로 變함으로써 그 太極이 陰陽運動의 肇基가 되었고 陰陽運動이 다시 갈라져서 四象 즉 木火金水의 肇基가 되었다는 것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問題되는 것은 또 하나 있다. 위에서 말한 바의 四象이 그 自體만으로서는 아무런 變化도 이루어내지 못한다는 事實이다. 다시 말하면 四象의 本性은 異質的인 것들이다. 그러나 異質的인 것들은 항상 矛盾과 對立을 나타내면서 鬪爭함으로써 宇宙와 萬物의 變化를 實現하는 것이다.

  그런즉 鬪爭과 對立은 宇宙發展의 重要한 要因이다. 그렇지만 여기에 萬一 이것을 調節할 수 있는 어떠한 調和作用의 主體가 없다고 하면 宇宙와 萬物은 勿論 人體에 있어서도 이와 같은 矛盾對立의 鬪爭 때문에 모든 機能은 破滅되고 말 것이다. 그런 故로 四象의 運動이 自己運動過程에서 생기는 矛盾을 解決하기 爲해서 四象 自身이 「土」를 生하게 되는 것이다. 이 「土」야말로 矛盾을 調和시켜서 陰陽運動의 對立을 緩和시키며 따라서 五行各個의 過不足運動을 補短抑過하는 가장 重要한 것이다. 그러므로 『土+四象=五行』이란 結論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면 그 土라는 것은 무엇이며 또 五行이란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밝혀야 한다. 五行學의 硏究라는 것은 實로 여기에 있는 것이니 그것은 各論에서 이야기할 性質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論하지 않겠다. 그러나 總論에서 默過할수 없는 것은 所論한 바 五行을 生成하게 하는 것은 果然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故로 이것을 次節에 論하겠다. (次號 繼續)

 <筆者=서울 鐘路區 韓東錫漢醫院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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